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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펀드매니저 대해부] (2) 성장주上 ‘클라스는 영원하다’ 건재한 펀드의 전설들
기사입력 2018.01.29 15:56:21 | 최종수정 2018.01.30 10:4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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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펀드시장은 사람으로 치면 어느덧 50이란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다. 1968년 11월 자본시장육성에 관한 법률, 1969년 8월 증권투자신탁업법이 순차로 공포되고 1970년 공기업인 ‘한국투자공사’가 설립되어 같은 해 5월 20일 국내 최초의 펀드 ‘증권투자신탁’을 내놓으며 역사는 시작됐다. 외환위기 IT버블 등 극심한 부침과 세파를 자양분 삼아 성장한 국내 펀드시장의 역사의 산증인은 바로 중심에선 성장주 펀드매니저들이다. 위기의 순간에도 한국경제의 성장을 확신하며 자본시장을 이끌어온 1세대 성장주 펀드매니저들은 한국 자본시장의 중심에 지금도 당당히 서 있다.







1970~80년대 펀드 태동기

한투·대투·국투 ‘三國志’


한국 펀드시장의 토대를 만든 주춧돌은 3투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3투신은 1974년 설립된 한국투자신탁, 1977년 대한투자신탁, 1982년 국민투자신탁을 지칭한다. 3대 전업 투신사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자산운용업이 시작된다. 이후 1989년 5개 지방 투신사가 설립되어 선전했지만 3투신의 위용과 힘의 균형은 199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과거 한국투자신탁과 대한투자신탁 사옥

(왼쪽부터)‘라이플장’ 장영상 전 웅진루카스투자자문 대표 , ‘프로이드리’ 이춘수 전 슈프림에셋투자자문 대표, ‘장대포’ 장인환 전 KTB자산운용 대표이사 부회장

가히 소설 삼국지에 비견될 만했다. 3투신 간의 명성은 상대적인 수익률 경쟁을 통해 매겨졌고, 부진을 겪었던 회사는 ‘인사공포’에 시달려야 했을 정도였다. 주식 및 펀드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부족했던 1970년대 중반 채권에만 투자하는 공사채형 펀드를 새롭게 도입하며 경쟁했다. 1975년에는 ‘단위형 투자신탁’, 1976년 4월엔 ‘재형주식 펀드’가 잇따라 도입되는 등 차츰 펀드 시장의 면모가 갖춰졌다.

단위형 투자신탁은 기존의 ‘추가형’과 달리 추가 납입을 할 수 없고 중도 환매 또한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펀드였다. 투자신탁의 대중화를 꾀한 재형주식 펀드는 정부 지원에 따라 원금을 일정 부분 보전해 주고, 금리를 추가로 더 얹어주는 파격적인 상품이었다.

3투신의 경쟁이 본격적으로 가속화된 것은 1980년대 후반 주가가 크게 상승한 데 힘입어 주식형 펀드시장이 크게 성장하면서부터다.

1995년부터 3년간 연평균 70% 넘게 주가지수가 상승하며 1989년 4월 1000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 시기 다양한 펀드들이 전성기를 구가하며 3투신을 중심으로 주식운용역들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당시에는 펀드매니저 개념이 없어 운용역이 일반적인 용어였다.)

마치 삼국지 장수들이 일기토(一騎討)를 펼치듯 펀드매니저들은 서로 수익률 경쟁에 나서며 유명세를 떨쳤다. 대표적인 인물이 ‘피스톨 박’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박길종 당시 국민투자신탁 이사다. 과녁을 정확히 맞힐 정도로 수익률이 좋은 종목을 발굴한다는 의미로 지어진 별명이다. 그는 오랜 기간 제일은행에서 수천억원대 펀드를 운용하며 숱한 화제를 뿌린 인물로 국민투자신탁에 스카우트되며 대표 펀드매니저로 거듭났다.

