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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유럽 정치·경제 史 얽힌 쌀요리 리조또와 빠에야
기사입력 2018.08.29 10: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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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조또는 스파게티, 피자와 함께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탈리아 음식이다. 이탈리아식 볶음밥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리조또라는 이름도 이탈리아어로 쌀이라는 뜻의 리조(Riso)에서 비롯됐다. 이탈리아 리조또와 함께 요즘 세계적으로 뜨고 있는 음식이 스페인의 빠에야다.

리조또와 닮은 듯 다른 음식이지만 어쨌든 쌀을 주식으로 먹지 않는 서유럽에서 드물게 발달한 쌀 요리(?)다. 일반적으로 동양은 쌀과 밥을 주식으로 삼고 있는 반면 서양은 밀과 빵이다. 그런데 어떻게 서양에서 리조또, 빠에야 같은 쌀 요리가 발달했을까? 여기에는 꽤 복잡한 역사가 얽혀 있다. 서양 쌀밥 경제사다. 이탈리아에서 벼농사가 시작된 것은 대략 14세기 후반으로 추정한다. 최초의 쌀 재배에 관한 기록은 15세기인 1475년에 보인다.

유럽에서 중세시대가 끝날 무렵, 이탈리아 북부는 인구가 크게 증가하면서 곡물 수요도 급격히 늘어났다. 그러자 아랍과의 중계 무역을 통해 아시아의 향신료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베니스와 제노아 상인들이 벼 종자를 들여와 밀라노 지역 포(Po)강 유역에 심으면서 쌀 재배를 시작했다. 그 중심인물이 밀라노를 통치하던 갈레아조 마리아 스포라 공작이다. 향후 곡물시장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할 것이라고 보고 대규모로 농지를 개간했다. 포강 유역 평원은 물이 많은 데다 일조량도 풍부해 벼농사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서로 얽히고설킨 리조또와 빠에야

스포라 공작은 스페인과 시실리 등지에서 재배하던 벼의 종자를 옮겨와 이곳에 심었고 쌀 재배로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 참고로 스포라는 1455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밀라노를 다스린 영주로 미술과 음악을 후원해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과 함께 르네상스를 주도한 인물 중의 한 명이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식인 스파게티와 피자가 남부 이탈리아인 나폴리를 중심으로 발달한 것과는 달리 리조또가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에서 발달한 배경은 이렇듯 이 지역이 벼농사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는 수많은 종류의 리조또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밀라노 리조또다. 밀라노 리조또는 값비싼 향신료인 샤프란을 사용해 노란 빛깔을 만들어 요리하기 때문에 식감과 함께 색감이 아름답다. 그런데 밀라노 리조또는 스페인 빠에야의 영향을 받아서 발전한 요리로 본다. 빠에야와 비슷하게 샤프란이라는 향신료로 향기와 색깔을 내는 것뿐만 아니라 음식의 조리법이나 맛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 스페인의 영향을 받은 이유는 1535년부터 1706년까지 약 150년 동안 스페인이 밀라노를 통치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리조또는 아랍의 필라프라는 쌀 요리, 즉 고대 페르시아의 요리가 지중해를 거쳐서 스페인 빠에야에 영향을 주었고, 또 빠에야가 이탈리아의 리조또에 영향을 주면서 현재의 유럽식 쌀 요리의 계보가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쌀농사가 탄생시킨 요리 빠에야

그러면 스페인 볶음밥인 빠에야는 어떻게 생겨난 음식일까? 빠에야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밥 대신 빵을 주식으로 먹는 유럽이지만 스페인 요리하면 쌀로 만드는 빠에야를 가장 먼저 떠올릴 정도로 스페인 대표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 이유는 스페인이 유럽에서 가장 먼저 쌀농사를 지은 지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스페인은 지역 특색이 무척 강한 나라다. 빠에야는 스페인에서도 남동부인 발렌시아 지방에서 발달한 음식이다. 그리고 발렌시아는 이탈리아의 밀라노처럼 유럽의 대표적인 쌀농사 지역으로 서기 711년부터 1492년까지 약 700년 동안 아랍계 무슬림인 무어인(Moors)들의 지배를 받았던 지역이다. 아직까지도 아랍의 전통이 진하게 남아 있다. 사실 빠에야라는 스페인 전통음식은 아랍계인 무어인 때문에 생긴 요리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스페인에 벼농사를 전파한 것이 무어인들이다. 로마가 스페인을 다스리던 시절부터 발렌시아는 로마인들이 건축해 놓은 관개시설이 잘 발달해 있었다. 8세기 무어인들이 스페인 남부를 통치하면서 관개시설이 잘되어 물이 풍부한 이곳에 벼 이삭을 들여와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무어인들은 빠에야라는 요리에도 영향을 미쳤다.

