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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서의 뉴 애브노멀 시대 경제] 양극화 해소 한국형 자본주의 4.0 필요하다
기사입력 2017.12.08 10:4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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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 생각의 간극이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특히 경제정책에 있어 시장자율 기능을 중시하는 보수와 정부역할을 강조하는 진보는 각기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낮은 경제 성장률, 심화되는 소득격차는 그대로다. 3분기 깜짝 상승은 있었지만 성장률은 2%대로 고착되는 느낌이다. 소득 상위 1%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2%로 세계 상위권이다. 더구나 자산소득의 경우에는 이 비중이 25.9%로 세계 2위다. 1위는 미국으로 대공황 이후 최고치라고 한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감지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위기 시마다 적절한 변신을 통해 진화해 왔다. 정부와 시장이라는 이분법하에서 정반합의 원리를 통해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와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최저생계비 지원, 의료보장 등 사회주의적 제도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북유럽의 사민주의식 복지정책도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성립하는 모델이다. 이제 자본주의가 또 한 번 변신할 때이다. 경제평론가인 칼레츠키(Anatole Kaletsky)는 이를 자본주의 4.0시대의 개막이라고 칭하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 4.0이 적응성 혼합경제(Adaptive Mixed Economy)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와 시장의 대립이 동반자관계를 형성한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정상적인 방향으로 작동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이전의 수정자본주의와는 사뭇 다른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이 자본주의 4.0은 한국 경제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



진화하는 자본주의

자본주의(Capitalism)라는 말은 1840년 프랑스의 사회주의자인 루이블랑(Louis Blanc)이 ‘노동의 조직’이라는 논문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의 자본주의 개념은 이보다 훨씬 앞선 9세기경 중세 이슬람지역에서의 중상주의적 자본주의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상인을 중심으로 한 중상주의적 자본주의는 산업혁명 이후 산업자본주의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따라서 근대 자본주의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이 발간된 18세기 중반 이후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1776년 미국은 스스로 자본주의 국가임을 천명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고 미국과 영국의 정치 경제 사상을 기반으로 한 제국주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이 발생하기 전까지 약 150년간 번성하였다. 이 시기가 자본주의 1.0이다. 이 기간 동안 정치와 경제는 완전히 상이한 활동이므로 정치 경제의 발전을 위해 두 활동은 별도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자유방임주의적 철학이 지배적이었다. 자본주의 2.0시대는 이후 1970년대 후반까지를 포함하며 대공황기, 세계전쟁 시대, 냉전시대의 하위국면으로 구분된다. 이 시기의 대표이론은 케인즈의 수정자본주의로 정부주도의 통제 경제를 지향한다. 정부는 항상 옳고 시장은 일반적으로 틀리다는 신념으로 정부는 시장에 적극 개입하였다.

특히 냉전시대에는 삶의 질이나 기술의 발전, 금융부문 안정 측면에서 역사상 경제 운영이 가장 성공적이었던 시기로 케인즈 이론이 정답인 듯했다. 하지만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과 달러화의 금태환 정지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자본주의 3.0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대처리즘(Thacherism),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로 시작된 자본주의 3.0은 자유경쟁시장 체제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즉 시장을 통한 생산과 소비의 자동 조정 기능을 회복시키면 시장은 경제안정과 완전고용 등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결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믿음하에 정책이 입안되었다. 이는 프리드만(Friedman) 등의 시카고학파 통화주의자가 내세우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와 맥을 같이한다. 이 시기에는 또한 자유무역과 국제분업을 주창해 WTO, FTA 등을 통한 하나의 시장을 지향했다. 글로벌화 시대의 자본주의로 통칭되는 이 시기도 하지만 2008년 탐욕적 금융자본주의로 인한 세계금융위기 발발로 종말을 고한다.

그리고 이제 자본주의 4.0시대를 맞이했다. 칼레츠키는 이 시대를 정부와 시장의 공생의 생태계로 정의한다. 시장과 정부가 유기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경제를 동반적으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경제 환경하에서 정부와 시장은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과거와 같이 정부와 시장 어느 한 곳에 방점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즉 상황과 여건에 따라 경제규칙을 바꿔야 한다는 점에서 적응성 경제이며 정부와 시장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혼합성 경제라고 할 수 있다. 정부와 시장이 공생하며 기업이 스스로 사회적 책무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4.0을 따뜻한 자본주의라고도 칭한다.



