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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피난길 양귀비가 죽기 전 먹은 호떡
기사입력 2017.12.08 10:49:25 | 최종수정 2017.12.08 10:5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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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가 죽기 전 먹었던 음식 중 하나가 호떡이었다. 시장에서 호떡을 사 먹었다는데 왜 하필 호떡이었을까. 양귀비의 마지막 식사가 호떡이었다는 이야기, 그 자체는 한줌 흥밋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 양귀비와 호떡의 관계를 자세히 살펴보면 뜻밖의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정치사 중심의 중국사에서는 잘 알 수 없었던 생활사, 실크로드의 역사와 실크로드가 중국과 동양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에 대한 역사다.

양귀비는 안록산의 난 때 죽었다. 피난길에 오른 당 현종과 양귀비 일행을 호송하던 병사들이 양귀비의 사촌오빠면서 전란의 원인이 된 간신 양국충을 처형한 후 근본적으로 나라를 어지럽힌 장본인 양귀비도 죽이라고 요구했다. 현종은 할 수 없이 양귀비에게 자결을 명령했고 환관인 고력사가 그녀를 목매달아 죽였다. 피난길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었다.

서기 756년 안녹산이 반란군을 이끌고 수도인 장안으로 쳐들어왔다. 다급해진 현종은 서둘러 궁궐을 버리고 지금의 쓰촨성인 파촉 지역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양귀비가 호떡을 먹은 것이 이때였다. 장안에서 약 25㎞ 쯤 떨어진 함양의 망이궁에 도착할 즈음 급하게 피난을 떠나느라 아무 것도 먹지 못한 현종 일행이 시장기를 느꼈다. 그러자 양국충이 시장에서 호떡을 사서 현종과 양귀비 일행에게 바쳤다. 근거 없이 전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송나라 때 쓴 역사책인 <자치통감>과 역대 역사책 중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만 골라 모은 청나라 때의 <이십사사 통속연의>에 적혀 있는 기록이다.

1200년 전의 중국에 호떡이 있었다는 사실도 뜻밖이라면 뜻밖이지만 양국충은 지엄하신 황제 일행이 배가 고프다는데 왜 하필이면 호떡을 구해다 바쳤을까. 아무리 식사 때가 지났고 급하게 피난을 떠나느라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고 해도 궁궐을 떠나 불과 60리쯤 왔을 뿐이다. 게다가 조금만 더 가면 별궁인 망이궁에 도착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그럼에도 굳이 다른 음식도 아닌 호떡을 구해 온 것은 호떡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시장에서 서민들이 사먹는 값싼 군것질거리, 거리의 간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양국충이 구해 온 호떡은 황제 일행이 먹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그런 고급 음식이었다.

호떡을 우리나라 전통 길거리 음식이나 혹은 중국에서 전해진 시장 음식으로 아는 사람도 많지만 정확하게 호떡의 뿌리는 중앙아시아다. 호떡(胡餠)이라는 이름도 호인(胡人)들이 먹는 떡에서 비롯됐다. 여기서 ‘호(胡)’는 옥편에 나오는 것처럼 오랑캐, 서역(西域)에 사는 사람들(지금의 중국 신장 지역과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그리고 아랍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이 먹었던 음식, 그러니까 현재 아랍과 중앙아시아에서 먹는 난(Naan)이라는 빵이 호떡의 먼 조상쯤 되는 셈인데, 이들의 조상이 먼 옛날 먹었던 밀가루 빵이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이 지금 우리가 먹는 호떡이다.

