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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현 칼럼] 폴리페서의 명암
기사입력 2017.04.07 17: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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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다 귀국한 A교수는 최근 정부부처 위원회에 위원으로 위촉됐지만 내심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전문가이긴 하지만 업계 사람들에 비해 현실 감각이 크게 떨어지는 자신에게 과연 위원 자격이 있을지에 관해서다.

의문은 곧바로 풀렸다. 업계 사람들은 서로 이권이 상충되기 때문에 아예 위원 후보에서 배재시키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교수들은 비교적 중립적인 인사로 분류된다. 교수들을 중심으로 위원회를 구성하는 건 교수들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서가 아니라 위원회를 문제없이 운영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던 것이다.

그 교수는 “부족 간의 상호 견제 때문에 한국인 교수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난 아랍에미리트의 경우가 생각났다”며 씁쓸해했다.

정부 부처의 각종 위원회를 비롯해 대학교수들의 대외활동 분야가 다양해지고 있다. 기업체의 사외이사, 공직이나 선출직까지 광범위하다. 이 가운데 대선 시즌을 맞아 폴리페서가 다시 논란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폴리페서란 정치를 뜻하는 폴리틱스(politics)와 프로페서(professor)의 합성어다.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실현하려 하거나 그런 활동을 통해서 정계 또는 관계 고위직을 얻으려는 교수들을 뜻한다. 문제는 이들이 장기간 강의실을 비우는 바람에 학생들의 피해가 크다는 점이다. 시간강사들이 강의를 메우면서 수업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긍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우리나라 정당들이 정책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대선주자의 정책과 공약을 수립하는 과정에 기여할 수 있다. 실제 정치 현장에서 쌓은 다양한 경험을 추후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타난 양상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대선 캠프의 문을 두드리는 교수들의 속마음은 정부 혹은 산하기관에서 고위직 자리를 차지하거나 국회에 입성하는 것이다. 최근의 국정 농단 사건은 폴리페서들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줬다.

정권 차원에서 보자면 가신 그룹, 관료 그룹과 함께 참신성과 전문성을 지닌 전문가 집단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이 실제 정책 입안 내지 실행 기관을 맡았을 때 성과를 내고 조직을 발전시킨 케이스는 그리 많지 않다. 조직의 관행도 모르고 조직원을 이끌어본 경험도 부족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과거 서울대에서는 교수들이 정부나 정치권에 진출한 다음에는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후배 교수들에게 자리를 비켜주고, 새로운 교수를 뽑을 수 있다는 점에서 교수들의 공직 진출은 내부적으로 환영받았다. 이 불문율은 5공 때 깨졌다.

아무튼 학문의 전당인 대학을 정치권 줄 대기의 장으로 추락시키는 폴리페서를 추방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교수가 공직에 진출해 2년이 넘으면 사표를 내야 하고, 강단으로 복귀할 때는 재심사를 받는다고 한다. 일본도 정무직이나 선출직에 나갈 때는 교수직을 그만두는 게 관례라고 한다.

극히 일부이겠지만 골프 아니면 대외활동, 둘 중 하나에 빠져 있는 교수들이 연구나 수업에서 제 역할을 할 리 없다.
대외활동을 못하면 뭔가 역할을 못하는 것처럼 인식될까 두려워 외부 자리를 기웃거린다는 얘기마저 있다.

교수 사회의 이러한 모습들은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기대에서 크게 동떨어진 것이다. 이번 폴리페서 논란을 계기로 깊은 성찰이 있기를 바란다.

[윤구현 LUXMEN 편집인·편집장(이학박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9호 (2017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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