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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다른 듯 닮은 꼴, 만두와 찐빵의 천로역정(天路歷程)
기사입력 2018.02.02 16: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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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와 찐빵은 겨울철 인기 음식이고 간식이다. 얼핏 비슷한 것이 닮은꼴 같으면서도 밀가루로 만든다는 점 외에는 특별한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지만 사실 몇 가지 공통분모가 있다. 일단 뿌리가 같다. 12~13세기 중국과 북방의 만두가 전해지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계속 만두로 이어져 발전한 반면 일본에서는 변형이 됐다. 바뀐 일본식 만두가 다시 한반도로 들어오면서 찐빵이 됐다. 두 나라의 역사와 경제, 환경이 만들어 낸 차이인데 그 속에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와 주목할 만한 메시지가 있다. 또 다른 공통점은 지금은 만두나 찐빵이 모두 대중적인 음식이고 간식이지만, 옛날에는 오직 부자와 권력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우리나라 설날과 중국 춘절에 만두를 먹게 된 배경이다. 세종실록 4년의 기록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세종대왕이 태상황인 태조 이성계의 영혼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면서 제사상에 놓은 만두를 제외하고는 참석자들에게 만두를 대접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만두가 사치스런 음식(侈美之食)이기 때문이다. 조선 초까지만 해도 만두는 사치음식으로 분류돼 사대부도 함부로 먹지 못했다. 만두와 국수, 떡은 제사와 불공 이외에는 금지했다. 그러니 설날과 같은 특별한 날, 차례 상에나 만두를 올릴 수 있었다. 만두를 먹으며 새해 소원을 빌었던 까닭이다. 사실 만두는 그 자체가 하늘에 바치는 제물에서 비롯된 식품이다. 만두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에서 삼국시대가 끝난 직후인 3세기 진(晉)나라 때 문헌인 <병부(餠賦)>에 나온다. 음양이 교차하는 시절에 맞춰 제사를 지내는데 만두를 준비한다는 기록이다. 음양이 교차하는 시절은 음의 계절인 겨울이 가고 양의 계절인 봄이 오는 때이니 그 교차점이 바로 새해 첫날이다. 바람이 잔잔해지고 비가 그쳐 풍년 들기를 빌며 하늘에 바치는 제물이 만두였다.



▶목숨보다 귀한 음식, 만두

중국에서 새해 첫날인 춘절에 무병과 풍요를 빌며 반드시 만두를 먹는 풍속도 여기서 비롯됐는데, 우리나 중국이나 설날 차례 상에 만두를 놓았던 이유는 만두가 그만큼 귀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옛날이라지만 만두가 얼마나 대단하다고 귀한 식품이라는 둥, 사치식품이니 함부로 쓰지 말라는 둥 호들갑일까 싶지만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을 보면 만두가 진짜 엄청난 음식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서기1343년 고려 충혜왕 4년 때의 일이다. 그해 10월 어떤 자가 궁궐 주방에 침입해 만두를 훔쳤다. 왕이 화가 나서 도적질을 했으니 죽이라고 명했다. 충혜왕이 극악무도한 패륜적인 왕이기도 했지만 당시 만두는 훔치다 잡히면 죽임을 당할 정도로 소중한 음식이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만두는 그렇다고 쳐도 찐빵은 또 무엇이 그리 대단하다고 부자와 권력자가 아니면 먹지 못했을까 싶지만 그건 지금 기준이고 일본에서는 14세기 무렵, 찐빵이 처음 나왔을 때는 일본 귀족과 사찰의 고위층 승려가 아니면 먹을 수 없었다. 사실 이 무렵이면 일본도 밀가루가 흔치 않았던 것은 우리와 비슷했다. 찐빵은 귀한 밀가루를 곱게 빻아 반죽해 부풀린 음식이었으니 돈 많은 사람 아니면 먹기 힘들었을 것이다. 일본에서 찐빵이 처음 등장한 것은 14세기 중반이다. 일본 귀족들 사이에 린쩡인(林淨因)이라는 사람이 찐빵이라는 음식을 만들었는데 기가 막히게 맛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입소문이 일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린쩡인이 만두에 고기소 대신 단팥을 넣어 만든 찐빵을 고무라카미(後村上) 일왕에게 진상하자 일왕이 맛보고는 너무나 맛이 있어 린쩡인에게 궁녀를 하사해 아내로 삼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일본인들이 찐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린쩡인은 현재 일본 신사에서 화과자의 시조로 모셔지고 있을 정도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모두 대륙에서 만두를 받아들였는데 왜 우리는 만두로 이어졌고 일본서는 찐빵이 됐을까? 전래 과정과 관련 있다. 만두는 고려 때인 12세기 말, 이전에 전해졌다. 최초 기록은 <고려사(高麗史)> ‘효우열전(孝友列傳)’에 보인다. 고려 중기 명종(明宗) 때다.