북아프리카에서 바다를 건너와 스페인을 점령한 무어인들은 전통적으로 쌀로 만든 볶음밥의 일종인 필라프, 또는 밀가루인 세몰리아를 볶음밥처럼 요리한 꾸스꾸스라는 요리를 먹었다. 올리브 오일이나 버터에 쌀 또는 밀가루를 넣고 갖가지 야채와 고기를 함께 넣어 볶거나 끓여서 만드는 음식이다. 이 요리법이 빠에야의 발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빠에야는 스페인 남부 발렌시아에서 발달한다. 들판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점심때가 되면 들판에 불을 지펴놓고 평평한 냄비(Pan)에 물이나 올리브기름을 부은 후 쌀과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야채와 고기 등 각종 재료를 넣고 밥을 지은 것에서 비롯된 음식이다. 그러니까 무어인의 스페인 점령 이후 벼농사가 시작되면서 먹기 시작한 밥이다. 아마 지배계층인 무어인들의 조리법을 흉내 내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초창기 빠에야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요리라고 보기에도 민망한 것들이었던 모양이다. 물론 쌀을 익혀 밥을 짓지만 들어가는 재료가 당시 농부들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가장 흔하게 들어간 것이 달팽이였다. 논농사를 짓는 지역이니까 개울이 많았고 개울에서 잡은 달팽이와 밭에서 나는 마늘, 토마토, 고추 등을 집어넣고 푹푹 끓인 것이 빠에야였다.

그 다음에 많이 넣었던 재료가 토끼고기라고 한다. 왜냐하면 스페인에는 야생 토끼가 많았기 때문이다. 스페인계를 뜻하는 말인 히스패닉도 토끼가 많은 땅이라는 말에서 비롯됐다는 어원설이 있을 정도다. 농부들이 들판에서 밥을 지을 때 사냥한 토끼 고기를 넣고 함께 끓였던 것이 빠에야의 시초였다는 것인데, 지금도 발렌시아 빠에야에는 토끼고기가 들어간다. 농부들이 들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넣고 만들어 먹던 빠에야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세기 이후로 스페인의 경제가 발달하면서부터다. 살림 형편이 나아지면서 닭고기나 오리고기도 넣고 또 바르셀로나 같은 바닷가 해안 마을에서는 다양한 해산물을 넣으면서 값비싼 향신료인 샤프란으로 노랗게 색깔도 내며 발달해 왔다.



▶로마와 아랍이 결합된 음식

빠에야는 일반적으로 로마의 유산과 아랍의 유산이 결합된 음식이라고 말한다. 요리의 재료인 쌀과 요리 방법에는 아랍계 전통이 녹아있는 반면에 요리도구와 빠에야라는 이름에는 로마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빠에야라는 스페인 말은 냄비라는 뜻이다. 이런 형태의 조리도구를 스페인에 전해준 것이 로마제국이다.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로 바닥이 평평한 그릇(Flat Pan)이라는 의미에서 비롯됐다. 음식 담는 그릇이 요리 이름이 된 것인데 전통적으로 빠에야를 만드는 냄비는 둥그렇고 높이가 낮으며 두 개의 손잡이가 달린 철판으로 되어 있다.

빠에야는 스페인에서 단합의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단합을 과시하면서 대형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것처럼 스페인에서는 대형 빠에야를 만들어 먹으며 결속을 다진다고 한다. 이런 전통은 빠에야가 처음 벼농사를 지은 발렌시아 지방에서 발달한 음식이기 때문이라는데 벼농사는 많은 사람의 손이 필요한 노동집약적 작물이기 때문에 모내기를 하고 추수를 하던 농부들이 단체로 밥을 먹던 것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그러다 이후에는 쌀과 해산물, 그리고 샤프란 등의 고급 향신료를 섞어 냄비 채로 끓이면서 가족들이 둘러 앉아 먹거나 종교 축제나 각종 정치 문화 행사 때 단체로 먹는 음식으로 발전했다. 이런 전통이 아직도 남아서 스페인 특히 발렌시아 지방에서는 축제나 집회를 가질 때 또는 시위를 할 때도 대중들이 모여서 단합을 다진다는 의미로 커다란 빠에야를 만들어 함께 먹는 풍습이 남아 있다.


빠에야는 또 보통의 서양 음식 먹는 법과는 달리 접시에 덜어서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먹는 것이 특징이다. 커다란 냄비에서 여러 사람이 직접 스푼으로 떠먹는데 자기 앞에서부터 삼각형을 그리며 먹기 시작해 나중에 냄비 한가운데서 만나도록 먹는 것이 특징이다. 서양에서 왜 쌀밥 요리가 발달했을까 싶었는데, 리조또나 빠에야에 꽤 복잡한 유럽의 경제·정치·문화사가 녹아 있다.

[윤덕노 음식평론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6호 (2018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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