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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정력에 좋다며 하루 100개씩 후루룩…굴 사랑에 빠진 로마황제
기사입력 2018.12.04 10: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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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쌀쌀해지면 굴이 맛있다. 게다가 굴은 스태미나 식품이라고 한다. 단순히 마케팅 차원에서 만들어 낸 말이 아니라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믿음이다. 굴이 강장식품이라는 생각은 유럽에서 시작됐다.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겠지만 다르다. 동양은 그저 몸에 좋거나 피부를 곱게 만들어준다고 믿었을 뿐 스태미나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서양에는 굴이 정력에 좋다는 속설과 관련해 속담과 일화도 많다. “굴을 먹어라, 그러면 더 오래 사랑할 수 있다(Eat Oyster, Love Longer)”라는 말이 있다. 이러니 굴이 보물이다. ‘굴을 얻으면 세상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The World is One’s Oyster)’는 숙어도 생겼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에서 처음 쓰였는데 16세기 말 영국인이 굴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 대사에도 나온다. 굴에 대한 인식이 20세기 서양인의 잠재의식에도 남아있다. 일화도 많다. 널리 퍼진 게 카사노바 이야기다. 얼마나 굴을 좋아했는지 매일 아침 생굴을 50개씩 먹었다는데, 그래서 출중한 정력을 과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서양 사람들은 왜 굴이 스태미나 음식이라고 생각했을까? 굴을 먹으면 진짜 정력이 세졌기 때문일까?



▶금값과 맞먹었던 굴 값

유럽의 굴식용 역사를 알아보면 재미있는 인문학적 상식과 유럽의 음식문화사, 식품경제사를 엿볼 수 있다. 서양에서 굴은 예나 지금이나 특별한 음식이다. 전통적으로 회를 먹지 않는 유럽이지만 굴 만큼은 날 것으로 먹었다. 프랑스 소설가 알렉산더 뒤마는 “진정한 미식가는 생굴을 먹으며 바다의 맛을 그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으니 서양의 굴 사랑이 만만치 않다. 유럽의 굴 마니아들은 산지별로 굴을 골라 먹는다. 와인이 산지와 연도에 따라서 맛과 향이 달라지는 것처럼 굴에도 빈티지가 있다고 하는데 심지어 와인을 관리하고 추천하는 소믈리에가 있는 것처럼 서양에는 굴 소믈리에까지 있다.

굴이 스태미나 식품이라는 속설도 이런 배경에서 생겼는데 우선 카사노바 이야기의 진위부터 따져보자. 먼저 카사노바가 아침마다 생굴을 먹었다는 사실은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카사노바가 굴을 좋아했던 것은 분명하다. 자서전 <내 인생 이야기(Story of My Life)>에 여인을 유혹할 때 먹었던 음식이 나오는데, 여기에 굴 요리가 자주 등장한다. 흔히 카사노바가 굴을 많이 먹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급 귀족에 지나지 않았던 카사노바가 먹기에 굴 값이 만만치 않았을 뿐더러 당시 다른 상류층 인사들이 먹었던 굴 양과 비교하면 좋아한 축에도 끼지 못했다.

유럽인은 한 번 먹었다 하면 엄청난 양의 굴을 먹었다. 먼저 고대 유럽에서 굴에 푹 빠져 지냈던 대표적 인물로 서기 69년에 로마황제를 지낸 아울루스 비텔리우스를 빼놓을 수 없다. 역사가 타키투스는 비텔리우스가 황제로 있었던 8개월 동안 끝없는 식욕을 채우고 독특한 미식을 만족시키기 위해 로마 화폐로 약 900만 세스테르스를 낭비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2000년 전의 돈을 지금 화폐 단위로 환산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기는 하지만 대략 900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니 우리 돈으로는 약 1000억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무엇을 먹었기에 짧은 기간 동안 그렇게 많은 돈을 썼을까 싶은데 지금 기준으로 보면 사치스럽기는커녕 오히려 엽기적이다. 꿩고기와 플라멩고, 공작새 고기를 즐겼고 각종 조류의 골수를 채소와 함께 끓인 미네르바의 방패라는 요리와 홍학의 혓바닥, 장어 내장 등이 알려진 메뉴다. 그나마 먹음직스런 것은 영국에서 직접 조달했다는 신선한 굴인데 한 번에 100개씩 먹었다. 신선한 생굴을 먹기 위해 로마병사들이 멀리 영국에서 로마까지 배를 타고 말을 달려 조달했다. 그러니 굴 값이 상상을 초월했다. 교통이 불편했던 1세기 로마시대에 영국의 굴은 같은 금값과 맞먹었다. 비텔리우스 황제의 식탁이 초호화판이라고 비난 받았던 배경에 굴이 있었다.

