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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만능 보좌관’ 이정재는 없다… 비상 꿈꾸는 조연 vs 의원의 영원한 그림자
기사입력 2019.07.26 17:04:38 | 최종수정 2019.07.29 09: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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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과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최근 막을 내린 <보좌관>의 주인공 장태준(이정재 분)이 우여곡절 끝에 공천권을 따내며 외치는 목소리다.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을 보좌하는 보좌관의 세계를 다룬, 최근 종영한 이 드라마는 여의도 정치권에 꽤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기존에도 여러 비슷한 드라마가 있었지만 국회의원이 아닌 보좌관을 중심에 두고 다룬 드라마가 없었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 국회에 근무하는 보좌진 전체 수는 2388명으로 의원 정수의 7배다. ‘의원을 빛나게 하는’ 역할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하지만, 사실상 국회를 돌아가게 하는 주역들이 바로 보좌진들이다.

이 <보좌관>이란 드라마는 가상이지만 현실을 꽤 많이 반영하고 있다는 평을 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여야에 따라 드라마를 보는 시각이 꽤 달랐다는 점이다. 각 당의 시선으로 드라마 속 내용과 대사들이 다른 맥락에서 와 닿은 것이다. 하지만 여야를 떠나 국회에서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이 장태준처럼 “약자를 도와주고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다소 가식적인 답변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보좌진이란 직업군에 첫 걸음을 내딛는 순간을 되돌아봤을 때 이 같은 자기만의 철학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그래서 조연으로 정치란 무대에 뛰어들었다 하더라도 여기서 자신의 역할을 마무리 하려는 이들은 별로 없다. 품었던 뜻을 펼치기 위해서라도 주역을 해보고 싶은 생각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국회 전체 보좌진을 다 만나보지 못했기에 이를 일반화하기에는 무리수가 따르지만, 취재결과 이들의 속내는 대부분 그랬다. 다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정도의 차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주연은커녕 조연의 역할 속에서 허덕인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 매순간 만능 해결사처럼 전화 한 통으로 각종 고급 정보를 취득하고, 이를 이용해 의원과 자신의 이익을 쉽게 챙기는 것을 보면 헛웃음만 나온다. 특히 야당 보좌진의 입장에서 기자의 특종처럼 대정부 공세에서 한방을 터트리려면 긴 시간 속에 수많은 자료와 싸움을 해야 한다. 전화통을 붙잡고 협박과 애걸을 반복하는 것은 예사다. 때로는 의원의 하수인인 듯한 업무에 실망한다. 이런 생활이 오래되면 주역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절로 옅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원 보좌진이란 직업은 여전히 상당히 매력적인 포인트가 꽤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자유한국당 박인숙 의원실 황동연 보좌관은 “공개 채용을 해보면 상당히 많은 지원자들이 몰려든다”면서 “이중에는 녹록지 않은 보좌진의 현실을 어느 정도 알지만 사회를 바꾸고 싶은 사명감 때문에 오는 경우도 여전히 많다”고 했다.

국회 보좌진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세상을 바꾸고 싶다”

자유한국당 출신 A 전 보좌관은 요즘 아무리 바쁘더라도 매일같이 당의 내년 공천 기준과 관련한 소식에 귀를 기울인다. 내년 총선 도전을 해보겠다는 마음 속 결정을 끝낸 후 생긴 습관이다. 이 바닥의 생리를 잘 아는 A 전 보좌관은 아무리 능력이 있더라도 공천을 받지 못하면 출발선상에 설 수조차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내년 당의 공천 환경이 어떨지 가늠하는 것은 자신의 경쟁력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가 내년 출마를 결심한 것도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을 종합해 볼 때 “당의 공천 기준이 자신에게 유리한 대목이 많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물론 그는 외적인 변수도 많이 작용한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안다. 그래서 “나름대로 생각을 해둔 방안이 있다”고 넌지시 전했다.

