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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大 제과회사 왜 용산에 몰려 있나…일본 제과사 군납 위해 용산에 공장 해방 후 韓 기업들 매입 또는 물려받아
기사입력 2018.02.28 15:4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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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3대 제과회사라고 한다면 롯데제과, 오리온, 크라운해태 세 회사가 꼽힌다. 이 회사들은 2017년 상반기 매출액이 차례대로 1조1000억원, 8800억원, 4800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 회사들을 보면 ‘과자’라는 공통점 외에 지역적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용산’이라는 지역이다.

서울시 용산구 남영동 131-1. 크라운해태 본사 주소지다. 여기서부터 도보로 불과 15분 거리에 오리온 본사가 있다. 그리고 크라운해태 본사로부터 불과 7분 거리에는 롯데그룹의 외식사업을 담당하는 롯데지알에스 본사가 있다. 그런데 롯데지알에스 본사는 과거 롯데제과 본사가 위치해 있던 곳이다. 오늘날 한국롯데그룹의 시작이 롯데제과였기 때문에 사실상 롯데그룹의 시발점 같은 곳이다. 세 회사의 본사가 모두 용산에 위치해 있고 거리가 1킬로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그렇지 않다. 제과회사들의 모태가 된 일본 제과회사들이 용산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제과사에서 시작된 한국 제과회사들

과자라는 식품은 아주 광범위하다. 쿠키, 비스킷 등 제과제빵에서 만드는 제품부터 사탕, 초콜릿, 캐러멜, 껌 등 설탕기반의 제품까지 다양한 먹거리들이 ‘제과산업’에 포함된다. 과거에는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던 과자들이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제과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업들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부터 일본 제국주의 의도에 따라 본격적으로 산업화가 시작되었고 이는 제과산업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제과회사들을 통해 서양식 과자들이 한국에도 전파되었고, 일본인들에 의해 한국에도 제과회사들이 세워졌다. 해방 전 서울에는 8개의 제과업체가 있었다. 영강제과(남영동), 경성제과(갈월동), 장곡제과(후암동), 대서제과(용문동), 궁본제과(용산경찰서 앞), 기린제과(공덕동), 풍국제과(삼각지), 조선제과 여덟 곳인데 대부분 일본인들이 경영하던 곳이다. 대부분 지금의 용산 지역에 있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추정된다.

첫째는 일제시대 때 용산이 서울의 대표적인 일본인 거주지였기 때문이다. 용산역을 기준으로 왼쪽에 모토마치(지금의 원효로 일대)라고 부르는 일본인 거주지가 있었다. 제과회사는 대부분 일본인이 경영했고, 또 그 고객도 소득 수준이 높은 일본인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군납품 때문이었다. 용산역을 기준으로 오른쪽, 지금 미군 기지가 있는 위치는 과거 일본군 주둔지였다. 많은 제과회사들이 일본군에 납품을 했는데 실제로 용산역 일대는 당시 서울의 대표적인 공장지대이기도 했다.

그런데 해방이 되고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서울의 제과업체들은 주인을 잃게 된다. 우리나라의 다른 산업들과 마찬가지로 이 회사들은 한국인들에게 넘어가는데 이때 만들어진 한국제과회사들이 많다. 이 중 크라운해태와 오리온은 일본기업들이 처음 세워진 위치에 여전히 본사를 두고 있고, 롯데는 1967년 일본에서 한국에 진출하면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용산에 본사를 뒀다. 그래서 용산은 우리나라 과자산업의 상징과도 같은 지역이 됐다. 지금도 용산을 과자냄새로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이곳에 과자회사들의 공장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3대 제과회사들은 용산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그 역사를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다른 길을 걸어왔다.

▶크라운해태 | 과자로 재벌이 된 해태, 한길만 걸어온 크라운에 먹히다

크라운해태제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크라운과 해태라는 두 가지 브랜드를 가진 제과회사다. 크라운제과가 2005년 해태제과를 인수하면서 만들어졌다.

해태제과는 1945년 해방직후 일본인들이 경영하던 영강제과를 이 회사의 조선인 직원이었던 박병규 씨 등 창업주 4인이 물려받으면서 시작되었다. 밀크카라멜, 연양갱 등의 히트 상품을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제과회사로 자리를 잡았다. 1977년 박병규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아들인 박건배 사장이 2대 회장이 되었고, 이후 해태는 전형적인 우리나라 재벌의 길을 걷게 된다. 다양한 산업에 진출하면서 몸집을 키운 것이다.

