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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효서의 유념유상] 8월의 크리스마스
기사입력 2017.07.28 17:2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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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라니. 말이 안 된다. 하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의 영화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지금도 군산에 가면 영화의 무대였던 초원사진관을 만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진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8월의 크리스마스를 잊지 못하는 것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 말이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궁금하다. 되는 말은 무엇이고 안 되는 말은 무엇인가.

중학생 시절 달개비꽃 때문에 선생님한테 야단을 맞은 적이 있다. 달개비꽃 때문이라기보다는 달개비꽃 색깔 때문에. 누구는 그것을 청색이라고 했고 누구는 보라색이라고 했다. 코발트빛이라고 멋지게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가만 듣고 있던 시골 출신의 나는 “달개비꽃 색깔은 달개비꽃 색깔”이라고 말해 버렸다. 말이 안 된다고, 장난 말라며 선생님은 나의 손바닥을 두 대 때렸다. 나는 달게 맞았다. 장난기가 동했던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나는 언제나 삐딱하게 말대꾸하는 아이였으니까. 그때는 ‘자기 동일성’ 같은 말을 몰랐을 때였다. 그러면 지금은 말이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말이 된다는 건 뭘까. 사실 혹은 지적인 체계 안에서 인정되는 논리나 발화를 뜻하는 것일까.

8월이 되면 피는 꽃 중에 내가 잘 아는 꽃이 있다. 엉겅퀴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시골에서 꼴을 베고 소를 먹였기 때문에 야생화라면 제법 아는 편이다. 엉겅퀴는 거세고 가시가 있어 소에게 먹일 수 없고 퇴비용으로 벨 수도 없다. 가시에 찔리고 긁히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 꽃 모양이 비슷하게 생겼어도 이파리에 가시가 없으면 그것은 엉겅퀴가 아니라 뻐꾹채거나 조뱅이거나 산비장이다. 그런데 엉겅퀴밖에 모르는 사람은 뻐꾹채나 조뱅이나 산비장이가 다 엉겅퀴로 보여서 “야! 엉겅퀴다!”라고 외칠 수밖에 없다. 내가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경우지만 하여튼 이럴 경우 뻐꾹채도 조뱅이도 산비장이도 도매금으로 엉겅퀴가 돼 버리고 마는 것이다.

야생화를 좀 안다고 해도 그 이름을 전부 알 수는 없다. 이름을 전부 안다는 것이야말로 말이 안 되는 말이다. 세상의 꽃은 셀 수 없이 많은데, 꽃 이름은 셀 수 있을 만큼 정해져 있으니 설령 이름을 다 안다고 해도 세상의 꽃들을 전부 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안다는 것은 이처럼 매우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안다는 것은 스스로의 취약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어서 뻔뻔하고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엉겅퀴가 아닌 것을 엉겅퀴라고 거침없이 말해 버린다. 몸의 구성이 머리, 가슴, 배로 나누어지고 다리가 여섯 개에다 앞날개, 뒷날개로 이루어졌다는 이유로 수많은 종류의 동물을 ‘곤충’이라는 간단한 분류에 싸잡아 넣어 체계라는 굴레를 씌운다.

안다는 것은 겨우 그런 것이다. 그 동물들이 스스로 곤충에 속하기를 바란 적은 없다. 잠자리와 바구미는 서로 비슷한 점이 별로 없다. 다만 인간이 자신들의 둔한 감각으로 똑같거나 비슷하게 보고 ‘곤충’이라는 명패를 저 편한 대로 임의적으로 붙였을 뿐이다.

우리가 자주 먹는 상추도 그렇다. 삼겹살 넣고 파채 넣고 쌈장 넣어 싸 먹으면 그만이니까 상추라고 알고 상추라고 말하고 만다. “상추로 싸잡지 말고 적치마라고 제대로 불러 주세요”라고 해봤자 삼겹살 맛만 좋으면 풋것의 이름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다. 적치마가 있듯 청치마, 흑치마도 있고 적축면도 있다. 오크린, 로메롤, 그린로메인이라는 이름이 따로 있어도 다 상추로 불린다.

