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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부자들 보약에서 복날 국민음식으로 변신-신비한 효과의 묘약 삼계탕
기사입력 2018.06.29 09:4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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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계절이 여름으로 접어들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삼복더위가 찾아올 것이고 복날이면 대부분은 또 변함없이 뙤약볕에 줄까지 길게 서가면서 삼계탕을 찾을 것이다. 마치 복날 삼계탕을 먹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풍경을 연출하는데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많고 많은 음식 중에서 왜 삼계탕을 찾는 것일까?

각자 여러 이유를 말하는데 먼저 건강 챙기기다. 배경에는 이열치열의 논리가 자리한다. 삼복더위는 1년 중 가장 더울 때니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말처럼 이럴 때는 찬 음식보다 오히려 뜨거운 음식으로 더위를 물리쳐야 한다는 것이다.



▶복날 음식의 원조 삼총사는 보신탕, 육개장, 단팥죽

여러 면에서 나름 일리 있는 말이지만 왜 하필 삼계탕이어야 하냐는 반문에는 딱히 답변이 궁해진다. 이열치열이 이유라면 뜨거운 음식은 모두 해당된다. 한여름 영양보충을 위해 먹는 것이라는 설명도 필요조건은 될지 몰라도 특별히 삼계탕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관습을 꼽기도 한다.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 온 우리 풍속이니 먹지 않고 거르면 아쉽고 허전하다고 말한다. 역시 그럴듯한 이유지만 한 가지 부족한 부분이 있다. 복날 삼계탕이 우리나라 전통 풍속이라고 하지만 옛날 우리 조상님들은 복날이라고 삼계탕을 먹지는 않았다. 닭백숙은 먹었을지언정 복날 음식으로 삼계탕을 먹었다는 기록은 없다.

옛날 복날 음식은 다양했고 그중에서도 전통적인 음식은 잘 알다시피 보신탕이었다. 보신탕이 싫은 사람은 육개장, 아니면 동짓날 먹는 단팥죽을 복날에도 먹었다. 혹은 삼계탕 대신 영계백숙을 먹었다. 삼계탕과 영계백숙은 닭요리라는 점은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른 음식이다. 다시 말해 복날 삼계탕은 오래된 풍속이 아닌 근대 이후에 생겨난 풍속이다. 그렇다면 복날 삼계탕은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먼저 복날 삼계탕을 먹는 이유부터 알아보자. 사실 몰라도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지만 이왕지사 삼계탕 먹을 때 내력을 제대로 알고 먹으면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삼계탕을 포함해 보신탕과 육개장, 그리고 닭백숙과 팥죽까지, 예전 선조들이 삼복더위에 특별히 챙겨 먹었던 전통 음식에는 다 이유가 있다. 맛이 좋다고 아니면 영양이 풍부하다고 혹은 이열치열의 효과로 더위를 물리칠 수 있다는 이유로 복날 아무 음식이나 먹었던 것은 아니다.

복날 음식이 되려면 무엇보다 기본 조건이 맞아야 했다.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 온 복날 음식에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더위를 쫓아 여름을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는 음식이다. 영양이 풍부하고 특히 이열치열로 더위를 다스릴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한다. 시원한 냉면이 복날 음식이 못 되는 이유다.

둘째, 음양오행의 조건에 맞춰 더위를 이길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한다.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개념이 들어가니까 복잡해지는데 복날 자체를 음양오행으로 설명하니 음식도 여기에 맞춰야 한다. 요즘처럼 전복 갈비찜이나 장어구이를 복날 음식으로 삼지 않았던 까닭이다.

셋째, 나쁜 기운을 몰아낼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한다. 주술적 의미가 있어야 하는데 복날의 성격과 관련이 깊다. 영양 많고 더위를 물리쳐야 한다는 첫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음식은 많지만 음양오행과 주술적 의미까지를 만족시키는 음식은 많지 않다. 맛 좋고 영양이 풍부하다고 아무 음식이나 복날 음식이 되지 못했던 이유다.

예컨대 보신탕과 팥죽은 영양도 풍부해 여름에 먹으면 보신이 될 뿐만 아니라 전염병을 옮기는 귀신인 역귀가 팥이나 개를 무서워했기 때문에 복날 음식이 될 수 있다. 옛날 보신탕 대신 소고기로 끓인 육개장은 영양은 많지만 소고기에는 사악한 기운을 쫓는 능력이 없다. 때문에 고춧가루 듬뿍 풀어 빨갛게 끓인다. 귀신이 붉은 색을 무서워하니까 보고 도망가라는 뜻이다. 민속과 미신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만들어 낸 음식문화다. 그렇다면 삼계탕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양기 넘치는 동물, 닭의 효능

