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신청

[년 월 제 호]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
[황승경의 1막1장] 오페라 합스부르크 왕가 압제에 맞선 민중들의 영웅 ‘윌리엄 텔’
기사입력 2019.05.13 16:01:30 | 최종수정 2019.05.13 16:02:31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윌리엄 텔의 자손들, 스위스 용병

바티칸에 가면 밝은 청, 황, 적색이 알록달록하게 들어간 스트라이프 퍼프의상을 화려하게 입고 정문을 지키고 있는 근위대를 볼 수 있다. 얼핏 보면 무대의상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원색정복에 붉은 타조깃털이 꼽힌 투구가 경건한 바티칸의 이미지와는 영 어색해 보일 법도 하다. 그렇지만 이들은 월 1000유로(약 128만원)의 박봉과 고된 훈련에도 600년 역사의 명예로운 자부심으로 멀리 스위스에서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100여 명의 용병들이다. 바티칸에 웬 스위스 용병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이 전통은 15세기로 거슬러 간다. 스위스 용병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의뢰인을 배신하지 않고 목숨을 걸었다. 스위스의 강인하고 용맹스러운 전사들은 용병계약을 명예가 달린 신의의 계약으로 화답했다.

사실 그들은 13세기에서 15세기까지 승승장구하며 무적무패의 승전보를 이어갔으나 변하는 전술과 무기의 흐름을 읽지 못해 신무기 ‘총’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러나 그들의 빛나는 전과는 이 시기인 1527년 신성로마제국의 로마침입에서 오히려 빛을 발한다. 전멸에 가까운 패전 속에서도 남은 40여 명의 전사들은 한 치의 요동도 없이 오로지 고용주인 교황 클레멘스 7세를 끝까지 보필하며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며 임무를 완수했다. 그로부터 교황의 수호는 항상 스위스 용병들이 맡고 있다. 1792년, 프랑스 시민혁명군에 튈르리 궁전이 포위되었을 당시, 프랑스 근위병들은 일찌감치 살길을 찾아 도망갔으나 스위스 용병만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끝까지 지키다 786명 전원 전사했던 일화가 내려온다. 이 강인한 용맹성의 뿌리는 단연 스위스 역사를 연 주역으로 알려진 자유를 위한 투쟁의 상징 ‘윌리엄 텔(빌헬름 텔)’로부터 시작한다.



▶영웅은 만들어지는 것

지금의 스위스는 세계 최상위의 부자국가이지만 15세기까지 스위스는 유럽의 패권을 거머쥔 주변 강대국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여 핍박받고 억압받는 신세였다. 고대 로마제국 이후 6세기부터는 프랑크왕국, 10세기부터는 신성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는 신세였고, 알프스의 산악마을들은 신성로마제국 황제직할지로 자치권을 누리며 그나마 어느 정도의 자유가 보장된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운터발덴 지역이 합스부르크왕가의 손아귀에 들어가기 시작하자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임명한 총독은 강력한 압제자가 되어 운터발덴 지역에 엄청난 세금뿐만 아니라 절대적인 복종을 위한 무자비한 탄압정치를 실시했다. 1291년 운터발덴, 우리, 슈비츠 3주의 대표자들은 루체른 호수 근처 뤼틀리에서 비밀리에 만나 압제의 멍에를 벗어나기 위해 자치권을 선언하고 동맹을 결의한다. 공식적으로 독립을 인정받기까지는 200여 년의 긴 시간이 걸렸지만 바로 이 저항이 시발점이 되었기에 동맹의 날, 8월 1일은 스위스 독립기념일로 지정되어 있다. 변변찮은 무기를 가진 농민들이 뭉친 스위스 동맹군에게 갑옷으로 무장한 기사들을 상대로 맹렬한 기세로 몰아붙일 수 있는 투쟁의 정신력은 크나큰 무기였다. 이후 스위스 동맹국은 점점 그 숫자가 늘어갔지만 그들을 결속시키며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강력한 무언가가 절실했다. 자연스럽게 폭정을 거부하고 민족을 구원한 영웅 윌리엄 텔의 설화가 탄생되었다.



