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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韓, 돼지머리 고사상 부자 꿈꾸고 中선 족발 나눠 먹으며 새해소망
기사입력 2019.01.10 14:17:12 | 최종수정 2019.01.10 14: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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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는 특별한 가축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새해 돼지족발을 먹으며 여유로운 한 해가 되길 꿈꾸고, 우리는 고사 상에 돼지머리를 놓고 사업 번창을 소망한다. 2019년은 기해년, 돼지해인데 황금돼지해라며 축복과 길운이 가득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고대부터 돼지는 하늘에 바치는 제물이었다. 소·말·양·돼지·개·닭 여섯 제물 중 소는 가장 귀해서 임금이 주관하는 제사 때나 쓰였는데, 보통 소고기를 먹으며 소원을 빌지는 않는다. 반면 돼지는 가장 낮은 제물이었음에도 유독 이것저것 온갖 소망을 담아 빌었다. 도대체 돼지가 뭐기에 소도, 닭도 아닌 돼지고기를 먹으며 소원을 비는 것일까?

당나라 과거의 합격 기원 음식

혹시 역사상 최초의 합격 기원 음식이 무엇이었는지 아시는지. 남아있는 기록은 없지만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를 토대로 추측해 보면 당나라 선비들이 과거시험 보러 갈 때 먹었다는 돼지족발이 최초로 보인다. 지금 수험생이 합격 엿을 먹고 고득점을 비는 것처럼 당나라 선비들은 과거시험이 열리면 돼지족발을 먹으며 합격자를 적은 벽보에 자기 이름이 오르기를 빌었다. 왜 하필 돼지족발이었을까?

유래가 있다. 당나라 때는 과거시험이 끝나 장원급제자가 나오면 붉은색 먹으로 급제자의 이름과 답안지 제목을 적어 당나라의 서울이었던 서안(옛 장안)에 있는 대안탑에다 붙였다. 이렇게 장원급제자의 이름과 시제를 붉은 글씨로 적은 대자보를 주제(朱題)라고 했다. 중국어 발음으로는 ‘주티’다. 중국말로는 돼지족발(猪蹄)도 발음이 주티다. 때문에 과거를 보러 가는 당나라 선비들이 돼지족발을 먹으며 장원급제를 해 붉은색 먹으로 쓰인 자기 이름과 답안 제목이 대안탑에 내걸리기를 소원했다는 것이다. 시험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는 과거제도는 6세기 말 수나라 때부터 시작해 7세기 초 당나라 때 정착됐다. 기록상 남아 있는 최초의 장원급제 주인공은 당나라 건국 4년째인 622년에 실시한 진사과 과거시험에서 1등을 차지한 손복가라는 인물이다. 말단관리에서 시작했지만 장원급제 이후 중앙 조정에 진출해 훗날 재상 자리에 올랐다. 이전에는 명문 권력자 집안의 자제가 아니면 꿈도 꾸지 못한 흙수저 출신이 과거를 통해 출세를 했으니 이 무렵 평범한 선비들은 돼지족발을 비롯한 음식 하나에도 간절한 마음으로 장원급제의 소원을 담아서 먹었다. 얼핏 돼지족발이 최초의 합격기원 음식이 된 이유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말장난에서 비롯된 것 같아 보인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민속학적 원형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행운을 가져오는 돼지, 유럽도 마찬가지

족발을 먹으며 소원을 비는 것은 동서양이 마찬가지다. 유럽에도 새해 음식으로 돼지족발을 먹는 나라가 적지 않다. 독일이 그중 하나다. 새해 음식으로 돼지고기와 돼지고기로 만든 소시지를 먹는데, 슈바인학세라는 족발이 빠지지 않는다. 이탈리아도 잠포네라고 부르는 돼지족발이 새해 음식이다. 왜 하필 새해 벽두부터 돼지 족발일까? 유럽에서는 옛날부터 돼지가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흔히 돼지는 먹성도 좋고 새끼도 많이 나으니 풍요와 번영, 다산의 상징이었고 게다가 먹이를 찾을 때는 주둥이로 앞을 헤치며 나가기 때문에 새해에 중단 없는 전진만 있기를 기원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 이상의 민속적인 배경이 있다. 고대 게르만 민족의 토템 신앙에서 비롯된 풍속이다. 게르만 민족은 자신들을 멧돼지의 자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멧돼지를 신성한 동물로 여겼고 더불어 집돼지까지 부와 행운의 상징으로 삼았다. 새해 돼지족발과 소시지를 먹으며 행운을 비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동양에서도 돼지족발은 특별한 음식이다. 때문에 고대에는 제사상에도 족발을 올렸다. 돼지족발과 술 한 잔이라는 뜻의 ‘돈제우주(豚蹄盂酒)’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춘추전국시대에 초나라 대군이 제나라로 쳐들어왔다. 놀란 제왕이 이웃 조나라에 원병을 요청하며 황금 100근과 마차 10대를 예물로 준비했다. 재상 순우곤이 이 모습을 보고 웃다가 갓끈이 끊어졌다. 왕이 이유를 묻자 순우곤이 이렇게 대답했다.

