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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디플레에 일본 사회에서 대박 난 비즈니스
기사입력 2017.03.10 10:5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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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가슴이 답답해지는 몇 가지 팩트부터 나열한다. 일본의 실질 GDP 증가율은 1988년부터 3년 연속 5%를 상회했다. 이른바 버블시기였다. 하지만 버블의 정점이었던 1991년 2.9%로 떨어졌고, 1992년 0.3%에 이어 1993년에는 -0.2%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유명한 ‘버블붕괴’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일본 GDP는 +2%~-2%권 내에서 맴도는 제로성장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그런 장기 디플레를 두고 우리는 ‘잃어버린 25년’이라고 부른다.



한국 실질 GDP 성장률은 2010년 6.5%의 높은 수준을 기록한 후 2011년 3.7%로 급락했고 2012년에는 2.3%로 더 낮아졌다. 2013년 이후 잠시 3%대로 올라섰지만 올해는 다시 2%대로 추락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절대 수준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일본의 20년 전 모습과 비슷한 흐름이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지 않는 명목 GDP 성장률로 보면 거의 정확히 20년의 시차를 두고 한국이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

노인부양비율이라는 지표가 있다. 65세 이상 인구를 15~64세의 생산가능인구로 나눈 비율이다. 한 국가의 고령화 정도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1990년대 초 10%대 초반이었던 일본의 노인부양비율은 10년 새 20%대로 급등했고, 한국은 2010년부터 같은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GDP갭이라는 지표도 있다. 실제성장률에서 잠재성장률을 뺀 수치로 국가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능력과 요소들을 충분히 발휘해서 생산을 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이 수치가 마이너스라면 자신의 잠재 능력만큼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일본의 경우 1992~1995년 4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한국 역시 2011~2015년 5년 연속 마이너스를 이어갔다.

물가상승률은 한 나라의 경제가 활력을 갖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지표다. 일본은 1992년 1%대로 처음 들어간 후 1995년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한국은 2012년 첫 1%대를 기록했고 2014년 0%대로 들어왔다. 아직 마이너스권으로 내려가지는 않았지만 시간문제인 듯하다. 경제회복을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효과 좋은 일이 돈을 푸는 일이다. 이를 위해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낮춰 돈이 돌도록 한다. 일본 중앙은행은 버블 붕괴가 시작되자 5% 이상이었던 기준금리를 꾸준히 내렸고, 그 결과 1995년 4월 처음으로 1%대로 진입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이보다 정확히 19년 11개월 후인 2015년 3월 1%대로 내려갔다. 금통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조동철 KDI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015년 여름 한 세미나에서 일본의 장기 디플레를 설명하며 “20년의 시차를 두고 무서울 정도로 한국이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쯤 되면 우리 국민들은 장기 디플레에 대비해야 한다. 정부는 우리 경제가 일본을 답습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겠지만 개개인의 주체는 자산 관리, 취업, 비즈니스 등 다방면의 경제활동에서 장기 디플레를 염두에 두고 전략적 접근을 해야 한다. 특히 직접 창업을 하거나 투자를 하겠다면 저성장·고령화 사회에 포커스를 맞출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잃어버린 25년’에도 대박이 난 비즈니스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중고명품 백화점 코메효 성공비결

신주쿠산초메에 위치한 중고명품백화점인 코메효의 실내는 여느 백화점 못지 않게 깔끔하다.

사실 우리 기업과 산업에는 일본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 한국의 반도체, TV, 자동차 등 산업은 일본에서 배워 시작했다. 일본에서 불황 속에서도 성장한 산업은 1인 소비 행태를 활용한 비즈니스이다. 일본인들은 장기불황을 겪으며 자연스레 자기만족을 우선으로 하는 합리적인 소비에 눈을 떴다. 부정적으로 보자면 외톨이 소비지만 좋게 말하면 실속형 소비라고 할 수 있다. 이 대목은 이제 한국에서도 거의 일반화하고 있다. 혼밥, 혼술, 혼영 등의 신조어가 이를 증명한다.

