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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마음산책] 옛 은사님과 함께한 식사
기사입력 2018.05.30 16:5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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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고향에 내려가 그곳에 계신 초등학교 시절 은사님과 저녁식사를 했다. 마음은 매년 그렇게 하자, 하면서도 이번에 한 저녁 식사도 몇 년 만에 찾아뵌 자리였다. 사람들은 지금 내 직업이 소설가니까 어린 시절에도 매우 반짝이며 글을 잘 썼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겸손의 말이 아니라, 나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백일장 같은 곳에 나가 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엔 초등학교 시절대로 그랬고, 중고등학교 시절엔 또 그 시절대로 그랬다. 상은 고사하고 나는 언제나 교실에서 그런 대표를 뽑는 1차 선발에서조차 멀찍이 떨어져 있던 평범한 소년이었다.

시골 초등학교의 작은 교내에서도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어쩌다 큰 대회에 나가서도 번번이 떨어지기만 하는 나를 믿어주는 한 선생님이 계셨다. 50년 전 초등학교 5학년 때 만난 선생님이시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대관령 아래의 오지 마을에 그때 나이로 스물다섯 살쯤 된 새 신랑 선생님이 전근을 오셨다. 다른 선생님들은 강릉에서 자전거로 통근을 하셨지만, 이 선생님은 전근을 오신 지 한 달 만에 학교 옆에 방 한 칸을 얻어 사모님과 함께 들어오셨다. 지금도 우리 시골 동창들은 그 선생님을 ‘희망등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에 들어오셔서 저녁마다 등잔이나 남포를 켜놓고 우리의 처진 학습 지도를 해주셨기 때문이다. 중학교를 시험 봐서 들어가던 시절이었다. 선생님께서 우리의 밤공부를 위해 일부러 시골에 들어오신 것이었다. 그때 선생님이 우리에게 준 것은 자신감이었다. 공부에 대한 자신감만이 아니라 앞으로 어른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어디 나가서도 기죽지 않고 자신의 뜻을 펼칠 자신감을 어린 가슴마다 심어주셨다.

이 이야기는 지금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이야기로 그때 군에서 실시하는 백일장에 나가 아무 상도 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온 어린 마음에 나는 큰 낙담을 했다. 그런 나를 학교 운동장 가에 있는 커다란 나무 아래에 앉혀놓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희 집에도 나무가 많지? 그러면 어디 매화나무를 한 번 살펴보자. 같은 매화나무도 먼저 피는 꽃이 있고, 나중에 피는 꽃이 있지. 그러면 그중에 어떤 꽃에서 열매가 맺을까?”

나는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같은 나무의 꽃도 다른 가지의 꽃보다 더 일찍 피는 꽃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그렇지만 이제까지 선생님이 보니까 어떤 나무의 꽃도 제일 먼저 핀 꽃들은 반갑고 보기는 좋은데 열매를 맺지 못하더라. 제대로 된 열매를 맺는 꽃들은 늘 더 많은 준비를 하고 피는 거란다. 이번 대회에 나가서 아무 상도 받지 못하고 오니까 속이 상하지?”

차마 그렇다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 얼굴도 바라볼 수 없어 어린 제자는 그저 가만히 땅만 내려다보았다.

“선생님은 네가 어른들 눈에 보기 좋게 일찍 피고 마는 꽃이 아니라, 이다음에 큰 열매를 맺기 위해 천천히 피는 꽃이라고 생각한다. 너는 지금보다 어른이 되었을 때 더 재주를 크게 보일 거야.”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몰랐다. 그러나 뭔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선생님은 어린 제자에게 꽃 이야기로 용기를 주신 것이다.

“선생님은 이다음에 네가 꼭 큰 작가가 되어 선생님도 네가 쓴 책을 읽게 될 거라고 믿는다. 너는 지금 어른들 눈에 보기 좋게 일찍 피었다가 열매도 맺지 못하고 떨어지는 꽃이 아니라 남보다 조금 늦게, 그렇지만 아주 큰 열매를 맺을 꽃이라고 믿는다.”

나에게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저마다 방법이 달랐지만 우리 친구들 모두 그 선생님에게 그런 사연 하나씩 가지고 있다. 너는 손재주가 참 대단하구나. 또 너는 이런 것을 잘하는구나. 그리고 너는 또 저런 것을 참 잘하는구나. 또 집안이 가난해 중학교를 가지 못하는 아이에겐, 지금은 집안이 가난해 중학교를 가지 못해도 너는 부지런하니까 이 부지런함만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자로 살 거다, 하고 선생님은 우리들 하나하나에게 칭찬으로 용기를 주셨다.

나는 스물한 살 대학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작가수업을 했다. 그러면서 신춘문예에만도 10번 가까이 떨어졌다. 군에 가 있는 동안에도 신춘문예 응모만은 빠지지 않고 했다. 처음 몇 해 동안은 아직 내 공부가 모자라니까 하는 생각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떨어지는 햇수가 계속 되다 보니 중간중간 이것이 정말 내가 가야 할 길인가 하는 회의가 들 때도 많았다.

그때 다시 힘을 내라는 좋은 얘기들과 좋은 격려도 많았지만, 이런저런 회의로 불안해져 있는 나를 다시 책상에 불러 앉혀 보다 치열한 습작 생활을 하게 했던 것은 너는 제대로 열매를 맺을 큰 꽃이 될 거라는 어린 시절 은사님으로부터 들은 격려 한마디였다. 내가 이제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그 칭찬이 또 한 번의 희망과 오기를 가지게 했다. 다섯 번 여섯 번 떨어지면서는 내 나이가 이미 그때 그 말씀을 해준 선생님의 나이보다 더 많아졌는데도 여전히 어린 시절의 소년처럼 그때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가야 할 먼 길의 길을 밝혀주던 것이었다.

우리의 인생을 우리가 걸어가야 하는 길로 표현할 때, 그런 우리의 앞길을 밝혀주는 불빛은 대략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가로등과 같은 불빛이다. 그 불빛은 당장 내 발밑을 환하게 밝혀주어 내가 선 위치를 확인하게 해주고 또 현재의 자리를 안전하게 해준다. 그러나 가로등은 아무리 환해도 내가 가야 할 먼 길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당장의 안온함과 안전함과 따뜻함을 주는 불빛이다.

그런 가로등에 비해 수십 리 밖에서 반짝이는 등대불이나 저 멀리 고갯마루에서 깜빡이는 불빛은 그 불빛에 의지해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나 먼 곳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그 불빛들은 우리 인생이 가야 할 먼 길의 방향을 가리키고, 그 길에 대한 믿음을 심어준다.

멀리 떨어져 살아 자주 찾아뵙지는 못해도 우리들 마음 안에 선생님은 언제나 환하게 우리 마음 안에 희망등을 밝히고 계신 것이다. 내년에는 나 혼자가 아니라 그 시절 친구들과 함께 좀 더 따뜻한 자리를 마련해야겠다.

[소설가 이순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3호 (2018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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