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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發 반도체 굴기 쓰나미 오나
기사입력 2018.07.03 11: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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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美 마이크론 중 하나는 사라질 수도”

中 수년내 200조 투자… 한국경제 최대 복병되나

한국의 주력 산업이 중국의 거센 추격으로 위협받는 가운데 IT산업 경쟁에서도 중국의 약진으로 궁지에 몰리고 있다. 중국이 천문학적 자금력과 시장을 바탕으로 투자와 기술개발, 인수합병 등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崛起)’를 외치며 2025년까지 1조위안(약 167조원)을 투자하는 것도 유심히 볼 수밖에 없다. 중국 IT산업의 최대 아킬레스건이 메모리 반도체다. 중국은 원유보다 반도체 수입에 더 많은 돈을 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패권 경쟁의 걸림돌을 없애겠다는 뜻이다. 시장 일각에선 SK하이닉스와 미국의 마이크론 중 한 곳은 사라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삼성전자 역시 안심할 수 없다.

SK하이닉스의 한 관계자는 “중국은 경제적 이익이 없어도 반도체 굴기를 반드시 달성하려 할 것이다. 시장을 망가뜨려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나오는 게 가장 두렵다”고 토로했다. 만약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현실화하면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다른 IT 산업 분야 생존 전략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 반도체 위기가 한국 제조업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발톱 드러낸 중국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노골적 견제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이미 양상을 드러냈다. 중국 반독점 당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반도체 3사의 가격 담합 조사에 착수한 게 대표적 사례다.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외국 업체에 대한 노골적 견제에 나섰다는 우려 섞인 분석이 지배적이다.

삼성전자 직원이 반도체라인에서 반도체 생산 장비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중국 반독점국은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은 역할로 지난 3월 국가발전개혁위원회 가격조사국과 상무부 반독점국, 공상총국, 반독점국을 통합해 출범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은 글로벌 반도체 96%를 점유하고 있다. 중국 현지 언론들은 반독점 행위가 인정될 경우, 지난해 중국 판매액을 기준으로 한 벌금이 최소 4억달러에서 최대 44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2016년 이후 현재까지를 기준할 경우, 벌금 규모가 8억~80억달러(약 8600억~8조6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중국은 지난 2015년 기준 15%에 그친 반도체 자급률을 오는 2025년까지 7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내세우며 2015년 ‘국가반도체산업 투자펀드’를 만들어 1조위안(한화 약 17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추가로 30조원도 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도 현재 중국 반도체 자급률은 25%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오히려 지난해 중국 메모리 반도체 수입 규모는 889억2100만달러(약 95조5900억원)로 전년 대비 40% 가까이 급증했다.

표면적으로는 중국 수요업체들이 반도체 가격이 비싸다는 의견을 중국 정부에 제시했고, 이번 반독점 조사로 이어진 모양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반도체 산업과 함께 육성하고 있는 IT, 전기차 등은 여전히 한국산 반도체를 구입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우선은 반도체 가격을 낮추도록 압력을 가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중국 정부는 삼성전자와의 면담에서 모바일 D램 가격을 얼마 전 마이크론과의 면담에서 PC D램 가격 상승 등의 문제를 제기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일부에선 미국의 ZTE 제재 후 ‘반도체 굴기’에 박차를 가하는 중국이 외국 반도체 업체를 견제하려는 목적도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4월 미 상무부는 대북 및 대이란 제재를 위반한 혐의로 중국 2위 통신장비업체인 ZTE에 대해 7년간 미국 기업과 거래를 못 하도록 제재했다. 반도체칩과 핵심부품을 미국업체들로부터 사들이던 ZTE는 일부 사업 매각설이 나올 정도로 경영난에 시달렸고 중국 내에선 ‘핵심기술’을 스스로 창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나서 반도체 현장 시찰은 물론, ‘중국몽(夢)’을 언급하며 핵심기술 육성을 강조할 정도였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2019년 중앙 국가기관 IT 제품 구매계획 공고’에서 국산 반도체 서버를 구매하겠다고 명시했다. 중국 정부의 조달계획에 자국산 반도체 제품 구매가 명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장조사기관 D램 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올 1분기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 44.9%, SK하이닉스 27.9%, 마이크론 22.6%로 3개 회사가 95.4%의 점유율로 사실상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들 3개 회사 외에는 D램 공급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 입장에선 올 연말부터 D램 양산 본격화를 위해서는 이들 회사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에선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위한 기술 협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 반도체 업계에선 “반도체 수요가 늘며 가격이 오른 것뿐이고 가격 담합은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중국 정부의 최근 분위기를 보면 조사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반도체 업계는 중국 정부가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 메모리 반도체 가격 인하를 압박한 배경에도 철저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한 가격 인하 요구가 아니라 기술력이 아직 미약한 자국 반도체 산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양한 협력 방안을 취하라고 우회적으로 압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SK하이닉스와 관련해서도 지난해 9월 한·미·일 연합 컨소시엄의 도시바 메모리 인수 승인 요청에 대해 8개월 동안 결론을 내리지 않는 등 몽니를 부리다가 최근에서야 승인을 결정했다.