쇼핑에서도 합리적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일본 사람들도 한국 못지않게 명품에 매몰된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소득이 줄면서 비싼 명품을 살 여력이 부족해졌고 자연스레 절약 정신이 강해졌다. 제품만 튼튼하다면 “남이 쓰던 물건인데”라는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새 제품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 가격은 절반에 불과하다면 당연히 중고품을 사는 사람들이 일본인이다.

이를 활용한 사업이 중고명품 백화점이다. 대표적인 업체가 코메효(コメ兵)다.

신주쿠산초메에 위치한 중고명품백화점인 코메효의 입구

도쿄 신주쿠의 중심 상업지인 신주쿠 산쵸메를 비롯해 전국 25곳에 매장이 있다. 샤넬·루이비통·에르메스 등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의 가방과 잡화, 의류, 롤렉스·까르띠에 등 명품시계, 각종 보석류 등 명품의 중고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1층에 들어서면 각종 보석과 액세서리들이 진열장 속에서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 중고품이라고 해서 제품이 허접하거나 흠집이 많은 것도 아니다. 매장 또한 백화점 못지않게 화려하면서도 깔끔하다.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가면 백화점 명품코너라고 해도 속아 넘어갈 정도다. 이런 매장이 8층까지 이어진다. 지하 1층은 중고 명품을 팔려는 사람들을 위한 매수센터로 한 개 층 전부를 사용한다. 분야별 전문 담당직원과 상담을 거쳐 매수 가격이 결정된다.

코메효는 2010년 247억엔이었던 매출액이 2014년에는 431억엔으로 급증했다. 4년 만에 2배 가까이 는 것이다. 순이익은 같은 기간 5억엔에서 20억엔으로 4배나 뛰었다.

중고품 매매의 비즈니스 모델은 간단하다. 최대한 ‘싸게’ 사서 ‘비싸게’ 팔면 된다. 하지만 코메효는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것이 비즈니스 원칙이다. 물론 이익이 나는 선에서 얘기다. 밑지면서 파는 장사는 없다. 하지만 최대한 이익을 내야 하는 비즈니스의 기본과 반대되는 원칙을 고수하는 이유는 ‘최대한 사람이 많이 모여야 한다’는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한 경험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려면 우선 가격은 둘째 치고 물건이 다양하고 많아야 한다.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야 그 매장에 들어서는 법이다. 대형화를 추구하려면 일단 중고품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하며, 그러려면 다른 곳보다는 한 푼이라도 더 쳐줘야 사람들이 자신이 쓰던 샤넬 핸드백을 가져오는 법이다.

코메효의 매장을 유심히 보면 판매점보다 매수센터가 더 많은 이유가 이 때문이다. 코메효의 모든 매장 안에는 매수센터가 같이 설치돼 있다. 아오야마점 등 도쿄 내 몇몇 매장은 1층에 매수센터를 뒀다. 그 외 시부야·하라주쿠·유락초·이케부쿠로·키치조지 등 5곳에는 매수만 전문으로 하는 별도의 매장이 있다. 직접 매장을 찾아가지 않고 물품만 택배로 보낸 후 가격을 산정해 판매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택배키트를 신청해서 받은 후 물건을 담아 보내면 전문가가 가격을 평가해서 웹사이트에 올려놓고 매각희망자는 이를 확인한 후 판매를 승인하면 자동으로 다음날 대금이 입금된다.

코메효의 매입 비결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일본 유수의 경제주간지인 동양경제의 2015년 5월 5일 호에 나온 분석 기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일단 코메효는 매입담당 바이어의 육성에 심혈을 기울인다.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좋은’ 가격에 팔린 물건을 골라내는 눈을 키워준다. 대외적으로는 높은 가격에 사들인다고 선전하고 있으며 실제 그렇게 하지만 그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이익이 날 수 있는 최대한의 가격을 산정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들 사이에는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다. 회사는 매입률과 총이익률을 지표화해 경쟁을 부추긴다.

