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신청

[년 월 제 호]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
지정학적 위기? 기회? 격변의 한반도 첨단기술이 지리한계 뛰어넘을까
기사입력 2018.05.04 10:06:22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전 세계의 관심이 한반도로 쏠리고 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이후 한반도 전쟁론이 스멀스멀 일었던 지난해, 올 초와는 사뭇 다른 상황 전개다. 이로 인한 한반도를 둘러싼 역학관계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지난해 북한의 마이웨이식 핵개발 강행에 싸늘하게 등을 돌렸던 전통적 우군 중국은 남북 그리고 북미 간 정상회담이 전격 결정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오랜 우방을 다시 감싸며 찰떡궁합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를 지켜보던 러시아도 뒤질세라 여기에 가세했다. 하지만 사실상 북한과의 담판을 결정지을 실권을 쥐고 있는 미국은 이 같은 분위기가 내심 탐탁지 않은 모습이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들이 각각 거들면 해법은 더 꼬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문제가 최근처럼 주요 이슈로 부각되면 으레 국제사회, 특히 미·중·러 등 강대국들은 이처럼 너도나도 ‘관여’를 하기 위해 바쁘다. 그 이유가 각국의 이해관계 때문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각국의 이해관계가 한반도에 얽혀 있을까.

이 대목에서 지정학적 측면에서 한반도의 가치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동북아에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가 크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접점으로서 한반도는 언제나 충돌의 장이었다.

북핵 문제도 사실 이의 연장선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북아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해법의 주도권을 잡고 한반도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포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정학 하나만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강대국들의 개입의 정당성을 찾는 것은 충분치 않다. 하지만 그 주된 이유 중 하나임은 틀리지 않는 사실이다.

지난해부터 서점가에는 지정학 관련 책들이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지정학은 지리 조건을 통해 국제 관계를 분석하는 학문으로 일종의 결정론적 관점을 띠고 있다. 지정학이 그동안 덜 관심을 받았던 것은 학계의 외면도 있었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리의 한계가 어느 정도 극복된 것과 무관치 않다. 하지만 아무리 발달된 기술이라도 극복되지 않는 지리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에 강대국들은 다시 지정학적 가치를 고려해 국제 질서의 주도권을 쥐려는 노력에 다시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북핵 ICBM 기술과 지리의 역설

사실 북핵 사례만 해도 기술과 지리의 역설적 관계가 녹아 있다. 지금까지 북한의 핵개발은 세계의 고민거리였지만, 지금처럼 위기가 고조된 적이 없었다. 힘을 자랑하는 현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이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북한이 대륙을 뛰어넘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에 거의 성공한 것이 주원인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지금까지 북한이 핵을 개발한다 해도 미 본토에는 직접적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북한이 ICBM 개발에 성공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강대국의 전유물이였던 ICBM은 거리란 지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무기 체계다. 북한이 미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무기를 보유한다는 것은 안보 우선주의가 지배하는 미국이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때문에 미국은 초강경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북한의 지리적 한계 극복 노력은 한반도에 오히려 지리의 역습을 가져오고 있다. 한반도 자체의 지정학적 가치를 다시 이들에게 상기시켜 개입을 촉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의 대결 국면에는 해양 패권 경쟁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경제력이 어느 정도 확보된 다음에는 해양 군사력 강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4월 12일 중국 하이난섬 남쪽 남중국해 해상에서 건국 이래 최대의 해상 열병식을 가진 사실이 이를 잘 엿보여 준다. 이 행사에는 해군 함정 48척과 76대의 군용기 등이 동원됐다. 영구 집권의 발판을 마련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군복을 입고 사열에 나섰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신시대 강군 사상 등을 바탕으로 흔들림 없이 해군 현대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남중국해에서 베트남·필리핀 등 아세안 국가들과 벌이고 있는 해양 분쟁, 동부 아프리카 지부티 해군 최초 해외 기지 건설, 파카스탄 과다르 항구 40년 운영권 확보 등도 이 같은 노력의 일환이다. 사실 중국의 해양 패권 도전은 세계 패권 경쟁에서 아주 의미심장하다. 미국이 세계 강대국으로 변모하게 된 계기, 그 모델을 답습하려 한다는 분석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배경에는 해군력이 바탕이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이 해양에 적극 관심을 기울인 것은 19세기 해군 제독 알프레드 마한이 “강력한 해군을 보유한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천명한 이후부터다. 지정학자 니콜러스 스파이먼은 “미국이 강대국이 된 것도 미국의 사상 때문이 아니라 대서양 및 태평양으로 직접적 접근이 가능한 세계에서 가장 혜택 받는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의 지정학과 링컨의 리더십>이란 책을 출간한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는 “중국은 새로운 세계질서 관점에서 미국과 동등한 강대국으로 목소리를 내기 원하다”면서 “장쩌민 전 국가 주석 시절부터 전략적 관점에서 바다를 보고 미래전쟁을 대비해 해군력 현대화를 가속했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이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포기할 순 없을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 소식에 화들짝 놀란 중국이 북한을 다시 껴안은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뺏긴다면 중국의 해양 진출에 더 날개를 달아주는 셈이 된다. 미국은 일본과 한반도를 연계해 중국의 동북아 해상 세력 확장을 막아 왔는데, 한반도 주도권을 상실한다면 주요 전선 하나가 무너지는 것이다.



