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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의 보르도 와인 이야기] 소장가치 높아지는 와인은…
기사입력 2018.10.18 15: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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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은퇴한 크리스토프 살랑(Christophe Salin) 전 샤토 라피트 로칠드 사장에게 현재 럭스멘 김병수 취재팀장이 이렇게 질문한 적이 있었다. “당신이 20대 때 생각했던 최고의 와인과 지금 생각하는 최고의 와인은 어떻게 다른가요?” 마침 60살 생일을 앞두고 있던 그의 의견이 몹시 궁금했다.

“제가 샤토 라피트 로칠드 사장으로 처음 부임했을 때 최고의 와인이란 앞으로 만들어야 하는 와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최고의 와인을 생각할 때면 자꾸 과거의 와인을 떠올리게 됩니다.” 샴페인으로 유명한 에페르내(Epernay) 마을에서 태어난 크리스토프 사장은 다음의 말을 더했다. “제가 어릴 때는 와인은 당연히 화이트 와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마도 저희 동네가 샴페인으로 유명한 동네이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저는 20살 생일 때 처음으로 레드 와인을 마셔 보았습니다. 심지어 제가 어릴 때 동네 어르신들은 좋은 샴페인은 반드시 청포도만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셨어요. 오늘날 적포도와 청포도를 블렌딩해 만드는 샴페인이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 많은 차이를 느낍니다.”

많은 와인 컬렉터들은 내가 지금 사서 셀러에 보관하는 와인이 10년 혹은 훨씬 지난 후에도 그 이상의 가치를 계속 가지고 있을지 늘 궁금해 한다. 최근 중국에서 고급 와인의 수요가 늘면서 프랑스산 최고급 와인의 가격이 계속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데, 와인 가격이 계속 오를지 아니면 어느 순간에 한풀 꺾이게 될지 전문가인 나도 매우 궁금하다. 지금의 중국 시장처럼 1980년대 초 미국에서 와인이 대중화되면서 프랑스산 고급 와인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던 적이 있었다. 시그램 이스테이트(Seagram Estate)라는 회사는 1975년 보르도산 그랑크뤼 와인 8만 케이스를 미국 시장에서 판매하였으나, 10년 후인 1986년에는 90만 케이스, 병 수로 치면 1000만 병 이상의 와인을 판매하였다. 어쩌면 그때 만들어진 와인이 지금과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면 어렴풋이 와인 컬렉터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프리미엄이 붙은 패키지, 뒤클로 박스

와인 컬렉터들이 수집하는 고급 와인이란 대체로 미술품처럼 경매에서 거래할 수 있는 와인들을 의미한다. 유명한 와인 경매의 리스트는 대부분 프랑스산 보르도 와인과 부르고뉴 와인들로 구성되며 여기에 약간의 샴페인과 그보다 더 적은 수의 이탈리아와 캘리포니아산 와인들이 포함된다. 보르도 와인은 가격 측면에서 보면 3가지 종류로 구분되는 것 같다. 첫째는 경매에서 신기록을 세우는 슈퍼 프리미엄 와인이다. 주로 1855년에 지정된 보르도 그랑크뤼 클라세의 1등급에 속하는 5개 포도원, 즉 ‘보르도 5대 샤토’가 경매의 주연이다. 여기에 생테밀리옹의 샤토 슈발블랑, 샤토 오존, 포므롤 마을의 페트뤼스(Petrus), 르팡(Le Pin), 소테른의 샤토 디켐 등이 포함된다. 보르도 최고의 고급 와인 유통업체인 뒤클로(Duclot)사는 9가지의 최고급 보르도 와인을 묶어서 뒤클로 박스(Duclot Boax)라는 상품을 개발했는데, 뒤클로 박스는 경매에서 하나의 단독 품목으로 프리미엄이 붙어서 거래가 된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 1869년산 3병은 2010년 경매에서 약 23만달러, 샤토 슈발 블랑 1947년산 6ℓ 1병은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30만달러에 거래되었다.

두 번째 줄에 서게 되는 보르도 와인은 종종 슈퍼 세컨드라고 불리는 와인들로 뛰어난 품질을 가졌으나 1855년 보르도 등급 선정 시 1등급에 포함되지 못한 포도원들이다. 샤토 레오빌 라스카스(Leoville Las Cas), 샤토 팔머(Palmer), 생테밀리옹의 샤토 안젤뤼스(Angelus), 샤토 파비(Pavie), 포므롤의 샤토 라플뢰르(Lafleur)나 샤토 레벙질(L’Evangile) 등이 여기에 속한다. 여기에서 생산되는 와인들은 빈티지에 따라 수퍼 프리미엄 와인보다 좋은 평론가 점수를 받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다음 기회가 온다면 1등급에 들어가고자 하는 야욕을 갖고 있으며, 실제로 2012년 보르도 생테밀리옹 와인 등급의 재심사 때, 샤토 파비와 샤토 안젤뤼스는 최고의 등급으로 조정되었다. 1855년에는 2등급으로 지정되었다가 1976년 1등급으로 승진한 샤토 무통 로칠드도 같은 경우이다. 물론 슈퍼 세컨드 와인들도 종종 경매에서 깜짝 놀랄 가격에 거래된다. 1961년산 샤토 팔머 한 케이스가 2년 전 시카고의 와인 경매에서 5만달러가 넘는 금액에 낙찰되기도 했다.