A 전 보좌관은 정치권 밑바닥부터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성장해왔다. 일반적으로 대한민국 정치 생태계에서 정규 코스로는 의원실의 인턴 생활이 가장 바닥에 해당된다. 하지만 그는 이보다도 한 단계 더 아래라고 할 수 있는 현역 의원이 아닌 당의 원외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했다. 의원이 되지 못할 수도 있는 당 원외 인사의 사무실을 통해 정치판에 뛰어든 것인데, 그는 “연줄도 없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이었다”라고 했다. 이후 그는 이 경력을 토대로 현역 의원실의 인턴 공채를 통해 국회에 정식 입성했고, 몇 번의 자리 이동을 통해 보좌진으로는 최고 직급인 4급 보좌관까지 지냈다.

그는 “국회로 들어오는 이들의 각자의 이유는 다르겠지만, 법과 제도로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은 공통된 것이라고 본다”면서 “도전을 위한 최종 결심은 굳혔고, 최선을 다해 보고자 한다”고 했다. 하지만 A 전 보좌관은 전혀 티를 내지 않고 있다. 국회를 떠났지만 여전히 여의도와 밀접한 관계 속에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현 상태를 굳이 비유하자면 겉으로는 태연하지만 물밑에서는 발을 쉼 없이 놀리는 백조와 같다고나 할까. 내년 총선을 앞두고 배지를 꿈꾸는 많은 전·현직 보좌관들이 현재 이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무 일찍 칼을 뽑으면 베기도 전에 자신이 먼저 찔리는 것이 이 바닥 생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준비만 열심히 하다 포기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대 국회 보좌관 출신 의원들은 전체 의원정수의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전체 298명 의원 중 36명이 보좌관 출신이다. 더불어민주당이 20명으로 가장 많았고 자유한국당 10명, 바른미래당 3명, 우리공화당 2명, 민주평화당 1명 순이다. 사실 이 수치가 많은지 적은지에 대해선 역대 국회, 해외 사례 등 비교 데이터를 확인할 수 없어 가늠은 할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현 정치풍토에서 ‘보좌관’이란 타이틀이 의원으로 신분을 상향시키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시 내년 총선에 관심이 많은 한국당 B 보좌관은 “오히려 공천 심사에서 보좌관 경력이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것을 수없이 봐왔다”면서 “대부분 경력 세탁을 고민하고, 또 실천에 옮긴다”고 말했다. 이 보좌관은 “국회 경력만 내세워 의원 배지를 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했다. 실제 의원이 된 인사들의 경우 대부분 추가 이력 한두 가지는 다 가지고 있다. 이계진 전 의원 보좌관 출신인 이양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보좌관을 그만둔 후 청와대 행정관을 지냈다. 김근태 전 의원의 보좌관이었던 기동민 민주당 의원은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냈다. 또 상당수가 자신의 지역구내 연구소를 만들어 적을 올리는가 하면, 대학 겸임교수 자리를 꿰차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정치형 vs 생계형

이 같은 모습은 정치권의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보좌관 경시 풍토 때문이다. 의원들의 활동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지만 스스로가 정치의 주역이 되고자 할 때 ‘정치 전문가’로서의 경력을 정당하게 평가해주지 않고 오히려 홀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선거 때만 되면 영입하는 법조인, 의사, 언론인 등 다른 전문가 집단보다 낮춰 보는 경향도 짙다. 이러다 보니 공천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린다.

하지만 사실 보좌진만큼 국회와 정치권을 속속들이 잘 아는 전문가는 없다.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축소판인 여러 상임위를 거칠 때마다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갖춰야 하고, 또 의원의 생존을 위해 뛰다보면 정치권서 가장 필요한 자산인 ‘정무적 감각’도 남다르게 생긴다. 경쟁자들에 비해 능력 면에서 꽤 앞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이들이 의원으로 활동한다면 정치 문외한으로 국회에 입성한 이들보다 효율성 면에서 훨씬 낫다고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국회 본연의 임무인 정부 감시 능력도 더 배가될 수 있다.