▶19세기 본격화 시작

한때 나치 전쟁의 이론적 근거

지정학은 19세기 말 독일의 지리학자 프리드리히 라첼에 의해 본격적 연구가 시작됐다. 하지만 지정학이란 용어를 만들어 낸 이는 라첼의 제자인 스웨덴의 루돌프 셰렌 교수다. 지정학은 독일에서 크게 발달했는데, 독일이 가진 지리적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미국 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플란은 그의 책 <지리의 복수>에서 “독일은 침략당할 개연성과 확장의 개연성을 동시에 지닌 동서쪽의 평지와 더불어, 북쪽의 바다와 남쪽의 알프스산맥에 위치해 있었고, 역사적으로 늘 지도의 모양이 둘쭉날쭉했다. 지리가 독일인들에게 삶이 되다시피 한 것도 그래서였고, 지정학이 정교하게 발달한 곳이 독일인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고 썼다.

독일의 지정학은 2차 세계대전 때 정점(?)에 달했다. 아돌프 히틀러가 일으킨 2차 세계대전 발발에 정당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나치 학자들이 기존 지정학자들의 이론을 독일 침략 정당화를 위한 이념으로 변질시켰다. 지정학이 한동안 학계에서 외면받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중 카를 하우스 호퍼란 학자의 기여(?)가 컸는데, 그는 현대 지정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핼퍼드 J 매킨더의 심장지대 이론을 교묘하게 왜곡했다.

매킨더는 1904년 발표한 ‘역사의 지리학적 중심’이란 논문에서 중앙아시아 일대를 세계 대제국들의 운명이 걸린 심장지대로 규정한 뒤, 이곳을 제패하는 국가가 핵심 국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의 이론의 핵심은 “동유럽을 통치하는 자가 심장지대를 지배하고, 심장지대를 통치하는 자가 세계 섬을 지배한다. 세계 섬을 통치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로 요약된다.

매킨더가 본 심장지대는 인도, 중국 서부, 러시아의 모스크바 동쪽, 티베트와 몽골의 고원지대, 스칸디나비아반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을 아우르는 광대한 영토지대를 말한다.

하우스호퍼는 이 심장지대 이론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재구성했다. 그는 독일 중부에서 만주 러시아 극동으로 이르는 지역을 심장지대로 보며 “독일이 세계강국이 되려면 독일과 러시아가 힘을 합쳐 거대 지역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부유럽, 유라시아, 일본을 한데 묶는 대륙블록을 주장했다.

카플란은 그의 책에서 지정학자 슈트라우스-휴페의 말을 인용해 “나치의 전쟁 기계가 정복의 도구라면 지정학은 그 도구를 사용할 사람에게 정복의 대상과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고안된 마스터플랜이었다”라고 비판했다. 매킨더가 중앙아시아 지역을 세계 패권의 핵심지역으로 본 것은 역사와 시대상을 고찰한 결과였다. 그가 살던 시절 유럽제국은 자신들의 문명을 아시아인의 침략에 맞선 투쟁의 산물로 봤다. 특히 역사 속 몽골 유목민의 유럽 침탈은 유럽에 큰 생채기를 냈다.