손님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바이어는 한 번 결정한 매입가격을 절대 바꾸지 않는다고 한다. 손님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서다. 바이어 중에는 젊은 사람도 많지만 나이가 지긋한 베테랑도 상당수 있다. 이 또한 신뢰 확보가 목적이다.

카레 한그릇을 한화로 약 500원에 파는 어느 음식점 앞에 직장인들이 장사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다.

▶ 편의점형 렌터카 사업 돌풍

도쿄 시내를 다니다 보면 한국보다 깨끗한 대기를 보면서 놀라게 된다. 바다와 접해 있어서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오염물질이 고여 있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도쿄와 서울의 공기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다르다. 살면서 느낀 가장 큰 이유는 교통정책이다. 도쿄의 교통정책은 가급적 자가용이 아닌 대중교통, 특히 전철을 이용하라는 것이 기본 철학이다. 도쿄는 차량을 갖고 들어가는 것은 물론 소유하는 데도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이런저런 귀찮은 일들이 수두룩하다.

이러다 보니 굳이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는 집들이 적지 않다. 차량이 필요할 때는 렌터카를 이용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렌터카 산업이 상당히 발전된 곳이 일본이다. 도요타·닛산 등 자동차회사가 직접 운영하는 렌터카 업체뿐 아니라 닛폰·재팬·오릭스 등 전문 업체들도 많다. 하지만 렌터카라는 것이 이용하기에 그리 편하지만은 않다. 일단 렌터카 영업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자동차를 픽업하고 반납하기 위해서는 집이나 사무실에서 전철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여시간도 최소 6시간 혹은 12시간부터 시작한다.

때문에 일본에서는 1~2시간 정도 가볍게 차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겨냥한 카셰어링 사업도 번창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본격화하기 시작했지만 하루가 넘는 장시간 이용할 경우 비용이 꽤 올라간다는 문제가 있다. 이런 단점을 모두 해결해 편리함과 가격 모두를 만족시키겠다는 렌터카 업체가 일본에 새로 등장했다. 이름도 ‘싱글벙글’이라는 의미의 ‘니꼬니꼬렌터카’이다. 니꼬니꼬렌터카는 기본적으로는 렌터카 업체이다. 다른 점이라면 주유소나 자동차정비업소, 자동차용품판매점 심지어 서점 등에서 차를 대여한다는 것이다. 또 차량은 일반 렌터카 업체 대부분이 생산된 지 1~2년 안의 신차를 쓰지만, 이곳은 최소한 5년 이상 수령이 된 중고차를 사용한다. 집에서 걷거나 자전거로 10분 안에 차량 대여장소를 찾아갈 수 있는 생활근린형이자 렌트비가 저렴한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편의점형 렌터카’를 지향한다.

주유소라면 동네마다 한두 개씩은 있다. 카센터도 마찬가지로 동네 어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니꼬니꼬렌터카는 이점에 착안했다. 요코하마에 있는 본사인 랜터스에서 가맹점을 모집하는 프랜차이즈 형식의 렌터카이다. 차량을 몇 대 보유하고 있는 업체이거나 주유소처럼 부지공간에 여유가 있다면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한 후 영업소로 가입할 수 있다. 그러면 고객모집 및 배분, 차량 제공 및 관리, 보험 관리, 직원 교육 등은 본사에서 제공하고 영업소는 손님이 찾아오면 차량을 대여해 주고, 받는 기본적인 서비스만 제공하면 된다.