1978년 무역업(종합상사)에 진출했고, 1979년 전자, 1983년 금속업, 1990년 건설 등 사업분야를 계속 확대했다. 하지만 1997년 IMF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재계 순위 24위의 해태그룹은 순식간에 해체된다. 가장 알짜였던 해태제과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팔렸다가 2005년 크라운제과에 인수된다. 4위인 크라운이 3위인 해태를 인수하게 된 것이다.

크라운제과는 1947년 서울시 중림동에서 ‘영일당제과’로 시작했다. 크라운제과 창업주인 고 윤태현 회장은 1999년 방영된 드라마 ‘국희’의 모델이기도 하다. 윤 회장과 크라운제과의 성공 스토리에서 영향을 받아 여성기업인이 주인공인 ‘국희’라는 드라마가 나왔다. ‘산도’ ‘조리퐁’ 등의 히트상품을 둔 크라운제과는 해태제과와 달리 식품이라는 카테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제과업에 집중했다. ‘크라운베이커리’가 2013년 문을 닫는 등 실패사례도 있지만 해태제과를 인수하면서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제과 빅3가 되었다.

남영동에서 출발한 해태제과는 1961년 영등포구 양평동으로 본사와 공장을 옮기지만 공장자리는 그대로 남겨놓았다가 1993년 사옥을 다시 짓고 이곳으로 본사를 이전한다. 해태제과를 인수한 크라운제과가 이 남영동 해태제과 본사를 통합해 회사의 본사로 삼으면서 크라운해태제과 본사도 용산으로 오게 됐다.

구 해태 남영동 공장



▶오리온 | 과자로 일어난 재벌, 과자로 돌아오다

오리온도 역사를 거슬러 오르면 일본인이 운영하던 풍국제과가 나온다. 그러나 해태제과와 다른 점은 이를 일본인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이미 한국인이 경영하던 회사를 오리온 창업주가 샀다는 점이다.

동양그룹의 창업주는 함흥 출신의 사업가 이양구 회장이다. 그는 이건희 삼성그룹 창업자와 동업하기도 했는데 풍국제과를 사들인 후에 1956년 동양제과공업으로 이름을 바꾼다. 그는 비슷한 시기에 시멘트 사업에 진출하는데 제과와 시멘트는 이후 동양그룹의 양대 축이 된다. 이양구 회장에게는 두 명의 딸이 있었는데 첫째는 이혜경, 둘째는 이화경이다. 첫째 사위는 검사 출신인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이고, 둘째 사위는 화교인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이다.

이양구 회장은 첫째 사위에게는 시멘트와 금융산업을 물려줬고, 둘째 사위에게는 제과와 미디어산업을 물려줬다. 동양그룹과 오리온그룹으로 나눠진 것이다. 하지만 동양그룹은 2013년 동양증권 사태로 해체됐다.

오리온 그룹은 미디어산업(OCN, 메가박스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결국 큰 성과를 보지 못하고 제과에 집중한다. 특히 화교 출신인 담철곤 회장의 영향 때문인지 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다. 국내에서는 롯데제과에 밀려 2위지만 해외사업까지 합치면 롯데에 밀리지 않는다. 오감자와 초코파이는 중국의 국민과자 중 하나다. 오리온은 구 풍국제과 위치에 여전히 본사가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공장까지도 여전히 있다. 이미 주변은 주상복합빌딩과 아파트로 개발되어 있는데 한가운데에 공장이 남아있다.

▶롯데 | 일본 제과회사에서 한국 4대 재벌로

롯데제과는 1967년 재일동포 신격호 현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용산에 설립한 회사다. 롯데그룹에서는 이를 한국롯데의 시작으로 보기 때문에 롯데제과와 롯데그룹은 지난해 같이 창립 50주년을 맞기도 했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1948년 6월 일본에서 제과회사인 롯데를 만든다. 껌으로 큰 성공을 거둔 그는 일본의 재벌이 되고 지금도 롯데는 일본을 대표하는 제과회사 중 하나다.

