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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앙투아네트의 디저트 ‘마카롱’ 프랑스혁명 후 수녀들이 대중화
기사입력 2018.05.04 1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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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과자, 마카롱은 겉은 매끈하고 바삭하지만 속은 촉촉하고 쫀득해 식감이 독특하다. 맛과 향이 다양한 데다 형형색색 빛깔이 보석이 빛나는 것만큼 고와 선뜻 베어 물기 아까울 정도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 작은 디저트, 세계에서 인기가 높다.

마카롱은 화려한 모양만큼 가격도 비싸다. 많이 대중화됐지만 오리지널 프랑스 마카롱은 과자 값치고는 꽤 비싼 편이지만 그럼에도 한때 파리 본점이나 뉴욕 매장, 도쿄나 홍콩 면세점에서 줄을 설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마카롱은 바로크시대 프랑스 왕족과 귀족들이 즐겨 먹었던 과자로도 유명하다.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영화를 보면 프랑스 혁명 직후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비운의 왕비, 루이 16세의 왕비이면서 호화롭고 사치스럽기로 유명한 앙투아네트가 좋아했던 디저트가 바로 마카롱이다. 영화 속 이야기는 과연 사실일까? 반은 맞는 이야기고 반은 지어낸 이야기다. 마카롱이 프랑스 귀족의 디저트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 우리가 아는 것처럼 화려한 마카롱은 18세기 바로크 시대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마카롱은 16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역사 깊은 디저트 식품이지만 대중화된 것은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다. 프랑스 혁명이 시작된 후 수녀원에서 내몰린 수녀들이 먹고살기 위해 일반인들을 상대로 마카롱을 만들어 팔면서 대중화됐다. 우리에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프랑스 국내에서 전통 마카롱으로 유명한 도시인 아미엥, 낭사, 랑스, 꼬르메리 등이 대부분 18세기 대규모 수녀원이 자리하고 있던 도시들이다.

프랑스 전통 마카롱으로 유명한 이들 지역 마카롱은 지금 우리가 먹는 현대 마카롱과는 맛부터 생김새까지 많이 다르다. 예를 들어 낭시 마카롱은 굉장히 부드럽고 쫄깃하지만 겉보기에는 마카롱이 아니라 옛날 우리나라에서 먹었던 ‘사브레’라고 하는 과자와 비슷하다. 아미엥 마카롱 역시 아몬드 반죽에 과일과 꿀을 넣어 만드는데, 생김새는 우리가 아는 마카롱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입자가 거친 계란 과자와 닮았다. 반면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마카롱은 파리 마카롱이다. 파리 마카롱은 역사도 짧다. 1862년 파리에서 문을 연 ‘라뒤레(Laduree)’라는 제과점에서 20세기 초에 처음 선보였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마카롱에 가나슈(Ganache·크림과 섞은 초콜릿)나 아몬드 잼 등 다양한 재료를 얹고 그 위에 다시 마카롱을 얹어 샌드위치처럼 만들었다. 형형색색 다양한 색상과 종류로 고급화한 이 마카롱이 인기를 끈 덕분에 마카롱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참고로 라 뒤레와 쌍벽을 이루는 유명 마카롱, ‘피에르 에르메’는 1997년에 생겼다. 우리에게 익숙한 마카롱은 무척이나 현대적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롯해 프랑스 왕족과 귀족이 먹었다는 전설의 디저트, 마카롱의 허와 실이다.



▶마카롱과 마카로니의 공통점

프랑스 왕족과 귀족의 디저트 마카롱과 이탈리아의 서민들이 먹는 국수인 마카로니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어원이 같다는 점이다. 마카롱(Macaron)과 마카로니(Macaroni)는 모두 이탈리아어로 반죽하다는 뜻의 마카로네(Maccarone)에서 비롯된 단어다.

어원이 같다는 이야기는 곧 뿌리가 같다는 뜻이다. 마카롱은 그 어원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이탈리아에서 전해진 과자다. 16세기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공주였던 캐서린 드 메디치가 프랑스 왕 앙리 2세와 결혼할 때 함께 온 요리사가 레시피를 가져와 프랑스에서 발전시켰다고 한다.

마카롱과 마카로니 모두 이탈리아에서 비롯된 음식이지만 진짜 뿌리는 아랍이다. 중세에 고도로 발발했던 아랍의 음식문화가 이탈리아에 전해져 지금의 마카롱과 마카로니로 발달했는데 그 역사가 무척 뿌리 깊다. 아랍인들은 서기 827년 지금의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지중해를 건너 시칠리아에 상륙해 무슬림 왕국을 건설한다.

이후 수백 년 동안 아랍인들이 시칠리아를 통치했는데 이때 당시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선진국이었던 아랍 세계로부터 낙후된 시칠리아에 다양한 식품과 조리기술이 전해진다. 국수인 마카로니와 디저트 과자인 마카롱을 만드는 기술도 이때 전파됐다. 마카롱과 마카로니는 당시에는 모두 시칠리아를 다스리는 아랍의 왕족과 귀족들이 먹는 최고의 식품이었다. 마카롱의 재료만 봐도 알 수 있다.

