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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동양의 신비한 향신료가 국민 메뉴로 인도 음식 카레의 세계 전파 스토리
기사입력 2018.10.30 1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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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는 세계적으로 인기 높은 음식이다. 인도가 본고장이지만 카레를 자기네 국민 음식처럼 여기는 나라가 한둘이 아니다.

일본도 그중 하나다. 우리도 카레라이스를 자주 먹지만 일본인은 평균적으로 1년에 78번을 먹는다고 한다. 일주일에 1.5회 꼴이니 카레라이스가 일본의 국민음식이라는 주장이 나올 만하다. 영국도 본고장 인도 못지않게 카레를 자주 먹는다. 영국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300만 명이 정기적으로 카레를 먹는다고 한다. 또 영국인의 43%가 심신이 지쳤을 때 마음의 위안을 얻는 고향음식으로 ‘치킨 티카 마살라(Chicken Tikka Masala)’라고 하는 치킨 카레를 꼽았다. 그런 만큼 2001년 로빈 쿠크 영국 외무장관이 대놓고 진정한 영국의 국민음식은 치킨 카레라고 했을 정도다.

의외로 독일에서도 카레를 많이 먹는다. 독일은 소시지로 유명한 나라인데 그중에서도 소시지에 케첩 듬뿍 치고 카레 가루 솔솔 뿌린 ‘쿠리 부르스트’라는 카레 소시지가 명물음식이다. 동남아 요리를 대표하는 태국 음식에도 카레 요리가 많다. 우리가 좋아하는 카레 게 튀김, 푸팟뽕 카레부터 CNN에서 최고로 맛있다고 꼽은 마사만 카레까지 태국 사람들도 카레를 무척 좋아한다. 아프리카야 진작부터 영국과 인도 사람들이 많이 진출했으니까 카레가 널리 퍼졌는데 따지고 보면 영국이나 인도인이 많이 진출하지 못한 남미를 제외하면 카레는 전 세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다.

카레는 어떻게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요리가 됐을까? 뿌리는 인도지만 여러 나라 카레에는 인도에는 없는 자기네 나라 고유의 독자적인 맛을 창조했기 때문인데, 나라마다 카레 맛이 달라진 데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동양에서 온 신비한 향신료, 카레

인도에 뿌리를 둔 카레가 세계적으로 퍼져 나간 경로는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영국을 통해서, 또 다른 경로는 인도 무굴제국을 통해서다. 먼저, 카레가 영국인 식탁에 오른 것은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경영하기 시작한 18세기 무렵부터다. 인도에 진출한 동인도 회사의 상인과 군인들이 귀국하면서 현지에서 먹던 인도 향신료를 고향으로 가져왔다. 그리고는 영국 상인들이 인도의 향신료를 영국인 입맛에 맞게 개량해 상업용 카레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인도 향신료에다 버터에 볶은 밀가루를 첨가해 카레 파우더, 즉 카레 가루를 만든 것인데, 이렇게 만들어진 카레는 곧 영국 상류층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동양에서 온 신비한 향신료인 데다 상인들의 마케팅 전략도 한몫했다. 카레가 소화와 혈액순환을 도와주고 정신을 맑게 해주며 어떤 음식보다도 건강에 좋다고 홍보했다.

특히 19세기에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었다는 빅토리아 여왕이 카레 맛에 푹 빠졌다. 인도 문화를 사랑했던 여왕은 인도 출신 시종한테 현지 우르두어와 힌디어를 배우고 별장을 인도식으로 꾸밀 정도로 인도 문화의 매력에 젖었는데, 음식문화도 사랑해 하루 한 번 이상을 반드시 카레로 식사를 했다고 한다.

여왕이 카레 맛에 빠지자 카레가 귀족들 요리에서 중산층 음식으로 그리고 서민들의 식탁에까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이렇게 퍼진 음식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인도에서 온 카레 소스와 영국 전통 로스트 치킨이 결합한 영국의 국민음식 치킨 카레, 즉 ‘치킨 티카 마살라’다. 이후 영국에서 발달한 카레는 19세기 대영제국을 통해 북미와 아프리카로, 또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로 전파되면서 나라마다 고유의 카레요리가 만들어진다.