카플란은 “몽골족의 발흥으로 유럽이 초토화된 사실은 유럽의 아시아 인식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면서 “실제로 콜럼버스 시대까지 이어진 유럽의 역사는 대체로 아시아 스텝지대에서 벌어진 일에 따라 결정됐다”고 밝혔다. 물론 여기에 반론을 제기하는 학자도 있다. 심장지대보다는 그 주변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주변부(림랜드) 이론을 만든 니콜라스 스파이크먼은 “바다지향적인 유라시아의 외곽지대가 외부 세계와의 접촉이 용이해 더 핵심 지역”이라고 주장한다. 스파이크먼이 보는 심장지대는 노르웨이와 러시아권 극동 지역 일대, 루마니아의 카르파티아산맥과 이란, 아프가니스탄의 고원지대, 파미르고원과 만주와 한반도를 포함하는 지역을 말한다. 이 지역의 바깥에는 중동, 유럽,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중국, 일본이 이 영토지대의 외곽에 포진해 있는 형상이었다.”



▶지정학은 여전히 강대국의 관심

지정학은 한때 외면당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치와 일본의 2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 침공의 합리화 도구로 사용된 것이 컸다. 그리고 이념이 중시된 냉전시대가 지속된 것도 한 이유였다.

하지만 이념이 사라지고 세계화 시대가 오자 사정이 다시 바뀌고 있다. 세계 패권을 노리는 강대국들이 지정학적 가치를 재인식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일대일로 행보가 대표적이다. 중국이 주변국과의 마찰에도 불구하고 남중국해에 목을 매는 것은 풍부한 지하자원이 이곳에 매장돼 있다는 이유 외에, 이 지역이 중요한 국제 해상길이기 때문이다. 원유의 대부분을 남중국해 바닷길을 통해 자국으로 수입하고 있는데, 한 가지 위협요소가 있다. 원유를 실은 배가 남중국해 진입 전 동남아의 지정학 요충지인 말라카해협을 관통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말라카해협은 사실상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곳으로, 만일 미국이 이곳을 봉쇄하면 중국으로서는 자국의 에너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중국은 해상에서 팽창정책을 펴며, 미국에게 오판을 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중국의 행보에 미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피벗투아시아’ 정책을 편 것이 그 예다. 피벗투아시아는 아시아로 다시 회귀한다는 정책 방향으로 중국의 대아시아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다. 특히 당시 미국은 동남아시아에 큰 공을 들였는데, 양측의 충돌 지점이 남중국해 일대였던 것이다. 실제 양측은 최근에도 남중국해서 군사적 충돌 직전에 이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중국해 인근의 국가들도 미국과 중국 편으로 나뉘는 현상도 생겼다.

푸틴 대통령 아래서 부활한 러시아의 행보도 해양과 직결돼 있다. 7년간 진행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에 러시아가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것도 사실 바닷길과 무관치 않다.

러시아가 접해 있는 바닷길은 겨울에 언다. 이는 러시아의 지리적 취약점이다. 때문에 얼지 않는 항구에 대한 러시아의 욕망은 역사 이래로 계속됐다. 이런 가운데 시리아는 러시아가 오랫동안 지중해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삼은 곳이다. 러시아는 1971년부터 시리아 서부 항구도시 타르투스에 해군기지를 두고 지중해 진출 교두보로 삼고 있다. 지난해는 사용권한을 확대키로 시리아 정부와 합의했다. 현재 시리아 내전을 두고 러시아는 정부군을, 미국은 반군을 지지하고 있는데, 만일 반군이 승리한다면 러시아는 오랫동안 공들여 왔던 지중해 진출 교두보를 잃게 되는 셈이다.

카플란은 “과거 구 소련이 맥킨더가 주장했던 심장지대의 작은 일부였던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것도 궁극적으로는 인도양의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미국의 전략정보분석 민간기관 스트랫포를 만든 조지 프리드먼의 주장이 눈길을 끈다. 구 소련 붕괴 이후 쇠락했던 러시아가 부활한 것은 지정학적 관점으로 세계에 접근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때문이라는 것이다.

