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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시대 변화에 적응해 진화한 일본 덮밥
기사입력 2017.06.05 09: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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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게 현대인이다. 실제로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이 바쁠 때도 없지 않다. 진짜 업무에 쫓길 때는 김밥이나 컵라면,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로 대충 끼니를 때워야 할 때도 있는데 그래도 가능하다면 건강을 생각하고, 마음의 여유를 찾아 한숨을 돌린다는 의미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먹는 시간조차 아까울 정도로 일이 많고 게다가 시간에까지 쫓긴다면, 이럴 때는 덮밥을 먹는 것도 방법이다. 그중에서도 일본식 덮밥인 ‘돈부리(どんぶり)’를 먹는 것이 어떨까 싶다.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맛이야 입맛이 다르니까 각자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먼저 장어 덮밥이나 소고기 덮밥, 튀김이나 돈가스 덮밥처럼 종류가 다양해 선택의 폭이 넓은 데다 간단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말해 놓고도 크게 설득력 있게 들리진 않는다. 그럼에도 바쁠 때일수록 일식 덮밥을 먹어 보자고 한 이유는 일에 치여 허덕이는 와중에 한 끼 식사를 통해, 일본 덮밥의 역사와 문화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 보면서 힘을 얻어 재충전을 해보자는 뜻이다. 일본 덮밥에 도대체 어떤 역사가 담겨 있기에 이렇게 거창하게 이야기를 꺼내나 싶겠지만 그 유래를 알고 보면 나름 짚어볼 만한 의미가 있다.

일본 덮밥 돈부리는 일본이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생겨난 음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먹는 일본 덮밥의 대부분이 19세기 이후에 생겨난 음식들인데 역사가 짧기 때문인지 각각의 음식마다 만들어진 유래가 비교적 자세하게 전해진다.

먼저 한국인도 좋아하는 장어 덮밥 ‘우나동(うなどん)’은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먹기 시작한 음식이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장어구이야 진작부터 있었고 그 역사가 거의 400년을 거슬러 올라가지만 특별히 밥 위에다 양념에 구운 장어를 얹어 먹는 장어 덮밥을 먹기 시작한 것은 약 2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여러 유래가 있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건 일본 전통 연극인 가부키계의 유명인사가 배를 기다리다 먹으며 생겨났다는 설이다. 식당에 장어구이를 시켰는데 배가 떠날 무렵 뒤늦게 장어구이가 나오자 급한 나머지 밥그릇을 들고 그 위에 장어구이 접시를 덮은 후 서둘러 배를 탔다. 그런데 장어 양념이 쌀밥에 배어들면서 평소 먹던 장어구이보다 훨씬 맛이 좋았기에 계속 장어구이를 올려 먹었고 사람들이 유명인이 먹는 것을 보고 따라 먹다가 장어 덮밥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일본 튀김 덴뿌라를 밥 위에 얹어 먹는 튀김 덮밥 ‘덴동(てんどん)’은 약 150년 전쯤인 19세기 중반, 도쿄의 서민 음식으로 발달했다고 한다. 이 무렵 도쿄 앞바다에서 잡힌 생선에 튀김옷을 입혀서 만든 생선튀김, 덴뿌라가 포장마차 음식으로 일본 서민들 사이에서 유행을 했는데 튀김 덮밥은 남은 튀김을 밥 위에 얹어 간단한 식사로 팔았던 것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지금은 일식 튀김 덮밥이 상당히 고급스럽게 여겨지지만 출발은 철저한 서민 음식이었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덮밥 중에 바지락 된장 덮밥인 ‘후카가와동’은 일본 된장국 미소시루에 끓인 바지락조개를 쌀밥에 얹어 먹는 덮밥으로 지금은 도쿄의 향토요리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19세기 일본 빈민가에서 먹었던 음식이었다. 도쿄 앞바다가 매립되기 전 조개를 잡던 어부들이 일하다 허기를 메우려고 된장국을 끓이고 갓 잡은 조개를 삶아서 도시락으로 가져간 찬밥에 부어 먹었던 것에서 비롯된 음식이다.