1967년 한일협정으로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기업의 투자길이 열리면서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한국에 대한 투자를 시작한다. 일본에서 성공을 거둔 제과업부터 한국에서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선진국 글로벌 기업이 한국에 진출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자금이 풍부한 롯데는 곧 제과 이외의 여러 사업에 진출한다. 식품, 호텔, 화학, 건설, 유통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대하면서 1980년대에는 한국 10대 그룹에 들어간다. 1990년대 이후에는 금융, 홈쇼핑, 술, 렌터카 등까지 인수하면서 한국 4대그룹에 들어간다. 지금 롯데의 한국사업은 일본사업보다 20배 이상 큰 규모가 됐다.

제과로 시작한 크라운해태와 오리온이 결국 제과로 돌아온 것에 비해 롯데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규모가 상당한 글로벌 기업이 됐다. 현재 유통, 식품, 화학, 호텔·서비스 등 4개 사업부문(BU)으로 나눠진 롯데는 유통, 식품, 호텔·서비스 부문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 중 하나이며 화학산업에서도 높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주주인 오너가문의 현 상황을 본다면 롯데는 가장 불행한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신격호 회장의 두 아들이 경영권을 두고 2014년 ‘형제의 난’을 벌였을 뿐만 아니라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면서 2월 현재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둘째 아들)이 구속되는 일까지 겪었기 때문이다.

신격호 회장은 1967년 용산에 롯데제과 공장을 만들지만 곧 1969년 양평동에 공장을 짓고 본사를 옮기게 된다.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해태제과와 함께 양평동에 자리잡게 되는데, 해태제과가 1993년 공장을 천안으로 옮긴 데 반해 롯데제과는 여전히 영등포(선유도역 인근)에 공장이 있다.

▶SPC | 한국 대표 제빵기업이 된 동네빵집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이 1967년 당시 사용하던 롯데제과 집무실. 지금은 롯데지알에스 임원회의실이 됐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제빵기업을 꼽는다면, 당연히 ‘파리바게뜨’로 유명한 SPC다. 제과제빵은 모두 밀가루로 만들지만 이스트의 사용유무에서 갈린다. 이스트를 사용하면 제빵, 사용하지 않으면 제과다. 대량생산을 하는 식품공업에서도 제과기업과 제빵기업의 영역은 명확하게 나눠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롯데제과 정도만 빵을 만들지만, 시장점유율은 SPC 쪽이 월등히 높다.

SPC의 모태는 1945년 북한 옹진에서 고 허창성 회장이 문을 연 상미당이라는 빵집이다. 지금도 남아있는 군산 이성당(1945년 설립), 서울 장충동 태극당(1946년 설립)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다. 상미당은 1948년 서울로 자리를 옮기게 되는데 여기서도 성공을 거둬 1959년 ‘삼립산업제과’로 이름을 바꾸고 빵을 대량생산하기 시작한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삼립’빵이다.

허창성 회장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두 아들이 서로 제빵산업 내에서 경쟁을 하게 만든다. 첫째아들인 허영선 씨에게는 삼립식품을, 둘째아들인 허영인 씨에게는 훨씬 규모가 작은 회사인 샤니를 물려준다. 하지만 나중에는 상황이 역전돼 삼립식품은 1997년 부도를 맞아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허영인 회장의 샤니가 2002년 삼립식품을 인수해 되찾아 온다.

허영인 회장을 일으켜 세운 것은 ‘파리바게뜨’다. 1986년 샤니에서 만든 고급 빵집인 ‘파리크라상’은 1988년부터 본격적으로 빵집 프랜차이즈를 시작한다. 바로 ‘파리바게뜨’다.
이후 ‘뚜레쥬르’ ‘신라명과’ ‘크라운베이커리’ 등 기업과 경쟁해 1997년 업계 1위에 올랐다. SPC 그룹은 제빵산업뿐 아니라 외식 프랜차이즈 분야의 강자다. 1985년 만들어진 비알코리아는 국내에 처음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알렸고, 이후 SPC 그룹은 던킨도너츠, 카페 파스쿠치, 잠바주스, 쉐이크쉑버거 등의 외국 브랜드를 국내에 가져와 큰 성공을 거뒀다.

[이덕주 매일경제 유통경제부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0호 (2018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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