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신청

[년 월 제 호]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냉면이 우리나라 배달음식의 원조
기사입력 2018.05.30 16:58:26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계절적으로 때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요즘 냉면이 화제다. 정치적 의미가 가미됐기 때문인데 경제적 측면에서 냉면의 역사를 바라봐도 흥미로운 부분이 적지 않다. 따지고 보면 우리 음식 중에서 이런 대박 상품이 따로 없고 우리 경제사가 고스란히 반영된 음식도 드물다. 냉면은 언제 만들어진 음식일까. 밀가루 국수는 12세기에도 있었고, 막국수처럼 메밀로 뽑은 국수 역시 예전부터 있었지만 조선시대 문헌에서 냉면이라는 음식이 본격적으로 보이는 것은 18세기 이후다.

다산 정약용은 면발이 긴 냉면에다 김치인 숭저(崧菹)를 곁들여 먹는다고 했다. 정약용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실학자 유득공 역시 평양을 여행하면서 가을이면 평양의 냉면값이 오른다고 했다. 겨울철에 접어들 무렵이면 수요가 공급을 초과해서 냉면값이 오를 정도로 평양사람들이 냉면을 많이 먹었음을 알 수 있다.

평양냉면은 냉면이 널리 보급되면서 바로 유명세를 탔던 모양이다. 19세기 <동국세시기>에도 겨울철 계절음식으로는 메밀국수에 무와 배추김치를 넣고 돼지고기를 얹은 냉면을 먹는다고 소개했는데, 그중에서도 관서(關西)지방의 국수가 제일 맛있다고 했으니 바로 평양냉면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산 정약용과 유득공보다 두 세대 뒤 인물인 실학자 이규경은 평양의 명물로 감홍로와 냉면, 그리고 비빔밥을 꼽았다.

평양에서는 고기 안주에 감홍로를 마신 후 취하면 냉면을 먹으며 속을 풀었기에 선주후면(先酒後麵)이라는 말이 생겼다.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베이스로 만든 육수에 메밀국수를 말아 먹는 평양냉면은 감칠맛과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평양냉면의 특징은 육수로 꿩고기나 양지머리를 삶아 기름기를 걷어 낸 후 잘 익은 동치미 국물을 같은 양으로 섞어 시원하며 감칠맛이 도는 냉면국물에 있다.

현대인의 입맛에는 밍밍하기 짝이 없는 전통 평양냉면이지만 평양출신들에게는 중독성이 꽤 강했던 모양이다. 평양사람들은 고향을 떠나서도 고향에서 먹은 냉면 맛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다고 했는데 예전 한국인이 외국에 나가면 김치를 가장 그리워했던 것처럼 평양사람들도 타향에서 살 때에 문득문득 떠오른 것이 겨울에 먹는 평양냉면 맛이라고 하니 냉면의 맛이 그리운 것인지 고향을 그리는 향수가 짙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이런 힘이 평양냉면이 대박식품이 된 원동력이었을지도 모른다.



▶순조, 헌종, 철종, 고종이 사랑한 냉면

냉면은 문화적으로도 흥미로운 음식이다. 조선 왕실의 냉면 사랑에서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조선 임금 중에는 고종이 냉면을 좋아했다. 시원한 동치미 육수에 사리를 말아 편육과 배, 잣 등을 고명으로 얹은 냉면을 즐겨 들었다. 고종을 모셨던 상궁을 통해 전해진 이야기다. 냉면은 가장 한국적인 국수니 고종이 냉면을 좋아했다는 사실이 특별할 것도 없을 것 같지만 역대 조선 왕 중에서 냉면을 먹은 임금은 많지 않다. 기록상으로는 제23대 왕인 순조가 가장 빠르다. 즉위 첫해인 1800년, 한가로운 밤이면 당직 서는 군관과 선전관을 불러 함께 달구경을 하곤 했다. 어느 날 밤, 시장기가 돌았는지 달을 감상하다 냉면을 사먹자며 당직 군사에게 대궐 밖에서 냉면을 사오라고 시켰다.

특이한 사실은 순조가 먹을 냉면을 궁궐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대궐 밖에서 사왔다는 사실이다. 당시 한양에 냉면 파는 집이 많았던 모양이다. 순조의 뒤를 이은 헌종 때에는 궁중 잔칫상에 냉면이 오른다. 궁중 잔치에는 주로 따뜻한 온면을 차리지만 이때 처음 냉면이 차려졌다. 헌종 14년인 1848년, 헌종의 할머니이자 순조의 왕비인 대왕대비 순원왕후의 60세 생일과 어머니인 왕대비 신정왕후의 4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창경궁 통명전에서 성대한 잔치가 열렸다.

