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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마음산책] 창호지에 밴 아름다운 추억
기사입력 2018.10.30 11: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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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아래 시골집에 가면 집 마당으로 들어가는 길 옆에 유난히 경사가 긴 밭둑이 있다. 아주 예전, 산 아래에 산을 일구어 만든 밭이라 곡식을 심는 밭의 면적만큼이나 밭둑의 면적이 넓다. 자동차로든 혹은 걸어서든 그 밭둑을 돌아가노라면 옛날 어른들은 왜 이렇게 넓은 평지를 놔두고 산속 깊은 곳에 터를 잡았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산 위에서 바라보면 마을 제일 낮은 자리에 냇물이 흐르고, 냇물 옆으로 그 물을 끌어대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논이 있고, 그보다 위쪽으로 둔덕이 져 물을 끌어댈 수 없는 곳에 밭이 있다. 사람들이 사는 집은 밭보다 더 위쪽으로 산 아래에 붙어 있다. 그게 강원도 산간마을의 형태다. 아마도 물난리나 평지를 휘돌아 부는 사람을 피해 산 밑쪽으로 집을 지은 게 아닌가 싶다.

농사를 지을 땅이 부족한지라 밭둑도 논밭처럼 중요하게 활용한다. 거기엔 곡식을 심을 수 없으니까 밭에 그늘을 많이 드리우지 않는 뽕나무 같은 것을 심는다. 뽕나무도 가지를 치지 않고 마음껏 자라게 두면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의 집 마당가에 선 뽕나무만큼이나 크게 자란다.

그러나 봄가을로 1년에 두 번 누에를 치는 집 뽕나무들은 그리 크게 자랄 수가 없다. 봄가을로 뽕잎만 따는 것이 아니라 너무 높이 자라지 못하게 적당하게 가지를 잘라주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미 예전의 일이다. 이제는 시골에 가도 봄가을로 누에를 키우는 집들이 없다. 밭둑의 보호를 받고 자라던 나무들도 이제는 다른 잡목과 어울려 키 싸움을 한다. ‘상전벽해’까지는 아니지만 ‘상전잡목’으로 변해버린 지 오래다.

그런 시골집으로 들어가는 길 옆에 유난히 경사가 길고 면적이 넓은 밭둑을 지날 때마다 내가 군에 가 있는 동안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어린 시절 크고 우뚝하게 보였던 분은 나중에 어른이 된 다음에도 여전히 크고 우뚝하게 보인다. 내게는 초등학교 시절 은사님이 그렇고, 또 할아버지가 보여주었던 삶이 늘 커다란 산처럼 여겨진다.

들과 산의 모든 나무의 나뭇잎들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되는 11월이면 노새가 끄는 작은 수레가 마을로 온다. 빈 수레를 끌고 온 사람은 나이 쉰쯤 되어 보이는, 읍내 종이 공장(창호지를 만드는 종이 공장)의 종이꾼 아저씨다. 우리는 늦가을마다 우리 집에 오는 그 아저씨를 ‘조이 아저씨’라고 불렀다. 종이 아저씨가 오면 할아버지가 제일 반긴다. 아저씨는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난 다음 우리 집 닥나무 숲으로 가 닥을 베어 수레에 싣는다. 바로 집으로 들어오는 길 언덕 옆에 있는 경사가 길고 면적이 넓은 밭둑이 바로 할아버지가 가꾸어 놓은 닥나무 숲이다. 해마다 늦은 가을이면 종이 공장에서 작은 수레를 몰고 와 닥나무를 베어간다.

종이 아저씨는 닥나무를 베어간 다음 한 달이나 한 달 반쯤 지나 한 겨울이 되었을 때 이제 그 일을 잊을 만하면 어느 날 다시 종이 아저씨가 우리 집에 온다.

