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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믈렛과 나폴레옹 | 음식에서 찾는 나폴레옹 리더십 영광과 좌절
기사입력 2017.11.02 10: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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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중에는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 때문에 생겨났다는 전설적인 요리가 적지 않다. 이런 나폴레옹 관련 이야기 속에는 사실 여부를 떠나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속에서 나폴레옹 리더십과 영광, 좌절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나폴레옹 관련 음식의 공통점, 과연 무엇일까.

프랑스 사람들이 단합의 상징으로 먹는 음식은 오믈렛이다. 달걀을 풀어 만드는 오믈렛 자체야 고대 로마시대부터 먹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비빔밥처럼 행사장에서 단결의 상징으로 대형 오믈렛을 만들어 먹는 풍속은 나폴레옹 때문에 생겼다.

19세기 초, 프랑스 남부를 지나던 나폴레옹 군대가 베시에르라는 마을에 머물렀다. 나폴레옹이 숙소로 삼은 현지 여관 주인이 저녁식사로 오믈렛을 만들어 내왔다. 맛있게 먹은 나폴레옹이 이렇게 좋은 음식은 병사들과 함께 먹어야 한다며 마을에 있는 모든 계란을 빠짐없이 거두어 병사들이 모두 먹을 수 있는 대형 오믈렛을 만들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때부터 오믈렛이 프랑스인, 나아가 유럽인에게 단합을 상징하는 음식이 됐다,

치킨 마렝고(Chicken Marengo)도 나폴레옹과 관련 있다. 우리에겐 비교적 낯선 이름이지만 쉽게 말해 프랑스 찜닭요리다. 닭고기를 가재와 마늘, 달걀과 함께 올리브 기름과 와인으로 조리한다. 1810년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마렝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군을 물리친 후 승리를 기념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치열한 전투가 끝나자 나폴레옹이 갑자기 시장기를 느꼈다. 하지만 보급 마차가 멀리 있어 음식 만들 재료를 구할 수가 없었기에 전속 요리사가 즉석에서 구한 닭과 가재, 마늘, 와인으로 뚝딱 만든 것이 치킨 마렝고다. 통조림은 알려진 것처럼 나폴레옹 군대의 전투식량 개발 목적에서 비롯됐다. “군인도 먹어야 싸운다(a soldier marches on his stomach)”는 말 때문에 나폴레옹이 병사들의 급식에 엄청 신경을 쓴 것 같지만 정반대다. 나폴레옹 군대는 허구한 날 굶주림에 시달리며 싸웠다. 나폴레옹 전술의 핵심은 기동력이다.

나폴레옹 군은 적보다 두 배 빠르게 움직인 만큼 소수정예에 보급품도 간소화했다. 텐트도 없이 노천에서 나뭇잎을 덮고 취침했을 정도다. 이런 고민을 해결하려고 나폴레옹은 휴대하기 편하면서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식품 보존 기술개발에 1200프랑의 현상금을 걸었다.

그 결과 파리의 제과업자 니콜라 아페르가 통조림의 원조가 되는 최초의 병조림을 개발해 1810년 현상금을 받았다. 세 가지 음식 유래의 공통점은 모두 현지 조달로 구한 재료로 만들었거나 현장에서 신속 간편하게 먹는 음식이라는 점이다. 오믈렛이나 치킨 마렝고는 군에서 체계적으로 준비한 보급품으로 만든 요리가 아니라 돈을 내고 구입했건 점령지 주민에게 강제로 빼앗았건 모두 현지에서 급하게 구한 재료들이다. 아페르의 초기 통조림 역시 현장에서 급하게 먹는 음식이다. 나폴레옹과 관련된 이런 음식, 어떤 의미가 있을까.

거창할지 모르지만 나폴레옹의 성공과 좌절 원인을 바로 관련 음식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실패 사례에서 문제점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처럼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한 이유는 러시아가 대륙봉쇄령을 어겼기 때문이다. 유럽을 제패한 나폴레옹은 1806년 영국과의 모든 거래를 금지하는 칙령을 발표했다. 영국과의 통상금지, 프랑스 및 동맹국 점령지역 내 영국 재산의 몰수, 영국이나 영국 식민지 선박의 유럽 대륙 입항 금지 등이다. 섬나라 영국을 굴복시키기 위한 대륙봉쇄령은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 전체에 적용됐고 영국은 신대륙 무역과 유럽과의 밀무역으로 대항했다. 그런데 영국에 곡물을 수출하던 러시아가 대륙봉쇄령에 반발했다. 영국에 경제적 타격을 입히기 전, 곡물 수출 중단으로 러시아 경제가 휘청거렸기에 당시 러시아 차르였던 알렉산드르 1세는 밀무역을 묵인해 오다 1810년에는 아예 영국과 공개적으로 무역을 재개하며 대륙봉쇄령에 반발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와 알렉산드르 1세의 러시아 사이에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고, 1812년 6월 나폴레옹은 드디어 약 60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로 쳐들어갔다. 세계사에 유명한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이다.