다만 인물면에서 신선한 측면은 없다. 국민 대부분은 국회를 불신하고 정치판을 혐오한다. 때문에 새로운 국가 리더군에 대한 갈망이 대중에게는 항상 존재하고, 이런 측면에서 속된 말로 정치판에서 닳고 닳은 보좌관이 참신한 인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한 정치 평론가는 “보좌관 출신 의원들이 정치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는지는 곱씹어 볼 대목”이라고 했다. 이런 것들이 의원에 도전하는 보좌진의 주요 걸림돌과 고민들 중 하나다. 이 고비를 잘 넘겨 장점이 부각되면 배지를 다는 것이고, 아니면 의원을 잘 보좌하는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사실 보좌진의 상당수가 후자에 속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생계형 보좌진이라고 부른다. 거창한 사명감보다는 직업으로서의 보좌진에 더 방점을 두게 된다. 여기에는 현실적 문제들이 영향을 끼친다. 남다른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과 직업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만, 보좌진으로서의 생활은 불안하기 그지없다. 먼저 신분 자체가 불안정하다. 선거 때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직장의 존폐 유무가 결정된다. 의원실의 절대 권력자인 의원의 말 한 마디에 하루 만에 직장이 잘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국회 보좌진의 신분 불안은 통계로도 잘 나타난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20대 국회의 경우 올 상반기 기준 신규 임용된 보좌진의 수는 1944명으로, 아직 20대 국회 회기가 1년 가까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정수(2388명) 대비 80% 넘게 물갈이됐다. 과거에 비해 줄긴 했지만 여전히 높은 교체 빈도다.

‘국회의원 보좌직원 제도의 개선방안 모색’이란 논문을 보면 지난 18대 국회 당시 의원실을 거쳐 간 전체 보좌진은 5692명으로, 당시 직원 전체 정수(2084명)의 2배를 넘었다. 숫자상으로는 회기 중 전부 물갈이됐다는 이야기다. 이러다 보니 근속 연수도 짧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19대 국회를 기준으로 4급 보좌관들의 평균 재직기간은 6년 7개월에 불과했다. 5급 이하의 직급에서는 한 대가 끝나면 대부분 그만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을 쓴 보좌관 출신 박재성 동국대 겸임교수는 “이 같은 추세는 직업적 안정성 면에서 국회 보좌진을 안정적인 직업으로 볼 수 없음을 여실히 나타낸다”고 분석했다.

황동연 보좌관은 “수 년간 같이 일하다가 팩스 한 장으로 면직 통보를 받으면 얼마나 허탈하겠냐”면서 “면직예고제, 해고수당 같은 제도적 장치를 통해 어느 정도 예정된 삶을 보좌진들이 살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했다.

또 업무량과 강도는 ‘워라밸’에 대한 기대조차 사치로 전락시킨다. “주 52시간 근무가 공무원 사회에 적용된다면 국회 전부가 범법자가 될 것”이라는 것이 국회 주변의 공통된 의견이다. 실제 국감 시즌이 도래하면 각 의원실은 사실상 퇴근 자체를 포기해야 되는 수준으로 업무량이 많다. 또 여야의 극한 대치가 이뤄지면 보좌진들도 국회를 벗어나지 못한다. 지난번 패스트트랙 법안 상정 과정에서 여야의 극한 대치는 며칠간 지속됐고, 남녀 보좌진 가릴 것 없이 국회에서 밤을 샜다.

한국당 C 비서관은 “52시간 근무가 공무원 사회에 도입된 후 국회에서 또다시 여야 몸싸움이 벌어지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게 될지 사뭇 궁금하다”면서 “몸싸움을 벌이다가 퇴근 시간 됐다고 그만둘 수는 없고, 계속 대치를 하자니 주 52시간 근무는 어기게 되고 참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것 같다”고 꼬집었다. 같은 당 D 보좌관은 “가장 법을 잘 지켜야 할 국회가 법 준수 측면에서 가장 뒤처지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아니냐”고 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생계형 보좌관이 되는 정점은 대부분 결혼을 하고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가지면서다. 먹고 사는 문제, 자녀 교육 등의 현실적 문제들에 대해 고민을 하다 보면 자신의 사회적 역할은 자연스레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고 직장을 유지하는 데 더 중점을 두게 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런 경우 장점도 있다. 의원이 선거에서 낙선을 하더라도 곧 자리를 찾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국회에서도 뛰어난 보좌 능력을 갖춘 보좌관 혹은 비서관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아 수요 대비 공급이 항상 부족하다.



▶보좌진에도 종류가 있다?

