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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진훈 칼럼] 사르코지와 유시민
기사입력 2018.08.28 14:45:57 | 최종수정 2018.08.29 18: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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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신사복을 입은 나폴레옹’이라 불리며 유럽 우파 지도자로 인기를 누렸던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수년 전 대선후보로 재출마 가능성이 거론될 당시 사석에서 농담 삼아 이런 유머를 던진 적이 있다. “혹시라도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연금개혁 같은 (옳지만 인기 없는) 정책은 제발 피하고 싶다”고.

‘누군가는 꼭 져야 하지만 가급적 나의 어깨는 아니었으면…’이라는 정치지도자의 솔직한 심정이 고스란히 담긴 유머였다. 실제 그는 늙어가는 프랑스를 위해 올바른 결단을 했지만 막상 선거에선 좌파 올랑드 전 대통령에게 패하고 말았다. 그는 2007년 취임 직후부터 덜 받는 연금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2010년 퇴직연금 수령시기를 60세에서 62세로 늦추고, 공무원들이 내는 연금보험료는 7.85%에서 10년간 단계적으로 10.55%까지 인상했다. 그만큼 연금과 국가재정이 건실해졌지만 대선에선 노령층과 공무원들에게서 버림을 받았다.

한때 ‘백바지’라는 별명을 얻으며 여의도 정가에서 파격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2003년 재보선에서 당선된 뒤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첫 출근하던 날 정장 대신 백바지를 입고 나가 의원선서까지 미뤄야 했다.

그는 당시 “바른 말을 가장 싸가지 없게 한다”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언행이 종종 도를 넘었다. 하지만 “나름 짧고 굵은 한 획을 남겼다”는 평을 받는 데는 아마도 국민연금 개혁 때 보여준 뚝심 덕택이 클 것이다. 노무현정부 시절 40대 젊은 나이에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발탁된 그는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혁안을 밀어붙였다. 보험료율 9%, 급여율 60%라는 당시 퍼주기식으론 2047년에 기금이 바닥날 것으로 전망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반발하면서 결국 ‘똑같이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 반쪽 합의에 머물렀다. 연금수령액을 가입기간 평균 임금의 60%에서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40%까지 낮추는 선에서 타협을 본 것이다. 당시 유 전장관은 “약사발(보험료율 인상)은 엎어 버리고, 사탕(기초노령연금 신설)만 먹었다”고 울분을 토하며 결국 장관직까지 내던졌다.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집권당이라면 후세에 부담을 떠넘기는 연금개혁은 피할 수 없는 숙제다. 직전 박근혜정부가 공무원연금 개혁에 매달리느라 미뤄뒀던 국민연금 개혁이 당장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민간위원들로 구성된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 등은 8월 17일 공청회에서 “국민연금 적립금이 당초 예상보다 3년 이른 2057년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저출생, 고령화, 저성장이라는 3대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민간전문가들이 제시한 해법은 사실상 하나다. 20년 동안 미뤄온 연금보험료(9%)를 근로자와 기업들이 12.31~13.5%까지 더 내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좀 더 풍족한 노후를 위해 보험료를 왕창 더 올리든지, 기금고갈을 늦추기 위해 똑같이 받되 보험료를 서서히 올리는 2가지 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원안이 10월까지 국회논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변질될 가능성이 커 당장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어떤 식으로든 기금고갈을 늦추고, 차세대 부담을 줄여주는 절충안에라도 합의하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더 아쉬운 대목은 기금을 한 푼이라도 불리겠다는 의욕이 현 정부에서 유난히 약해 보인다는 점이다. 국민연금 운용 수익률이 연평균 1%포인트만 떨어져도 기금 고갈시점이 5년이나 앞당겨진다고 한다.

이런 상황인데도 사령탑인 기금운용본부장(CIO) 자리를 1년 이상 공석으로 비워둔 것은 직무유기이자 국회 청문회감이다. 게다가 증권가에선 “청와대가 기금수익 제고보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등 재벌개혁에 앞장설 적임자를 국민연금 CIO에 앉히려 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돈다.
현재 671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 기금적립액이 2041년에는 1778조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위원회는 추산했다. 슈퍼 공룡급 연금을 제대로 굴리려면 기금운용공사 신설 등 정치로부터의 독립이 보험료 몇 푼 올리는 것보다 더 중요해 보인다. 거스 히딩크 만한 해외 거물급을 영입하는 것도 축구대표팀보다 훨씬 시급한 것 같다.

[설진훈 LUXMEN 편집인·편집장]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6호 (2018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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