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신청

[년 월 제 호]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
[돈 되는 법률이야기] 죽음을 수용하는 계절 가을에 작성하는 유언
기사입력 2018.10.30 11:08:51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대프리카(대한민국+아프리카) 운운하며 더위에 허덕이던 것이 불과 몇 달 전인데, 어느새 서베리아(서울+시베리아)를 들먹거릴 계절이 다가온다. 이렇듯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고 차가운 바람에 몸을 웅크리다 보면 왠지 마음도 같이 위축된다. 그 무성했던 잎들을 어느새 바람에 훌훌 날려버리고 앙상하고 말라버린 나무를 보면 나 역시 그와 같이 앙상하고 말라버린 것 같아 마음 한편이 저려온다. 기온이 갑자기 내려간 어느 날에는 여기저기서 부고 소식도 들려온다. 겨울은 죽음을 많이 닮아있다.

Krueger는 죽음에 대한 공포는 회피하는 사람에게는 무력감을 초래하지만, 죽음의 불가피성을 수용하는 사람은 죽음의 회피로부터 유래하는 진부한 삶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죽음은 역설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기꺼이 생을 끝낼 준비가 되어 있는 자만이 생의 진정한 맛을 즐길 수 있다는 세네카의 말도 이 추위에는 제법 마음에 새겨진다.

요즈음에는 죽음의 불가피성을 수용하고 생의 진정한 맛을 즐기며 적극적인 삶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7080세대의 추억의 장소인 대학로에는 죽음을 상상하고 느껴보는 ‘인생나침반’이라는 체험전시가 열리고 있다. 죽음을 체험해 봄으로써 ‘앞으로 남은 삶에 대한 마음가짐을 새로이 해보자’라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고 한다. 죽음을 상상하며, 나의 묘비명을 적고, 직접 관에 들어가 누워본다. 좁디좁은 관에 몸을 구겨 넣고, 관 뚜껑이 닫히고 나면, 지나온 삶이 주마등처럼 흘러가고, 허무함과 후회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입관체험을 마치고 나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나의 장례식에 온 사람들에게 전할 인사말과 나의 장례식에 꼭 와주었으면 하는 사람과 그 사람에게 부탁할 것, 버킷리스트를 적어본다. 그렇게 죽음을 체험하고 있노라면 삶에 대한 새로운 의지가 샘솟는다고 한다.

‘인생나침반’에서 하는 죽음 체험을 삶 속에서 보다 실용적이고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할 수도 있다. 바로 유언장을 작성해 보는 것이다. 죽음의 불가피성을 수용하는 지혜로운 방법 중 하나는 유언장 작성이다.

우리나라는 유언에 관하여 형식주의를 취하고 있다. 민법 제1060조는 “유언은 본법의 정한 방식에 의하지 아니하면 효력이 생기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민법이 정하고 있는 유언의 방식은 자필유언방식, 공정증서유언방식,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방식, 녹음에 의한 유언방식,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방식이 있다.

법률가의 자문을 받아 미리 유언을 작성하는 경우 가장 많이 쓰는 방식은 공정증서유언방식이다. 아무래도 공증까지 받는 방식이다 보니 다른 방식에 비하여 사후 분쟁의 여지가 적다. 그러나 공정증서유언 방식이라고 하여 사후 분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정증서유언의 방식이 정확하게 지켜지지 않았다면 그 유언은 무효이다. 공정증서유언에서는 유언자가 법정요건에 맞게 유언의 취지를 구수했는지 여부가 자주 다투어진다.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증인 2명이 참여한 공증인의 면전에서 유언의 취지를 구수하고 공증인이 이를 필기·낭독하여 유언자와 증인이 그 정확함을 승인한 후 각자 서명 또는 기명날인하는 방식으로 한다.