그렇다면 보좌진들의 국회 입문은 어떻게 이뤄질까. 인맥만 잘 찾으면 되는 것일까. 이는 일부분만 맞는 말이다. 보좌진 유형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개국공신형이다. 국회의원 선거 캠프에서 몸담아 승리로 이끈 후 보좌진으로 국회에 입성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의원실에서 꽤 지분이 있음은 물론이다. 이 코스를 통해 보좌진으로 일하게 된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우연히 정치권에 입문하게 됐다”고 말한다. 사실 선거를 도와 국회에 입성하려는 전략은 확률이 높지 않은 게임이다. 열심히 하더라도 패배를 하면 실직자가 된다. 의원 입장에서도 선거 캠프에서 열심히 뛰어줄 능력 있는 인사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주로 주변 인맥을 통해서 소개를 받는다. “뜻하지 않게 국회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 지인 찬스는 현직 의원실에서도 주로 애용된다. 주로 검증이 된, 하지만 자리를 찾지 못한 전직 보좌관들을 찾기 위함인데, 업무 효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공채보다는 알음알음으로 자리를 채운다.

끝으로 공채가 있다. 각 의원실마다 수요가 생길 때마다 국회 홈페이지에 공고를 낸다. 직급은 인턴부터 4급 보좌관까지 다양하다. 정보통신·과학기술·경제·의약 분야 등 전문성과 최신 흐름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는 상임위에서 공채를 자주 뽑는다. 이 경우 주로 특정 분야 전문가들이 보좌관들로 많이 변신한다. 조우성 바른미래당 정책연구위원이 한 예로, 그는 삼성SDS정보기술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을 하다가 18대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의원실에 공채로 국회에 들어왔다. 이후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실을 거치면서 12년 동안 국회에 몸담고 있는데 전문성을 살린 법안으로 최우수법률상을 받기도 했다. 법안국회사무처에 따르면 20대 국회 보좌진 중 이공계열 전공자는 300명 정도다.

하지만 인턴 지원자의 경우 최근 극심한 직업난을 반영하는 웃지 못할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정치에 대한 꿈보다는 보좌진이 정식 공무원인 줄 알고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심심찮게 있다는 것이다. 최근 공채로 인턴을 뽑았던 한 보좌관은 “안정적인 직장으로만 알고 오는 지원자들을 보면 좀 당황할 때가 있다”고 했다. 물론 상당수의 인턴들은 국회 입성 후 자기 커리어를 쌓아 보좌진의 최고 직급인 4급 보좌관까지 오른다. 이 세 유형 중 채용 규모가 가장 많은 것은 아무래도 지인 찬스가 아닐까 한다. 공채 비중이 늘긴 했지만 여전히 그 수는 적기 때문이다. 박재성 겸임교수가 쓴 논문에 따르면 지난 18대 국회의 공채 공고 횟수는 전체 직원 수 대비 10%도 안 되는 비율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대목. 불안정한 보좌진의 세계에서는 한 의원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하는 이들도 심심찮게 발견된다는 것이다. 보좌진 세계에서 몇 번의 자리 이동은 자신의 커리어에 필수적이다. 이 과정을 통해 직급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배를 탔다”는 구태의연한 말을 실천하기라도 하듯 운명공동체가 된 관계도 있다.

5선의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의 황찬일 보좌관이 대표적이다. 정 의원이 재선 때부터 함께한 두 사람의 인연은 16년이나 됐다. 정 의원의 입장에서 정치 인생을 이야기할 때 황 보좌관을 빼고는 말을 할 수 없는 셈이다. 황 보좌관은 그 이유에 대해 “특별한 것은 없고 의원과 잘 맞았기 때문에 오랜 세월 함께한 것 아니겠냐”고 했다.

▶의원과 보좌진의 관계는

여기서 ‘잘 맞는다’는 개념은 보좌진의 운명에 아주 중요하다. 어느 조직이나 사람관계가 중요하지만 정치판에서 더 큰 힘을 갖는다. 자기만의 정치철학을 가지고 뜻을 펼치려는 이들이 모인 공간에서 성향이 맞지 않으면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황 보좌관의 경우 정 의원과의 긴 동행 시간을 볼 때 이 같은 것이 “잘 맞았기 때문”이라 해도 무방할 듯 싶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동지’라는 말도 어색하지 않다. 실제 이 의원실에서는 드라마에서 흔히 그려지는 의원과 보좌관의 맞짱이 벌어지기도 한다.