오래전 옛날에는 삼계탕이 드물었으니 복날 음식은 주로 영계백숙이었는데 기본적으로 닭고기에는 복날 음식에 필요한 기본 조건이 두루 갖춰져 있다. 한여름에는 뜨거운 음식으로 더위를 물리쳐야 한다는 전통적인 약식동원의 조건을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새벽에 닭이 울면 귀신이 물러가니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축귀의 기능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복날 닭고기가 좋은 이유는 닭이 동양철학과 의학에서 말하는 양기(陽氣)가 넘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초복부터 말복까지 1년 중에서도 가장 무더운 계절인 여름철 삼복 기간은 세상이 양기로 가득 찬 날이다. 그런데 복날은 음의 기운이 일어나려다 양의 기운에 눌려 엎드려 숨는 날이다. 때문에 엎드릴 ‘복(伏)’ 자를 써서 복날이다. 때문에 양의 기운이 넘치는 음식을 먹어 숨어 엎드린 음기를 다스려야 하는데 보신탕과 마찬가지로 닭고기도 여기에 해당한다. 옛 사람들은 닭을 양기가 가득한 동물로 보았다. 주역에도 닭은 양의 기운이 넘치는 새(陽鳥)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닭백숙이나 삼계탕은 닭 중에서도 주로 어린 닭인 영계(英鷄)로 요리한다. 흔히 영계를 어린 닭으로 알지만 우리의 상식과는 개념이 조금 다르다. 영계는 단순히 어린 닭이 아니라 특별한 닭이다. 명나라 의학서인 본초강목에 영계는 특별히 석영을 먹여서 키우는 어린 닭인데 쇠약해진 양기를 되살리는 데 좋다고 설명한다. 허약해진 기운을 보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른 사람은 몸에 살이 오르고 피부에 탄력이 생기니 영계를 먹으면 아무리 추운 날씨에도 추운 줄 모른다는 것이다. 삼계탕은 이런 닭에다 인삼을 비롯한 각종 한약재를 넣어 끓인 음식이다. 인삼은 약효가 널리 알려진 데다 효과가 워낙 다양하니까 특별히 더 언급할 필요도 없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몸을 덥혀주는 양의 기운이 강한 약재다. 그러니 그렇지 않아도 양조인 닭고기와 어우러져 양기를 더욱 더 상승시키는 작용을 한다. 삼계탕이 훌륭한 복날 보양식이 되는 까닭이다.

삼계탕이 한국의 대표적인 국민 보양식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삼계탕과 관련된 기록은 조선시대 문헌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다시 말해 전통 보양식이라지만 역설적으로 대중화된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다. 사실 서민가정에서 경제적으로 부담감을 느끼지 않고, 먹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삼계탕을 먹게 된 것은 1970년대 전후다. 이전의 삼계탕은 복날 보양식이라기보다 부자들이 먹는 보약에 가까웠다. 병을 앓고 난 후, 혹은 삼복더위에 쇠약해진 기력을 보충하려고 먹었다. 아무나 먹을 수 없었던 이유는 귀한 고려인삼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지금은 인삼이 흔하지만 예전에는 비싸고 귀한 약재였던 만큼 음식에 함부로 넣어 먹을 수 있는 식재료가 아니었다. 때문에 일반인은 인삼을 넣지 않은 영계백숙으로 몸보신을 했을 뿐이다.

삼계탕이 얼마나 귀했는지는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조선 생활풍속 자료집에는 여름철이면 암탉의 배에 인삼을 넣어 우려낸 국물을 약으로 마시는데 중산층 이상에서 마시는 사람이 많다는 기록이 보인다. 삼계탕이 양기를 보완해 주는 약으로 여유 있는 가정의 여름철 보신음식이었음을 보여준다. 더 이전인 조선 후기에는 삼계탕을 아예 음식이 아닌 약으로 취급했다. 19세기 말, 사상의학을 정립한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에 삼계탕 관련 기록이 보인다. “소음인의 치료에는 닭과 인삼이 효과가 있다”고 적어 놓았으니 양기를 보충하는 치료약으로 지금의 삼계탕을 처방했던 것이다.

언제부터 닭과 인삼을 함께 처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약으로서 삼계탕의 뿌리는 사실 18세기 이전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영조 때 궁중화가였던 변상벽이 그린 닭 그림이 있다. 어미와 아비 닭이 새끼 병아리를 거느리고 있는 자웅장추(雌雄將雛)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 한편의 시가 적혀 있다.
“의사에게 들은 신묘한 약을 달여야겠는데 닭고기에 인삼과 백출(白朮)을 함께 섞으면 기묘한 효과를 볼 것”이라는 내용이다. 후배 화가가 써넣은 시제로 알려져 있는데 당대의 궁중 어의가 그린 닭 그림을 보고 잡아먹을 궁리를 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어쨌든 닭과 인삼을 함께 요리한 음식, 삼계탕을 의사들이 신비한 효과를 내는 묘약으로 표현했다. 올여름에는 복날 삼계탕을 먹으며 신묘하다는 효과를 확인해 보는 것이 어떨지….

[윤덕노 음식평론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4호 (2018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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