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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그라드는 술 시장서 성장하는 증류식 소주… ‘화요’ ‘일품진로’ ‘안동소주’ 한국판 위스키 약진
기사입력 2019.01.08 14:32:34 | 최종수정 2019.01.09 16: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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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들이 소비하는 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17년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국내 주류 전체 출고량이 355만1405ℓ로 지난해보다 3.5% 감소했다. 수입주류 중 가장 비중이 큰 맥주 수입량을 포함하면 감소폭은 -0.5%로 크게 줄어드나 전체 술 소비가 줄어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주 52시간 근무로 대표되는 근로시간 단축이 보편화되고 회식문화가 급격하게 변화했던 2018년은 영향이 더 컸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국내 주류 전체 중 눈에 띄게 출고량이 늘어나는 주종이 있다. 바로 증류식 소주다. 2017년 출고량이 1857㎘로 전년대비 54.4%나 늘었다. 최근 5년간 연평균증가율(CAGR)은 29.6%에 달한다. 증류식 소주 출고량이 2014년까지는 500~700㎘대에 머물렀던 것을 감안하면 최근의 성장세가 눈에 띈다.

이 같은 증류식 소주 성장은 소비자들의 취향이 다양해지면서 고급 제품을 찾는 것이 첫 번째 원인이다. 절대적으로 마시는 술의 양이 줄어들면서 좋은 술을 마시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우리에게 익숙한 기존의 희석식 소주가 증류식 소주에 비해 열등하고 건강에 나쁘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소주는 증류식 소주

증류식 소주의 성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전통주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원래 우리나라에서 소주는 쌀로 만든 탁주(막걸리)나 약주, 청주 등을 증류해서 만든 술을 뜻했다. 귀한 쌀이 대량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가장 값비싼 술이었다. 지금도 쌀 한가마니(80㎏)로 만들 수 있는 안동소주는 57ℓ밖에 되지 않는다. 소주 한 잔이 쌀밥 한 공기에 맞먹는 것이다. 이처럼 전통적인 방식의 증류를 단식증류라고 한다. 코냑(브랜디)이나 위스키가 단식증류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고급 증류주다.

20세기 초 서양에서 발명된 연속식 증류기가 일본에 들어오면서 일본에서 연속 증류한 소주(쇼추)가 만들어졌다. 연속식 증류기는 원료를 계속 증류해 원 재료의 향이 대부분 사라지고 순수한 알코올에 가까운 매우 높은 도수의 주정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꼭 값비싼 쌀이 아니라 고구마나 타피오카 같은 농산물로 제조하는 경우가 많다. 역시 연속식 증류기로 만드는 보드카도 감자, 옥수수, 밀, 보리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다. 이 주정에 물과 다양한 첨가물을 넣어서 만들어지는 것이 우리가 지금 마시는 소주다. ‘희석식 소주’라는 이름으로 증류식 소주와 구별된다.

우리나라에도 일제강점기에 이 같은 연속증류 방식으로 만들어진 소주가 도입돼 보급됐다. 전통 소주는 태평양전쟁과 해방 후 양곡관리법(1965년)이 시행돼 쌀로 술을 빚는 것이 금지되면서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막걸리·소주 등 전통주대신 저렴한 가격으로 금방 취할 수 있는 희석식 소주가 우리 국민이 가장 많이 즐겨 마시는 소주로 자리 잡게 된 이유다.

1990년대 들어 정부가 민속주(전통주)의 양조를 허용하면서 안동소주, 문배주 등 전통주의 판매가 재개됐다. 하지만 이미 ‘진로’로 대표되는 희석식 소주가 국민 술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증류식 소주가 시장을 넓히기는 어려웠다.

술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우리 전통 소주를 복원하고 증류식 소주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존재했다. 위스키, 코냑, 백주 등 증류주는 원래 고급술인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서민적인 술이기 때문이다. 전통 방식의 소주를 부활시켜 우리 술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술이란 자국 농산물로 만들어야 하는 데 반해 희석식 소주는 수입 타피오카로 만들고 술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향도 없기 때문에 ‘술’이 아니라 ‘알코올’에 가깝다는 주장도 많았다. 희석식 소주가 맛을 조절하기 위해 인공감미료를 넣는다는 점도 “희석식 소주는 ‘화학주’”라는 괴담이 퍼지는 한 원인이 됐다.

화요가 닦아 놓기 시작한 증류식 소주

우리나라 증류식 소주 시장을 닦아놓은 것은 2005년 출시된 ‘화요’라고 주류업계는 인정하고 있다. 화요를 만드는 광주요그룹은 원래 도자기 회사다. 조태권 광주요 회장은 1988년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후 우리 전통 도자기에 어울리는 음식과 술을 만들겠다는 꿈을 세웠다. 그래서 만든 것이 한식당 ‘가온’과 증류식 소주 ‘화요’다. ‘가온’은 신라호텔 한식당 ‘라연’과 함께 2017년부터 3년 연속 미쉐린 3스타를 받아 한국을 대표하는 한식당이 됐다.