이 잔치의 진행 절차와 차려진 음식 등을 상세하게 기록한 <진찬의궤>에 냉면을 준비했다는 기록이 실려 있는데 메밀국수 다섯 사리와 돼지다리, 양지머리, 배추김치, 그리고 배와 잣 등의 재료로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헌종 다음 임금인 철종도 냉면을 무척 좋아했다. 얼마나 냉면을 좋아했는지 칠월 칠석에 냉면과 전복을 과식해 체했을 정도다. 임금의 동정을 비롯해 각종 국사를 기록한 일기인 <일성록>에 보이는 내용인데, 7월 15일자의 기록이니 일주일 넘게 고생했을 정도로 체증이 오래 갔던 모양이다. 한여름인 칠석날 더위를 식히려고 찬 냉면을 많이 먹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후임 임금인 고종이 냉면을 좋아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졌다. 그런데 고종이 즐겼다는 냉면 역시 사리는 궁궐 밖 대한문의 국수집에서 사다가 냉면을 만들었다고 한다. 임금이 좋아하는 음식을 궁궐에서 직접 만들지 않고 밖에서 사왔던 이유가 무엇일까. 짐작해 보면 조선 후기 한양에 냉면 외식업이 무척 발달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이때쯤 이미 냉면이 평양 특산음식에서 벗어나 국민 국수로 자리매김한 것일 수 있다. 또 하나는 냉면의 경우 서민의 음식에서 시작했지만 마침내는 임금의 입맛까지 사로잡게 된 것으로 보인다. 문화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냉면은 그 반대의 과정을 밟은 것이다. 시작은 미미했으나 끝은 창대했으니 냉면이 한국 국수를 대표할 만하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4월 27일, 서울 마포구의 한 유명 냉면집 앞에 평양냉면을 먹기 위해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



▶한 손에 스무 개 넘는 냉면 놋그릇

시선 모았던 냉면배달

냉면은 우리나라 배달음식의 상징과 같은 음식이다. 요즘은 무엇이든지 배달해 먹을 수 있는 시대지만 그중에서도 최고의 배달음식으로는 치킨이 가장 유력하다. 짜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짜장면 시키신 분”을 외치며 국토 최남단 마라도에서도 주문하면 배달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냉면이 그런 음식이었다. 옛날 신문기사를 보면 냉면 배달 솜씨는 능숙하다 못해 현란할 정도였다. 한 손에 스무 개가 넘는 냉면 놋그릇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전거 핸들을 잡고 국물 한 방울 쏟지 않고 냉면을 날랐을 정도다. 이런 풍경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1936년 7월의 매일신보 기사에는 여름 한철 경성의 관청과 회사의 점심시간이면 냉면집 전화통에서 불이 날 지경이었다고 나온다. 이때 냉면 배달원이 묘기에 가까운 재주를 보이며 맹활약을 했던 것이다. 냉면은 한때 여름에 먹는 별미 그 이상의 음식이었다. 일제 강점기 도시인의 여름 점심을 책임졌고, 우리나라 외식산업의 대표였으며 지금의 맥도날드 지수처럼 물가를 결정하는 척도가 되기도 했다.

불경기에는 냉면이 가장 먼저 가격 인하 압력을 받았다.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찾는 외식메뉴인 데다 물가에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930년 신문에는 가격인하 압력으로 냉면을 15전에서 12전으로, 어복쟁반을 20전에서 15전으로, 장국밥을 15전에서 10전으로 인하했다는 기사가 보인다. 지금과 비교하면 어복쟁반 값이 엄청 저렴했다는 사실이 특이하다.

어쨌든 냉면 가격이 떨어졌으니 냉면집 주인들은 더불어 종업원들의 임금 인하를 시도한다. 1931년 신문에는 평양면옥 상인조합에서 임금 인하를 결정하자 평양 시내 24개 면옥 노동자들이 일제히 파업에 돌입했다는 기사가 보인다. 그러자 평양면옥 상인조합 소속 24개 업체가 총 휴업에 들어가면서 직원 260명을 전원 해고해 노사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았다. 신문기사는 이로 인해 14만 평양 주민들의 점심이 위협받게 됐다는 내용도 보인다. 냉면집 파업이 신문의 주요 뉴스거리가 된 것은 냉면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 때문이었을 것이다. 1910년의 통계를 보면 당시 평양의 가구수는 모두 3만3000가구였다. 평양면옥 상인조합에 소속된 냉면집 숫자가 모두 24곳이었으니 평양에서는 1375가구당 하나 꼴로 냉면집이었다는 소리다. 당시의 인구분포와 소득, 외식 수준 등을 고려하면 냉면 사업이 지역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았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냉면집 종업원의 파업은 이후에도 심심치 않게 기사화되는데 굳이 평양에 국한된 내용만도 아니었다.
1936년의 매일신보는 해주 시내에 있는 냉면집 10여 곳의 종업원이 일제 파업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예전 냉면 관련 신문기사를 보면 1930년대 냉면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당시 냉면산업이 외식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냉면 한 그릇에 한민족 외식산업 발달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윤덕노 음식평론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3호 (2018년 06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진훈 칼럼] 남북정상 홀로그램 통화 5G시대 축포로 어떤가

[이순원의 마음산책] 옛 은사님과 함께한 식사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냉면이 우리나라 배달음식의 원조

[돈 되는 법률이야기] 대주주 주식 상속땐 최고 65% 과세 증여세 특례 못 받으면 가업승계 힘들어

[소재학 교수의 사주명리학] 천 냥 빚 갚는 말 한마디


경제용어사전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