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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효서의 유념유상] 잘 먹겠습니다
기사입력 2017.09.01 11: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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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겠습니다.”

식사 전에 하는 말이다.

“많이 드세요.”

식사를 준비한 사람의 응수다. 이런 응대가 모든 나라의 어법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국과 일본에는 확실히 있다. 일본 쪽이 좀 더 철저한 것 같다. 일본의 어떤 영화를 보아도 밥을 먹기 전에는 반드시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우리와 크게 다를 것은 없는데 혼밥을 할 때도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좀 낯설다. 아무도 없는데 혼자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이타다키마스”라고 한다. 스스로 준비한 식사 앞에서도.

그러나 조금 낯설 뿐 아주 낯설지는 않다. 여럿이 먹든 혼자 먹든 우리도 “잘 먹겠습니다”의 다른 말이 있었다. ‘고수레’라는 것인데, 들밥을 먹기 전에 밥과 반찬을 한 자밤씩 떠서 멀리 던지며 “고수레!”라고 말했다.

중요한 건 혼자 먹을 때 그러한가 아닌가가 아니다. 의미 있는 공통점은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나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감사를 표하되 그 대상이 나에게 밥을 차려준 사람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 입에 밥이 들어오게 되기까지 거쳤을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미삼근(一米三斤)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겼을 것이다. 쌀 한 톨에 맺힌 농부의 땀이 세 근이라는 뜻이다. 누구는 일미칠근이라고도 한다. 우리가 식탁에서 매일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농부뿐만 아니라 쌀을 찧고 묶고 보관하고 운반한 모든 이들의 손길 덕분이라는 뜻일 것이다.

허리가 휘도록 농사일을 하다 보면 배가 금세 등에 달라붙기 마련일 텐데, 그래서 허기 앞에서는 눈에 뵈는 게 없을 성싶은데도 내 사정보다 남의 수고에 먼저 감사하는 맘을 잊지 않는 것. 선(禪/善)이 따로 있는 게 아닐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을 가장 먼저 따로 떼어 감사의 대상에게 기꺼이 바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삶을 대하는 그 사람의 됨됨이에 관해 더 물을 것도 없겠다.

감사의 대상은 사람을 넘어 곡식에 이른다. 농부와 싸전의 노고도 노고지만 그 전에 곡식이 분발하여 잘 영글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잘 익은 곡식은 곡식에 머무르지 않고 곡령(穀靈)에 이르며 추앙을 받는다. 그 예가 신주단지, 성주단지, 터주단지다. 집집마다 있었던 것들이다.

신주는 벽감에 모시고 성주는 대들보 아래에 모시며 터주는 뒤꼍에 모신다. 신주는 조상, 성주는 집, 터주는 터를 지키는 영인데, 그들에게 모두 단지라는 이름을 붙인 까닭은 그것이 곡식 항아리이기 때문이다. 한 해의 농사를 지어 햇곡식이 나면 가장 좋은 것들로 골라 맨 먼저 집안의 주신들께 바치는데, 바야흐로 그 곡식이 든 항아리는 집안의 액운을 막아주는 영험한 수호신이 되는 것이다.

정신없이 배가 고파도 “고수레” 하며 누가 있든 없든 음식을 떠 먼저 허공에 던지는 것. 새로 수확한 곡식을 저 먼저 홀랑 먹기 전에 조상과 집과 터에 우선적으로 바치는 것. 잘 먹겠습니다. 이 인사는 바로 이러한 의례와 잇닿아 있는 것은 아닐지.