2005년 나온 화요는 쌀 원액 100%를 감압증류방식으로 장기간 숙성시켜 만든 증류주다. 전통방식의 옹기에 3~6개월 숙성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처음에는 41도와 25도 두 가지 종류가 나왔는데 현재는 53도, 17도가 추가됐고 5년 오크통에 숙성한 엑스 프리미엄(X.Premium) 제품도 있다. 화요는 출시 이후 10년간 적자를 보다가 2015년에 들어서야 흑자로 돌아섰다.



화요 다음으로 나온 증류식 소주는 2007년에 나온 하이트진로의 ‘일품진로’다. 순쌀을 직접 발효해 증류한 소주로 알코올 도수 30도, 용량 450㎖로 첫 선을 보였다. 오크통에 오래 숙성해 노란색 빛을 띠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런데 ‘일품진로’는 과거가 있는 술이다. 1996년 옛 진로는 증류식 소주 ‘참나무통 맑은 소주’를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직후 IMF 금융위기가 발생해 진로가 부도나면서 해당 제품은 판매가 중단됐다. 증류한 원액은 사용하지 못하고 오크통에 보관된 채로 10년 넘게 재고로 남았다. 일품진로는 이렇게 우연히 남겨진 원액으로 만들어진 제품이다. 사실 화요보다 먼저 증류식 소주를 만든 것은 진로다.

현재는 이 원액의 재고가 크게 줄어들면서 10년 숙성 일품진로는 단종 됐고 6개월 숙성 제품인 일품진로1924가 판매되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오래 숙성된 원액을 가지고 지난해 일품진로18년산을 6000병 한정으로 내놨는데 출고가 6만5000원 제품이 매장에서는 20만원대의 고가에 팔리기도 했다. 증류식 소주 시장이 점점 커지면서 기존 업체들도 하나둘 시장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희석식 소주 ‘처음처럼’을 판매하는 롯데주류는 2016년 증류식 소주 대장부를 내놨다. 희석식 소주와 같은 모양의 초록색 병에 담긴 ‘대장부21’과 화요처럼 반투명한 병에 담겨 판매되는 ‘대장부25’의 두 종류다. 2017년에는 희석식 소주 ‘참소주’와 경주법주로 유명한 금복주가 증류식 소주 ‘제왕’을 내놨다. 제왕도 낮은 도수의 저가 제품 ‘제왕21’과 프리미엄 제품의 ‘제왕’ 두 가지가 있다.

2018년에는 하이트진로에서 예전 ‘참나무통 맑은 소주’의 이름을 살려 ‘참나무통 맑은 이슬’을 내놨다. 100% 증류식 소주는 아니고 증류식 소주 원액과 희석식 소주를 섞어 만든 제품이다.

(왼) 대장부 (오) 일품진로1924



증류식 소주 시장은 현재 크게 둘로 나눠져 있다. 전자는 ‘참나무통 맑은 이슬’ ‘대장부21’ ‘제왕21’처럼 초록색 병에 담겨 판매되는 제품이다. 주로 희석식 소주에서 처음 증류식 소주로 넘어오는 고객을 타깃으로 하는 제품이다. 보통 매장에서 희석식 소주 가격보다 1000원 정도 더 비싼 병당 5000~7000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후자는 ‘일품진로1924’ ‘대장부25’ ‘화요25’ ‘제왕’ 처럼 반투명한 흰색 병에 판매되는 제품이다. 보통 매장에서 2만~3만원대에 판매된다. 주로 고급 한식집 일식집 등에서 많이 판매되고 있다.

증류식 소주의 판매량 증가는 개별 제품에서도 나타난다. 화요는 출고량이 2017년 기준 149만3432병을 기록해 전년대비 26% 성장했고 2018년에도 10월 누적 142만6023병이 판매돼 연말까지 전년대비 20%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6년 출시된 롯데주류 대장부도 꾸준히 판매량이 늘어나 2018년에는 전년대비 10% 가량 늘어났다.

일품진로 판매량은 2013년 9만2000병에서 2014년 25만 병, 2015년 44만 병으로 성장세를 유지하다 2016년에는 65만 병으로 수직 상승했다. 2017년에 원액 부족으로 판매를 중단하지 않았다면 100만 병 판매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참나무통 맑은이슬

전통 증류식 소주도 부활 바람

증류식 소주형태의 전통주들도 점차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 전통주들이 기존의 호리병 형태의 패키지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디자인의 병에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이다. 또한 도수가 낮은 대중적인 제품을 내놓아 일반 주점 등으로 판매채널을 넓히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소주로 알려진 ‘안동소주’는 1990년대 들어 부활했다. 우리나라 소주의 기원은 몽골 소주가 고려시대 때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동소주는 이때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에는 가장 널리 알려진 전통 증류식 소주지만 하나의 브랜드가 아니다. 민속주 안동소주·전통명주 안동소주·안동소주일품 3곳에서 생산되며 모두 ‘안동소주’라는 이름을 쓴다.