같은 의원실 이승환 보좌관은 “지난 대선에서 당 후보를 내는 문제를 놓고 의견을 개진하는 과정에서 의원님과 설전을 벌인 적이 있다”면서 “계급장 떼고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것이 우리 방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아름다운(?)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야당의 E 보좌관은 “과거 보스 정치가 영향력을 발휘할 때나 그렇지 지금은 정치적 동지라는 개념을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보좌관은 “각 당별로 상황이 좀 다른 측면이 있다”며 “아무래도 여당 쪽에 그런 분위기가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F 보좌관은 “운동권이나 시민단체에서 활동했던 의원들이 같이 활동했던 이들을 보좌진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아 그런 분위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로 확대해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아무리 포장을 해도 현실 세계에서 의원과 보좌진은 “주종관계”일 뿐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낸다. 사실 보좌진 다수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한 전직 비서관은 “지역에 내려가면 마름, 회관에선 사노비”가 현실이라고 푸념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앞서도 언급했지만 보좌진의 운명이 의원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동지이든, 사노비이든 자신이 모시는 영감(국회의원)이 정치권에서 승승장구를 하면 자신도 그만큼 급이 높아지고, 의원이 낙선하면 자신도 방향타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G 보좌관은 “주식회사와 우리사주가 같다”고 말했다. 회사의 가치가 높아지면 주가도 올라가듯이, 의원이 소위 잘 나가야 보좌관의 역할이 커지고 영향력도 커지기 때문이다. 가장 현실적인 관계 규정이다. 실제 의원 잘 만나 더불어 고속 승진한 보좌관의 예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최악의 경우는 변변치 못한 의원을 만나 제대로 된 주종관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한국당의 한 의원은 보좌진의 퇴근 시각까지 수시로 체크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자정 가까이 퇴근한 비서관에게 ‘왜 자기가 전화를 할 때 자리에 없었느냐’고 질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실은 보좌진이 자주 바뀌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당의 H 비서관은 “의원의 온갖 잡일을 하다보면 회의가 들 때가 많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의원의 말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국회 한 의원실에서 보좌관이 민원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교도소 담장위를 걷는다?

보좌진의 역할을 규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의원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신문 1면을 장식할 수 있는 특종을 생산해내고,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법안을 만들어낸다. 이 모든 것이 의원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함이다. 사실 의원이 하는 모든 것들이 보좌진의 손을 거친다고 보면 된다. 때로는 민감한 문제를 처리하는 해결사 역할을 하는데, 종종 보좌진을 곤혹스럽게 하는 일도 해야 할 때가 있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이런 순간이 많은데, 이때가 교도소 담장을 넘나드는 순간이 될 때가 많다.

국회를 떠나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I 전 보좌관은 전과가 있다. 보좌진 초년병 시절 일 때문이었다. 당시 모시던 의원이 지역구 조기 축구회를 방문하려 했고, 의원이 도착하기 전에 먼저 가서 “축구공 몇 개를 선물하라”고 지시했다. 의원은 축구공 몇 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이는 선거법상 기부행위 금지 조항에 해당되는 사안이었다. I 전 보좌관은 당시 법 시행 초기라 적발되면 문제 소지가 클 수 있다고 반대했지만 의원은 밀어붙였다. 어쩔 수 없이 보좌관은 의원보다 먼저 가 공을 전달했는데, 결국 문제가 터졌다. 불운하게도 조기축구회 멤버 중에 관계기관에서 근무하던 이가 있었던 것이다. 결국 누군가는 책임져야 되는 상황이 생겼고, 이 보좌관은 결국 벌금 200만원을 받았다. 야당 J 보좌관도 “지난번 총선 당시 문제될 소지가 있는 행위를 두고 의원과 격하게 싸운 기억이 있다”면서 “후일 의원이 그때 만류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고 전했다.

