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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발상지를 찾아서` 노력도 재능도 아닌 도시가 천재를 만든다
기사입력 2018.06.29 09: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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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세계지도를 펼쳐보자. 아테네, 피렌체, 항저우, 콜카타, 빈, 실리콘밸리…. 이들의 ‘비범한’ 공통점이 보이는지? 답은 천재를 낳은 도시다.

이 도시를 모두 여행한 남자가 있다. 에릭 와이너다. 촌철살인의 유머를 구사하는 일급 산문작가가 행복(‘행복의 지도’)과 신(‘신을 찾아 떠난 여행’)의 존재에 이어 천재성의 뿌리를 찾아 떠났다.

라틴어 ‘게니우스’에서 온 ‘지니어스’는 본디 초능력을 지닌 수호신을 뜻했다. “남다른 지적 능력, 특히 창조적 행위에서 발현되는 지적 능력”이라는 오늘의 사전적 정의는 18세기 낭만주의의 산물이다.

19세기 천재 과학자 프랜시스 골턴의 기념비적 저작 <천재는 유전된다>는 저명한 인물들이 왜 특정 집안에 많은지를 연구해 귀중한 혈통이 천재를 만든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당대에 이 책은 큰 호평을 받았는데, 와이너는 골턴의 오류를 반박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천재는 파란 눈이나 대머리와 달리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 골턴의 시대가 지나자 또 다른 미신이 등장했다. 1만 시간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속설. 이 또한 틀렸다.

UC 데이비스대의 계량역사학자 사이먼턴은 반세기 동안 천재의 탄생을 수량화했다. 그리고 천재가 들쭉날쭉 출현하지만, 무작위가 아니라 무리지어 나오는 점을 발견했다. 기원전 450년 아테네가 그랬고, 1500년 피렌체가 그랬다. 창조성이 분출되는 도시에는 특별한 ‘문화’가 있었다. 첫 여행지 아테네에서 그는 ‘빛’을 찾고 싶었다. 고대 그리스 문명의 정점은 24년에 불과했다. 이 찰나로 인해 인류는 모두 그리스의 유산 상속자가 됐다. 민주주의, 과학, 철학, 세금, 글쓰기, 학교, 상업 융자, 분산 투자, 기술 교본 등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부분이 그리스인에게 영감을 받았다.

아테네에서 그는 고대 그리스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 들었다. 그들은 춤을 좋아했다. 축제의 나라였고 포도주를 무지막지 마셔댔으며 성에 자유분방했다. 하지만 이것이 천재성의 발화점은 아니었다.

플라톤이 ‘앙상한 뼈’라 불렀던 아테네는 언덕과 바위투성이 땅이다. 인구는 30만 명에 불과했고 코린토만큼 부유하거나 스파르타처럼 강성하지도 않았다. 이 척박함이 천재를 낳았다. 그리스 건축은 복잡한 지형에 대처한 결과였고, 그리스 철학은 불확실한 시대에 대처한 결과였다.

아테네인들은 자신의 도시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아테네인의 정서를 ‘시민의 기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테네에선 장인부터 의사까지 모두 같은 월급을 받았고, 치장과 소비의 문화도 없었다. 대신 공공 건축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기술자, 건축가, 철학자들이 누구나 살고 싶은 곳이 됐다. 파르테논 신전이 탄생한 배경이다. 저자는 이를 ‘자석 천재론’이라 부른다. 아테네와 오늘의 실리콘밸리의 공통점은 재능을 자석처럼 빨아들인다는 것이다.

어떻게 아테네가 자석이 됐을까. 페리클레스는 페르시아전쟁 직후 24년간의 평화기에 파르테논 신전 같은 문화적 프로젝트의 규모를 두 배로 늘렸다. 그리고 이들에겐 자유가 있었다.

아테네는 연설과 열린 토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곳이었다. 연간 40번 민회가 열릴 때마다 아테네인은 약 7000명 앞에서 연설을 해야 했다. 그리고 아고라가 있었다. 모두가 모여 모든 것을 파는 곳. 상인은 흥정하고 풍문을 들을 수 있는 곳. 대화는 집단적 천재성의 매개체다. 예술이 일상에서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했기에 당연시되었다. 예술은 실용적이었고 아름다움은 보너스였다. 투키디데스의 말을 빌리자면 그리스인은 “능력 이상으로 저돌적이고 상식 밖의 모험을 했다.”