큰 정부로는 변화 못 따라가

그렇다면 한국적 경제상황에서 자본주의 4.0의 한 핵심 축인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일단 작은 정부를 지향해야 한다. 유연하지 못한 관료주의적 거대정부로는 사회의 변화하는 요구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폐단으로 진화된 새로운 자본주의인 만큼 정부의 역할과 영향력은 커져야 한다. 즉 양적인 팽창이 아닌 질적 향상을 도모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는 시장과 함께 호흡하며 기업들이 바람직한 목표를 추구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정부는 또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공정한 경쟁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경쟁이 사라진 시장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할 것이며 심판이 편파적이라면 시장에는 각종 불법 탈법행위가 난무할 것이다. 그렇다고 과거와 같이 시장에 직접 개입하여 오히려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누를 범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예컨대 한국경제 성장의 원동력 역할을 수행했지만 불법승계, 부당행위거래,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로 질타를 받고 있는 대기업 집단은 별도의 기업집단법 제정을 통해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즉 자본주의 4.0시대에 정부는 세련된 개입을 통해 시장경제 원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소득분배 개선은 필수적이다. 자본이 스스로 자본을 재생산하는 불로소득은 최소화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근로소득보다 자산소득에 대한 불균형도가 지나치게 높은 만큼 자산소득에 대한 세제를 강화해야 한다. 제한적인 도시면적, 수도권 집중화, 아파트 투기화 등으로 인한 부동산 불패신화는 기회주의자 양산과 근로의욕 저하로 이어져 국민행복지수를 추락시키는 가장 근원적인 요인이다. 주택의 공공재적 성격을 고려하여 다주택자에 대한 보유세와 물가상승률을 크게 초과하는 양도소득에 대한 과세강화는 모두가 행복한 자본주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이해관계자 가치극대화 필요

한국형 자본주의 4.0시대에 시장은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가? 일단 기업의 재무적 목적이 이윤극대화나 주주 부의 극대화가 아닌 이해관계자(Stakeholders)의 가치극대화로 전환되어야 한다. 한국경제는 그동안 성장에만 집중하다 보니 기업이 속해 있는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자, 즉 종업원·소비자·하청업체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이해관계자 없이 존재하는 기업은 없다. 기업은 기업의 이익뿐 아니라 이들의 가치도 함께 증대시키는 공생의 개념을 체화해야 할 것이다.

전문화도 필요하다. 변화무쌍한 시대에 거대한 몸으로는 경쟁력이 없다. 전문화된 작은 조합으로 변신해 빠르고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 이는 대기업 집단의 핵심사업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의미한다. 공공분야에 대한 민간 기업들의 참여도 예상되는 만큼 사회서비스나 교육·의료 부문에 대한 비즈니스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또한 기업은 사회적 책임(CSR)뿐 아니라 공유가치창출(CSV)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공유가치창출은 기업에게 일방적인 비용을 강요하는 사회적 책임과는 달리 기업의 이익도 함께 추구할 수 있는 방안이다. 예컨대 생활용품 전문기업이 고령화를 고려해 노인용 속옷을 출시하면서 상담이나 생산에 해당 연령층의 직원을 채용하는 것이 공유가치 창출의 한 예이다. 이 같은 전략을 통해 기업은 기업 고유의 이익을 추구하는 비즈니스를 수행하는 동시에 결과적으로 사회적 책임도 이행하게 되는 셈이다. 상생, 공생, 공유를 내세우는 자본주의 4.0시대에 걸 맞은 비즈니스 모델이다.

근대 자본주의는 시스템이 한계점에 봉착할 때마다 묘수를 찾아 지속적으로 진화되어 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적 저성장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불확실성까지 추가된 ‘뉴 애브노멀’ 시대에 또 다른 자본주의의 출현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명제이다. 시장과 정부의 조화와 공생이 강조되는 자본주의 4.0 시대에 한국 상황에 맞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환경 조성을 통해 행복하고 지속가능한 경제체제가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한국경제가 한 번 더 점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7호 (2017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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