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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씨네의 와이드앵글] 어쩌면 당신과 나의 이야기 영화 `싱글라이더`
기사입력 2017.03.03 15: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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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후반, 우리 사회의 신조어 중 하나는 ‘기러기 아빠’였다. 조기 유학 붐이 일면서 자녀와 아내를 외국에 보내놓고 홀로 생활하는 아빠가 하나 둘 일상을 파고들었다.

사람들은 1년에 고작 한두 번, 가족을 만나러 해외로 날아가는 아빠들을 철새라 불렀고, 누가 먼저였는지 모르지만 기러기 아빠라 말했다. 아빠는 1~2년 혹은 좀 더 긴 시간 동안 자녀의 유학 기간을 늘려주기 위해 당당히 출근했고 때로 일이 없어도 늦게 퇴근했다. 퇴근 후 나 홀로 지내는 아빠들은 외로웠다. 그게 얼마나 깊은 울림인지, 간간이 신문 사회면에 등장한 아빠의 애환은 밝지 않았다. 아빠 중엔 기러기가 아니라 독수리도 있었다. 일명 ‘독수리 아빠’. 경제적으로 구애받지 않고 가족을 만나고 싶을 땐 훌쩍 비행기에 오를 수 있는 능력 있는 아빠를 사람들은 독수리라 불렀다. 물론 그 반대편에 선 아빠도 있었다. 먹고살기가 빠듯해 비행기는커녕 가족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만 던지는 이들은 ‘펭귄 아빠’가 됐다. 자연스럽게(?) 기러기 아빠들에겐 계급이 생겼고, 기왕이면 독수리가 되기 위해 출근길에 파이팅을 외쳤다.

조기 유학 바람이 분 지 20여 년, 한국은 여전히 영어가 대세다. 영어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여기에 내 아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백만 배, 아니 천만 배나 큰일이다. 그러니 기회가 생기면 무조건 해야 한다. 내가 아니라 내 아이를 위해.



증권회사 지점장인 아빠는 그러한 이유 때문에 아들과 아내를 호주로 보냈다. 남부러울 것 없는 가족, 넓은 아파트, 든든한 직장에 지위까지, 아빠에겐 아들을 유학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누가 봐도 독수리 아빠였다. 하지만 2년간 바다를 건너지 못했다. 너무 바쁘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일까.

그러던 아빠에게 태풍이 몰아쳤다. 가족을 유학 보낼 수 있었던 직장생활이 송두리째 뽑혀나갈 만큼 큰 태풍이.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주식이 문제였다. 아니, 그 주식을 사도 된다고, 꼭 사야 한다고 말했던 아빠의 잘못이 컸다. 아빠 때문에 다른 이의 인생에도 생채기가 났다. 울부짖는 소리가 미안해 정말 미안하단 말밖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런데 아무리 미안하다 말해도 듣는 이에겐 사과로 들리지 않았다. 초밥 도시락을 옆에 끼고 퇴근한 아빠는 서재 책상에 앉아 고객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메일을 보냈다. 백번 말하는 것보다 쓰는 게 낫다고 느꼈던 걸까.

그리곤 돌연 가족이 있는 호주로 떠난다. 아무런 짐 없이 입던 수트 그대로 홀로 비행기를 타고(Single Rider)….

<싱글라이더>는 기러기 아빠가 주인공이다. 그렇다고 기러기의 애환으로 정리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아니, 애환보단 좀 더 애절하다. 어쩌면 <싱글라이더>는 명예를 잃은 직장인이자 남자, 아빠의 이야기다.

손에 쥔 게 많진 않지만 그렇다고 가진 걸 빼앗길 수도 없는 40대 가장의 고민이 잔잔하게 감성을 자극한다.

대사보다 표정과 행동이 중심이지만 그 감성의 파장은 만만치 않다. 최근작이 연이어 흥행작이 된 이병헌의 눈매와 손끝은 그래서 이병헌이라는 듯 찬찬히 그리고 촉촉이 마음을 적신다. 짧은 러닝타임(97분)이 아쉬울 만큼. <싱글라이더>엔 깜짝 놀랄 반전이 존재한다.
허나 그 반전은 감정의 선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래서 감독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여성감독 이주영의 데뷔작이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8호 (2017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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