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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바게트 빵에 담긴 뜻밖의 역사 빵의 평등권을 실현한 프랑스 혁명
기사입력 2017.03.03 15:5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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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의 평등권(The Bread of Equality)’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같은 품질의 빵을 사먹을 수 있는 권리다. 내 돈 내고 먹고 싶은 빵 사 먹겠다는데 누가 시비냐 싶겠지만 사실 먹고 싶은 빵을 아무나 먹을 수 있게 된 역사는 그다지 오래 되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 무렵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1789년에 시작된 프랑스 혁명의 이념은 자유, 평등, 박애로 무척이나 추상적이고 정치적이지만 실생활과 관련해 보면 프랑스 혁명에는 미처 몰랐던 역사가 있다. 바로 빵 이야기다.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프랑스 혁명에서 성난 시민들이 외쳤던 구호다. 그러자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헛소리를 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하세요.” 실제로 이 말은 앙투아네트가 한 말은 아니라고 한다. 또 한 가지 잘못 알려진 사실이 있다. 케이크가 아니라 버터가 듬뿍 든 프랑스 고급 빵, 브리오슈(Brioche)를 먹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엎어치나 메치나 똑같은 소리 아니냐 싶기는 하지만 뉘앙스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케이크는 디저트, 브리오슈는 식사 개념이다. 우리 음식에 비유해 말하면 밥이 떨어졌으니 약과를 먹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보리밥이 없으면 쌀밥을 먹으라는 소리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신분에 따라 먹는 빵의 종류가 달랐는데, 귀족들은 브리오슈 같은 버터가 듬뿍 들어간 하얀 고급 빵을 먹었던 반면 농민과 시민들은 시커먼 잡곡 빵을 먹었다. 그러니 배고픈 시민들한테 너희들이 먹는 빵이 떨어졌으면 우리 귀족들이 먹는 그런 빵을 먹으라고 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아예 별나라 이야기인 케이크를 먹으라고 한 것보다 더 열받을 소리였다. 빵과 프랑스 혁명과 관련해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에피소드가 소설 <레미제라블>이다. 장발장은 겨우 빵 하나 훔친 죄로 무려 19년 동안이나 옥살이를 했다. 아무리 200년 전 이야기이고 현실이 아닌 소설 속 창작이라고 해도 어떻게 빵 하나 훔쳤다고 그렇게 긴 세월을 처벌할 수 있을까? 이는 빵의 평등권과 관련 있다. 단순히 빵을 훔친 것이 아니라 계급 구조를 넘봤기 때문이다. 혁명을 전후한 프랑스에서 빵에 대한 시민의 불만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빵과 관련된 범죄 역시 처벌이 가혹하기 짝이 없었다. 프랑스 혁명이 빵과 밀접하게 관련된 이유다.

프랑스 혁명에서 음식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프랑스 식단의 두 핵심 요소인 빵과 소금이 갈등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1788년과 1789년, 프랑스는 기상 악화에 따른 흉년으로 곡식 수확이 2년 연속으로 줄어들면서 심각한 식량 부족을 겪었다. 주식인 빵 값이 서민들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폭등했다. 하루에 먹을 빵 값이 일당의 88%까지 치솟았다. 가난한 사람들은 껍질도 제대로 벗기지 않은 곡식으로 만든 시커멓고 질 낮은 빵을 간신히 구해 하루 끼니를 때우거나 그것도 구하지 못해 굶주려야 했던 반면 부자들은 여전히 하얀 밀가루에 버터를 넉넉히 넣은 빵을 먹었다. 빵 부족도 빵 부족이지만 근본적으로 빵에 대한 불만도 누적돼 있었다. 빵은 단순히 먹는 음식이 아니라 신분의 상징이었다. 빵의 색깔과 종류를 놓고 신분에 따라 먹을 수 있는 자격이 구분됐다. 예를 들어 농부는 딱딱한 검은 빵만 먹을 수 있었다. 검은 빵은 톱밥이나 도토리, 나무껍질 등을 몰래 집어넣어 만들어도 잘 표시가 나지 않았고 얼마나 딱딱했는지 빵을 자를 때 도끼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농부는 열등한 인간이었기에 딱딱한 빵을 먹어야 더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 귀족의 생각이었다. 반면 브리오슈처럼 희고 부드러운 빵은 귀족의 몫이었다. 신이 부드럽고 흰 빵을 만든 것은 귀족들의 고상하고 연약한 소화 기능을 위해서라는 것이 귀족의 논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농부나 평민이 부드러운 흰 빵을 먹으면 신의 뜻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윤리와 기강을 해치는 범죄였기 때문에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장발장의 범죄가 여기에 해당한다.