일본에 카레가 처음 전해진 것은 19세기 중반으로 인도가 아닌 영국을 통해서였다. 돈가스처럼 일본인 입맛에 맞도록 개량한 카레라이스가 1877년, 도쿄 레스토랑에 선보였지만 당시에는 값이 비싸 널리 퍼지지 못했다. 이런 카레라이스의 대중화에 기여한 게 뜬금없게도 일본 해군이다. 1902년 일본과 영국의 동맹체결을 계기로 양국 해군의 교류가 활발해졌는데 영국 해군을 시찰하던 일본 군의관이 영국 수병들이 먹는 카레에 주목했다. 당시 일본 해군에서 골치를 앓던 각기병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각기병은 쌀밥만 먹을 때 생기는 병이다. 20세기 초반, 일본 농어촌 청년들은 하얀 쌀밥을 배불리 먹는 게 소원이었지만 일본 시골에서는 쌀밥 먹기가 쉽지 않았고 도시로 나가 막노동을 해봤자 쌀밥은커녕 입에 풀칠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군에 입대하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예컨대 1894년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 병사의 식사규정은 일인당 900g이었으니 하루 세끼 쌀밥을 충분히 먹고도 남는 분량이었다. 이렇게 시골청년이 입대해 쌀밥만 먹다 보니 각기병에 걸리게 된 것인데 문제는 그 많은 쌀을 어디서 조달했기에 병사들이 각기병에 걸릴 정도로 쌀밥을 먹일 수 있었냐는 것이다. 당연히 일본의 벼농사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때 일본의 군량미 공급기지 역할을 한 곳이 바로 한반도였다. 일제강점 이전인 1900년을 전후로 일본 상인들이 대거 조선으로 몰려왔다. 군부의 지원을 받은 이들은 조선의 친일파를 앞세워 엄청난 돈을 뿌려가며 쌀을 긁어모았기에 군국주의 일본에서 장병들에게는 순 쌀밥을 먹일 수 있었다. 어쨌거나 각기병은 잡곡밥을 먹으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지만 병사들이 반발했다. 쌀밥 먹고 싶어 입대했는데 고향에서 지긋지긋하게 먹던 보리밥이 웬 말이냐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발견한 게 영국 수병이 먹는 카레였다. 영국 해군은 18세기에 카레를 선상 식량으로 개량했다. 장기 항해 때 수프에 넣는 우유가 상했기에 대신 자극성이 강한 향신료 카레를 넣어 보존성을 높였다.

영국 해군을 본떠 일본도 카레 수프를 도입했지만 인기가 없었다. 영국처럼 빵과 카레 수프를 제공했더니 반발이 심해 밥과 함께 국 대신 카레 수프를 떠먹도록 했지만 어울리지 않았다. 이후 개량을 거듭해 카레 분말에 밀가루를 섞어 지금의 카레를 만들었다. 일본 카레는 영국의 카레 수프와는 달리 걸쭉해 쌀밥에 얹어 먹을 수 있는데다 쌀밥과 궁합도 맞았고 수프와 달리 점도가 높아 흔들리는 배에서도 엎지르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쌀밥에 없는 비타민 B1이 다량 함유된 밀가루를 섞어 병사들이 싫어하는 잡곡을 섞거나 특별히 반찬을 따로 먹지 않아도 각기병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일본인은 군대를 통해 카레 맛에 익숙해지면서 1920년대 일본에서는 카레라이스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졌다. 일본인들이 카레라이스를 국민 음식처럼 좋아하게 된 배경이다.

우리나라 카레라이스는 일본과 아주 많이 닮았다. 이유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을 통해 전해졌기 때문이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대략 1920년대 중반 이전일 것으로 추정된다. 예컨대 1925년 신문에 서양 요리 만드는 법으로 카레라이스 만드는 법이 실려 있다. 특이한 부분은 카레는 인도가 뿌리임에도 서양요리 만드는 법으로 소개되어 있다는 점이다. 영국을 통해 카레를 들여 온 일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직접 전해진 동남아의 카레

동남아 카레는 우리나 일본, 영국과는 또 다르다. 인도와 영국 못지않게 카레 요리가 발달한 동남아지만 영어가 아닌 현지어로 카레라는 이름의 요리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이유는 동남아 카레가 영국이 아닌 인도에서 직접 전해졌기 때문이다. 무굴 제국이 강력했던 시기, 동남아에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함께 퍼진 음식문화가 동님아 카레 문화다. 때문에 동남아 카레에는 영국보다 인도의 맛이 물씬 풍긴다.

우리한테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동남아 카레에는 재미있는 스토리도 많다. 동남아 카레 중 가장 유명한 요리가 태국의 ‘마사만(Massaman) 카레’가 아닐까 싶은데 CNN에서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라고 꼽았던 음식이다. 코코넛 밀크에 다양한 향신료를 섞은 태국식 카레로 맵고 짜고 신맛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다. 마사만 카레는 현재 태국 왕조의 두 번째 왕인 라마 2세가 사랑한 음식으로, 마사만 카레를 만들어 바친 여인에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며 시를 지어 노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라마 2세는 결국 그 여인을 왕비로 맞이했다고 한다. 음식 맛에 빠진 것인지 사랑에 빠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맛있으니까 왕이 직접 시까지 지어서 바쳤을 것 같다.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카레, 원산지를 떠나 나라마다 독자적인 맛에다 고유의 역사와 스토리를 입혔기에 각자의 국민음식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윤덕노 음식평론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8호 (2018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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