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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을 잘 해야 하는 이유…민법상 규칙 따라야 하고 건강할 때 작성해야 효력
기사입력 2018.01.05 16:14:31 | 최종수정 2018.01.05 16: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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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미술관에 가 보면 술잔, 보석, 책 사이에 해골, 꺼진 촛불, 시든 꽃을 그려 넣은 그림들을 종종 볼 수 있다. 17세기 네덜란드 전성기 시절에 많이 그려진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다. 속세의 업적이나 쾌락을 상징하는 사물들 사이에 ‘바니타스(공허)’의 상징들을 배치하여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넣었던 것이다. 로마의 개선행렬에서 외쳤던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을 곱씹어 보면, 유언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으로 읽힐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죽음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일종의 금기처럼 여겨졌다. 그러다 보니 죽음을 대비하여 유언을 남기라고 누군가에게 권하는 것은, 아무리 좋은 뜻이라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유언은 사후에 내 재산을 내 뜻대로 처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그리고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최근 사회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유언장 쓰기’가 공론화되고 있고, 실제로 주위에서 유언장을 작성하는 분들이 늘고 있다. 이 정도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조금 더 욕심을 내어 본다면, 유언장 쓰기에 더하여 유언장 잘 쓰기가 더 중요하다.



▶엄격한 형식 요구, 정해진 규칙 따라야

많이 알려진 사실이기는 하지만, 유언은 엄격한 형식을 요구한다. 일반적으로 ‘법률행위’는 특별한 형식을 요구하지 않지만, 유언은 그렇지 않다. 민법에서 정해진 형식에 어긋나면 효력이 없다. 대법원은 “법정된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은 그것이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합치하더라도 무효”라고 하면서, 연·월만 쓰고 날짜 기재가 없는 유언, 주소가 자필로 기재되지 않은 유언, 그리고 날인이 없는 유언 모두 무효라고 하였다.

형식도 중요하지만, 내용도 중요하다. 법원에 근무할 때 있었던 일이다. 상속재산을 둘러싼 소송에서 자필로 작성된 유언장이 증거로 제출되었다. 그 유언장에는 중요한 재산들을 자녀들에게 나누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고인이 재산을 어떻게 나눌지, 적지 않은 고민을 한 흔적이 엿보였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재산을 놓고 그만 문제가 생겼다. “서울 ◯◯구 ◯◯동 ◯◯◯번지 건물은 A에게 물려 준다”고 기재되어 있었는데, 그 지번의 토지를 누구에게 유증할 것인지는 기재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 법제에서는 토지와 건물은 원칙적으로 별개의 부동산이다. 따라서 이 유언장에 따르면 건물만 A에게 유증한 셈이 되고, 그 건물의 부지는 누구에게도 유증하지 않은 것이 된다. 정황상 고인이 실수로 토지 부분 기재를 누락한 것으로 볼 여지도 있었지만, 결국 그 토지는 상속의 일반 원칙에 따라 상속인 전부가 공동으로 상속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A는 그 토지를 자신에게 유증하는 것이 망인의 뜻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형식과 내용이 잘 갖춰졌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유언에서 제일 유념해야 할 것은, 바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할 때 유언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언과 관련된 소송에서 당사자 열에 아홉은 ‘유언자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서 유언장을 작성하였기 때문에’ 유언이 무효라는 주장을 한다. 실제 사건들을 들여다보면, 유언장은 대부분 임종에 임박하여 작성된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과연 유언자가 정상적으로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유언을 한 것이었는지 알기 힘든 경우가 많다. 유언자 본인은 유언 당시 또렷한 의식을 회복한 상태였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그 유언의 효력이 부정당할 수도 있다. 이렇게 죽음에 임박하여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서 작성된 유언장은 오히려 분쟁의 단초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고인에게 재산이 있고, 복수의 상속인들이 있는 경우라면, 재산 상속을 둘러싼 갈등과 분쟁은 피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 죽음이 예기치 못한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상속인들이 지혜롭게 갈등을 해결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분쟁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적절한 유언은 상속인들 사이에 분쟁 차단

적절한 시기에 제대로 작성된 유언장은 상속인들 사이의 분쟁을 사전에 차단하고,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조기에 종결되도록 함으로써, 그 가족에게 남겨진 상처를 최소화한다. 경제적으로 보더라도, 합리적인 상속 계획의 바탕이 될 수 있고, 나아가 분쟁에 따른 개인적 손실과 사회적 비용을 회피한다는 차원에서도 유용하다. 우리가 유언의 의미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이유이다.

요즘은 재산 포트폴리오를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기회를 빌려 유언을 하는 것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경제적인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그동안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럭스멘 2018년 1월호부터 김&장과 함께 독자들에게 생활 속 법률이야기를 통해 경제활동에 도움을 주기 위한 칼럼 ‘돈 되는 법률 이야기’를 매월 연재합니다.

첫 번째 칼럼은 상속 문제를 다뤘습니다. 필자인 문준섭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29기로 서울지방법원 판사와 서울행정법원 판사,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등을 역임했습니다.


[문준섭 김&장 변호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8호 (2018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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