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신청

[년 월 제 호]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
[오동진의 명화극장] 지금 당신은 행복하십니까…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기사입력 2018.01.30 17:50:08 | 최종수정 2018.02.02 11:06:26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돈이 있는 사람들은 알고 보면 돈이 없다. 돈이 없는 사람들이 돈이 있다. 있는 사람들은 그걸 죄다 금융권, 부동산에 묶어 놓기 때문에 현금이라고 하는 걸 갖고 다니지 않는다. 없는 사람들은 애당초 어디다 예금 같은 여윳돈을 마련해 놓지 못하는 삶이라 눈앞에서 밥 한 끼 사주게 되는 누군가의 사정을 듣다가 수중에 있는 돈 10만원이든 100만원이든 전 재산을 탈탈 털어 주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일 밥값은 내일 벌어서 먹으면 된다. ‘못 먹으면 할 수 없지’가 그들의 처세 방식이다. 세상사, 인생사, 인간사가 이렇다. 없는 사람이 있고 있는 사람이 없는 것.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기묘한 시스템이기도 하다.

감독이자 제작자인 윤제균의 이름을 자꾸 이 작품 앞에 내세우면 안 되지만 어쩔 수 없이 ‘윤제균표’ 영화처럼 보이는 최상현 감독의 데뷔작 <그것만이 내 세상>은 한 마디로 ‘없는 사람들’ 얘기다. 일생을 살면서 지지리도 좋은 일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각박한 사람들의 얘기다. 그래서 영화 내용이 참으로 궁색하고 옹색하다. 명품백 좋아하는 여성들이 보기에 참 지랄 맞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크게 성공하기 어려운 영화일 수도 있다. 상류층에서 하류층까지 전 계층을 아우르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마도 그런 단순한 예측은 틀리게 될 것이다. 이 영화는 오히려 계층을 넘나들며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것이다. 그럴 만한 설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것만이 내 세상>은 ‘어머니=모성’에 대한 얘기이고 가족의 재결합, 가정의 복원, 궁극적으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우리는 지난 2~3년간 엄청난 파고의 거대담론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간신히 정치의 한 가닥은 풀어낸 셈이 됐다. 이제는 보통의 삶도 동시에 회복해야 할 때다. 그럴 때가 됐다. 사회정치 환경과 함께 생활의 질이 좋아지기를 바라는 ‘또 다른 단계의 정치적 태도’에 이 영화는 과녁을 맞추고 있다. 그런 시대적 트렌드를 비교적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관객의 범위가 넓혀져 있으며 계층 간 진입장벽이 낮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삶의 보편성을 취득해 내고 있음을 보여 준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의 설정이다. 여자는 젊었을 때 남자를 잘못 만났다. 못 살아서 못 배우고 또 그래서 못 사는 것을 반복하게 되는 사람들, 그런 가정들, 그리고 그 안의 여자들의 경우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다. 여자는 폭력 남편에게 맞다가 맞다가, 참다가 참다가 집을 도망 나올 생각을 한다. 그런데 고민이 있다. 애가 둘이다. 그것도 단순히 둘이 아니다. 큰아이는 비교적 똘망똘망하지만 둘째 아이는 정상이 아니다. 자폐다. 장애인이 될 것이다. 여자는 여건상, 앞으로의 형편상, 아니 그걸 다 뛰어 넘어서 한 아이만을 데려 나올 수밖에 없다. 잘못하면 길바닥에서 얼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을 때 죽더라도 여자라면, 이럴 때 자기 품 안에 안고 나올 아이는 누구로 할 것인가. 정상아인 큰아들인가, 아니면 죽을 수도 있으니 어차피 모자라게 태어난 아이, 그러니까 나중에 서번트 증후군(정상 이하의 지능을 지녔거나 감정 조절이 비정상적인 사람이 특정 분야에 있어서 기억력과 그걸 모사(模寫)해 내는 능력이 극단적으로 천재적인 증상)으로 밝혀지는 자폐아인가. 여자는 아픈 아이, 둘째 아이를 데리고 야반도주를 한다. 그리고 새 삶을 꾸민다.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장애인인 둘째 아이의 뒷바라지만을 인생 목표로 하고 살아간다. 대신 큰아이는 버려진다. 청소년이 될 때까지 아버지한테 두들겨 맞고 결국 거리에 내몰린다. 여자는 한편으로 아이를 버렸다는 어마어마한 죄책감에 평생을 시달리며 살아가게 된다.

영화를 보다 보면 ‘괴팍하고 못된’ 신(神)이 종종 잔인한 장난을 즐기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여자는 너무 불행한 선택을 요구받은 셈이다. 이 여자의 사연을 듣고 있으면 신이 도대체 무엇을 증거하고자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신은 늘 그렇다 치고 사회는 복지(福祉)의 미명을 앞세우면서도 사회 구석에 왜 자꾸 이런 한(限)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일까. 아무튼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모성을 설정으로 하는 영화의 경우, 키우는 이야기보다 버리게 되는 사연이 더 뭉클뭉클하고 가슴 아프기 마련이다. ‘오죽하면’이라는 말이 입가에 맴돌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시절 우리들의 삶에는 그렇게 오죽한 경우가 진정으로 많기도 했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은 그런 어머니 주인숙(윤여정), 자기를 버리고 간 어머니를 원망하며 밑바닥 생활을 전전해 온 전직 복서 출신의 큰아들 김조하(이병헌), 바보스러운 외양이지만 피아노를 치는 데 있어서만큼은 절대 음감인 둘째 아들 오진태(박정민)가 우연하게 조우하고, 그렇게 다시 가족이 되고, 다 함께 죽을 만큼 힘든 일상을 견뎌 나가는 이야기다.