로마 멸망 이후 중세 시대 유럽에서 굴 열풍은 잠시 주춤했다가 근대에 들어서면서 다시 살아났다. 이때도 굴은 부자들이나 먹는 해산물이어서 유럽 역사에서 경제와 부의 중심이 이동할 때마다 굴 소비 지역도 달라졌다. 17세기 유럽의 굴 소비 중심지는 네덜란드였다. 동양과의 무역에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면서 굴 소비가 엄청 늘었다. 이 무렵 네덜란드 정물화에 유독 굴 그림이 많이 보이는데 부자들이 자랑삼아 굴 그림으로 장식을 했기 때문이다.

17세기 말에서 18세기로 넘어오면서 프랑스가 루이 14세부터 나폴레옹시대까지 유럽에서 정치적, 군사적 중심지가 됐을 때 프랑스에서도 역시 굴 소비가 엄청나게 증가했다. 예컨대 “짐이 곧 국가다”라고 외친 프랑스의 절대군주, 태양왕 루이 14세도 굴 마니아였다. 도버 해협에서 파리까지 마차로 굴을 실어 날랐을 정도였고, 루이 14세를 초대했던 귀족의 요리사가 굴이 늦게 도착해 상하자 자살했다는 일화도 있다. 굴이 신선하지 못해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었다는데 이 정도면 당시 사람들의 굴 사랑이 거의 병적인 수준이 아니었을까 싶다.

루이 14세뿐만 아니라 부르봉 왕가 왕족들은 대부분 엄청난 굴 애호가였다. 루이 15세는 귀족들이 점심으로 굴을 먹는 초대형 굴 그림을 베르사유 궁전 식당에 걸어 놓고 식사 때마다 그 그림을 보면서 식욕을 돋웠을 정도였다. 사실 문자로 남은 기록만 봐서는 로마나 유럽의 부자들이 앉은 자리에서 굴을 몇 백, 몇 천 개씩 먹었다고 하면 그게 과장인지 아닌지 믿기 어려운데, 바로크 시대와 로코코 시대 서양 그림에 보면 진짜 굴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먹는 장면이 많다.

18세기에는 굴 파는 상점이 파리 시내에만 약 2000개를 넘었다고 한다. 당시 파리 인구가 50여만 명이 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파리 사람들이 얼마나 굴을 많이 먹었는지 상상할 수 있다. 일례로 19세기 초 나폴레옹 군대의 총 사령관인 주노 원수 역시 굴을 엄청나게 좋아해서 한 번에 300개씩을 먹어치웠다고 하는데 고대 로마시대가 됐건 근대 프랑스가 됐건 옛날 유럽 사람들은 왜 이렇게 미친 사람들처럼 굴을 좋아했던 것일까?



▶굴이 힘과 장수의 비결?

로마인들은 굴이 사랑의 힘과 장수의 비결이라고 믿었고 카사노바 이야기처럼 근대, 나아가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는 굴이 리비도(Libido)를 자극해 정력의 비결이라고 생각했다는데 도대체 왜 이런 믿음이 생겼을까. 유럽에서 굴을 정력, 내지는 섹스와 연관시킨 이유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그 뿌리가 비롯됐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그림을 본 적이 있다면 비너스가 커다란 조개껍질 위에 서 있는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 즉 아프로디테는 바다거품에서 태어나 조개껍질을 타고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림 <비너스의 탄생>에서는 가리비(Scallop) 위에 서 있지만 고대 많은 문헌에서는 가리비가 아닌 굴(Oyster)에서 나온 것으로 적혀 있다. 굴(조개)을 잉태의 상징으로 봤던 것이다. 성적 욕망을 자극하는 사랑의 미약(Aphrodisiac)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도 아프로디테에서 유래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유럽에서는 전통적으로 굴에 정력을 키워주고 성적 흥분을 유도하는 성분이 있다고 믿었다.

일부에서는 과학적으로 따졌을 때 과거에는 실제로 굴이 정력의 원천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네랄이나 비타민 섭취가 균형을 이루지 못했던 고대에는 무기질과 비타민이 풍부한 굴이 리비도를 자극하는 정력제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여기에 더해 굴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의 음식이었던 데다 로마시대 이래로 금값에 버금가는 비싼 가격이었으니, 먹으면 힘이 솟는 스태미나식품이라는 굴에 대한 환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굴이 맛있는 계절이다. 사는 게 팍팍하거나 무기력한 기분이 든다면 굴을 먹는 것이 좋겠다. 비록 환상일지라도 옛 사람들 믿음처럼 먹고 힘이 솟아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윤덕노 음식평론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9호 (2018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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