이 밖에도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닭고기 계란 덮밥 ‘오야코동’은 닭고기 전골집에서 먹고 남은 전골 육수에 달걀을 풀고 밥을 말아 먹었던 것에서 발달했고, 소고기 덮밥인 ‘규동(ぎゅうどん)’은 소고기 전골을 서민음식으로 개발한 음식으로 1890년대 소고기를 밥과 함께 빨리 먹으려는 도쿄 어시장 상인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대중화된 음식이라고 하며 밥 위에 돈가스를 얹어 먹는 돈가스 덮밥 ‘가츠동(カツどん)’의 유래는 여러 설이 있지만 1920년대에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들 사이에서 퍼지면서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지금까지 이야기한 일본 전통 덮밥 유래에서는 몇 가지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하나는 전통 덮밥은 대부분 급하게 그리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에서 비롯됐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대부분 밥에다 고기반찬을 얹어서 먹는 육류 중심의 덮밥이 많다는 점이다. 비록 고기는 아니더라도 생선이나 채소를 기름에 튀겼거나 아니면 장어처럼 기름진 생선을 얹은 고열량 음식이라는 것인데, 일본 덮밥은 왜 이런 고칼로리 패스트푸드 음식으로 발달했던 것일까? 이런 일본 덮밥의 특징은 돈부리가 등장한 19세기 일본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 문명을 받아들였던 일본은 19세기에 벌써 서양처럼 공업화를 추진하면서 산업이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이 무렵 일본에서는 공장이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갔고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가게마다 문전성시를 이루며 상업이 발달했다. 당시 일본에서 물건을 만드는 장인이나 상인 혹은 공방의 노동자들이나 상점 종업원들은 느긋하게 앉아 식사할 시간이 없었다. 싸고 영양가 있는 음식으로 재빨리 끼니를 해결한 후 서둘러 일터로 돌아가 다시 일을 해야 했는데, 이럴 때 따뜻한 밥 위에 고기나 튀긴 채소, 혹은 기름진 생선을 얹어 후다닥 먹는 고열량의 일본 덮밥, 돈부리는 바쁘게 열심히 일하는 근로계층에게 안성맞춤인 패스트푸드였다.

패스트푸드의 특징은 가격도 싸고 먹기도 편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열량이 높아야 한다. 힘든 육체노동을 하려면 충분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고칼로리 음식을 먹어야 하기 때문인데, 19세기 미국에서 산업이 급성장할 때 노동자들이 먹으며 일했던 햄버거와 핫도그가 여기에 해당한다. 돈부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돈부리만큼 시대 변화에 적응하며 발달한 음식도 흔치 않은 편이다. 일본 덮밥의 기원은 우리로 치면 조선 영조 때인 18세기 중반, 지금의 도쿄인 에도의 시장에서 돈부리바치라는 커다란 주발에다 밥을 담아 반찬 몇 가지를 얹어 파는 간이 밥집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조선시대 주막에서 국에다 밥을 말아 짠지 몇 조각 얹어 먹었던 국밥과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당시 일본 상류층에서는 지금의 우리나라처럼 밥과 반찬을 따로 놓고 먹는 것이 기본적인 식사법으로 밥 위에 반찬을 올려 먹는 덮밥은 철저하게 가난한 서민과 장돌뱅이 장사치의 식사였다. 이랬던 음식이 19세기 일본이 근대화되고 산업화되는 과정에서 변하기 시작했다.
밥 먹을 시간조차 줄여가며 온 힘을 기울여 바쁘게 일했던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에너지원이 될 수 있도록 단무지 다꾸앙이나 매실 절임 우메보시 대신 밥 위에 고기나 튀김을 얹어 먹는 고열량의 간편 음식으로 변했고, 20세기를 거쳐 오늘날에는 일본은 물론 우리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직장인들이 또 젊은이들이 즐겨 먹는 간단하지만 맛있는 별미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런데 19세기 산업화 과정에서 발달한 고열량의 간편 음식인 미국의 햄버거는 비만의 주범이자 정크 푸드로 눈총을 받는 반면, 돈부리는 오히려 널리 퍼져 나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미국 음식문화의 소프트파워는 쇠퇴하는 반면 일본 음식문화는 글로벌화하는 추세 때문일까? 아니면 음식 재료의 차이나 대량 생산으로 만드는 햄버거와 달리 일본 덮밥은 다양한 재료로 그때그때 만들어 먹기 때문일까? 여러 요인을 꼽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일본 덮밥의 경우 바쁘게 사는 현대인의 속성과 맞아 떨어지는 간편 음식이면서 동시에 햄버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강한 음식이며, 또 식습관의 변화에 맞춰 고급화하고 다양화되는 확장성에서 이유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음식조차도 시대가 요구하는 조건에 적응해야 살아남고, 발전하며 진화할 수 있는데 굳이 음식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1호 (2017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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