고고학적 방식으로 거슬러 올라가 따져 보면 모든 지식 체계의 기원이라는 것이 대부분 그 모양이다. 무엇이든 계-문-강-목-과-속-종의 분류체계에 단단히 복속시킨다. 관계의 필연성은 없거나 있더라도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필연성일 뿐이다.

진화론이라는 것도 하나의 이론, 그러니까 정교하게 발명된 체계에 불과한 것이다. 믿고 싶으면 믿고 아니면 그만인 것인데 그걸 안 믿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진화의 각 단계에 존재하는 엄청난 단절과 설명할 수 없는 심연, 그리고 비약을 진화론은 메꾸지 못한다. 메꾸지 못하여 낭만적으로 은근슬쩍 건너뛸 뿐이다. 안 믿어도 그만인데 안 믿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니 안 믿기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한국인은 한국인으로서의 민족적 정체성이 있고, 독일인은 독일인으로서의 민족적 정체성이 있다고 하는데 실은 민족이라는 말과 정체성이라는 말 자체도 실체가 없는 임의적 혹은 상상적 개념일 수 있다. 몇 개의 옹색한 특징을 들어 애먼 사람을 특정 인구 집단의 숙명적 일원으로 귀속시키려는 음모일 수도 있다. 부리기 좋게, 아니면 뭉치기 쉽게. 그런데 그렇게 단단히 귀속시켜 놓고서 민족 혹은 인종적 정체성을 드러내면 인종차별 운운하는 건 또 무슨 이율배반의 역체계인지.

말이 된다, 안 된다의 기준은 무엇일까. 앞에서 말했듯이 얼마나 사실 혹은 지적인 체계 안에서 인정되는 논리거나 발화인가를 따지면 될까. 그러나 그 지적 체계라는 것도 일종의 그럴 듯한 발명품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것에 의거해 말이 된다, 안 된다 우기거나 재단하거나 강요한다면 그것은 지식이되 억압과 지배의 수단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런 지식이란, ‘없거나 분명치 않은 것’에다 이름을 촘촘히 붙이고 그것을 분류하여 계통적으로 재결합해 놓고서는 ‘있거나 분명하다’고 말하는 화술에 불과하다. 그런데 어째서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화술은 원래는 말이 안 된다는 거였을까. 크리스마스는 언제나 12월이라는 자신들의 체계를 벗어났기 때문이겠지. 벗어나면 안 된다는 요구를 벗어났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모든 지적 체계가 화술에 불과한 것이라면 다른 화술도 가능한 것. 이른바 환유의 화법. 벗어나고 놓여나는 화법. 그러니까 시의 화법 같은 것.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화법. 곤충으로 굳이 묶지 말고 낱낱의 잠자리와 바구미와 장수풍뎅이로 풀어주는 것. 상추 하나로 싸먹는 대신 적치마와 적축면과 오크린의 맛을 골고루 내게 하는 것. 어떤 체계나 분류의 한 종속적 요소로서가 아닌 그 자체로 하나의 세상인 것. 애꿎게 얽매였던 모든 매듭이 풀려 꽃가루처럼 방자하게 자유로워지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는 8월에도 크리스마스가 있고 바위에 연꽃이 피며, 손을 힘껏 뻗으면 태평양을 건너 그리운 이의 손을 잡을 수 있는 세상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 세상이라면 되는 말과 안 되는 말이 따로 있겠는가.

소설가 구효서 1957년 강화에서 태어나 1987년 신춘문예에 단편 <마디>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으로 장편소설 <타락>, <동주>, <랩소디 인 베를린>, <나가사키 파파>, <비밀의 문>, <라디오 라디오>, 소설집 <별명의 달인>, <저녁이 아름다운 집>, <시계가 걸렸던 자리>, <아침 깜짝 물결무늬 풍뎅이>, <새벽별이 이마에 닿을 때>, 산문집 <인생은 깊어간다>, <인생은 지나간다>가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지난 1월 중편소설 <풍경소리>로 제41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최근 소설집 <아닌 계절>을 출간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3호 (2017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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