민속주 안동소주는 무형문화재 안동소주 기능보유자가 생산해 자기로 만든 흰색 호리병으로만 판매된다. 반면 ‘전통명주 안동소주’는 ‘명인박재서 안동소주’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며 호리병 외에도 19도, 22도 유리병 제품도 판매된다. ‘안동소주일품’도 호리병 제품 외에 21도와 40도 유리병 제품을 팔고 있다.

‘이강주’와 ‘문배술’도 패키지 혁신을 통해 인기를 얻고 있는 대표적인 전통 증류식 소주다. 문배술은 평양지역 술이지만 현재는 계승자가 월남해서 김포에서 생산하고 있다. 국가 지정 무형문화재로도 등록되어 있으며 이기춘 문배양조장 대표가 전통식품명인7호로 지정됐다.

이강주는 전북 전주지역의 전통주로 전통 식품명인 9호 조정현 명인이 만든다. 주류 구분상으로는 증류식 소주가 아닌 리큐르에 속한다.

청와대 만찬주로 선정됐던 풍정사계 춘(春)의 형제술인 풍정사계 동(冬)도 인기가 많은 증류식 소주이다. 청주시 풍정리 화양 양조장에서 만들어지는 술로 1년 이상 항아리 숙성을 거친다. 이한상 화양 대표가 2015년부터 만들어낸 비교적 최근에 탄생한 전통주다.

소주는 쌀을 증류한 것이 보통이지만 최근에는 다른 원료를 증류한 제품들도 판매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국내산 보리 100%만 사용해서 만든 ‘황금보리 소주(도수18도)’다. 전북 김제에서 키운 황금보리로 만든 술이다. ‘매실주’를 만드는 더한주류는 매실주를 증류한 ‘서울의 밤’이라는 술을 팔고 있다. 다양한 전통주를 판매하는 백곰막걸리&양조장 이승훈 대표는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의 차이점을 아는 고객들이 전통 증류식 소주를 찾고 있다”면서 “아직 많지는 않지만 고객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아직 우리나라 전통주 시장은 소주보다는 막걸리가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증류식 소주

한국의 위스키가 될 수 있을까


증류식 소주 시장은 고속성장하고 있지만 사실 전체 주류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출고량 기준으로 막걸리(탁주)시장의 200분의 1, 희석식 소주의 500분의 1에 불과해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하다.

1990년대 전통주가 부활하고 진로가 ‘참나무통 맑은 소주’를 내놨지만 증류식 소주는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취향이 점차 다양해지면서 증류식 소주가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은 마련됐다는 설명이 많다. 맥주에서 ‘카스’ ‘하이트’ 등 대량생산되는 맥주대신 수입맥주·수제맥주가 인기를 얻고, 파리바게뜨·뚜레쥬르 등 프랜차이즈 빵집대신 동네 장인 빵집들이 인기를 얻는 것처럼 소주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들이 대거 증류식 소주에 발을 걸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기존의 주류 유통 채널을 통해 바로 증류식 소주를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전통주들이 선물용이나 전통주점에서만 주로 판매된 데 반해 대기업들이 만드는 증류식 소주는 훨씬 파급력이 세다. 마케팅에 쏟을 수 있는 예산도 훨씬 많다. 하이트진로는 연예인 김희선을 모델로 ‘참나무통 맑은 이슬’ TV광고를 촬영하기도 했다.

증류식 소주가 장기적으로는 ‘한국형 위스키’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위스키, 코냑(브랜디), 백주 등 증류주가 고급술인 것처럼 증류식 소주도 장기적으로 품질을 높이고 브랜드를 쌓아간다면 ‘고급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이트진로의 ‘일품진로’가 증류식 소주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10년 숙성 일품진로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맛있다’는 평가와 ‘10년 숙성제품이지만 낮은 가격에 팔고 있다’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수요가 급증했다.
이를 단종시키고 한정판으로 내놨던 일품진로18년산은 20만원 정도의 고가에 판매됐음에도 불구하고 품귀현상을 빚었다. 이는 고급 스카치 위스키가 매장에서 판매하는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다. 해당 제품에 가치가 있다고 인식하면 소비자들이 증류식 소주에도 기꺼이 높은 가격을 지불한 것이다.

[이덕주 유통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00호 (2019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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