우리나라 호떡이나 중국 호떡인 후삥이 지금은 거리에서 쉽게 사먹을 수 있는 간식이지만 옛날에는 달랐다. 호떡은 기원전 2세기 무렵 한나라 때 서역에서 중국에 전해졌다. <야항선(夜航船)>이라는 문헌에는 한 무제 때 김일(金日)이 호떡을 처음 가져왔다고 나온다. 김일은 김일제(金日磾)를 잘못 표기한 것으로 보이는데, 김일제는 흉노족 왕자로 한 무제가 흉노를 정발할 때 한나라에 귀화한 인물이다. 흉노 왕자였던 김일제가 호떡을 전했다는 기록은 호떡이 서역에서는 왕의 음식이었다는 뜻이다. 그까짓 호떡이 무엇이 대단하기에 왕의 음식 운운할까 싶지만 김일제가 살았던 2100년 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원전 2세기는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으로 제분기술이 전해질 무렵으로 밀가루가 무척 귀했을 때였다. 국수가 생겨나기 훨씬 전이었고, 지금과는 달리 소가 들어있지 않은 찐빵처럼 생긴 만두는 500년이 지난 제갈공명의 삼국시대가 되어서야 중국에 처음 등장한다. 그러니 밀가루를 구워 만든 호떡은 지금 같은 간식이 아니라 특별한 날,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나 먹을 수 있었던 제왕의 음식이었다. 흉노 왕자 김일제가 호떡을 전한 후 약 900년의 세월이 흐른 8세기 중반, 당나라 때 호떡은 피난길의 양귀비가 시중에서 쉽게 사먹을 수 있을 정도로 널리 퍼졌지만 여전히 황제 일행이 사먹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고급 요리였다. 사실 당나라 때까지 1000년의 세월 동안 중국에서는 호떡에 열광했고 호떡을 먹지 못해 안달이 났을 정도였다. 그만큼 귀하고 값비싸며 좋은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소설 <삼국지>의 발단이 되는 황제가 한나라 말기의 영제(靈帝)다. 이 영제가 매일 호떡만 먹다시피 하며 살았다. <후한서(後漢書)> ‘오행지(五行志)’에는 영제가 서역의 풍속을 좋아해서 서역의 옷(胡服)을 입고, 호떡(胡飯)을 먹었으며 서역의 음악과 춤에 빠져 지냈는데, 황실의 친척과 장안의 귀인들이 모두 그 모습을 따랐다고 나온다.

황제부터 신하들까지 호떡을 먹고 호복을 입었으며 서역의 노래와 춤을 즐겼다는 것인데, 호떡의 유행은 당나라 때까지도 이어졌다. 일본 승려 엔닌이 당나라에서 수행할 때 쓴 기행문인 <입당구법순례행기>에도 입춘을 기념해 황제가 절에 특별 선물로 호떡을 보냈다는 기록이 보일 정도인데 중국에 왜 이렇게 호떡 열풍이 불었을까.

호떡은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부터 당나라를 거쳐 12~13세기 송나라 때까지 거의 1500년이 넘도록 중국에 거세게 불었던 바람, 호풍(胡風)의 상징이다. 동양 문화의 중심이고 동서양 곳곳에 문명을 전파했다는 중국에 왜 이렇게 오랜 세월 서역의 바람이 불었을까. 중국에 불어 닥친 호풍은 실크로드와 깊은 관련이 있다. 비단길인 실크로드(Silk Road)는 중국과 서역, 즉 중앙아시아는 물론 로마까지 이어지는 장장 6400㎞의 교통로다. 실크로드를 통해서 그리고 실크로드와 연결되어 거미줄처럼 이어진 도로를 통해 비단을 비롯한 갖가지 상품 무역과 동서양의 정치 문화 교류가 이뤄졌다. 실크로드라는 이름은 19세기 말,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Richthofen)이 처음 사용한 이름이다. 그런데 ‘비단길’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혹은 중국적 사고의 영향 때문인지 실크로드를 막연하게 비단과 도자기를 비롯한 동양의 앞선 문물이 서양으로 흘러 들어간 길, 내지는 문화적으로 뒤처진 유목민의 땅 서역에 전해진 중국 문화가 전해진 통로로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 길은 육로가 됐건 바닷길이 됐건 비단길인 실크로드라기보다는 향신료 무역, 스파이스 트레이드(Spice Trade) 로드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다.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의 비단과 도자기가 서역으로 전해졌을 뿐만 아니라 인도와 중앙아시아, 아랍의 향신료와 식품, 그리고 기술과 문화가 동서양으로 퍼지는 통로였기 때문이다. 보통 실크로드 중에서도 아랍에서 서양으로 이어진 길은 향신료 무역의 통로로 많이 알려진 편이다. 하지만 동양으로 전해진 향신료 무역 길은 비중을 두고 보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실크로드를 통해 서양 못지않게 동양으로도 서역의 향신료와 식품이 쏟아져 들어왔다.
더불어 서역의 앞선 기술과 문화가 중국에 전해졌는데 예컨대 중국에서 당송 시대에 국수와 만두의 발달이 가능했던 배경도 서역에서 밀과 함께 수차(水車), 즉 물레방아와 같은 당시로서는 첨단기술인 제분기술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중국의 비단과 도자기가 서역으로 흘러 들어간 이유 역시 서역의 질 좋은 상품인 향신료와 식품, 그리고 앞선 기술의 제품을 사들이기 위한 교역 품목이었다. 호떡은 이런 경로를 통해 서역에서 중국으로 전해졌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7호 (2017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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