만약 뇌혈전증으로 병원에 입원치료 중인 유언자가 불완전한 의식상태와 언어장애 때문에 말을 못하고 고개만 끄덕거리면서 반응을 할 수 있을 뿐인 의학상 소위 가면성 정신 상태하에서 공증인이 유언내용의 취지를 유언자에게 말하여 주고 ‘그렇소?’ 하고 묻고, 유언자가 말은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거려서 공증인의 사무원이 그 내용을 필기하고 이를 공증인이 낭독하는 방법으로 유언서가 작성되었다면 이는 유효한 유언일까? 대법원은 이와 같은 경우는 유언자가 구수한 것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이러한 방식으로 작성된 유언은 무효(대법원 1980. 12. 23. 선고80므18판결)라고 보았다. 마찬가지로 공증업무를 취급하는 변호사가 반혼수상태로 병원에 입원 중인 유언자에게 유언 취지를 묻자 유언자가 고개를 끄덕거린 것만으로 유언자가 구수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대법원 1993. 6. 8. 선고92다8750 판결)고 본다.

그렇다고 유언자가 모든 유언을 반드시 자신의 입으로 직접 구수하여야 한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2007. 10. 25. 선고2007다51550,51567 판결은 “민법 제1068조 소정의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에서 ‘유언취지의 구수’라고 함은 말로써 유언의 내용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므로 이를 엄격하게 제한하여 해석해야 하지만, 공증인이 유언자의 의사에 따라 유언의 취지를 작성하고 그 서면에 따라 유언자에게 질문을 하여 유언자의 진의를 확인한 다음 유언자에게 필기된 서면을 낭독하여 주었고, 유언자가 유언의 취지를 정확히 이해할 의사식별능력이 있고 유언의 내용이나 유언경위로 보아 유언 자체가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기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경우에는, 위와 같은 ‘유언취지의 구수’ 요건을 갖추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위 판결은 공증 변호사가 미리 작성하여 온 공정증서에 따라, 의식이 명료하고 언어소통에 지장이 없는 유언자에게 질문하여 유증의사를 확인하고 그 증서의 내용을 읽어주어 이의 여부도 확인한 다음 자필서명을 받은 경우, 위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은 민법 제1068조에서 정한 요건을 모두 갖추었다고 보았다.

결국 유언자가 신체의 불편으로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러 유언을 하게 되면, 유언의 효력은 유언 당시 유언자에게 유언의 취지를 정확히 이해할 의사식별능력이 있었는지, 유언의 내용이나 유언의 경위로 보아 유언 자체가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기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유언자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의사식별능력이 있는지 여부를 어떻게 무 자르듯 정확히 판별할 수 있을까? 유언자가 사망한 상태에서 유언이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기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유언자의 의사식별능력이 있었는지, 유언이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기한 것이었는지 여부는 소송에서 자주 치열하게 다투어지는 쟁점 중 하나이다. 굳이 생전에 유언을 남기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본인의 사후 상속인들이 재산을 가지고 분쟁하기를 원치 않아서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신체와 정신이 모두 건강할 때 유언을 작성할 필요가 있다. 신체와 정신이 병들고 난 이후의 유언은 사후 상속인들에게 분쟁의 상처만 남겨줄 수 있다. 유언장을 작성하는 경험은 죽음의 불가피성을 수용하고, 삶에 대한 새로운 의지까지도 심어 주니 일석이조다.
매년 유언을 작성해 봐도 좋다. 여러 개의 유언이 있으면 새로운 유언이 우선한다.

겨울의 문턱에 있는 가을. 겨울이 죽음을 닮은 흑백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죽음을 수용하는 지혜의 계절이다. 이 아름다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진지하게 유언장을 작성해 보자.

[장현주 김&장 변호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8호 (2018년 11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순원의 마음산책] 창호지에 밴 아름다운 추억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동양의 신비한 향신료가 국민 메뉴로 인도 음식 카레의 세계 전파 스토..

[돈 되는 법률이야기] 죽음을 수용하는 계절 가을에 작성하는 유언

[소재학 교수의 사주명리학] 충무공 이순신의 전승비결 자신에 맞는 때 골라 싸웠다

[설진훈 칼럼] 개미 울리는 ‘아웃라이어’


경제용어사전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