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신청

[년 월 제 호]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英 귀족과 뉴욕 상류층의 식사 브런치 풍요와 여권 신장의 상징
기사입력 2017.04.07 17:06:53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한때 인기를 끌었던 미국의 인기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를 보면 브런치 먹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여주인공이 늦은 아침 뉴욕 맨해튼 레스토랑에 모여 근사한 브런치를 시켜 놓고 수다를 떠는 모습이다. 드라마의 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브런치 메뉴가 얼마나 그럴듯해 보였는지 드라마 방영 이후 우리나라에도 젊은 여성과 주부를 중심으로 브런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도 곳곳에서 브런치 메뉴를 내건은 카페나 레스토랑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니 브런치가 이제는 하나의 식사문화 코드로 자리 잡은 느낌이 없지 않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브런치라는 것이 조금 이상하다. 브런치(Brunch)는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아침식사인 브랙퍼스트(Break fast)와 점심식사인 런치(Lunch)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합성어다.

아침식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늦고 점식식사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이르기 때문에 ‘아점’이라는 뜻으로 브런치라는 신조어가 생겨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브런치의 의미는 하릴없는 사람이나 모처럼 쉬는 휴일 혹은 주말에 다소 나른하게 늘어지면서 게으름을 피우다 먹는 늦은 아침식사 내지는 이른 점심 정도가 되겠는데, 브런치라고 나오는 메뉴를 보면 된장녀·된장남이 제짝 만난 듯 반가워할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늦은 아침에 자리에서 눈 비비고 일어나 대충 먹는 평범한 빵 한 조각, 커피 한 잔도 브런치 메뉴가 되면 그럴듯한 요리의 반열에 등극하면서 가격은 껑충 뛰어버리니 브런치가 된장녀, 된장남의 아점이라는 비난의 소리까지 듣게 된 것이다. 왜 평범한 늦은 아침식사가 브런치가 되면 고급 식사로 바뀌는 것이며, 왜 브런치 메뉴는 하나같이 귀족적인 것일까.

예를 들어 브런치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메뉴 중 하나가 클럽 샌드위치다. 우리나라처럼 춤추는 클럽이 아니라 미국 뉴욕 주의 유명 사교 클럽에서 만든 샌드위치라고 해서 클럽 샌드위치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그렇다고 특별할 것도 없다. 보통의 샌드위치와 비슷하게 빵 사이에 베이컨이나 닭 가슴살, 그리고 양상추와 토마토를 넣어 서비스한다.

물론 감자튀김도 곁들여 나와야 제격이다. 클럽 샌드위치는 이상하게 고급이어서 휴양지 리조트나 고급 호텔 레스토랑에서, 그리고 브런치 레스토랑에서 빠지지 않는 메뉴인데 얽혀 있는 에피소드 역시 유명한 것이 많다.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 없이는 무거운 왕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없다”며 미련 없이 국왕의 자리에서 물러난 영국 왕 에드워드 8세의 여인, 심프슨 여사가 즐겼던 것이 브런치 식사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명사의 요리였던 만큼 늦은 아침 카페에서 클럽 샌드위치를 먹으면 사랑을 위해 왕관까지도 버린 세기의 로맨스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모양이다.

브런치의 꽃이라고 부르는 요리가 에그 베네딕트(Egg Benedict)다. 미국인들이 브런치라고 하면 우선 떠올릴 만큼 많이 먹는 브런치 메뉴인데 역시 특별할 것도 없다. 우리가 흔히 먹는 달콤하고 폭신한 머핀 빵과는 달리 달지 않고 납작한 잉글리시 머핀에 베이컨이나 훈제 연어, 그리고 달걀흰자만 살짝 익힌 수란을 올리고 여기에 구운 토마토나 양파를 곁들여 먹는 요리다.

전형적인 미국식 브런치인데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19세기 말, 뉴욕 맨해튼의 최고급 레스토랑 ‘델 모니코(Delmonico’s)’에서 만들어 퍼트린 요리라고 한다. 뉴욕과 미국 상류사회의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브런치 메뉴 중 가장 간단한 것 중 하나는 크로크 무슈(croque monsieur) 같은 음식이다. 바삭하게 구운 식빵에 햄과 치즈를 올려 먹는 프랑스식 브런치로, 그 위에 다시 반숙한 달걀을 올리면 바삭한 부인이라는 뜻의 크로크 마담이된다. 작은 빵 한 조각만으로도 파리의 노천카페에 와 있는 것 같은 낭만과 여유를 맛볼 수 있다.