나폴레옹은 겨울이 오기 전, 모스크바를 점령하면 러시아가 항복해 올 것이라고 계산했다. 나폴레옹 군대의 최대 장점은 기동력이다. 적군보다 두 배나 신속하게 움직였다. 대신 나폴레옹은 기동력을 살리기 위해 병참을 희생했다. 특히 장병들이 먹을 식량을 최소화했다. 프랑스에서 보급품을 실어 나르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서 직접 구입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때문에 도시가 가깝고 인구가 밀집해 양식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유럽 전투에서는 프랑스군이 기동력을 발휘해 위력을 보였지만 마을이 멀리 떨어져 있어 양식을 구할 수 없는 곳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프랑스군의 특징을 간파한 러시아가 펼친 것이 들판을 깨끗이 청소한 것처럼 비운다는 청야(淸野)작전, 초토화 작전이었다. 후퇴하면서 집과 가축과 식량을 모두 불태워 나폴레옹 군대가 먹고 머무를 곳을 아예 없애 버렸다.

러시아 침공에서 프랑스군이 거둔 첫 번째 승리가 스몰렌스크 전투다. 그런데 이 지역을 점령하고 보니 80% 이상의 집이 불타 버린 폐허였고 식량은 남아있지 않았다. 식량이 떨어지면서 절반 이상이 외국군이던 나폴레옹 병력이 급속도로 줄었고, 반면 눈에 띄는 대로 약탈하는 침략자에 대해 러시아 농민의 반감은 높아졌다. 스몰렌스크의 작은 승리에 이어 프랑스군이 거둔 결정적 승리는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의 배경이 된 전투로 9월 초, 모스크바 근교에서 벌어진 보로디노 결전이다. 25만 명이 참가해 새벽부터 밤까지 이어진 전투에서 프랑스군 3만 명, 러시아군 5만여 명의 사상자를 내며 결국 나폴레옹 군대가 승리했지만 남은 것은 폐허뿐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모스크바 점령뿐이었는데 러시아는 모스크바를 비우고 후퇴하는 작전을 썼다. 나폴레옹이 10만 명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아무도 없는 모스크바에 입성했다. 하지만 그날 밤부터 여기저기서 불길이 치솟더니 모스크바 대부분이 나흘 만에 폐허로 변해 버렸다. 무혈점령한 모스크바에서 프랑스군은 오히려 곤욕을 치렀다. 먹을 것도 떨어진 데다 잘 곳도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모스크바를 점령했으니 알렉산드르 1세가 강화를 요청해 올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병사들이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자 오히려 나폴레옹이 거꾸로 사절을 보내 강화를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다. 결국 1개월 후 나폴레옹은 퇴각을 결정했다. 후퇴를 시작하자 그동안 달아나기 바빴던 러시아군이 곳곳에서 공격을 시작했고 러시아 농민들도 기습에 가담했다. 그리고 유명한 러시아의 동장군이 후퇴하는 나폴레옹 군대를 괴롭혔다. 그 결과, 나폴레옹을 따라 파리로 되돌아온 인원은 3만 명뿐이었다. 그리고 1814년 3월, 러시아군이 파리에 입성하면서 나폴레옹은 퇴위되어 엘베 섬에 유배되고 알렉산드로 1세는 유럽에서 전후 처리의 주역이 됐다.

흔히 나폴레옹의 실패 원인으로 러시아의 혹한을 꼽지만 전문가들은 진짜 원인은 현지조달 원칙에 따른 식량부족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나폴레옹은 러시아 땅의 점령이 아닌 차르의 항복이 목표였기에 60만 대군을 동원하면서 애초 3주 분량의 보급물자만 준비했다. 나머지는 당시 프랑스군 전통 그대로 현지 조달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문제가 생겼다. 선발대를 비롯한 주력부대가 보급마차가 미처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이동했다. 때문에 선발대가 현지에서 식량조달을 하자 뒤늦게 도착한 주력부대는 양식을 확보하지 못해 배고픔에 시달렸다. 러시아군이 이런 프랑스군의 약점을 간파했는데 당시 프랑스군의 진격루트에 위치한 러시아 땅에서 얻을 수 있는 식량은 최대 20만 명분 정도로 추정한다. 모조리 현지 조달한다고 해도 프랑스군 수요에는 턱없이 모자랐는데, 그나마 러시아군이 철저하게 파괴하면서 철수했다. 그 결과 프랑스군은 기병대 말까지 잡아먹었고 전투가 벌어지자 러시아 기병에게 철저하게 유린당하면서 나폴레옹 부대 스스로 무너졌다. 손자병법은 속전속결을 강조한다. 하지만 “하루 천금 이상의 막대한 경비가 필요하니 이것이 준비된 후에야 십만 대군이 움직여도 좋다(日費千金 然後 十萬之師 擧矣)”고 강조했다.
속전속결만 강조했지 준비에 소홀했던 것이 나폴레옹의 패착이었다. 국가 경영뿐만 아니라 기업경영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재미있게 포장된 나폴레옹 관련 음식 이야기에는 이렇게 나폴레옹 군대의 허점이 감춰져 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6호 (2017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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