프랑스 평민을 화나게 만들었던 것은 치솟은 빵 값과 불평등한 빵 색깔 때문만이 아니었다. 갸벨르(Gabelle)라고 하는 악명 높은 소금세가 사람들을 절망에 빠트렸다. 소금이 들어가는 모든 식품에 부과하는 간접세로 프랑스 역사상 가장 부당하고 불공정한 세금으로 악명을 떨쳤다. 반면 종교 지도자와 귀족, 그리고 고급 관리는 훨씬 낮은 세금을 내거나 아예 면제됐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18세기 말에는 갸벨르를 내지 않아 벌을 받거나 처형받는 사람이 3000명에 이를 정도였고, 혁명이 일어난 이듬해인 1790년에 제일 먼저 폐기된 세금이 바로 소금세였을 정도로 원성이 자자했다. 물론 프랑스 혁명이 빵 가격 폭등과 소금세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훨씬 더 복잡한 사정 때문에 혁명이 일어났지만 시민들에게 직접적이고 절대적 영향을 끼쳤던 두 가지 요소가 프랑스 왕정에 대한 분노를 촉발시켰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프랑스 혁명이 성공하면서 혁명 정부가 서둘러 마련한 것이 빵의 평등권이었다.

프랑스 혁명이 시작된 지 4년 후인 1793년 11월 15일, 프랑스 왕정인 구 정권, 앙시엥 레짐이 드디어 해체됐다. 그러자 국민 공회에서는 드디어 빵의 평등권을 만들었다. 빵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오직 한 종류의 빵만을 만들어 팔아야 한다는 선언으로 더 이상 부자를 위해 고운 밀가루로 흰 빵을 만들어서도 안 되고 가난한 사람들이 먹을 수밖에 없는 거친 호밀로 검은 빵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는 조항이다. 제빵업자는 시민 모두를 위해 질 좋은 빵을 생산해야 하며 밀가루 4분의 3과 호밀 4분의 1을 혼합한 빵을 만들어야만 하고 8파운드, 4파운드, 1파운드로 무게를 제한했다. 또한 빵의 자유로운 판매 역시 제한해 배급제를 시행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빵의 평등권 제9조에는 제빵업자가 평등의 빵으로 알려진 빵 이외의 빵을 만들 경우 감옥에 갈 수 있다는 경고 조항까지도 있었다. 그렇다면 빵의 평등권은 과연 시행이 됐을까? 빵의 평등권은 11월 15일 국민공회를 통과해 최종 비준만 남겨 놓았지만 공식적으로 선포되지는 않았다.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프랑스 혁명이 성공한 만큼 굳이 법률로까지 빵의 평등을 시행할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한 논란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쨌든 보통 사람들이 귀족과 차별받지 않고 질 좋은 빵을 먹을 권리가 선언적 의미에서나마 확보된 것이 지금으로부터 불과 200여 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빵의 역사, 특히 프랑스빵의 역사를 보면 그 속에서 인권과 평등을 비롯해서 수많은 정치적, 경제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프랑스 전통의 바게트 빵이다. 바게트(Baguette)는 어원이 기다란 생김새 그대로 라틴어 지팡이(Baculum)에서 비롯됐다.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빵의 발달사와 관련이 있다. 빵을 부풀게 하는 효모균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현미경의 발명과 함께 밝혀졌다. 그리고 1857년 프랑스 학자 파스퇴르가 효모의 작용을 설명하면서 빵이 부푸는 원리를 알게 됐고, 이후 효모를 배양하는 이스트가 공업적으로 만들어지면서 빵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이전까지 프랑스에서는 천연 효모를 이용해 빵을 만들었는데 이렇게 천연 효모로 빵을 구우려면 하루 24시간 동안 여러 차례 빵 반죽을 새롭게 만드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18세기 제빵사들은 빵 굽는 오븐 옆에서 쪽잠을 자면서 3시간마다 일어나 천연 효모를 새롭게 갈아주어야 하는 고된 작업에 시달렸다.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제빵 기술자를 보호하기 위해 저녁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는 빵을 만들 수 없다며 빵 만드는 시간까지 법으로 정해놓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아침 식사로 먹는 전통적인 둥근 빵을 만들 시간이 모자라 빵을 가늘게 만든 것이 바게트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라는 설이 있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 것은 프랑스 혁명 이래로 프랑스에서는 정치적 이유에서건 혹은 경제적이거나 노동자 보호 차원에서건 빵에 대한 규제가 적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빵 하나 먹는 게 쉬운 것이 아니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8호 (2017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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