신주단지며 성주단지는 매년 햇곡식으로 채워진다. 햇곡식으로 바꾸어 넣는 일을 9월에 한다. 9월은 곡식이 익는 계절이니까. 게다가 숫자 9는 양수(陽數)인 1, 3, 5, 7, 9 중에도 가장 영근 숫자이다. 우리는 이 양수가 겹치는 날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1월 1일은 설이고 3월 3일은 삼짇날이라 해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화전을 부쳐 먹었다. 5월 5일은 단오이고 7월 7일은 칠석이어서 처녀들은 길쌈을 하고 일꾼들에게 술과 떡을 나누어 주었다. 가장 영근 숫자 두 개가 겹치는 날이 9월 9일일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이름을 중양절(重陽節)이라고 하고 이날을 놓치지 않고 단지의 곡식을 새로 갈아 넣는다.

곡식들을 항아리에 넣어 모시고 스스로 그 앞에서 삼가고 절제하는 생활을 했으니 곡식을 곡령이라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곡식에게 무한한 감사의 예를 표하던 절기가 9월이었다는 것이다. 사람의 목숨을 살리고 부지하는 근본이 곡식이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9월이면 곡식이 그렇게 곡령이 되는 시점이긴 했으나 따지고 보면 곡식이 곡식다워진 것은 곡식 혼자만의 분투나 분발 때문만은 아니었다. 비와 구름, 햇빛과 바람 없이 그것이 가능했을까. 때맞추어 하늘이 비를 내리고, 구름이 움직이며 햇빛과 바람을 조절하지 않았다면 신주단지에 넣을 대글대글한 곡식은 물론 우리 입에 들어올 맛난 밥도 여의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두 손 모으고 머리를 조아릴 대상이 또 있었던 것이다.

곡식이 무르익기까지 곡식들 곁에서 끝없이 수런거리며 한 시절을 함께 해온 바랭이나 수크령, 뽀리뱅이 같은 풀들의 우정도 한몫했을 것이다. 부지런히 꽃가루를 나르며 식물의 수정을 도운 벌과 나비도 빼 놓을 수 없는 결실의 주인공이 아닐까.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봄부터 소쩍새가 울어야 하며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울어야 하는 것이다. 무서리가 내리는 것도 내가 잠 못 드는 이유도 모두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한 뒤척임인 것이다. 하물며 우리 몸을 살리고 지탱하는 밥의 원천인 곡식들의 경우에랴. 한 알의 곡식에 깃든 것이 농부의 땀 세 근뿐일까. 저 많은 다른 식물들과 숱한 동물들, 그리고 천둥소리와 소쩍새 울음마저 없어서는 안 될 정령들이었던 것. 그중 하나만 없어도 곡식은 무르익지 않으며 신주단지는 텅 비고 우리에겐 먹을 것이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존재와 우주가 휘청 기울 것이다. 잘 먹겠습니다. 먹기 전에 밥과 찬을 덜어 허공에 던지며 “고수레!” 하는 것은 그 모두를 향한 감사의 조아림일 것이다.

이 계절에 거두는 곡식은 이전 해에 갈무리해 두었던 씨앗이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씨앗은 봄에서 여름, 여름에서 가을로 이어지는 행로를 거치면서 폭풍과 가뭄과 호우를 이겨냈다. 때로는 씩씩하게 때로는 혹독한 한발과 병충해에 파르르 떨며 끈질기게 생명을 간구하던 시간들이었다. 그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순간들에는 수많은 우주 원소들의 수고도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마침내 9월에 도달하는 것이다. 벅차게 벅차게 당도하는 곳이 9월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경건히 곡식을 거두어 먼저 단지에 덜어 모시고, 나머지를 우리 몸을 위한 음식의 재료로 삼는다. 하늘은 높고 말도 살이 찐다는 풍성한 계절인 것이다. 푸지게 먹는 것도 좋겠지만 한 알의 곡식이 3월에 돋아나 9월에 영그는 여정에 사뭇 숙연해지는 때이기도 하다.

내 앞에 9월의 찰진 밥 한 그릇이 있다. 한 숟가락 입에 떠 넣고 눈을 감는다.
잘 먹겠습니다. 이 말이 9월처럼 어울리는 때도 없을 것이다. 9월처럼 신성하게 들릴 달도 없을 것이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4호 (2017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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