중국의 반도체 추격 가능성은?

낸드 따라 잡히는 건 시간문제

중국이 반도체 산업 육성에 나선 것은 2013년경이다. 그해 반도체를 포함한 집적회로(IC) 제품 수입액이 2322억달러로 석유(2196억달러)를 넘어 처음 제1 수입 품목이 됐다. 지난해엔 그 액수가 2601억달러(약 270조원)로 늘었다. 중국은 세계 반도체 제품의 40% 정도를 소비하는 세계 최대 시장이지만, 통신칩 등 일부 시스템 반도체만 자국 업체들이 생산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거의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위해 앞서 대규모 투자 펀드를 조성하는 한편, 외국 기업 인수합병에 나섰다. 2015년부터 칭화유니그룹, 화룬그룹 등 중국 국유 기업이 반도체업체 인수에 나섰지만 번번이 미국이 막았다. 칭화유니그룹은 2015년 세계 3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을 230억달러에 인수를 꾀했으나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에 가로막혔다. 푸젠그랜드칩이 2016년 독일 반도체장비업체 엑시트론을 인수하려 할 때도, 미국은 독일과 협력해 거래를 차단한 바 있다.

사정이 이렇자 중국은 독자 기술 개발로 방향을 틀었다. 칭화유니그룹 산하 YMTC는 2016년 말 우한에 낸드 플래시 공장을 착공해 올해 말 완공을 앞두고 있다. 2016년 설립된 이 업체는 올해 32단 수준의 3D 낸드플래시를 양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업체 역시 중국 국영기업인 칭화홀딩스의 자회사인 칭화유니그룹과 국가반도체산업펀드가 50 대 50의 지분을 가지고 움직이는 국영기업이다. 푸젠진화반도체도 대만 UMC와 함께 32나노 D램 생산공장을 푸젠성 진장에 짓고 있다. 이노트론은 허페이에 32나노 D램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공급 과잉 → 세계시장 재편→ 시장 장악 시나리오

한국 반도체 업계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긴장하고 있다. 내년부터 중국제품이 양산되면 세계 시장에 상당한 충격이 예상되는 데다, 천문학적 자금을 가진 중국 정부와 기업이 해외 인수·합병(M&A) 등으로 덩치를 계속 키울 경우 심각한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설립 2년에 불과한 YMTC 등 중국 업체들이 3~4년 뒤 공룡 기업이 돼 글로벌 메모리 시장 수익성을 크게 떨어뜨리면 재무 위기에 빠진 미국, 대만, 한국 기업을 상대로 인수·합병(M&A)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중국은 재원 200조원으로 현재 15%에 불과한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로 끌어올리겠다고 설정해 놓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수요처인 중국 시장에서 공급 물량 중 70%를 중국 기업들이 직접 생산한다는 뜻이다. 이를 돌려 해석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같은 상위 3개 기업은 나머지 30% 물량을 가지고 생존해야 한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시장은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대규모 설비투자로 경쟁력을 유지해야 하는 산업”이라며 “공정 향상을 위해 매년 10조원 이상을 쏟아붓는 한국 기업들의 투자 노력과 투자 지속 가능성이 200조원이라는 중국의 막대한 자금력 앞에서 언제까지 확보될지 긴장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미 일부 품목의 경우, 중국의 반도체 기술력이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섰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분야에서는 SMIC와 화홍그레이스 등이 시장점유율에서 이미 세계 10위 안에 진입했다. 특히 SMIC는 글로벌 시장 점유율 5.4%를 기록하며 4위인 삼성전자(7.7%)를 바짝 뒤쫓고 있다. 모바일 프로세서(AP)와 통신칩 분야에서는 스프레드트럼이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전력관리(PMIC)나 아날로그 반도체 등을, 프로세서 분야에서는 중저가 제품을 중심으로 역량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1위인 삼성전자나 인텔, 퀄컴 등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야를 중심으로 외형을 키워왔고, 이제는 기존 강자들을 위협하는 존재로 떠올랐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중국의 웨이퍼(반도체를 만드는 얇은 판) 생산량이 1767억위안(약 30조5143억원)으로 전년 대비 27.12%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메모리 분야에서도 국영 칭화유니그룹이 국가반도체산업펀드의 투자를 받아 세운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는 올 연말까지 우한 공장을 완공하고 32단 3차원(3D) 낸드플래시 제품 생산을 시작한다. YMTC는 삼성전자가 3~4년 전에 이룬 기술 성과(32단 제품)를 창립 2년 만에 따라잡은 셈이다. 중국 반도체 업체 사정에 밝은 A씨는 “현지에선 내년에 64단 제품을 생산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기술격차는 1년 남짓에 불과해진다”고 귀띔했다.