대표적인 브런치 메뉴 몇 가지를 예로 들었는데 따지고 보면 대부분 평범한 샌드위치에 그럴듯한 요리 이름을 붙여서 레스토랑 분위기를 곁들여 가격을 높였으니 고급스러운 브런치 식사를 된장녀, 된장남의 식사라고 비난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브런치가 허영이고 사치일 수도 있는 것이 널리 알려진 브런치 메뉴는 대부분 서양의 유명 레스토랑이나 고급 호텔에서 만들어 퍼트린 것이어서 계란 프라이 하나, 샌드위치 한 조각 치고는 값도 비싸고 지나치게 귀족적이다. 하지만 브런치는 우아하고 품위 있고 고급스러워야 제맛이다. 가정에서 직접 만들어 먹건 아니면 집밖에서 외식을 하건 일단은 격조가 높아야 진짜 브런치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상당수 브런치 메뉴들이 지나치게 고상하고 귀족적이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브런치가 고급스러운 이유는 그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브런치는 앞서 말한 것처럼 아침인 브렉퍼스트와 점심인 런치의 합성어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현대에 만들어진 용어 같지만 사실 뿌리가 있는 단어이고 더군다나 단순하게 늦은 아침, 이른 점심식사라는 의미로 만들어진 용어가 아니다.

사실 평소보다 늦은 아침식사, 이른 점심식사는 시대를 막론하고 어느 나라에서나 있었다. 하지만 동서양을 통틀어서 역사적으로 이런 식사를 가리키는 별도의 용어도 따로 없었다. 그러니 새삼 브런치라는 용어를 만들어 쓴 데는 특별히 따로 구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브런치는 1895년, 미국이 아닌 영국에서 처음 만든 신조어다. 영국 귀족이 보던 사냥 전문잡지인 <위클리 헌트(Weekly Hunt)>에 처음 쓰였다고 한다. ‘카더라’식으로 말하는 이유는 이 잡지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1896년의 다른 잡지 칼럼에 그 내용이 실려 있다.

브런치는 이렇게 19세기, 영국 귀족이 이른 아침 스포츠로 사냥을 끝낸 후 푸짐하게 차린 음식으로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즐겼던 것에서 비롯됐다. 단순히 늦은 아침식사가 아니라 영국이 풍요로웠던 시대에 귀족이 누렸던 풍요와 여유의 상징이었다. 영국 귀족 사이에서 처음 시작됐지만 정작 브런치를 유행시키고 세계에 퍼트린 나라는 미국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브런치는 처음 상류층에서 시작됐다. 뉴욕 맨해튼의 상류층 여성들이 주말 아침 브런치를 즐겼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지금은 상상조차하기 힘든 뜻밖의 이유가 있다.

20세기인 1920년대까지만 해도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은 신사의 에스코트가 없으면 숙녀는 혼자서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반드시 신사의 보호를 받아야 레스토랑을 출입할 수 있었지만 주말 브런치만큼은 예외였다.

남성 동반자 없이도 여성이 자유롭게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기에 뉴욕 상류층 여성들은 주말 브런치 식사를 하면서 사교 모임을 가졌고, 뉴욕의 최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이런 상류층 여성을 끌어들이기 위해 앞을 다투어 브런치 메뉴를 개발했다. 브런치 메뉴가 고급스럽고 럭셔리해진 배경이다.

영국 귀족과 미국 상류층 사이에 퍼졌던 브런치가 20세기 중반부터는 중산층으로 유행이 확산됐다. 브런치의 유행에 대해 여러 이유를 꼽을 수 있지만 가장 큰 요인으로는 무엇보다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지적한다.

먼저 경제가 발전하면서 중산층이 물질적,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여유가 생김에 따라 단순히 늦은 식사인 ‘아점’이 아니라 고급스런 브런치 문화를 즐기게 됐다는 것이다.

또 일하는 여성이 증가하고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모처럼 쉬는 주말의 아침식사 문화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브런치 문화의 확산은 경제적 풍요와 여성의 권리 확대와 맞물려 발달했다는 것인데 따지고 보면 요즘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브런치 문화 역시 단순히 미국 드라마의 영향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일각에서 지적하는 된장녀·된장남의 유행 따라잡기가 아니라 역시 우리 사회구조의 변화와 맞물려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면 지금 유행하는 브런치 문화는 예전 영국 귀족처럼 여유를 찾아보려는 현대인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주말 단 하루만이라도 마음의 여유를 찾아 느린 삶을 추구하는 슬로 라이프(Slow Life)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9호 (2017년 04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독일에는 소시지 종류만 100..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시대 변화에 적응해 진화한 ..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연어의 경제사 노르웨이 발명..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바게트 빵에 담긴 뜻밖의 역..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토르티야의 영광, 굴욕 그리..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지옥에서 천당으로…아귀의 ..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아시아를 배고픔에서 구한 고..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감자·고구마 전래 이전, 토..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1000년 전 여름 시장에는 얼..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부르는 게 값이라서 전어(錢..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12세기 동양의 여름은 얼음과..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수박 한 통 값이 쌀 다섯 ..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뿌리는 생선 액젓, 어원은 중..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시리얼의 갈등… 건강이냐, ..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미국인은 왜 아메리카노를 마..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프라이드 치킨이 흑인 소울푸..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새해에 조기, 유자 먹으면 부..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바닷가재의 천로 역정 노동자..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맛있는 스팸, 왜 쓰레기 메일..


경제용어사전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