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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효서의 유념유상 4월은 왜 잔인한가
기사입력 2017.04.07 17: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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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한다. 왜 그럴까. 4월은 봄의 한중간이고, 피어나는 꽃들만 봐도 설레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계절인데.

꽃들의 면면을 볼까. 아네모네, 튤립, 제라늄이 4월에 핀다. 무엇보다 벚꽃이 천지 사방에 피어난다. 벚꽃보다 붉고 선연한 복사꽃이 덩달아 피어난다. 천리향과 명자꽃도 수줍게 꽃잎을 벙근다. 배꽃과 자두꽃과 사과꽃은 저마다 순백을 다투며 피어난다. 홍도화와 박태기나무도 누가 더 붉나 내기를 하다 스스로 어지러워지고, 그들 곁의 모과나무는 점잖은 분홍을 뽐내며 저 혼자 고상하다. 진달래와 개나리를 빼놓을 수 있을까. 4월의 꽃을 다 헤아리려면 윤동주의 별 헤는 밤만큼이나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4월을 잔인한 달이란다. 그것도 모자라 부사어를 덧대어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한다. 전국이 꽃 대궐을 이루는 4월이 과연 그런가? 그동안의 4월이 어땠는지 더듬어 볼 수밖에 없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의 현대사를 볼까.

사료에 기대지 않아도 처음 떠오르는 4월의 굵직한 사건은 제주 4.3사건이다. ‘굵직한’이라고 말하기도 조심스런 끔찍한 사건이었다. 희생자의 수를 밝히자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고가 아닌, 사람이 사람을 죽인 사건이라 더 참혹하다. 4·19혁명도 4월이다. 부정한 정권이 붕괴되고 대통령이 사퇴하는 민주혁명을 이루었지만 주권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희생 또한 컸다.

잔인한 4월을 얘기하자니 벌써 힘들어진다. 얼른 얼른 지나가자. 1970년 4월에는 와우아파트가 무너졌다. 전시행정과 졸속행정의 결과였다. 1975년 4월에는 이른바 인혁당 관련자 여덟 명이 대법원으로부터 사형 판결을 받았다. 판결받은 날짜가 4월 8일이었고 사형 집행 날짜가 4월 9일이었다.

1982년 4월에는 순경 한 사람이 하룻밤 사이 62명의 주민을 살해했다. 더 나열하기도 괴롭지만 1995년 대구 지하철 가스 폭발 사건도 4월에 일어난 일이었다. 101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아직도 리본의 선명한 노란색이 조금도 바래지 않은 2014년의 세월호사건. 4월 16일.

얼른 얼른 적었는데도 가슴이 먹먹하다. 얼른 얼른 적었지만 희생자에 대한 기도만큼은 길게 길게 이어지길. 이렇게 적고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우리에게는 잔인하고도 잔혹한 일들이 유독 4월에 많이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찌 그러겠는가. 5월의 사건과 6월의 역사를 되짚어 보아도 결과는 비슷하다. 게다가 4월을 가장 잔인하다고 칭하기 시작한 것은 우리나라에서가 아니다. 알다시피 그 말의 기원은 T. S. 엘리어트(Thomas Stearns Eliot)의 시집 <황무지(The Waste Land)>다. 엘리어트는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사망한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이다. 그러하니 ‘4월의 잔인함’을 우리나라와 연관시키거나 굳이 특정한 역사적 사건들과 빗댈 필요는 없어 보인다.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 문제의 시행은 <황무지>라는 시집의 1부에 해당하는 <죽은 자의 매장> 첫 구절이다. 모두 5부로 이루어진 시집의 1부 첫 구절이니 이 시집을 펼치자마자 맞닥뜨리는 시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첫 구절을 인용해 영국의 록 밴드 딥 퍼플(Deep Purple)은 ‘April’이라는 노래를 만들고 그 첫 가사를 ‘April is a Cruel Time’이라고 적는다. 4월은 잔인한 계절.

그러나 엘리어트의 시나 딥 퍼플의 노래를 가만히 따라가 보아도 사회·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잔인함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엘리어트는 땅속과 라일락과 욕망, 봄비, 뿌리 등의 시어를 나열한다. 겨울, 망각, 생명, 여름, 소나기, 햇볕으로 이어질 뿐 전쟁, 죽음, 살육, 상처, 고통의 단어는 보이지 않는다. 딥 퍼플의 노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외로움, 어두움, 햇빛, 하늘, 고독, 그림자, 미소 등의 내면의 언어를 다룬다. 그러니까 4월의 잔인함은 서사가 아닌 서정의 일이요, 외부가 아닌 내부의 사태가 된다. 그런데 꽃피는 4월의 서정과 내부가 왜 잔인하다는 걸까.

4월은 땅속에서 새싹이 솟고 나뭇가지에서는 새순이 틔며 죽은 나무둥치에서마저 새 움이 돋는 계절이다. 사람으로 치면 유년에 해당하는 가장 순수하고 부드러우며 아름답고 화창한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말했듯, 피어나는 꽃들만 봐도 설레기만 하는 계절. 그러나 엘리어트는 시인이었기에 그런 4월에서 잔인함의 반전을 본것이다. 죽고 죽이는 잔인함이 아니라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생명의 숭고한 잔인함. 그 고단한 몸부림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가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아름다운 시절인 봄이라는 역설.

우리도 봄의 나른함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봄을 탄다는 말이 그 말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일찌감치 봄 몸살에 대비하는 섭생법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봄의 몸살을 두고 ‘잔인하다’고 표현한 것은 엘리어트뿐이었다. 그가 잔인하다고 말함으로써 저 새싹과 새순과 새 움을 틔워 내는 초목의 고단함이 극적으로 숙연해지고 숭고해지는 것이다. 시인의 역할이란 그런 것이다. 어찌 초목만 그러할까. 3월에 입학한 초등학교 새내기들도 지금쯤이면 슬슬 몸살을 앓을 것이다. 대학생 새내기도 마찬가지고 신입사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뿌리를 내리고 터를 잡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시기. 그것이 잔인한 인생의 4월이겠지만 또한 피할 수 없는 엄숙한 소명의 시기이기도 하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고 한 니체의 말도 허무보다는 극복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어찌 또 인생만 그러할까. 우리 사회가 겪어온 지난겨울도 예사로운 겨울이 아니었으며 이제 막 다가온 4월 또한 엄청난 몸살이 예고되어 있다. 그러나 4월이 잔인한 이유를 깊이 이해한다면 우리는 담대한 마음으로 5월을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소설가 구효서]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9호 (2017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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