프리드먼은 그의 저서 <21세기 지정학과 미국의 패권전략>에서 “푸틴은 세계를 이념이 아니라 지정학적 관점에서 보고 있다”면서 “푸틴은 러시아가 서구와 경쟁할 수 있는 산업국가로 러시아를 만들기보다 금속·곡물·에너지·천연자원의 탐사와 개발에 더 집중했다. 이 전략은 지속가능한 경제적 기반을 확보하고 러시아를 지탱해 주었다는 점에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실제 이 같은 전략에 구 소련 붕괴 후 쇠락했던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은 현재 상당 부분 복원된 상태다. 러시아의 풍부한 자원을 통한 국제 역학관계 조성은 결과적으로 유럽이 러시아의 에너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냈다. 특히 독일의 의존은 절대적이다. 러시아의 대중동 정책도 자국의 에너지 파이프라인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푸틴이 지정학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다. 그는 2005년 의회에서 진행된 연설에서 소련의 붕괴를 두고 “수천만 명의 러시아인들을 아시아 연방 바깥에 방치한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유럽의 입장에서 푸틴의 이 같은 지정학적 입장들은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여전히 러시아의 영토확장에 대한 우려는 유럽 국가들의 걱정거리이기 때문이다. 푸틴의 지정학적 고려는 러시아의 역사적 경험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우리가 익히 아는 1812년 프랑스의 나폴레옹 침략부터 독일의 1·2차 세계대전 당시 침공까지, 유럽으로부터 직접적 공격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여기서 러시아와 유럽의 관계에서 중요한 지역이 나온다. 바로 북유럽평원 일대다.

저널리스트 팀 마샬이 저술한 <지리의 힘> 서문은 푸틴의 가상 독백으로 시작하는데 “신이 왜 러시아와 유럽 사이에 산맥을 만들지 않았는지…”라며 한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만일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 평원이 아닌 산맥이 있었다면 러시아의 안보적 측면이 더 강화됐을 것이라는 의미다. 이 북유럽평원은 유럽과 러시아 양측의 지정학적 관계에서 핵심지역이다. 북유럽평원은 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독일의 북서 지역을 아우르고 폴란드 국토의 전부를 차지하는 지역을 말한다. 이 중 핵심 지역은 폴란드다. 러시아와 유럽 양측의 세력이 각각 흥할 때 서로를 위한 침략의 관통 길이었기 때문이다. 양측에게는 양날의 검과 같은 곳이 바로 이 일대였던 것이다. 때문에 이곳을 두고 양측은 역사 속에서 계속 공방을 벌였다.

구 소비에트 연방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쯤 이 우환거리를 없애고자 이 일대를 아예 점령해 버리기도 했다. 유럽은 미국과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출범시켜 맞대응했다. 양측의 공방은 현재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올 3월 폴란드는 러시아가 폴란드 국경 인근 지역에 핵 장착이 가능한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배치하자 미국으로부터 미사일방어체계 패트리엇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총 구매 규모는 47억5000만달러(약 5조800억원)로 폴란드 역사상 가장 큰 액수의 무기 구매다. 사실 미국의 폴란드 화력 강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미국은 냉전 이후 처음으로 폴란드를 비롯한 발트해 연안 3국에 3000~5000명 규모의 여단급 병력용 탱크와 보병전투차량 등 중화기를 처음으로 배치했다. 이유는 러시아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옛 소련 위성국이었던 동유럽에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보폭을 넓히고 있다.

북유럽평원 일대는 러시아의 서진을 막는 유럽의 마지막 전선으로 여전히 지정학적 가치를 띠고 있는 것이다. 흔히들 폴란드를 한국의 상황에 비유하는데,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국가들의 역사는 수난의 역사다. 폴란드 역시 마찬가지다. 1차 대전 당시 독일·러시아·오스트리아에 합병됐고, 2차 세계 대전 때는 독일과 러시아에 의해 분할 합병됐다. 지금도 폴란드처럼 지정학 요충지로 시련을 겪는 곳은 세계 곳곳에 있다.



▶지리적 요충지는 충돌의 세계사

중국의 영토인 티베트와 신장이 그러하다. 티베트는 중국과 인도와 경계선상에 있는 곳이고, 신장은 몽골,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국경이 맞닿아 있는 지역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지정학적 가치가 둘째가라면 서러운 지역이다.

강성학 명예교수는 그의 책에서 “티베트와 신장은 중국의 제국 안정성에 있어 아킬레스건과 같은 곳이다”라고 했다. 때문에 중국은 이 두 지역 문제만 나오면 민감하다. 티베트는 중국과 인도 갈등의 핵심지역이다. 지난해 8월 양국은 1962년 이후 처음으로 무력 충돌 직전까지 갔을 정도로 최근 이곳 정세가 불안하다. 중국·인도·부탄 3개국 국경선이 만나는 티베트 둥랑 지역에서 중국군이 도로를 건설하기 시작한 게 발단인데, 인도는 4만여 명이 넘는 군을 국경으로 이동시켰고, 중국도 이에 맞대응하면서 국제적 위기가 고조된 바 있다.

