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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빅데이터가 파괴한 가격 정찰제 소비자가 지불할 의향만큼 받아낸다
기사입력 2019.05.27 14:05:58 | 최종수정 2019.05.28 10: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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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서 출발한 스타트업 ‘웨이스트리스(Wasteless)’는 가격이라는 제도를 파괴하는 기업이다. 그것도 매우 간단한 아이디어 하나로 말이다. 우선 마트 또는 편의점에 가면 요구르트, 김밥, 과일 등 각종 신선식품이 놓여 있는데 그 밑에 가격표가 종이나 플라스틱으로 붙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웨이스트리스’는 이 가격표를 액정식 디스플레이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회사는 스스로를 ‘디스플레이 회사’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2016년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서 출발한 이 회사는 자사 홈페이지에 ‘우리는 가격을 역동적으로 바꾸는 기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회사가 하는 일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렇다. 먼저 같은 딸기맛 요구르트라 하더라도 유통기한이 3일 남은 제품(A)이 있을 수 있고, 유통기한이 10일 남은 제품(B)이 있을 수 있다. 지금 마트나 편의점에서는 두 제품이 같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마트, 편의점에서 유통기한이 많이 남은 제품들을 일부러 고르는 소비자들이 많다. 결과적으로 유통기한이 짧게 남은 제품들은 판매가 되지 않고 버려져 있다가 폐기처분되는 경우가 많다. ‘웨이스트리스’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미국의 슈퍼마켓에서는 매일 약 2300달러(250만원 상당)의 제품들이 유통기한을 넘겼다는 이유로 버려지고 있다고 한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570억달러(약 6조2000억원)라는 큰 규모다.

‘웨이스트리스’는 A와 B의 가격을 서로 다르게 전시할 수 있는 가격 디스플레이 장치를 공급한다. 즉 편의점이나 마트 경영자 입장에서는 ‘웨이스트리스’의 솔루션을 사면 A는 싸게, B는 비싸게 가격을 달리 책정하여 판매할 수 있는 것이다. 마트에 들어서는 소비자 입장에서도 오늘 당장 요구르트를 뜯어서 섭취할 요량이라면 값이 싼 A 제품을 당연히 구매할 것이고, 그렇지 않고 냉장고에 최소한 5일 정도는 보관해 둬야 하는 상황이라면 값이 조금 비싸더라도 유통기한이 넉넉히 남은 B제품을 구매할 것이다. ‘웨이스트리스’의 전자식 가격표 덕분에 소비자들은 더욱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마트나 편의점 입장에서는 유통기한이 짧게 남은 제품들을 더 이상 버리지 않아도 되고, 매출 또한 늘어나는 셈이다.



▶1물 1가의 원칙 IT기술과 데이터 증가로 무너지기 시작

‘동일한 제품에는 동일한 가격이 매겨진다’는 일물일가의 법칙(The Law of One Price)이 IT 기술과 데이터의 증가로 인해 무너지고 있다. 일물일가의 법칙은 같은 제품인데 서로 다른 가격이 매겨지면 차익거래 때문에 결국 가격이 같아질 것이라는 경제학적 가설. 가격이 동일함으로 인해 보다 비싼 값에 해당 제품을 구매할 생각이 있었던 소비자들은 후생(Welfare)을 얻을 수 있었고, 보다 싼 값에 제품을 생산해 판매할 수 있었던 공급자들도 후생을 얻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목이 너무 말라서 800원의 가격을 지불하고서라도 물 한 병을 사서 마시고 싶은 고객이 있다면 그는 편의점에서 500원에 생수 한 병을 사서 마심으로써 300원 만큼의 경제적 이득을 얻은 셈이다. 가격이 500원으로 정해졌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효과다. 반대로 물 한 병을 제조하는 데 450원 만큼의 원가가 들어가는 생수회사 입장에서는 물 한 병에 500원 만큼의 가격을 받음으로 인해 50원 만큼의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가격이 주는 효과다.

웨이스트리스의 전자식 가격표



그런데 가격이 파괴되고 있다. 이런 상상을 해 보자. 만일 ‘웨이스트리스’가 하고 있는 것처럼 가격표를 자유자재로 바꾸어서 비싸게 생수를 사서 마시고 싶은 이들에게는 높은 가격을 매긴다면? 편의점 주인이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800원을 주고서라도 물을 사 마시고 싶은 사람을 파악한 뒤 ‘웨이스트리스’의 가격표를 활용하여 이 사람에게만 다른 사람과 다른 가격에 생수를 판매할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없던 시절에도 이런 일은 벌어지고 있었다. 여름철 무더운 공원 한복판에서 얼음에 넣어둔 생수의 가격은 일반 편의점에서 사 마시는 가격에 비해 훨씬 비싼 경우가 많다.) 이전과 달리 이 소비자는 300원만큼의 경제적 후생을 빼앗기는 셈이 되지만, 그렇다고 하여 아주 손해를 본 것도 아니다. 어차피 이 사람은 800원을 주고서라도 물 한 병을 사서 마시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만일 800원에 생수를 사는 것이 비싸다고 여겨진다면 그는 생수를 사지 않을 것이다.

물론 완벽하게 소비자가 800원을 내게끔 하는 솔루션이 나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들은 점점 이런 방향으로 소비자들의 후생을 갉아먹으려 하고 있다. IT와 데이터 기술들이 발전하면서 기업들이 이익을 보는 방법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다이내믹 프라이싱’이다. 가격 2.0이라고도 불린다. 개별 상품의 상태와 고객들의 상황에 따라 가격을 유동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사례들이 없을 것 같지만 의외로 무수히 많다. 그것도 아주 익숙한 사례들 말이다.