에릭 와이너 지음 /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펴냄

와이너의 통역을 맡은 금석학자는 에게해를 향해 열린 항만을 지목했다. 아테네가 세계 최초의 국제 도시였고, 아테네인이 조선술과 항해술의 달인이었기에 온갖 물건들과 함께 ‘아이디어’가 밀항자에 의해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는 페니키아에서 알파벳을, 이집트에서 의약과 조각을, 바빌로니아에서 수학을, 수메르에서 문학을 훔쳤다. 이들은 지적 도둑질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무엇을 훔치든 ‘아테네화’했다. 아테네인은 낯선 아이디어에 개방적이었으며 한마디로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다. 그들은 외국인도 환영했다. 아테네인은 그리스인이자 외국인이었다. 뉴욕이 미국의 도시이자 아니기도 한 것처럼. 이에 비해 스파르타는 벽을 쌓아 바깥세상과 단절했다. 창조성을 질식시키는 데 벽만한 것이 없다.

7번의 여행을 통해 그는 천재의 장소가 결코 낙원이 아님을 알게 된다. 낙원에서는 아무것도 요구되지 않으나 천재는 새롭고 기발한 방식으로 시대적 요구를 충족하며 탄생하기 때문이다. 작고 더러운 아테네에서, 역병으로 사람들이 죽어간 피렌체에서, 우중충한 에든버러에서, 영국과 인도의 문화가 충돌한 콜카타에서, 이민자들이 몰려든 빈에서, 허허벌판인 실리콘밸리에서 창조적 천재들이 등장했다.

아름다움을 숭상한 피렌체에서는 르네상스 거장들이 등장했다. 실용적 태도로 삶을 ‘개선’하고자 한 에든버러에서는 애덤 스미스나 데이비드 흄 등이 한자리를 차지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악기를 연주할 정도였기에 빈에서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태어날 수 있었고, 커피숍이라는 지적 교차로에 이민자들이 몰려들었기에 세기말 빈에서 근대가 탄생할 수 있었다.

오늘에 어울리는 천재를 만나고 싶으면 실리콘밸리로 가면 된다. 실리콘밸리의 비범함은 실패를 허용하는 문화다. 자작(自作) 문화가 꽃 핀 이곳의 아마추어 무선 클럽은 컴퓨터와 무선 통신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실리콘밸리의 아버지인 프레드 터먼은 스탠퍼드대 공대 학장 시절, 패커드와 휴렛을 맺어주고 가청 주파수 발진기를 상업화하도록 격려했다.

실리콘밸리를 있게 한 스탠퍼드는 대학의 역할을 재정의했다. 터먼은 학계와 현실 세계를 나누는 장벽을 무너뜨렸다. 1951년 스탠퍼드 산업단지를 만들었고, 이 반학문적인 시도로 인해 스탠퍼드는 천재들의 ‘자석’이 됐다. 실리콘밸리의 상징은 아이폰이나 마이크로칩이 아닌 이삿짐 트럭이다. 유동성이야말로 이곳을 이해하는 열쇠라는 말이다. 한 세기 넘게 번창하는 실리콘밸리가 역사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위대한 문명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오만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저자는 창조적 장소의 공식을 제시한다. 무질서(disorder), 다양성(diversi ty), 감식안(discernment)의 첫 글자를 딴 ‘3D’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천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깰 필요가 있다.
천재는 단순히 유전이나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독창성을 북돋우는 문화의 산물이므로 천재성은 ‘사적 행위’가 아니라‘공적 참여’라는 것이다. 창조성은 관계다. 사람과 장소의 교차로에서 펼쳐지는 관계. “한 아이를 길러내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면 한 천재를 길러내는 데는 한 도시가 필요하다”는 말은 곱씹어볼 만했다. 어떤가. 동의하시는지?

[김슬기 매일경제 문화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4호 (2018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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