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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효서의 유념유상 | 땅의 봄 하늘의 봄
기사입력 2017.03.03 15:5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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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부터 봄이다. 봄은 3월부터다. 이 말에 이의를 달 사람은 거의 없다.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이의를 달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에 이의를 달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3월부터 봄으로 친다고 해서 누구는 손해를 보고 누구는 이득을 보고 그럴 일이 아니지 않은가. 누군가 “아무래도 봄은 3월부터라고 할 수 있겠지?”라고 묻는다면 “그렇지 뭐”라고 대답하고 말 일이다.

“과연 그럴까?”라고 되물을 사람이 거의 없다는 얘기인데, 거의 없을 뿐이지 아주 없지는 않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같은 사람이 ‘아주 없지 않은 사람’에 속한다. 3월이나 봄에게 특별히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다. 3월이고 봄이어서 하는 소리일 뿐이다. 3월인 봄에, 과연 3월부터 봄일까? 라고 한번 물어보자는 것이다.

3은 숫자고 봄은 기후와 관련된 계절의 일이기 때문에 3월이 되었다고 반드시 따뜻해지는 건 아니고, 날이 따뜻하다고 해서 반드시 3월인 것도 아니다. 이것만 봐도 3월과 봄은 좀 따로 놀 수도 있는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인생의 봄날’과 같이 봄이 기후가 아닌 어떤 ‘절정’이나 ‘한창’의 은유로 쓰이면 3월과는 더 멀어진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글귀 속의 봄도 3월과 반드시 유관한 비유라고 할 수는 없다.

어쨌든 봄이라고 하면 우리는 머릿속에 꽃이 피고 나비가 나는 3~4월이나 5월을 떠올린다. 그런데 입춘이라는 절기는 언제나 매서운 바람이 불고 눈이 쌓인 겨울에 찾아온다. 음력으로는 입춘이 1월이고 양력으로 해도 2월 4일경이다. 입춘은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에 해당하여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로도 친다. 입춘, 즉 봄의 문턱이라는 뜻이니 음력 1월도 양력 2월 4일도 받아들일 만하다. 어쨌거나 시작일 뿐이니까. 태양의 황경이 315°에 이르는 날이라고 한다.

그런데 참 알 수 없었던 것은 ‘신춘문예’라는 말이었다. 작가가 되려는 사람은 누구나 일간지 신춘문예에 작품을 응모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며 가슴을 졸이는데, 발표를 1월 1일 자에 했다. 늦어도 1월 3일이면 결과를 알 수 있었다. 가슴 졸이며 떨 수밖에 없는 날이어서 다른 날보다 유난히 춥게 느껴졌다. 낙선하면 말할 것도 없이 더 추웠다. 그런데 신춘이라니. 1월 1일이 봄이라니. 신춘문예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체감온도는 한겨울보다 더한데 봄이라는 이름을 붙이다니.

사실은 그보다 더 앞선 봄이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사주명리학 등에서는 동지를 봄으로 보며 새해의 첫날 즉, 설로 삼는다. 긴 겨울이 끝나는 날. 태양의 황경이 270°에 이르는 날이다. 음력으로는 11월이고 양력으로는 12월 22일경이다. 3월보다 이른 것은 물론이고 입춘보다도 신춘문예보다도 훨씬 이른데도 봄으로 친다. 봄은 이토록 많다. 봄으로 삼는 날이 다 다르기 때문. 하지만 어떤 봄이 좋고 어떤 봄이 나쁘며 어떤 봄이 진짜고 어떤 봄이 가짜고 그런 건 없다. 각자의 봄을 각자의 마음에 새기면 그만인 것. 한겨울에도 봄에 머무는 이가 있는가 하면 봄이 한창인데도 마음은 한겨울인 사람도 있는 것이다. 다만 옛 조상들이 봄이라는 것을 땅의 일로만 여기지 않고 인간의 지각이 가 닿지 못하는 하늘의 일로도 가늠했다는 사실만큼은 이 봄에 한 번쯤 새길 만하다.

땅은 아직 한겨울인데 하늘에서는 이미 봄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봄이 장차 땅 위에 당도할 것은 자명한 일. 땅의 물욕에 코 박고 하늘을 우러르지 못하면 한치 앞을 내다볼 줄 모를 수밖에 없게 된다. 언제까지고 자기의 세상인 줄만 알고 변화와 생성의 이치를 고이 깨닫지 못하면 세상이 그를 외면한다.

변화와 생성에 대한 옛 사람들의 생각을 봄이라는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명(冥)이라는 한자의 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冥은 어두울 명이다. 冥은 순(旬)과 육(六)이라는 글자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旬은 초순 중순이라고 쓸 때의 순으로써 10을 뜻한다. 거기에 육이 더해지니 명은 숫자 16을 뜻하게 된다. 여기서 16은 16일이다. 15일은 보름이라 하여 달이 꽉 차는 날. 그러니 16일부터는 달이 기울 수밖에 없다. 하루 기운 것을 어둡다고 했으니 앞으로 더 어두워진다는 뜻이다.

음양론에서도 양과 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양과 음에 각각 소양과 노양, 소음과 노음이 있다. 소양(少陽)은 이제 막 양이 된 소년, 소녀 양이라서 양으로 자랄 일밖에 없지만, 노양(老陽)은 양의 기운이 다한 노인 양이라서 어느 정도는 이미 음의 기운을 품고 있다. 장차 그 음의 기운이 자라 음이 되고 말 운명 혹은 이치를 보여주는 원리다. 물론 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와 같이 양과 음은 서로의 위치를 끊임없이 바꾸며 그것은 변화와 생성을 거듭하는 태극의 모양으로 표현된다. 한시도 멈추는 법이 없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땅의 일만 알고, 볼 수 없고 닿을 수 없는 하늘의 일은 모른다. 그러나 봄이 봄인 까닭은 땅의 일만 보지 말고 하늘의 일도 보라고 해서 봄인가 보다. 봄. 두루 봄. 변화와 생성의 이치를 깨닫고 각자의 삶에 슬기롭게 대처하라는 귀띔인지도 모른다.

봄에는 볼 것이 많다. 꽃이 있고 나비가 있고 파릇파릇 돋는 순과 싹이 있다. 그 사이를 거니는 연인들이 있다. 볼 것이 많기만 한 게 아니라 그것들이 하나같이 아름답다. 화양연화(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라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3월에도 하늘에서는 태양의 황경이 변하고 있다. 변화하는 태양의 황경은 꽃놀이로 자칫 넋을 빼앗길지 모르는 땅 위의 인간에게 ‘화무십일홍’이라는 메시지를 따뜻한 햇볕만큼이나 따끔하게 쏘고 있을지도 모른다. 2017년 대한민국의 봄은 어떻게 오고 어떻게 갈 것인가. 그리고 나의 봄은….

소설가 구효서 1957년 강화에서 태어나 1987년 신춘문예에 단편 <마디>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으로 장편소설 <타락>, <동주>, <랩소디 인 베를린>, <나가사키 파파>, <비밀의 문>, <라디오 라디오> 소설집 <별명의 달인>, <저녁이 아름다운 집>, <시계가 걸렸던 자리>, <아침 깜짝 물결무늬 풍뎅이>, 산문집 <인생은 깊어간다>, <인생은 지나간다>가 있다. 지난해 4월 장편소설 <새벽별이 이마에 닿을 때>를 출간했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지난 1월 중편소설 <풍경소리>로 제41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8호 (2017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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