한국투자신탁에는 ‘라이플 장’ 장영상 전 웅진루카스투자자문 대표가 있었다. 마치 멀리서 과녁을 맞히듯 장기투자에 능하다는 데서 나온 별명이다. 장 대표는 본명보다 장총(長銃)을 뜻하는 ‘라이플 장’이라는 별칭으로 업계에서 더욱 유명하다. 당시 외국인들이 살 만한 종목을 미리 매수해 장기보유함으로써 높은 수익을 올리며 명성을 떨쳤다.

피스톨이나 라이플처럼 총이나 대포 미사일 등을 딴 별명은 운용규모를 바탕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대한투신 펀드매니저였던 서임규 전 새턴투자자문 대표는 피터 리치만큼 주식을 잘 운용하다고 해서 ‘서터린치’로 불리기도 했다. 자신의 성에 피터린치의 이름을 합성한 별명이다. 이외에도 서 씨는 또 ‘한국의 소로스’라 해서 ‘서로스’라는 별명도 동시에 가졌다. 요즘처럼 펀드매니저들이 실명을 내걸고 펀드를 운용하지 않았던 때라 막대한 자금을 주무르며 주식을 사고팔면서도 정작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을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한때는 증권가 최대 관심거리가 되기도 했다.

기네스북에 오른 국내 1호 펀드는? 국내 펀드의 역사는 약 48년이다. 1970년 5월 20일 국내 최초의 펀드가 탄생했다.

당시 한국투자개발공사가 설정한 증권투자신탁(이후 안정성장 주식투자신탁 1월호로 개명)이다. 한국투자공사, 대한투자신탁, 하나대투증권, 하나USB자산운용 운용사가 변하는 동안 펀드는 이름을 ‘하나UBS대한민국1호증권투자신탁’으로 바꿔 유지되고 있다.

하나UBS자산운용이 2010년 국내 최장수 펀드의 의미를 살려 붙인 펀드명이 현재의 이름이다. 장수펀드로 인정받으며 1997년에는 한국 최장수 펀드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이 펀드는 한국펀드시장 역사를 고스란히 함께 해온 셈이다.

이 펀드는 신탁재산 60% 이상을 주식 및 주식관련 파생상품에 투자하고, 업종별 애널리스트들의 조사 및 분석을 바탕으로 저평가된 종목을 발굴한다.

현재(1월 20일 기준) 순자산은 69억원으로 운용규모는 크지 않지만 6개월 수익률 5.48% 1년 23.08%로 준수하다. 설정 이후에는 604.79%를 기록했다.

3투신은 펀드매니저 엔터테인먼트?

각 분야로 뻗어나간 스타운용역들

3투신 중에 맏형이라 할 수 있는 한국투자신탁은 펀드매니저 사관학교라 불릴 정도로 스타매니저들을 다수 배출했다. 드림팀으로 불렸던 한국투자신탁은 현대투신시절 바이코리아 열풍을 일으켰던 강신우 KIC부사장을 비롯해 본격적인 1세대 스타 펀드매니저로 유명한 ‘드림 박’ 박종규 전 우리자산운용 대표, 김석규 전 GS자산운용 사장, 김영일 전 한국투자신탁 CIO 등을 배출했다. 기라성 같은 매니저들이 포진했던 한투 주식운용부 안에서도 서로 경쟁하며 업계 최고 수익률로 이름을 날렸다. 오성식 템플턴자산운용 대표, 김기봉 전 레이크투자자문 주식부문 부사장, 장동헌 대한지방행정공제회 CIO 등은 업계에서 인정받는 운용역으로 성장한 케이스다. 랩어카운트 돌풍을 일으킨 권남학 케이원투자자문 사장, 김상백 레오투자자문 사장, 안효문 전 에이케이투자자문 사장 등은 한투 펀드매니저 출신으로 자문업계에서 자리를 잡았다.