물론 현재로선 기술력 격차가 상당하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견해다. 삼성전자의 한 간부는 사견을 전제로 “64~72단 제품을 생산 중인 한국 기업과 중국과의 기술 격차는 4년(낸드플래시)에서 5~6년(D램) 정도”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중국 기업들이 한국 기업들을 따라잡기 위해 더욱 노골적인 인력·기술 탈취를 시도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실제 미국 마이크론은 지난해 말 핵심기술 탈취 혐의로 피해를 입었다며 중국의 한 반도체 기업을 상대로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마이크론은 중국 업체가 자사 직원을 영입하면서 핵심 메모리 기술을 함께 빼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A씨는 “앞으로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이미 국제 수준의 최고 임금을 내세워 공대 출신들이나 퇴직 기술자들을 싹쓸이할 공산이 크다. 관련 인재들의 중국 유입이 가속화할 것”이라 전망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현저히 유리한 보수 조건으로 한국 기업들의 핵심 연구 인재들을 빼내려는 시도에 해당 기업은 물론 정부 기관도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ZTE 사옥

중국 업체들이 정부의 파격 지원을 무기로 제품을 쏟아내면 철강·디스플레이처럼 ‘가격 하락→세계 시장 재편→중국 기업 약진’ 구도가 되풀이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오브젝티브 애널리시스의 짐 핸디 애널리스트는 “중국 경쟁사들이 양산을 하면 공급 과잉 심화로 세계 1~3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중 한 곳은 시장에서 사라질 수 있다”고 했다. 노근창 현대차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국의 여러 반도체 회사에서도 YMTC는 중국 정부의 천문학적 지원이 이어질 가능성이 커 가장 위협적인 기업”이라며 “YMTC가 3D 낸드플래시 시장에 진입하면 장기적 공급과잉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유사 사례가 있다. 바로 BOE다. 지난해 3분기 BOE는 9인치 이상 대형 디스플레이 패널시장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21%를 달성하며 12년간 1위에 군림했던 LG디스플레이(20%)를 2위로 끌어내렸다. 또 BOE발 공급과잉 상황이 지속되면서 65인치 고화질 4K 패널은 지난해 6월 평균가격이 436달러에서 올해 5월 266달러로 39% 급락했다. 이처럼 BOE발 수급시장 교란으로 인해 LG디스플레이는 올해 1분기에만 1000억원대에 육박하는 적자를 기록하며 비상경영에 돌입한 상태다.

국내 업체들은 중국발 저가 물량공세에 맞서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도 BOE가 공격적 설비 투자를 진행하고 있어 2~3년 내 수급 교란이 예상된다. 김현수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BOE의 중소형 OLED 생산능력이 분기당 총 2200만 대로 내년부터 중국 내수 시장을 토대로 점유율 상승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1993년 설립된 BOE는 베이징국유자본경영관리센터(11.56%)가 최대주주인 국영기업이다. 이 회사는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에서 세계적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던 한국기업 하이디스를 2003년 인수하면서 기술력을 확보했다. 한국의 기술력을 흡수해 15년이 흐른 뒤 거대한 공룡기업으로 변신하면서 한국의 주력 플레이어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는 양상이다.

반도체에서도 비슷한 시나리오가 진행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중국이 반도체를 비롯한 중간재 자급에 성공할 경우 한국 경제가 받을 타격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난해 중국 시장은 우리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했는데, 대중 수출의 80% 가까이가 반도체·디스플레이·화학제품 같은 중간재였다. 반도체만 놓고 보면 수출의 4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4호 (2018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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