그게 대략 음력 설날을 보름쯤 앞두었을 때이다. 이때엔 종이 아저씨가 두루마리처럼 둘둘 만 창호지 뭉치를 어깨에 메고 온다. 우리 집 밭둑의 닥나무를 베어간 다음 그걸 원료로 종이를 만들어 그중 일부를 다시 우리 집에 보내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골길을 가다가 거기에 나무가 서 있으면 그 나무가 저절로 그 자리에 서 있는 줄 안다. 나도 어린 시절엔 그 밭둑에 닥나무 숲이 저절로 생긴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 나무 저 나무 함께 섞여 자라는 잡목 숲 말고는 그냥 생긴 숲이 없다.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이 산 저 산에 퍼져 있는 닥나무를 한곳으로 파 옮겨 닥 숲을 만들었던 것이다. 집에서 종이를 직접 만들 수 없으니 그 원료가 되는 닥나무를 심어 그걸로 집에 필요한 종이를 자급자족했던 것이다. 참 할아버지다운 생각이었다.

그렇게 종이 아저씨가 창호지 뭉치를 가져오면 할아버지는 같은 마을에 사는 이웃집들을 한 집 한 집 떠올리며, 또 그 집에 문이 대략 몇 개인지 어림 계산을 하며 창호지 뭉치를 나누신다.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다가오는데 새로 문을 바르라는 뜻이었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이웃집에 종이를 나누고 또 가까운 대소가에 종이를 나누었다. 심부름을 우리가 신문배달부처럼 옆구리에 창호지를 끼고 다니며 했다. 자라서 도회지로 나와 옆구리에 신문을 낀 신문팔이 소년을 보았을 때 내가 제일 처음 떠올린 것은 그 나이 때 창호지를 옆구리에 끼고 할아버지의 심부름을 다니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었다. 지금이야 그까짓 종이 몇 장쯤이야, 하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정말 설 명절을 앞둔 집집마다에 아주 귀하고 요긴한 선물이었다.

그러면 며칠 후 종이를 보낸 것에 대한 답례품이 왔다. 꼭 종이를 보낸 것에 대한 답례품이라기보다 한 동네에 살며 지난 한 해 동안 이런저런 보살핌을 받은 것에 대해 잘 다듬어 손질한 오죽 담뱃대를 보내오기도 하고, 지난가을에 잡은 토끼의 털로 만든 토시를 만들어 보내기도 하고, 잘 고은 수수엿을 보내오기도 하고, 형편이 어려운 집 같으면 표면에 살얼음이 살짝 낀 연시를 보내오기도 했다. 단지 문종이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는 동네 사람들과 또 대소가 사람들에게 늘 커다란 나무의 그늘 같은 분이었다.

붉던 단풍이 떨어지고 나무마다 앙상하게 빈 가지를 남기는 계절이 되면 나는 시골집으로 올라가는 언덕길 옆의 잎 떨어진 닥 숲을 떠올리게 되고, 또 그때 그 시절의 일들이 떠오른다. 누구나 마음 안에 고마운 분들이 있다. 어떤 해엔 인생에서 아주 큰 도움을 받은 분이 있기도 하고, 두고두고 잊지 못할 도움을 받은 분이 있기도 하다. 나 역시 해마다 새로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한 해를 보내며 내 마음의 정성을 담은 작은 선물을 보내기도 하지만 내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동네 사람들이 주고받았던 창호지 선물과 답례만큼 아름다운 선물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예전 어느 한때는 고마움의 표시로 주고받는 선물이 그 선물을 준비하는 나에게도 부담이 되고, 또 받는 분에게도 부담에 되게 과하게 했던 적도 있었다. 내가 이 계절에 그때의 일을 다시 떠올리는 건 서로 고마움의 표시로, 또 그런 정성으로 선물을 주고받는 일에서도 그 분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세월이 바뀌어 이제는 그 닥 숲을 찾아오는 종이꾼도 없고, 노새 목에 매달려 딸랑딸랑 울리는 방울소리도 없다.

[소설가 이순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8호 (2018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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