선거 때가 아니더라도 위기의 상황에 직면하는 상황은 종종 생긴다. 지역구 민원이 대표적이다. 툭하면 관련된 문제가 뉴스를 장식한다. J 보좌관은 “이 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관성에 젖을 때가 있는데 그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 같다”고 했다. 물론 의원들이 자기 식구 모두에게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을 시키지는 않는다. 오래된 관계 속에 신뢰가 쌓인 측근에게만 은밀한 일들을 진행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부메랑이 되어 의원들에게 큰 위협을 가져다 준다.

▶현실세계 이정재는 없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위기에 몰릴 때마다 인맥과 기지를 동원해 전화 몇 통화로 모면한다. 힘든 자료도 척척 구한다. 이를 두고 “너무 비현실적이다. 나도 그래봤으면 좋겠다”며 “드라마 제목을 마법사로 바꿔야 한다”고 한 현직 보좌관은 꼬집었다.

실제 의원을 빛나게 하는 폭로는 대부분 보좌진들이 몇 달을 고생해서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피감기관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숨기려는 문제점들을 알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들이 제출하는 자료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때문에 보좌진들은 자신만의 기술을 가지고 상대와 치열한 수 싸움을 한다. 민감한 자료일수록 상대가 모르게 해야 하는 것이 첫 출발이라고 보좌진들은 입을 모은다.

자유한국당 최연혜 의원실 박대기 보좌관은 “확보하고 싶은 자료를 바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대상을 넓게 파악하고 필요한 기초자료들을 확보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2차, 3차, 4차, 5차 등 원하는 자료를 확보할 때까지 노력한다”면서 “상대가 눈치를 채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박 보좌관은 “짧게는 1~2개월, 길게는 수개월에 이르는 시간이 필요한 지난한 과정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실에서 폭로한 문재인 대통령의 딸 문다혜 씨 태국 이주 건도 이 같은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른미래당 소속 한 보좌관은 “시야를 넓혀 다양한 각도에서 현안을 파악하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고 했다. 즉 자신의 상임위에만 골몰하지 말고 다른 상임위의 현안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다 보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보를 잘 받는 것도 능력이다. 하지만 이 경우 보좌진 인맥으로도 가능하지만, 그보다는 의원의 이미지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한 야당 보좌관은 “끝까지 책임질 수 있다는 이미지가 없는데 먼저 다가올 제보자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드라마 속 보좌관의 능력 중 한 가지 더 짚어볼 대목은 주인공이 자신이 궁지에 몰릴 때마다 때로는 검사를 협박하기도 하고, 자신이 모시던 의원 등에 칼을 꽂으려 한다는 부분이다. 물론 보좌관이 현실에서 이처럼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위상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국회의원실 소속 직원의 직위는 결코 낮지 않다. 의원실을 찾는 이들 대부분이 법안에 대한 수요자, 지역구 민원 등 아쉬운 사정으로 찾는 이들이 많다. 갑을의 위치를 따지자면 의원실은 갑이다. 스스로를 의원과 지역구 주민의 마름이라고 자조하지만 사회적 지위 자체는 결코 낮지 않다. 특히 대정부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법 제정, 예산 심의, 국정조사 등의 권한을 통해 정부를 압박하고 통제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법 집행 권한이 있는 검사나 권력기관 관계자를 겁박하지도 못한다. 오히려 보좌진과 의원이 서로 대립하는 관계 설정이 현실을 많이 투영한 대목이다. 실제 국회 주변에서는 보좌진이 의원을 협박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많이 돌아다니고, 이 중 일부분은 실제 상황이다.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모 인사는 자신이 면직시킨 비서진의 폭로로 결국 감옥행을 가야 했는데, 결정적 단서를 이 비서가 제공했다고 알려져 있다. 사정을 잘 아는 한 전직 보좌관은 “좋지 않게 쫓겨난 비서가 후원금 문제를 폭로했다”고 전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지방선거 공천권을 약속했던 의원이 지역구 내 이해관계에 얽혀 태도를 바꾸자 밑에 있던 보좌관은 의원의 비리를 가지고 거래를 했고 결국 공천권을 따낸 일도 있다”고 전했다.

▶보좌진에도 트렌드가 있다?