팀 마샬은 “중국은 티베트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한다”면서 “이는 지정학적 안보의 틀에서 티베트 문제를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이 만일 티베트를 통제하지 못하게 되면 언제고 인도가 나설 것이다. 인도가 티베트 고원의 통제권을 얻으면 중국의 심장부로 밀고 들어갈 수 있는 전초 기지를 확보하는 셈”이라고 했다. 카플란도 “티베트가 만일 없어진다면 중국의 영토가 크게 줄어드는 반면, 인도 아대륙은 실질적으로 넓어진다”고 했다. 중국 영토의 6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신장을 둘러싼 주변 환경도 녹록지 않다. 신장은 시진핑 주석의 야심 찬 계획인 일대일로의 육상길을 완성하는 데 핵심 지역이어서 지역 정세 불안은 중국이 원치 않는 상황이다. 신장은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과 연결돼 인도양 진출을 위한 길목이기도 하고, 또 카스피해까지 가스를 보내는 거점이기도 하다. 또 아프가니스탄에서 채굴한 구리·금 등의 자원을 가져오는 관통로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대유럽 가스 수출로 인해 유럽의 러시아 자원 의존도가 심해지고 이로 인해 러시아의 대유럽 안보 지렛대가 강화되고 있듯이, 중국의 카스피해 가스 수출도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중국의 자원 안보 지배력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러시아와의 충돌도 예상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사실 지정학적으로 가장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곳은 중동이다. 지금도 각국의 이해관계 속에 충돌이 끊이질 않는다. 시리아 사태도 알고 보면 지리적 요충지로서의 가치가 바탕에 깔려 있다. 시리아는 아시아에서 지중해와 유럽 및 아프리카로 이어지는 통로에 위치한 곳으로 육상과 해상의 교통 요충지다. 시리아 리스크가 커지면 중동 전체가 불안해진다. 실제 지금 시리아 사태를 둘러싼 국면도 그러하다. 미, 러, 영, 프 등 강대국들이 시리아를 둘러싸고 자국 이기주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또 페르시아만을 끼고 있는 지정학 요충지 이란도 언제든 활화산이다. 종교적 이유가 더해져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 등 인근 아랍 국가들과 충돌이 끊이지 않는다. 북한처럼 핵개발로 서방의 제재에 시달려 온 이란은 2015년 미국과 핵협상을 타결한 이후 국제사회 무대로 복귀하며 지역 안정에 기여하는 듯했지만, 최근 다시 미국과 대립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지 프리드먼은 “이란은 자국 핵무기가 파괴되더라도 여전히 페르시아만의 지배적인 세력이 될 수 있다”면서 “설령 자국의 핵시설이 공습을 당할 경우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버리면 된다”고 말했다. 조지 프리드먼에 따르면 해상으로 운반되는 전 세계 원유 수출량의 45%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간다. 이란의 해협 봉쇄가 현실화되면 국제유가는 불안해지고 결국 세계 경제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란은 국제무대에서 한 번도 저자세를 보인 적이 없는데, 원유 세계 4위, 천연가스 세계 2위의 매장국이라는 점이 그 배경이라는 것에 이의가 없다.

북핵해법을 놓고 바쁘게 움직이는 한·미·일 안보사령탑들 /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보국장(왼쪽부터)