대한투자신탁은 이춘수 전 슈프림에셋투자자문 사장과 이재현 제이앤제이자산운용 사장이 대표적인 스타펀드매니저로 통한다. 이춘수 사장은 일명 ‘프로이드 리’로 불리며 명성을 떨쳤고, 이재현 사장은 KTB자산운용에서 주식운용본부장을 맡아 KTB마켓스타 등 인기 주식형펀드를 운용했다. 둘 다 일명 1조 클럽(1조원 넘는 펀드를 운용)에 가입해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1세대 금융공학 펀드매니저로 알려진 송권표 전 세이프에셋투자자문 대표 역시 대투 시절 국내 최대 차익거래펀드를 운용하며 이름을 날렸다.

이외에 기관 투자자금을 운용하던 전정우 전 삼성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을 비롯해 최재혁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 전략담당 대표, 한상수 이퀄자산운용 대표, 양해만 한국투자신탁 CIO, 김재동 군인공제회 금융담당 CIO 등 대투 출신 스타매니저들이 자산운용업계 곳곳에 포진해 있다.

국투 역시 국내 증권업계와 자산운용업계의 인력을 많이 배출해 왔다.

특히 2000년대부터 외국계 운용사의 진출이 활발히 이뤄지면서 상당수의 국투 출신 멤버들이 외국계 자산운용사로 자리를 옮겼다. 국투 입사 3기로 강면욱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를 지냈고, 양성락 전 블랙록 대표도 국투에서 외국계 운용사로 자리를 옮긴 사례다. 이 밖에 국민연금 주식운용팀장을 지냈던 유승록 블랙넘버스투자자문 대표와 이창훈 공무원연금공단 CIO, 최남철 삼호투자자문 대표도 국투 출신으로 꼽힌다.



펀드시장의 1차 성장기

춘추전국시대의 도래

기린아 ‘박현주’ 회장의 등장


19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펀드시장은 암흑기를 맞이했다. 일부 지방투신운용사들은 영업정지를 맡기도 할 정도로 충격파가 컸다. 1995년 15조원에 달했던 주식형펀드의 수탁고는 1998년 11월 말에는 7조 8000억원대로 반토막 났다.

1998년 주가지수는 한때 305.73까지 곤두박질쳤다. 이 시기 자본시장의 발전을 위해 정부는 몇 가지 제도개선을 꾀했다. 대표적으로 1998년에 증권투자신탁업법이 개정되면서 회사형 증권 투자펀드 제도(Mutual fund)가 도입된 것이다. 운용과 판매가 분리되고 은행과 증권사에서 상품을 팔기 시작했다. 펀드 상품을 공급하는 자산운용사 수가 늘고, 펀드를 판매하는 판매채널도 크게 늘어나게 되면서 펀드 시장의 발전을 위한 기초가 다져지게 된다.