그렇게나 많은 불행의 전제(前提)를 갖고 있는 이 셋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영화는 그 결론을 향해 나아가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아슬아슬하게 만든다. 영화에서나마 이들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아니 다시는 헤어지지 않았으면, 그래서 또 다시 불행해지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 때문이다. 그건 지금 우리들 스스로가 현실에서 이제는 좀 행복해졌으면 하는 소망의 반영(反映)을 보여주는 셈이다.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돈일까. 성공일까. 뭔가를 성취하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 단위 하나는 2% 부족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돈과 성공과 성취감을 얻는 것은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함께 이뤄낼 때만 진정으로 그 가치가 높아 보이기 마련이다. 나누는 것이 적고 이루는 것의 수준이 어떠한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결국 인생은 만족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와 함께 있는가, 있을 수 있는가, 그럼으로써 궁극의 상실감을 덜어 낼 수 있는가에 방점이 찍히기 마련이다. <그것만이 내 세상>이 보여주려는 것은 바로 그 대목들이다.

혹자는 이 영화가 신파라서 싫다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댄디(Dandy)하고 쿨(Cool)한 것을 추구하는 도시형 젊은 세대들에게 이 영화는, 그들의 은어대로라면 ‘구릴’ 수도 있겠다. 구질구질하고 무엇보다 진부하며, 역설적으로 지나치게 교과서적일 수도 있겠다. 영화는 그 점을 의식한 듯 관객들을 2시간 동안 단단히 포획해 내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포석한다. 디테일이다. 서민들의 삶을 꼼꼼하게 담아내는 데 주력한다. 그러기 위해 연기자들의 역할이 컸다. 특히 이병헌은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연기 진폭이 큰 배우임을 입증해 냈다. 영화 속에서 그가 보여 주는 허접스러움, 너절함은 혀를 내두를 만큼 자연스럽다. 영화 속에서 이병헌이 쭈그리고 앉아 아이스 바를 먹는 모습 같은 것은 연기를 ‘한다’는 것만으로는 보여지기 어렵다. 그가 그 안에, 그렇게 ‘쭈그리고 앉은’ 삶에, 깊숙이 들어갔다는 얘기다. 이번 영화는 이병헌의 진심이 없었다면 자칫 그저 그런 신파에 머물 수도 있었던 작품이다.

이병헌만 이 영화를 ‘살린 것’이 아니다. 윤여정의 영화 속 모습도 일관되게 누선(淚腺)을 자극해 낸다. 그게 놀랍다. 미안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윤여정과 가슴 아픈 모성은 다소 역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영화적 쾌감이 크다.

서번트 증후군 환자를 연기한 박정민은 <파수꾼>과 <전설의 주먹> <동주> 이후 계속 진화하고 있는 배우다. 이번 영화에서 박정민은 쇼팽의 즉흥 환상곡이나 야상곡, 드뷔시 아라베스크 작품 1번 등을 연주하며 완벽한 연주 실력을 자랑한다. 오로지 이 역할을 위해 피아노 연주를 배우고 습득해 결벽에 가까운 연습을 해냈다는 것은 그가 이 영화에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매달렸는가를 느끼게 해 준다.

고단한 삶이다. 그렇게 이어지고 계속되는 삶이다. 영화가 해내야 하는 몫은 단 시간 내에서만이라도 사람들을 즐겁고 재미있게 만드는 미약(媚藥)을 제조하고, 뿌리는 것이 아니다. 그보단 궁극의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내 세상>은 바로 그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어머니 주인숙은 전인권의 히트곡 <그것만이 내 세상>을 즐겨 듣는다.
왜 노래 제목을 그대로 영화 제목으로 가져 왔을까. 그건 노래의 가사를 살짝 음미해 보면 알 수가 있다. 이 노래를 알면 이 제목을 그대로 가져 올 수밖에 없다. 실로 모든 사람들마다 묵묵하게 가야 할, 그것만이 내 세상, 내 길이 있기 때문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9호 (2018년 02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소재학 교수의 사주명리학] 알밤도 떨어질 때가 있듯 누구에게나 자신의 주기 있다

[돈 되는 법률이야기] 상속·증여세 물납제도 부정적 시각도 많아 주의 필요

[이순원의 마음산책] 이 가을 공책 속 혼잣말

[이민우의 보르도 와인 이야기] 소장가치 높아지는 와인은…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진시황이 구한 불로초는 영지버섯? 동서양 모두 버섯은 천상의 요리


경제용어사전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