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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19세기 영국서 혁명을 막은 음식 피시 앤 칩스
기사입력 2017.07.28 17: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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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의 축구 스타 웨인 루니, 영화 <타이타닉>으로 유명한 여배우 케이트 윈슬렛, 그리고 세계적인 인기그룹 ‘비틀즈’의 멤버 폴 매카트니, 2011년 27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에이미 와인하우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사실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일일이 꼽기도 어렵다. 전형적인 영국인이라는 것, 세계적으로 유명한 슈퍼스타들인 만큼 엄청난 부자라는 것 외에도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다. 영국의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생선과 감자튀김 요리, 피시 앤 칩스(Fish&Chips)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점이다. 폴 매카트니는 지금 채식주의자가 됐기 때문에 고기는 물론이고 생선도 먹지 않지만 젊었을 때는 전형적인 영국인답게 피시 앤 칩스를 열광적으로 좋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축구선수 웨인 루니와 영화배우 케이트 윈슬렛은 엄청난 부자임에도 각자가 결혼할 때 피로연 음식으로 가장 서민적인 피시 앤 칩스를 준비해 화제가 됐다. 젊은 나이에 사망한 가수 겸 싱어송라이터 에이미 와인하우스 역시 결혼 기념 파티 음식으로 피시 앤 칩스를 선택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피시 앤 칩스는 아주 단순한 음식이다. 보통 대구나 가자미 같은 흰 살 생선에 밀가루 반죽을 입혀 튀긴 생선가스를 두껍게 썬 감자튀김과 함께 먹는 요리다. 신문지에 둘둘 싸서 먹는 것이 제대로 먹는 법이라 할 만큼 전형적인 싸구려 길거리 음식이다. 전통적으로 영국 노동자들이 먹던 한 끼 식사였다. 반면 웨인 루니는 연봉만 270억원이 넘고 광고 수입을 비롯한 기타 소득까지 포함하면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거액을 버는 억만장자인데, 이런 웨인 루니나 그에 못지않게 부자인 케이트 윈슬렛, 그리고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왜 결혼식 피로연 음식으로 전형적인 서민 음식을 준비했던 것일까. 이들이 특별히 서민적이기 때문에 피시 앤 칩스를 준비했던 것만은 아니다. 초호화판 요리로 재력을 과시하기에 앞서 피시 앤 칩스는 영국인의 식탁에서 빠지면 섭섭하다고 할 정도로 영국인 모두가 좋아하는 국민 음식이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이 피시 앤 칩스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전해지는 일화를 통해서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피시 앤 칩스는 연합군의 비공식 암호로 사용됐는데, 다국적 군대가 얽히고설킨 상황에서 암호 또한 수시로 바뀌었기 때문에 병사들이 미처 암호를 제대로 외울 수조차 없었다. 때문에 암호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영국군이 임기응변으로 “피시(Fish)”라고 외쳤을 때 상대방이 “칩스(Chips)”라고 대답하면 아군으로 간주했고, 엉뚱한 대답을 하면 적군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에피소드의 사실 여부를 떠나 영국인들에게 피시 앤 칩스가 얼마나 가까운 음식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피시 앤 칩스는 별다른 특징도 없는 음식인데 어떻게 영국의 국민 음식이 됐을까. 예전 유럽에서 영국 음식은 맛없는 요리로 유명했다. 심지어 혀에 대한 테러라는 혹평까지 들었을 정도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단순하게 생선에 밀가루 반죽을 입혀 튀겨낸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을 함께 먹는 음식에 지나지 않는 피시 앤 칩스가 어떻게 영국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는 국민 음식이 될 수 있었을까.