와인 가격의 마지막에 위치한 세 번째 그룹의 와인들은 가격의 변화가 그리 크지 않은 와인들이다. 라피트 프라이빗 리저브나 레정드, 두르트, 무통 카데, 카스텔 같은 브랜드 와인뿐만 아니라 샤토 탈보(Talbot)와 샤토 베이슈벨 같은 고급 와인도 여기에 포함된다. 경매보다는 주로 일반 소비재처럼 전문주류점이나 백화점 혹은 마트 등에서 거래가 된다. 샤토 린쉬바즈(Lynch Bages)나 샤토 퐁테 카네(Pontet Canet)처럼 두 번째 줄과 세 번째 줄의 경계선에 위치한 와인들도 있다. 이 와인들의 특정한 빈티지들은 역시 경매에서 거래될 정도로 컬렉터들의 인기가 높다.

나는 몇 년 전 샤토 브란 캉트낙(Brane Canten ac)과 샤토 베이슈벨(Beychevelle)의 1980년대 초 빈티지들이 포함된, 그러니까 세 번째 줄에 서있는 보르도 와인들의 블라인드 테이스팅에 참여하여 그 품질에 놀란 적이 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이란 와인의 레이블을 가리고 선입견 없이 품질만으로 와인을 평가하는 시음을 의미한다. 그랑크뤼 2등급 샤토인 브란 캉트낙의 주인 앙리 뤼르통(Henri Lurton)에 따르면, 그의 포도원을 포함한 몇몇 보르도 와이너리들은 한때 수퍼 세컨드의 전략을 따랐다고 한다. 포도밭과 장비, 인력에 많은 투자를 하여 최고의 와인을 만들고 언젠가 1등급 반열에 오르겠다는 전략이다. 미국 시장이 계속 성장하고 있을 때는 그 전략이 주효했으나, 1980년대 중반 미국달러가 약세로 돌아서며 일명 시그램 사건, 즉 미국에서 보르도 와인의 대규모 주문 취소가 벌어진 후 그의 포도원은 은행 이자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워졌다. 몇몇 이웃 포도원의 주인이 바뀔 정도의 어려운 시기를 버티고 나서, 앙리 뤼르통은 투기적인 성격의 프리미엄 와인보다는 소비자들 눈높이에 맞는 와인을 만들기로 결심하였다고 한다. 2000년대 중반, 아시아 시장이 성장하며 와인 가격이 급격하게 올렸을 때에도 그는 가격을 거의 올리지 않았다. 오너의 적극적인 의지로 와인의 스타일을 바꾼 경우이다. 좀 더 오랜 시간을 되돌아보면 14~15세기 영국에서 사랑받던 클라레(Claret)란 와인이 있다. 클라레란 실은 보르도 와인을 부르던 다른 말로 흥미롭게도 와인의 색이 묽다는 의미에서 ‘Clear’란 말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당시 유럽에서 인기 있던 와인은 주로 화이트 와인들로 레드 와인은 물에 희석하여 마셨다. 진하고 텁텁한 와인이 좋은 평가를 받는 오늘과 많이 비교가 된다. 당시 클라레, 즉 보르도 와인은 로제 와인에 가까운 빛을 지녔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가격이 오르고 있는 안젤뤼스, 파비, 레벙질

내가 오늘 사는 와인이 30년 후에도 좋은 와인으로 평가받을지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단지 품질뿐만이 아니라 세계 경제 환경과 트렌드의 변화라는 더욱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가 있다. 5대 샤토라고 불리는 최고급 와인들은 대체로 30년 후에도 비슷한 평가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어떤 와인들이 새롭게 슈퍼 프리미엄 와인이 되고, 또 어떤 와인들은 슈퍼 세컨드의 앞줄을 달리게 될 것인가. 이에 대해 미련하게 예측해 보면, 몇 가지 방향 정도는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바이오 다이내믹 혹은 내추럴 와인이라는 트렌드에 연결되는 와인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샤토 퐁테 카네(Pontet Canet), 샤토 메일레(Meylet)가 있다. 퐁테 카네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가격이 오르고 있는 와인이며, 내추럴 와인이라는 새로운 트렌드의 선두주자인 샤토 메일레는 비교적 최근에 부상하고 있는 와인이다. 두 번째 와인들은 보르도의 새로운 세대의 리더들이 만드는 와인들이다. 특히 샤토 팔머의 토마 뒤루(Thomas Duroux)는 얼마 전 작고한 폴 퐁탈리에(Paul Pontalier)의 뒤를 이어 마고 지역의 리더로 부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바로 지금 시점에서 오르고 있는 와인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2012년 생테밀리옹 와인의 재심사에서 승급한 샤토 안젤뤼스와 샤토 파비 그리고 중국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샤토 레벙질 등이 최근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는 와인들이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네 번째 와인은 베로닉 샌더스(Veronique Sanders)가 만드는 샤토 오바이(Haut Bailly)라는 와인이다.
얼마 전 샤토 오바이의 서로 다른 빈티지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진행한 적이 있다. 재미를 위해 이웃한 포도원이자 1등급 샤토인 샤토 오브리옹을 한 병 몰래 숨겨 놓았는데,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샤토 오브리옹을 찾지 못했다. 나는 이와 비슷한 경험을 컬렉터들로부터 들은 적이 있는데, 오브리옹의 품질이 떨어졌거나 샤토 오바이의 품질이 높아졌다기보다는, 보르도 와인의 스타일이 변하면서 두 와인 교차점을 찾아간 것으로 생각된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7호 (2018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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