“아침에 입궐하는데 어느 백성이 돼지족발 하나와 술 한 잔을 제단에 올리고 하늘에 비는 소원을 들었습니다. 풍년도 기원하고 자녀의 출세와 부부 백년해로를 비롯해 온갖 소원을 말하는데 제물로는 달랑 돼지족발 하나와 술 한 잔 올려놓은 모습이 떠올라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제왕이 황급히 예물을 늘려 황금 1000근과 마차 100대를 보내 원군을 요청하니 조나라에서 구원병 10만 명과 전차 1000대를 파견했다. 이 소식을 들은 초나라가 밤새 군사를 철수시켜 자기 나라로 도망갔다. <사기>의 ‘골계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작은 것을 놓고 많은 것을 바란다는 비유로 쓰였지만, 평범한 백성 입장에서는 돼지족발이 나름 귀중한 음식이었기에 소원을 비는 제단에 올린 것이 아닐까 싶다.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소통의 메신저

역사적으로도 돼지족발은 만만한 음식이 아니다. 옛날 사람들은 족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모든 동물이 발로 땅을 짚고 서 있는 만큼 동물의 정기가 발에 집중돼 있다고 믿었기에 특별한 음식으로 여겼다. 하물며 돼지족발은 육중한 체중의 돼지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만큼 더욱 정기가 모여 있기에 그만큼 특별하다고 믿었다. 우리도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낸 후 머리고기를 음복 음식으로 먹으며 사업 잘 되기를 빌었는데, 그 이유는 돼지가 특별한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을 돼지가 점지해 준 것으로 나온다. 고구려 유리왕 3년 제사에 쓸 돼지가 달아나 잡고 보니 그곳 지형이 깊고 험한데다 농사짓기에도 좋아 수도를 졸본성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고려 수도 개성도 태조 왕건의 할아버지가 돼지가 정해준 송악산 기슭의 터에서 비롯됐다고 <고려사>에 나온다. 또한 고구려 11대 왕인 동천왕도 제사에 쓸 돼지가 달아나 점지해 준 임금이고,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될 것임을 알려준 것도 돼지였으니 우리 역사에서도 돼지는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소통의 메신저였다.

현대를 사는 한국인이 고사 상에 돼지머리를 올려놓고 머리고기를 음복음식으로 먹으며 소원을 비는 것 역시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돼지를 특별한 동물로 여겼던 믿음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민속과 설화에서는 이렇게 돼지가 특별한 동물이었지만 한때 현실에서도 돼지가 귀하신 몸으로 둔갑한 적이 있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던 것처럼 사람이 돼지를 돼지라고 했다가 혼쭐이 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유는 명나라 황제 때문이었다.

돼지는 한자로 저(猪)라고 쓰고 중국말 발음으로 주(Zhu)라고 읽는다. 그런데 명나라 황제의 성도 주(朱)씨였으니 발음이 돼지와 같다. 때문에 돼지 잡는다는 말이 발음상으로는 황제인 주씨를 죽인다는 말과 같아지니 불경스럽고 무엄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옛날에는 임금의 이름, 집안 어른의 이름과 같은 한자는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피휘 제도가 있었는데, 명나라 때는 돼지 저(猪)자도 기피 글자에 포함시켰다. 글자 사용만 금지한 것이 아니라 아예 잡지도 먹지도 못하게 했다. 명나라 제10대 황제 무종이 강소성 의진이라는 곳에 도착해 돌연 해괴망측한 명령을 내렸다. 앞으로는 민간에서 돼지를 키우지도 말고 잡지도 말라는 것이었다. 최대 명절인 춘절이 멀지 않았을 때였다. 민가에서 난리가 났다. 황제가 내린 뜻밖의 명령으로 제사에 쓸 돼지고기 구하기조차 어려워졌기에 대신 양고기를 구하느라 소란을 피웠고 춘절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돼지가 명실상부 귀하신 몸이 됐다.

백성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자 대신들이 상소를 올리면서 무종의 황당한 명령은 결국 폐지됐다. 한 때의 해프닝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뜻밖의 효과도 있었다. 이전까지 중국에서 돼지고기는 서민이 먹는 고기였는데, 이런 해프닝으로 인해 돼지고기를 천하게 여겼던 과거의 인식이 사라지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2019년, 황금돼지해다. 재미삼아 유쾌하게 족발이나 머리고기 먹으며 한 해 좋은 일이 있기를 꿈꿔 보는 것도 좋겠다. 소원이 하늘에 전해질지도 모른다.

[윤덕노 음식평론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00호 (2019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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