기존 사업체와 인력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차량을 확보하는 것 외에는 추가적인 투자도 많이 들지 않는다. 자연히 손익분기점도 상당히 낮다. 치열한 경쟁으로 갈수록 수익성이 떨어지는 주유소들에게는 부대사업으로 충분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렌터카 이용고객도 편리하고, 가맹점도 돈을 버는 윈윈구조 덕분에 일본에서는 최근 몇 년 새 니꼬니꼬렌터카와 같은 저가형 렌터카 업체들이 빠르게 성장했다. 닛케이비즈니스 조사에 따르면 2014년 4월 기준으로 일본 5대 렌터카업체의 영업소 수는 3700개로 2008년보다 소폭 증가했을 뿐이지만 저가 렌터카 업체 4개사의 경우 2100개로 4배나 급증했다. 그중 선두주자가 1300개 이상 영업소를 보유한 니꼬니꼬렌터카이다.

이 회사의 최대강점은 렌터카 이용 비용이 저렴하다는 것이다. 배기량 1350cc 이하 소형차량을 6시간 이용할 경우 기본요금이 2100엔에 불과하다. 24시간 이용하더라도 3360엔이다. 같은 조건으로 일반 렌터카 회사를 이용할 때보다 절반 수준이다. 일반 렌터카 회사의 경우 내비게이션이 기본옵션이고, 니꼬니꼬렌터카는 540엔의 추가요금을 내야 한다. 보험 등 부대비용까지 감안해 총 비용으로 비교를 하면 1500cc급 준중형 승용차를 24시간 빌릴 경우 일반 렌터카는 1만2000엔선, 니꼬니꼬렌터카는 7000엔선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일단 차량선택과 공급체계이다.

중고차 공급은 본사가 담당한다. 선택은 철저히 성능 중심이다. 중고차 매장에 가면 아직 주행성능이 멀쩡한데도 차종, 형식, 연식, 색깔 등 다른 요인 때문에 인기가 없고 가격도 싼 차량들이 적지 않다. 본사는 이런 차량을 물색해 영업소에 매입을 주선한다. 대량매수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저렴한 구매가 가능하다. 회사 측은 차량 매입가격을 평균 20만엔 정도에 맞추고 있다. 한국 중형급 차량 중 최소한 10년 이상 지난 가격이다. 이런 차량을 매입해 정비를 한 후 렌터카로 운영한다. 회사 측은 “20만엔 정도에 매입한 차량이 매달 5~15만엔을 벌어들이는 것이 사업의 기본 구조”라고 설명한다.

이용자 입장에서도 렌터카 이용은 아주 간단하고 편리하다. 예약은 인터넷으로 클릭 몇 번 하면 끝이다. 니꼬니꼬렌터카의 홈페이지(www.2525r.com)에 들어가 회원으로 가입하면 바로 이용할 수 있다. 왼쪽 상단에서 빈차 검색란에 자신이 픽업을 원하는 지역과 희망 사용기간, 차량 등급 등을 기입한 후 검색을 하면 원하는 조건에 맞는 렌터카를 갖춘 영업소 목록이 올라온다.

일본 유통가의 가장 중요한 손님은 연금과 저축으로 넉넉한 현금을 보유한 노인들이다.

▶ 효도를 대체하는 일본의 실버산업

일본이 노인사회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만큼 이들을 겨냥한 실버산업도 번창해 왔다. 일본 사회의 걱정은 단순히 노인 인구가 많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2014년 후생노동성 산하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는 일본은 65세 이상 고령자가 세대주인 ‘고령세대’가 중심을 이루는 ‘독거고령화’ 사회가 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나이가 드는 것도 힘든 상황인데, 혼자서 살아가는 노인이 중심을 이룬다는 얘기다. 저출산·고령화에다 젊은 세대의 미혼 또는 만혼, 수명 연장 등이 겹친 결과이다. 연구소는 2010년 독거 고령자가 498만 명이었지만 2035년에는 762만 명으로 53%나 늘어난다고 예측했다. 고령세대 중 배우자나 자식 없이 혼자서 생활하는 독거고령세대도 전체의 37.7%가 될 전망이다.

이런 인구와 거주 구조의 변화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은 무엇일까. 일단 ‘고독사’가 더 많아질 것이다. 노쇠하고 병이 들어도 가족의 간호를 받지 못한 채 쓸쓸히 혼자서 생을 마감하는 노인들이 일반화한다는 얘기다.