국회 경력이 오래된 보좌관들이 최근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국회도 옛날 같지 않다. 참 많이 변했다.” 생활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 국회도 신세대 보좌진들로 대거 물갈이되면서 과거와는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과거에 대한 향수가 종종 이야기되는 것은 특유의 문화까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직인 K 보좌관은 “초년병 시절을 되돌아보면 의원회관만의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일반 회사 사무실, 연구소 같다고 느낄 때가 많다”면서 “과거보다 활기찬 분위기가 많이 없어진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보좌관은 “지금은 각자 열심히 일만 하다가 가는 분위기”라며 “국회도 회식 등의 이야기를 점점 꺼내기 힘들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황동연 보좌관은 “투명성을 강조하고, 각자의 삶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은연 중 국회에도 자리 잡고 있다는 이야기지만 공동체적 요소가 필요한 정치권에서 서로 간 끈끈한 특유의 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아쉽다”고 했다. 모 비서관은 “확실히 최근에 새로 들어오는 친구들을 보면 개성이 뚜렷한 것 같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것 같다”고 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여야로 구분하면 더욱 경계가 뚜렷해진다. 한때 여야 구분 없이 어울리곤 했던 보좌진들도 지금은 당이 다르면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다. 패스트트랙 국면 이후 더 심해졌다고 한다.

K 보좌관은 “3김으로 대변되는 정치권 시절이 시작된 이후에는 민주화란 공통분모 속에 당이 달라도 교류도 활발히 하고 서로 격의 없이 지낸 것 같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같은 학교 출신이라도 당이 다르면 서로 외면하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했다.

눈앞에서 격하게 싸워도 장막 뒤 대화로써 풀리곤 했던 정치가 그러지 못하는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 같다. 20대 국회 보좌관은 2388명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20대 국회 전체 보좌진은 올 상반기 기준으로 2388명이다. 직급별로 보면 4급이 600명이고, 5급 595명, 6급 294명, 7급 304명, 8급 297명, 9급 298명이다. 성비로 따지면 남초다. 1654명이 남성 보좌진이고 여성은 734명에 그쳤다.

연령별로 보면 30~40대가 가장 많다. 30대가 913명이고 40대가 729명이다. 보좌진 최고 직급인 4급의 경우 40대가 주를 이룬다. 20대 국회의 경우 318명의 4급 보좌관이 있다. 5급 비서관의 경우에는 30대가 40대보다 많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4급 보좌관의 경우 16대·17대 국회의 경우 30, 40대의 숫자가 엇비슷했다. 하지만 18대 국회 이후에는 40대가 많다. 보좌진 수가 크게 늘어난 경우도 있지만 국회 보좌진이란 직업 자체가 생계형으로 바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력 수준은 대졸자의 비율이 계속 높아졌다. 17대 국회의 경우 전체 보좌진 중 50%가 대학졸업자였지만, 20대 국회의 경우는 57.9%였다. 19대 때는 55.7%였다. 대신 고졸 출신의 비율은 줄었다. 17대에 약 17% 안팎이었던 고졸자 비율은 19대 14.5%, 20대 6%였다. 석사 졸업자의 국회 입성도 그 추이가 다소 줄었다. 18대 때 18.6%였던 석사 출신 보좌진은 19대와 20대 때는 15% 선으로 내려왔다.

전공은 정치외교학과 등 사회계열학과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법을 다루는 곳이지만 법학 전공자보다는 이공계와 인문계 출신들이 훨씬 더 많다는 점이다. 20대 국회의 경우 법학계열의 경우 182명의 보좌진이 있지만, 인문계열은 352명, 이공계열도 300명 선에 이른다. 전문성을 갖춘 보좌진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재직기간은 직급별로 확연히 차이가 난다. 하위직급으로 갈수록 재직기간이 짧아지고 윗 직급으로 갈수록 높아진다.
3년 이상 국회에 몸을 담고 있는 직급은 4급이 가장 많았고, 8~9급 직군은 1년도 못돼 그만두는 이들도 꽤 된다. 20대 국회의 경우 1~2년 정도 근무하는 이들은 전체 절반에 육박한다. 그만큼 교체비율이 높다는 뜻이다.

[문수인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7호 (2019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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