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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효서의 유념유상] 한글은 ‘국어’가 아니다
기사입력 2017.10.11 11: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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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0월은 10일의 연휴로 시작된다. 한 달의 3분의 1을 내리 쉬는 것이다. 누구에게는 절호의 휴식기간일 수 있고 누구에게는 곤혹스런 열흘이 될지도 모른다. 연휴의 시작이 9월 30일부터이니 10월 연휴는 9일뿐이라고 말한대도 열흘을 내리 쉬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누구에게는 환상적인 휴식기간이 누구에게는 걱정만 쌓여 가는 시간이 될 터여서 언제나 국공휴일 지정 문제를 두고 사회적으로 말이 많았다. 대체공휴일이니 임시공휴일이니 하는 말과 제도도 그런 논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시절에 따라 공휴일이 되었다 안 되었다 하는 기념일이 있다. 그런 대표적인 기념일이 한글날일 것이다. 한글날이 공휴일이 되었다 안 되었다 할 때, 하루 더 쉬느냐 안 쉬느냐로 기분이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는 것 말고 좀 다른 차원에서 씁쓸해지곤 한다. 어딘가 한글의 지위와 가치 같은 것들이 함부로 다루어지는 느낌? 대학에서 우리말과 글에 대해 좀 더 깊이 공부했고 더구나 평생 글 쓰는 직업을 갖게 된 나로서는 한글을 국보로 지정하지는 못할 망정 한글날을 공휴일에 넣었다 뺐다 하는 처사가 영 못마땅했다. 그러니 한글날이 다시 공휴일로 지정되었다고 해서 마냥 좋아만 할 일도 아닌 것이다. ‘노는 날’로서의 한글날이라면 말이다. 공휴일이나 기념일이 아니어도 좋으니 우리말인 한글의 소중함이 제대로 인식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한글을 사랑하고 깊이 연구하는 학자들도 한 가지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한글날이 되어도 그 문제는 좀처럼 제기되지 않아 의아하다. 이번 한글날도 그럴까. 명칭의 문제다. ‘한글’은 정확히 말하면 문자에 국한한 명칭이다. 1446년에 반포된 훈민정음이 정음, 가갸, 언문, 언서, 반절, 암클, 아햇글, 조선글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다가 20세기에 와서 우리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한글이라는 명칭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글날도 문자에 국한된 한글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공휴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문자언어와 음성언어, 즉 우리글과 말을 함께 아울러 지칭하는 이름에 대해서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한국어’다. 영어로 하면 ‘Korean’. 북한에서는 ‘조선어’라 하겠지만 ‘조선어’를 번역하면 역시 ‘Korean’이다.

아무 문제없다. 그런데 우리말과 글을 ‘한국어’라 하지 않고 ‘국어’라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교과목의 이름도 ‘국어’고 과목을 담당하는 교사도 ‘국어 선생님’이다. 그들은 대개 ‘국어교육학과’거나 ‘국어국문학과’ 출신이다.

‘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면 어떻게 될까. ‘Natio nal Language’일까? 그러면 더 이상하지 않은가. 프랑스어는 French다. 독일어는 Ger man, 영국어와 미국어는 English다. 그 어느 나라도 자국의 말과 글을 ‘National Langu age’라고 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 자국의 언어를 ‘국어’라고 쓰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인 것 같다. 중국은 어떨까. 한어(漢語)나 중문(中文)이라고 하지 않던가. 영어로는 Chinese겠고.

연세대학교 윤동주 기념관에 가면 윤동주의 연희전문 시절 성적표를 볼 수 있다. 1학년 때는 ‘국어’와 ‘조선어’ 과목이 있다. 물론 ‘국어’는 일본어를 뜻한다. 2학년 성적표에는 ‘조선어’ 과목이 사라지고 ‘국어’만 남는다. 그렇게 사라진 ‘조선어’가 해방 후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계속 ‘국어’로 남았다. 물론 해방 후의 ‘국어’는 ‘한국어’다. 그러나 명칭은 계속 ‘국어’로 남았다.

무슨 상관일까.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으며 말과 글도 다시 찾았으니 이제 ‘국어’라고 해도 그것은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일 터, 그대로 ‘국어’라고 써도 상관없지 않을까. 글쎄. 윤동주가 이 사실을 안다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고 여길 테지만 그는 해방을 6개월 앞두고 29세의 나이에 일본제국의 생체실험으로 희생당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사실을 알 리 없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말과 글의 명칭이 ‘국어’로 통용되는 것에 대하여 무감각하다. 일제 강점을 겪은 세대도 겪지 않은 세대도 마찬가지다.

다 알다시피 ‘Nation’은 국가나 민족으로 번역된다. 그리하여 내셔널리즘(Nationalism)이라고 하면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를 뜻하게 된다. 자국가 자민족 중심주의를 말한다. 자신의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지만 그로 인해 타국가, 타민족에게 해악을 끼칠 수 있기에 내셔널리즘이라는 말로 경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극단적 내셔널리즘의 세계사적 최근 버전이 독일의 나치즘과 일본의 천황군국주의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극단적 내셔널리즘의 체제 안에서는 언어도 침략의 무기이며 지배의 사상일 수 있다. ‘National Language’라는 명칭의 배경이 이러하다.

우리는 조선어를 말하고 연구했다는 이유로 처벌받고 투옥되었다. 학교에서 조선어가 사라지고 일본어인 ‘국어’만 남았다. 왠지 저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소설이 생각나지 않는가. 내일부터 프랑스어를 못 쓰고 프러시아어(독일어)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한 선생님의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

민족을 분류할 때 언어가 그 첫째가는 기준이 아니던가. 달리 말해 언어를 바꾸면 개인도 민족도 바뀐 언어적 정체성을 띠게 될 거라는 것이다. 일제가 조선어를 말살하고 일본어를 ‘국어’로 삼은 까닭은 너무도 분명하다. 무섭고 잔혹하다.

우리는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지배할 의지도 없으면서 어째서 무기와 사상으로서의 ‘국어’라는 명칭을 고집하는 것일까. 고집하는 게 아니라면 어째서 오늘날까지 우리는 국어를 국어 선생님께 배우고 국어 시험을 치르며 국어교육학과나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는 것일까. 몰라서였다면 오늘 당장 교과목의 이름을 ‘한국어’로 고칠 일이다.
한국어를 ‘한국어’라 하지 않고 ‘국어’라고 쓰는 부끄러움을 세계인들 앞에 더는 보이지 말 일이다.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한글은 ‘국어’가 아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창간 7주년 특집호·제85호 (2017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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