마카롱을 만들 때 들어가는 가장 기본적인 재료는 아몬드 가루와 설탕과 달걀흰자로 만드는 거품인 머랭이다. 중세 유럽에서 설탕은 향신료 비단과 함께 동방에서 전해진 귀중한 식품으로 부유층에게는 사치품이었고, 일반인들에게는 귀한 약으로 사용됐다. 11세기 십자군의 원정 때 유럽에 널리 알려지게 된 설탕은 그 후 400년 동안 아무나 먹을 수 없는 사치품으로 대접을 받았다. 설탕이 유럽에서 널리 이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인 16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다.

페르시아가 원산지인 아몬드 역시 아랍에서 유럽으로 전해졌는데 아랍에서조차 부유층이 먹는 식품이었다. 아랍을 비롯한 유럽 문화에서 아몬드는 행복과 생명의 상징으로 쓰이는데 중세에 고가의 귀한 열매였던 것이 배경이다. 마카롱은 이런 아몬드 가루와 설탕으로 반죽해 만든 과자였으니 얼마나 귀한 식품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마카로니 역시 처음 시칠리아에 전해졌을 때는 부자들이 먹는 식품이었다. 옛날 동양에서 밀가루가 귀했던 시절 국수가 잔칫날에 먹는 음식이었던 것처럼 마카로니 역시 중세 유럽에서는 귀족과 부자들의 식품이었다. 고급 디저트인 마카롱과 서민의 음식인 마카로니가 반죽한다는 뜻의 같은 어원을 같게 된 배경이다.



▶수녀원의 효자상품, 마카롱

아랍에서 이탈리아를 통해 프랑스로 건너와 상류층의 디저트가 된 마카롱을 프랑스 혁명 이후 수녀원에서 내몰린 수녀들이 발달시켰다고 하는 이유는 혁명 이전 수녀원에서 귀족과 부자들에게 마카롱 같은 고급 디저트를 만들어 공급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수녀원 운영 재정을 충당했을 뿐만 아니라 사순절과 같은 가톨릭교회의 단식 기간 동안 아몬드 가루와 설탕, 머랭 등 재료로 만드는 마카롱을 먹으며 영양을 보충했다. 그런데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혁명 정부가 성당과 수도원, 수녀원을 몰수하고 폐쇄하고 신부와 수녀를 비롯한 성직자를 교회 밖으로 내몰았다. 이들이 먹고 살기 위해 수녀원에서 배운 기술로 과자를 만들어 판 것이 마카롱이 대중적으로 퍼지게 된 계기다.

프랑스 혁명정부는 왜 수녀원을 폐쇄했고 성직자인 수녀들을 거리로 내몰았을까? 당시 혁명 정부 입장에서는 가톨릭교회는 구정권, 앙시엥 레짐과 결탁한 적폐 세력이었다. 혁명 전까지 프랑스에서 가톨릭교회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종교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프랑스를 이끄는 지배세력 중 하나였다. 가톨릭교회가 전체 프랑스 토지의 6%를 보유했고, 교회가 갖고 있는 토지와 재산, 성직자들에 대해서는 세금이 면제됐다. 또한 교회는 농민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에 대해 십일조, 10%를 세금으로 거둘 수 있었다. 그러다 가톨릭교회에 대해 세금 면제와 자치권 부여 등의 특권을 금지하면서 혁명 정부와 교회의 갈등이 고조됐다. 혁명 직후 수개월 사이에 가톨릭교회가 갖고 있던 십일조 징수권, 성당이 보유한 국유 토지에 대한 재산권 포기, 수도원과 수녀원 폐쇄 및 몰수 조치가 잇달았다.

혁명 이듬해인 1790년 7월에는 국민의회에서 성직자 공민헌장(Civil Constitution of the Clergy)을 제정했다. 성직자에게 교황이 아닌 법에 대해 충성을 요구했고, 주교를 비롯한 성직자를 교회가 아닌 시민이 선출하며 월급도 정부에서 지급해 세속 관리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로마 교황청은 물론 성직자들이 반발했고, 혁명 정부와 가톨릭교회의 대립이 심해졌다.
수녀원의 폐쇄와 몰수는 이런 과정에서 나왔고, 혁명 정부는 성직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수녀들이 속세로 환속해 생계를 위한 장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 혁명은 시민 혁명이고 정치 혁명이지만 정치적 의미뿐만 아니라 프랑스인의 생활 구석구석에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마카롱 하나에는 이렇게 아랍 세계에서 이탈리아를 거쳐 메디치 가문의 공주를 거쳐 프랑스에 전해진 음식 문화의 전파 과정과 프랑스 혁명과 가톨릭교회의 대립, 18세기 프랑스의 정치, 경제, 사회구조까지 복잡한 역사가 녹아 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2호 (2018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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