▶아마존, 자체 플랫폼에 올라오는 일부 제품 가격 10분마다 변경

예를 들어 항공사들은 좌석의 수요가 늘어나는 타이밍에는 가격을 올려서 판매한다. 반대로 수요가 거의 없는 새벽 시간대의 비행기편은 매우 싼 가격에 내놓는다. 호텔도 마찬가지다. 숙박공유 플랫폼 ‘여기어때’ 측에 따르면 크리스마스이브 등과 같은 시기에 서울 시내 숙박업소는 가격이 매우 올라감에도 불구하고 잡기가 어렵다. 일본에서는 도쿄 쓰키지의 한 비즈니스호텔이 2017년 9월부터 인공지능을 활용해 경쟁호텔의 요금과 예약상황에 따라 자동으로 요금을 정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이 알고리즘을 본 일본의 한 프로야구 구단은 시즌 입장권 가격책정에 인공지능을 도입해 가격을 변동시키기로 했다. 과거 3년간의 입장권 판매실적과 대전 상대팀의 순위 등을 보고 입장객이 얼마나 될지 예측하여 가격을 변동시키는 것이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을 달리 내놓는 이런 정책들은 다른 산업 영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실제로 2014년 같은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고객에 따라 서로 다른 가격에 제품을 판매했다는 사실이 월스트리트저널에 보도되며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아마존은 CEO인 제프 베조스의 극도로 고객 중심적인 경영 때문에 고객을 파악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공급한다면 높은 가격에 제품을 판매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이미 아마존은 자체 플랫폼에 올라오는 제품들의 가격을 10분마다 한 번씩 바꾸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난 2013년 미국의 가격정보업체 ‘프로피테로’는 아마존 월마트 베스트바이 등과 같은 상거래 업체들의 가격을 분석했는데, 아마존은 하루에 250만 번, 월마트와 베스트바이는 한 달에 5만 번 정도 가격을 바꾸었다. 아마존은 끊임없이 최저가격을 유지하려는 정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다른 쇼핑몰의 상품가격을 검색하고 그에 따라 가격을 수정해 나가는 알고리즘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아마존이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들고 나오자 전 산업으로 가격 2.0은 확산되기 시작했다. 미국 MIT 미디어랩 마이클 슐라이그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마존의 이런 혁신적인 시도들은 많은 다른 산업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아마존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비슷한 혁신들을 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것이 우버(Uber)와 같은 승차공유 플랫폼이다. 우버는 차량을 잡기 어려운 시간대와 지역에 따라 택시비 요금을 올리고, 반대로 차량공급이 많은 타이밍과 위치에서 누군가가 택시를 잡으려 한다면 요금을 내리는 형태의 알고리즘을 운영하고 있다. 우버에 관련 알고리즘을 공급하고 있는 스타트업 ‘퍼펙트 프라이스’의 알렉스 샤트시스 CEO는 미국의 신생매체 액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이제 불가피한 선택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카카오택시’를 운영하고 있는 카카오가 인공지능 기반 택시 수요 예측모델을 개발해 택시요금을 탄력적으로 바꾸는 방안을 연구해 보겠다고 지난해 12월 밝혔다.

아마존고에서 쇼핑하고 있는 고객들



▶소비자 후생 악화 비판 나와

소비자의 지불의사에 따라 완벽하게 가격을 차별화한다면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일단 불법소지가 있다. 특히 연령이나 성별, 인종 등에 따라 가격을 차별화하는 것은 여러 나라에서 불법이다. 개인이 제공한 정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과거 구매 이력이나 선호도를 인공지능이 완벽하게 파악하고 그에 따라 가격차별을 한다면 그 역시 불법이다. 불법이 아닌 방법을 기업들이 쓴다고 하더라도 소비자들의 후생을 해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마치 독점기업들처럼 소비자들이 과거 가격체계에서 누릴 수 있는 경제적 후생들을 몽땅 인공지능이 빼앗아버리는 것처럼 되기 때문이다.

우버 택시



하지만 소비자들에게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들도 있다. 오히려 과거와 달리 가격이 합리화되어 소비자들의 후생이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올해 1월 스위스 정부 관광청은 한국여행자들에게 ‘메테오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날씨에 기반한 여행 가격 정책이다. 이런 식이다. 어떤 스키 리조트에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날씨 때문에 스키를 탈 수 없게 된다면 스키 비용은 물론 숙박비까지 전액 환불을 해 주는 것이다. 대신 어떤 관광 리조트들은 여행자들이 몰리는 시기에는 가격을 높이기도 한다.

지난해 1월 영국에 있는 ‘밥밥리처드’라는 레스토랑은 손님이 없는 일요일 저녁시간과 같은 때는 15%까지 원래 메뉴판 가격에서 할인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 레스토랑의 오너인 레오니스 슈포프는 미국의 경제전문지 ‘머니’와의 인터뷰에서 “항공사들에게 비즈니스 클래스가 없다면 생존이 불가능한 것처럼, 수요와 공급을 맞추는 것이 사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가격차별 정책을 활용하면 ‘웨이스트리스’가 하고 있는 것처럼 음식물 쓰레기 발생 등을 줄이는 기능으로도 쓸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의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하는 FTC의 경제자문관 조셉 시몬스는 올해 2월 “가격차별 정책이 실제로 소비자들의 후생을 갉아 먹는 것인지 여부는 모호하다(Ambiguous)”라고 밝혔다.

[신현규 매일경제 모바일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5호 (2019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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