단순하기 짝이 없지만 역사적으로 어려운 고비를 겪을 때마다 영국인의 식탁을 지키며 어려움을 함께 했던 음식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피시 앤 칩스는 순수한 영국 음식이라고도 할 수 없다. 외국에서 전해져 영국화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생선튀김은 원래 포르투갈에 살았던 유대인의 음식이었다고 한다. 포르투갈의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는 고기를 먹지 않았고 불을 피워 요리하는 것도 금지했기에 금요일 저녁에는 생선을 튀겨서 주일에 먹었다. 그런데 17세기, 포르투갈 유대인들이 종교 탄압을 받았다. 스페인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아랍을 축출하며 가톨릭을 제외한 다른 종교를 배척했다. 때문에 유대인들도 가톨릭으로 개종하거나 포르투갈을 떠날 것을 강요당하면서 수많은 포르투갈 유대인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영국으로 이주했고, 이 과정에서 영국에 생선튀김 요리가 퍼졌다. 반면 감자튀김은 벨기에에서 전해졌다. 예전 유럽에서 감자는 빈민들의 음식이었다. 겨울에 강물이 얼어 생선이 잡히지 않자 감자를 생선 모양으로 썰어 튀긴 것에서 벨기에식 감자튀김인 프렌치 프라이즈가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영국에서는 밀농사가 흉년이 들면서 빵 값이 폭등하자 대신 감자튀김을 먹게 됐고, 이때부터 시작해 현재의 피시 앤 칩스 조합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음식의 기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이 결합한 피시 앤 칩스는 가난과 종교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온 이민자들이 먹었던 음식이었다. 이런 피시 앤 칩스가 영국에서 널리 퍼진 것은 1860년 무렵이다. 처음에는 방직공장이 몰려 있던 이스트 런던에 처음 식당을 열었다가 노동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지면서 생선과 감자튀김 파는 곳이 이스트 런던에서 런던 시 전체로, 또 영국 전역으로 우후죽순처럼 번져 나갔다.

매일매일 파김치가 되도록 일에 시달리던 공장 근로자에게 피시 앤 칩스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때마침 산업화에 따른 어업 기술의 발전과 철도의 발달로 북해에서 잡히던 생선과 농촌의 감자가 도시에 싸게 공급됐다. 덕분에 맛있는 생선을 쉽게 사먹을 수 있을 만큼 값도 싸진 데다 고된 노동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열량도 높았다.

하물며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는데 생선과 감자를 뜨겁게 튀겼으니 음식 만들 여유조차 없었던 노동자들에게 피시 앤 칩스는 정크 푸드가 아니라 환상의 요리였다. 이렇게 19세기 말 영국 노동자들의 힘든 생활에 그나마 위로가 되어준 것이 바로 피시 앤 칩스였는데, 그래서 소설 <1984>의 작가인 조지 오웰은 “영국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피시 앤 칩스 덕분”이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피시 앤 칩스는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음식이었다.

영국인들이 온몸으로 체험한, 끔찍했던 1·2차 세계대전을 견디게 해 준 것도 피시 앤 칩스였다. 나라를 구한 영웅은 많다. 하지만 나라를 구한 음식은 흔치 않은데 영국인들은 피시 앤 칩스를 양대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구한 음식으로 꼽는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이 지어내기는 했지만 그 주인공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이끈 영국 수상 처칠의 말이었으니 영국인 모두가 공감했다. 처칠은 피시 앤드 칩스야말로 영국 국민들이 전쟁을 함께 견디도록 만든 ‘훌륭한 동반자(Good Companions)’라고 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우라는 소리다.

영국인들은 피시 앤 칩스를 먹으며 전쟁의 고통을 이겨냈다. 영국은 섬나라이니 먹고사는 데 필요한 물자를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그리고 독일 유보트가 영국으로 향하는 수송선단을 무차별 공격하면서 식료품 공급량이 전쟁 전의 30% 수준으로 줄었다. 이에 따라 대부분 식료품이 배급제로 바뀌었다. 이때 생선과 감자는 배급품목 지정에서 제외된 몇 가지 안 되는 식품이었다. 상대적으로 공급물량이 많기도 했고 생선의 경우는 배급제로 관리할 수 있을 만큼 저장이 쉽지 않은 부분도 있는 데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사기를 고려해서였다.

전쟁터로 떠난 병사들은 고향에 남은 가족들이 잘 먹고 지낸다는 소식에 위안을 얻고 국내에 남은 사람들 역시 어린이와 노약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탄약 생산을 비롯한 군수공장에서 일했기에 충분한 칼로리의 음식이 필요했다.
그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으로 이때부터 내각수반인 수상부터 공장 노동자까지 국민 모두가 즐겨 먹는 음식이 됐다. 때문에 영국 사람들한테 피시 앤 칩스는 단순한 생선튀김, 그저 평범한 감자튀김이 아니라 시련을 이겨낸 지난 세월에 대한 훈장과 같은 음식이다. 힘들게 일하며 견뎌야만 했던 시절과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에서 버틸 수 있게 해준 음식이었기에 영국인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3호 (2017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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