초기 3투신 주도의 과점적 시장에서 규제완화로 자산운용업은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난세에 영웅이 탄생하는 법. 우리나라 금융업계 살아있는 성공신화로 불리는 박현주 미래에셋대우 회장이 강호에 홀연 등장한 것이다.1990년대 동원증권의 간판 ‘증권맨’이었던 박 회장은 샐러리맨으로 만족하지 않고, 1997년 외환위기 시절 돌연 사표를 내고 ‘창업의 무덤’으로 불렸던 금융시장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른바 ‘박현주 사단’이라 불렸던 8명의 동원증권 직원과 함께 미래창업투자(현 미래에셋캐피탈)를 설립한 것이다. 미래에셋그룹의 모태인 미래창업투자는 설립과 동시에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박 회장은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를 시장에 출시하며 펀드 열풍을 일으켰다. 해당 펀드의 이름은 ‘박현주 1호’로 판매 2시간여 만에 500억원 목표액을 달성했고, 1년도 되지 않아 수익률 100%를 넘어서는 등 말 그대로 대박 행진을 이어갔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미래에셋은 국내에 뮤추얼펀드 붐을 일으키며 투신업계를 위협했다. 미래에셋 펀드 운용은 박현주 사장을 비롯해 당시 운용1본부장을 맡았던 구재상 케이클라비스 대표 외에 외부에서 영입한 스타펀드매니저들이 담당했다. 특히 간판펀드였던 ‘박현주 펀드’는 한국투자신탁의 스타펀드매니저였던 김영일 전 한국투자신탁 CIO, 이병익 오크우드투자자문 사장, 손동식 미래에셋자산운용 주식운용부문 대표 등 3인방을 억대 몸값으로 스카우트해 운용을 담당하게 했다. 이외에 강길환 전 미래에셋캐피탈 대표, 장덕수 디에스자산운용 회장, 선경래 지앤지인베스트 대표, 김태우 KTB자산운용 대표 등 현재 금융투자업계를 주름잡는 인재들이 거치며 미래에셋과 함께 성장했다. 뮤추얼펀드가 제도화되며 미래에셋 이외에 투신자와 자산운용사가 늘어나자 기존 투신사나 증권사 등 펀드매니저로 이름을 날리던 사람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펀드매니저의 이동은 지난 1998년 말 한국투신의 김영일 펀드매니저가 미래에셋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 시발점이었다. 마이다스, 리젠트, KTB자산운용, 태광투신, 월드에셋, 마이애셋 등 자산운용회사가 기존 투신사의 간판급 펀드매니저를 대거 스카우트했다.

투신사와 뮤추얼펀드는 앞다퉈 간판급 펀드매니저를 내세운 실명펀드를 내놓으며 펀드매니저 간에 자존심을 건 수익률 경쟁을 펼친 것도 이때다. 이러한 경쟁은 시장에 비교적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펀드운용시장이 전문화되고 특화되기 시작한것도 이무렵이다. 투자자금이 몰려들면서 펀드평가회사가 등장했다. 당시 ‘드림펀드’의 구재상(케이클라비스 투자자문대표), ‘MVP펀드’의 김석규(전 GS자산운용 대표), ‘윈윈펀드’의 이춘수(전 슈프림에셋투자자문 대표), ‘정석펀드’의 강신우(KIC 부사장) 등이 두각을 나타냈다.

한국 펀드역사 속 한 장면

1999 ‘바이 코리아 펀드 열풍’

1997년 외환위기의 충격은 오랜 기간 가시지 않았다. 증권시장에서는 외환위기와 주식시장의 붕괴는 외국인 때문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국내 펀드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되는 ‘바이코리아’ 펀드가 등장하게 된다.

3투신 중 국민투자신탁을 인수한 현대그룹이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의 주도로 1999년 3월 이 펀드가 탄생했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 투기꾼들에 대한 피해의식과 분노를 역으로 이용한 펀드다.

이익치 전 현대증권 사장은 강연회를 열어 강당을 가득 메운 투자자들을 향해 “한국경제를 살리면서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은 ‘바이코리아펀드’ 투자”라며 “2005년엔 지수가 6000까지 오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대투신은 장인환 전 KTB자산운용 부회장과 안영회 전 KTB자산운용 부사장, 유승록 블랙넘버스투자자문 대표, 강신우 KIC 본부장, 장영상 전 웅진루카스투자자문 대표 등 쟁쟁한 13인의 바이코리아운용팀을 결성한 뒤 1999년 3월 ‘한국경제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광고문구와 함께 주식형 수익증권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바이코리아펀드는 발매 첫날 2조원이 유치됐고 두 달 만에 판매액 5조원을 넘어섰다. 종합주가지수 400선에서 설정된 바이코리아 펀드는 주가지수를 끌어올렸다.

주가지수가 700선이 되면서 설정액은 10조원으로 불어났다. 바이코리아 펀드는 주식시장에서 현재 연기금 이상의 ‘주포’ 역할을 톡톡히 했다. 18조원에 육박하는 자금이 모였다. 나폴레옹, 르네상스, 스폿펀드, 골든벨 등 시리즈도 다양했다.