사회가 이렇게 된다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노인들은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고 편안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스스로 준비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일본의 실버산업은 단순히 노인들을 위한 아이디어 상품을 내놓거나 노인들만을 위한 별도의 서비스를 준비하는 초보적인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독거노인의 사회’, ‘고독사의 사회’라는 사회구조적 변화에 맞춰 필요한 서비스와 제품을 개발하고 제공하는 것이 일본 실버산업의 지향점이다. 그 근저에는 효도를 대체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 깔려 있다. 이를 통해 노인들이 보다 아름답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새로운 산업을 형성하면서 이윤도 추구하게 된다.

대표적인 분야가 ‘슈카츠(終活)’이다. 말 그대로 끝을 준비하는 활동이다. 이를 도와주는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가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엔딩노트’라는 공책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서점의 스테디셀러가 됐다. 2011년에는 이를 소재로 한 <엔딩 노트>라는 영화도 만들어져서 일본사회를 눈물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여생을 마감하면서 미리 준비해야 하는 내용들을 스스로 정리하는 노트이다. 이름만 달리해서 여러 종류의 엔딩노트가 판매되고 있다. 가격은 대부분 1000엔 안팎.

안에는 자신의 가족관계에 상속문제, 유언 등을 미리 정리해서 기록해 놓을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상실되거나 의식을 제대로 차리지 못한 채 생을 이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때 가서 간병, 장례절차, 묘지 선택, 재산 처리 등을 자신의 의지대로 정리할 수 없으니 미리 준비해놓기 위한 수단이다. 각종 통장, 신용카드, 가입보험 내역, 가족과 친지 이름과 연락처 등 신변관련 정보를 꼼꼼하게 정리할 수 있는 코너도 있다. 갑자기 정상적인 의식이 불가능해질 때 주변의 누군가가 엔딩노트를 보면서 자신의 나머지 인생을 정리해 주기를 바라면서 적어 내려가는 것이다.

‘하카토모(墓友)’ 프로그램도 흥미롭다. 한국말로 무덤친구이다. 같은 방식의 장례를 선택해 같은 자리에 묻힐 노인들이 사후친구가 된다는 뜻이다. 그런 노인들을 모아서 생전에 미리 친해지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여행도 다니고 정기적으로 회합을 가지며 말동무도 하는 식이다. 주로 종교단체나 기업, 사회적기업(NPO법인) 등이 운영한다. 가족과 떨어져서 사는 고독한 노인들이 사후에 함께할 친구를 만들어가는 일본사회의 독특한 문화이다.

슈카츠를 준비하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투어 프로그램도 성행중이다. 집에 아침마다 배달되는 신문에 끼워져 오는 광고전단 중에는 슈카츠 투어를 선전하는 광고지가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도쿄역이나 신주쿠역에 모여 버스 한 대에 올라탄 노인들이 도쿄 인근의 장의시설과 묘지 몇 군데를 둘러보고 저녁에는 편안한 온천장에서 근사한 저녁식사와 온천을 즐기는 것이 프로그램의 중심이다. 내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당일코스는 참가비가 1인당 8000~1만엔 정도이다.

일본 금융회사들도 슈카츠라는 새로운 문화 현상을 활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금융기관들이 주최하는 슈카츠 세미나에는 상속의 방법이나 유언장 작성 등을 듣기 위한 노인들도 늘 성황을 이룬다.
사실 생을 마감하면서 가장 고민되고, 세심히 신경 쓰게 되는 분야가 상속 문제이다. 어느 나라건 상속 문제는 자식들 간에 심한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자신이 평생 피와 땀으로 얻어낸 소중한 자산을 전문가의 도움 없이 잘 처리할 수 있다면 이것만으로도 편안한 마음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임상균 매일경제신문 부동산부 기자(전 도쿄특파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8호 (2017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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