▶자유의지를 놓지 않고

묵묵히 걷는 소시민이 역사를 만든다

산골에 묻혀 살지만 백발명중 석궁으로 소문이 자자한 윌리엄 텔이 아들과 함께 시내의 광장 앞 합스부르크 문장이 새겨진 모자에 스위스인들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인사도 하지 않고 유유히 지나가는 윌리엄 텔을 유심히 지켜보던 총독은 그의 저격술을 시험하기 위해 그를 불경죄로 체포한다. 그리고 그의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쏘아야 하는 체벌을 내린다. 아무리 명사수일지라도 자칫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아들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윌리엄 텔이 조준한 화살촉은 사과의 정중앙을 명중시키고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민중들은 일제히 열화와 같은 환호성을 지른다. 방면되던 찰나, 총독은 윌리엄 텔이 가지고 있던 나머지 한 화살의 용도를 묻는다. 윌리엄 텔은 조금의 굴함도 없이 화살이 빗나갔다면 나머지 화살로 총독을 조준하였을 것이라 말하고 그대로 체포된다. 호수를 건너 감옥으로 향하는 도중 만난 폭풍을 틈타 도주한 윌리엄 텔은 결국 나머지 화살로 총독의 가슴을 명중시킨다. 이 도화선으로 윌리엄 텔과 3개 주의 대표자는 자신들의 땅을 수호하기 위해 연대를 약속한다.

용감하고 담대한 윌리엄 텔의 이야기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위스 방언 등 언어의 다양성을 가진 스위스 국민들에게 공통의 공동체 의식과 하나로 통합된 국가관을 만들어 주었다. 이 설화를 바탕으로 독일작가 프리드리히 실러(1759~1805)는 계몽주의적 시대정신을 불어넣으며 가장 독일적인 희곡을 집필한다. 실러의 희곡을 보면 윌리엄 텔은 분노로 이글거리지도, 정의의 심판을 부르짖으며 단죄를 외치지도 않는다. 그는 화려한 언변도 없고 나서서 대중을 호령하지 않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다만 순간순간을 진정성을 가지며 자신의 삶에 충실할 뿐으로, 무모하게 타오르는 분노는 스스로를 자멸시킬 수 있다는 원칙으로 먼저 인내와 침묵을 호소할 뿐이다.



▶작곡가 로시니의 마지막 오페라 <윌리엄 텔>

실러의 작품 중에 최대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희곡 <윌리엄 텔>은 유일하게 비극적이지 않은 작품으로 연극 역시 대성공으로 독일 각 도시뿐 아니라 전 유럽에 윌리엄 텔 열풍을 불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25년 뒤인 1829년, 프랑스로 이주해 오페라 소재를 찾던 이탈리아 작곡가 조아키노 로시니(1792~1868)는 실러의 <윌리엄 텔>을 접하고 차기 프랑스 스타일 오페라로 점찍는다. 로시니는 저항군 ‘아르놀트(테너)’와 합스부르크 공주 ‘마틸다(소프라노)’의 사랑이야기를 가미시켜 보다 흥미로운 인간군상과 대규모 연극적 볼거리를 구상했다.
비록 장대한 규모로 인해 자주 공연되는 레퍼토리는 아니지만 관객들에게 아름다운 선율에 쌓인 자유의 울림을 선사한다.

국립오페라단은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작가 실러와 작곡가 로시니의 마지막 작품인 <윌리엄 텔>을 오페라로 공연한다. 190여 년 만에 국내에서 초연하는 역사적인 <윌리엄 텔> 국내 초연 무대에는 주역 배우를 비롯하여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무용단, 연기자 등 총 250여 명의 출연진이 한 무대에 올라 4시간동안 전율의 대작을 선사한다. 국립오페라단 오페라 <윌리엄 텔>

· 공연일시 : 5월 10일(금)~12일(일) 금 19:00, 토·일 16:00

· 공연장소 :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 출연 : 지휘┃세바스티앙 랑-레싱

연출┃베라 네미로바, 라우라 타툴레스쿠, 김동원, 강요셉, 김종표, 김효종 등

[황승경 국제오페라단장 사진제공 함부르크 국립극장 <윌리엄 텔> 2015/16 ©Brinkhoff/Mogenburg]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4호 (2019년 5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태훈의 유럽인문여행!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서 ⑧ 피아노의 풍운아 프란츠 리스트, 소년의 선율 울려 ..

돈 되는 風水이야기 ③ 명당보다 차라리 화장(火葬)이 낫다

[이민우의 보르도 와인 이야기] 역사가 빚은 이탈리아 최고 와인 비온디 산티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고대에 요리사 출신 재상이 많아… 생선 요리하듯 조심조심 나라 다스려..

“신나는 음악 틀어줘” “수건 바꿔줘” 말만 하면 다 되는 AI호텔 인기


경제용어사전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