펀드매니저들은 당일 아침에 돈이 얼마나 들어왔는지 확인하는 것이 일이었다. 이러한 ‘바이코리아 펀드’는 판매실적 등 여러 면에서 국내 주식형 펀드의 전설로 불린다. 채권형 투자 상품이 주류를 이루던 1990년대 국내 금융시장에서 주식형 펀드로서 인기몰이를 한 것은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바이코리아 펀드의 ‘전설’은 몇 개월 가지 못했다. 그 해 대우그룹 부도로 증시가 급락하자 투자자금이 썰물처럼 빠져 나갔고 손실을 본 투자자들의 항의가 잇따랐다. ‘공룡펀드’의 몰락과 2000년 IT버블, 2001년 9.11테러, 2003년 이라크 전쟁까지 국내 펀드시장은 한동안 휘청거렸다. 이러한 침체를 벗어나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적립식 펀드였다. (다음 호 계속)

‘장대포’ ‘피스톨박’ ‘작은거인’ 펀드매니저들의 ‘달콤 살벌’ 별명대잔치

1990년대 들어서 일반 대중에게 펀드매니저란 직업은 선망의 대상이 됐다. 대기업 직원보다 훨씬 높은 연봉은 물론이고 말쑥한 정장 차림에 외제 스포츠카 등 여러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세련된 이미지도 그 배경이 됐다. 운용스타일이나 수익률이 세간에 회자되면서 매니저별로 별명이 생기기 시작했다. 피스톨 박, 라이플 장, 서터린치 외에도 1세대 스타펀드매니저로 통하는 박종규 전 우리자산운용 대표는 ‘드림 박’으로 통했다. 꿈을 꾸듯 운용을 잘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장인환 전 KTB자산운용 부회장은 당시 현대투신운용에 있으면서 스폿펀드로 뛰어난 수익률을 올리며 ‘장대포’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국투자신탁 출신의 또 다른 1세대 스타펀드매니저 강신우 KIC 부사장은 현대투신에서 ‘작은 거인’으로 통했다. 체구는 작지만 운용규모나 운용역량이 크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이외에도 펀드매니저들에게 숱하게 따라 붙었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펀드매니저의 실명을 붙이는 펀드가 유행처럼 번지며 별명들은 하나둘 줄어들어 갔다.

‘MVP, 윈윈, 장보고?’ 펀드이름은 어떻게 달라졌나?

펀드 이름에도 트렌드가 있다. 한국 펀드시장 초기였던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까지는 딱히 펀드에 이름이랄 것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기3’과 같이 펀드명에 대한 규칙이 따로 없이 3개월짜리 펀드에는 ‘3’, 6개월짜리는 ‘6’과 같이 간단하게 명명한 정도였다. 예를 들어 한국투신의 기업이미지(CI)인 석류를 이용한 ‘석류6’, 대한투신의 CI인 포도를 이용한 ‘포도6’ 등의 펀드가 있었다. 스타운용역이 부각되며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 ‘박현주 1호’가 등장했고,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와 함께 애국심을 강조하는 ‘바이코리아’(당시 현대투신), ‘파워코리아’(한국투신)와 같은 이름도 주로 사용됐다. 이후 ‘1억 만들기’ ‘3억 만들기’ 등 투자목표를 부각시키는 이름이 사용되는가 하면 ‘부자아빠’, ‘부자 만들기’ 등과 같이 가족애를 강조하는 펀드도 나왔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디스커버리’, ‘인디펜던스’와 같은 색다른 상품명도 등장했다.

이후 자본시장법 시행과 함께 펀드종류를 펀드명에 명기하도록 했다. 삼성투신이 주식에 주로 투자하고 파생상품을 10% 초과해 운용하는 자(子)펀드라면 ‘삼성○○ 자투자신탁(주식형-파생형)’이라고 명명하게 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9호 (2018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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