▶한반도의 운명은

이쯤 되면 북핵으로 시끄러운 한반도의 상황도 궁금해진다. 역사 속 지정학적 요충지들은 힘을 갖지 못할 경우 대부분 이런저런 갈등과 투쟁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 순위 11위의 발전된 국가이긴 하지만 아직 지정학적 가치를 우리 마음대로 활용할 수준은 아니라는 점에서 ‘지리’는 여전히 우리에게 불안을 주는 요소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반도의 지정학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무래도 중국이다.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것은 변치 않는 지리적 여건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카플란은 그의 책에서 “중국의 지리가 가장 불완전한 곳은 역시 정치적 국경이 변할 개연성이 높은 한반도일 것”이라며 “북한은 정권이 해체되어, 향후 수십 년간 동아시아 전역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 지역의 진정한 핵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최근 북핵 문제를 두고 북미가 가까워지면서 중국 패싱 우려가 있자 그동안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해 무시전략으로 일관했던 중국이 돌연 찰떡궁합의 모습을 연출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반도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에는 일본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최근 아베 정권의 거침없는 팽창주의 정책은 더 불안을 야기한다. 일본은 중국과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을, 러시아와는 쿠릴섬을 두고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다. 한반도 동쪽 해상은 언제든 이들 간 직접적 충돌로 불안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이 일본에 대항한 중국과 러시아의 한반도 동쪽 해상 진출을 위한 중요한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 두 국가에 대한 한반도의 영향력 유지 노력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두고 카플란은 “중국이 김정일과 김정은의 스탈린식 정권을 지지해 준 것도 그들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북한의 지리에 대한 욕심이 컸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렇다면 만일 한반도가 통일이 되면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는 우리에게 유리한 국익적 요소가 될 수 있을까.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안보 지렛대로의 가치는 더 커질 것이라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해 조지 프리드먼은 “일본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미국은 더 한국에 의존할 수 있다”면서 “향후 10년 동안 한국이 서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관계가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한 가지 예상 가능한 점은 한반도의 민족주의 성향이 강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국제무대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확고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안보 휘발성 높아진

굳이 북핵을 끼워 넣지 않아도 아시아는 곳곳에 불안요소가 가득하다. 해양패권 확보에 나선 중국과 이를 막으려는 미국, 일본의 팽창주의까지 하나같이 국제 안보 상황을 요동치게 할 것들이다. 아직 중동처럼 직접적 무력 충돌은 일어나지 않지만 언제든 군사도발이 일어나도 어색하지 않을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북핵은 이들의 경쟁을 합리화하는 수단처럼 보인다. 북핵이 아니라도 타이완 문제, 남중국해 갈등 등 휘발성 강한 현안들이 아시아 곳곳에 산재돼 있다.

로버트 카플란은 그의 책 <지리의 복수>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아시아의 현 안보 상황은 2차 대전 이후 몇 십 년 사이의 안보 상황보다 기본적으로 더 복잡하고, 더 불안정하다. 미국의 일극 체제가 약해지고, 미 해군의 규모가 줄어드는 것에 반비례해 중국의 경제와 군사력은 강해지고, 그에 따라 다극 체제가 아시아 권력관계의 특징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중국은 하이난섬에 지하 잠수함 대피소를 건설하고 대함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도 타이완에 패트리엇 방공 미사일 114기와 향상된 군 통신시스템 수십 기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일본과 한국 또한 잠수함에 특별한 역점을 두고 함대의 현대화 작업에 전면적으로 착수한 상태며, 인도도 대규모 해군을 건설 중에 있다. 아시아 국가들은 이렇듯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힘의 균형을 조정하기 위해 모든 형태의 조치들을 노골적으로 취하고 있다. 이는 군비 확장 경쟁을 벌이는 행위이고, 아시아에서 그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아시아는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을 완료하고 자신들에게 와주기를 기다리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아시아의 어떤 나라도 전쟁을 벌일 만한 특별한 동기는 갖고 있지 않지만, 시간이 갈수록 복잡성을 더해가는 군사적 대치 상황으로 인해 해상 분쟁의 위험성과-모든 나라가 끊임없이 조정 방안을 찾는-힘의 균형을 치명적으로 오판할 위험성은 커지는 추세에 있다.”

강성학 교수는 “예정된 테이블 배치에 따라 앉는 공식 저녁식사의 경우 각 손님은 선호와 관계없이 정해져 있는 다른 손님이 옆자리에 앉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국제관계에서 지리가 바로 이와 같다”면서 “식사를 할 때 대부분 옆자리에 앉은 이들과 대화를 주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처럼 지리적으로 근접한 역내 국가들은 상호작용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이웃한 강대국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는 일반 국가들에게 도망이라는 선택권은 사실상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지정학이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결국 이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 속 진리였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2호 (2018년 05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6·13지방선거 6대 관전 포인트 | ‘지방선거는 與의 무덤’ 이번엔 공식 깨질까

지정학적 위기? 기회? 격변의 한반도 첨단기술이 지리한계 뛰어넘을까

온라인 기업의 오프라인 진격… 불붙은 ‘O4O’ 전쟁

[한국 펀드매니저 대해부] (4) 가치주 | 한국판 워런 버핏을 꿈꾸는 사람들 “주가는 결국 기업가치에 수..

제 27차 국민보고대회 대한민국 미래도시전략-성장 멈춘 서울 ‘IDEA City’로 재설계


경제용어사전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