“위초(尉貂)는 본래 거란 사람으로 명종 때 산원동정(散員同正)이라는 벼슬을 했다. 그의 아버지 영성이 병이 나서 위독해지자 의사가, 아들의 고기를 먹으면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위초가 스스로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잘라 다른 재료와 섞어서 만두를 빚어 부친께 먹이니 병이 나았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효심이 지극하다면서 상을 내렸다.”

우리 문헌에 실린 최초의 만두 기록인데 원문에는 혼돈(餛飩)이라고 적혀 있다. 교자만두의 한 종류로 크기가 작은 만두다. 이어 13세기 초, <동국이상국집>에 실린 이규보의 시에도 친구가 만두를 보냈다고 했는데 원문에는 역시 혼돈으로 적혀 있다. 다음으로 많이 알려진 건 고려가사 쌍화점(雙花店)의 쌍화로 13세기 말의 기록이다. 쌍화는 상화(霜花)라고도 하는데 막걸리와 같은 술로 밀가루를 발효시켜 만든다. 만두소가 없으면 지금의 중국식 만두와 닮았고 만두소가 있다면 요즘 음식점에서 파는 고기만두와 비슷하다. 여기서 주목할 부문이 있다. 고려 때 다양한 만두 종류가 전해졌다는 점이다.

먼저 우리는 만두라고 간단하게 표현하지만 만두에는 종류가 여럿이다. 교자(餃子)만두가 있고, 포자(包子)만두도 있으며, 혼돈이라는 만두도 있고, 밀가루를 부풀려서 찐 중국식 만터우(饅頭)도 있다. 고려 때 이런 만두 종류가 모두 전해졌으니 교류가 상당히 활발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또 하나는 만두가 전해진 경로다. 고려에 만두를 전한 사람은 귀화한 거란 사람이거나 쌍화점 주인인 회회(回回)아비다. 흔히 만두는 중국의 발명품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서역인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에 전해져 발달한 음식이다. 그런 만큼 거란과 회회아비가 만두를 전했다는 것은 고려가 북방을 통해 서역과 직접 교류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한편 일본에는 1341년 만두가 전해졌다. 원나라에 유학했던 류잔 선사라는 승려가 귀국할 때 현지에서 가깝게 지냈던 린쩡인이라는 중국인이 따라 들어오면서부터다. 친구 따라 일본에 온 린쩡인이지만 낯선 타국에서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류잔 선사와 함께 절에서 지내며 만두를 빚어 팔아 생활을 꾸려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일본에서는 중국에서처럼 고기만두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오랜 육식금지 전통 때문이다. 7세기 무렵에 덴무(天武) 일왕이 소, 말, 개, 원숭이, 닭을 도축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이후 일본인들은 메이지 유신 때까지 1200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는다. 덴무 일왕이 고기를 못 먹게 한 이유를 흔히 살생을 금지한 불교의 영향 때문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외부와 고립된 섬나라인 일본의 특성 때문이다. 전쟁을 비롯한 정치, 경제를 포함한 지리적, 환경적, 종교적인 여러 요인이 겹쳤기 때문인데 다섯 동물을 제외한 가축과 야생 동물은 굳이 제한을 두지 않았던 것을 보면 종교적 이유가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어쨌거나 린쩡인이 육식을 금하는 절에서 만두를 만들어 팔기로 했지만 고기를 소로 넣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육식을 금지했기에 일반인들도 고기를 먹지 않았으니 궁리 끝에 고기 대신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단팥으로 소를 만들었다. 이것이 일본에서 말하는 단팥만두인 앙꼬가 들어간 만두, 안만(あんまん)이고, 우리가 먹는 찐빵의 원조다. 이렇게 단팥을 넣어 만든 만두가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사찰 승려가 차를 마실 때 함께 먹는 다과로 발전하면서 일본 과자인 화과자(和菓子)가 됐는데 일본 과자를 만주, 한자로는 만두(饅頭)로 쓰는 이유도 뿌리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만두를 전한 중국인 린쩡인이 엉뚱하게 화과자의 시조가 되어 사당에 신으로 모셔진 배경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고 보면 고기만두 장수가 육식을 금지하는 나라에 와서 규제를 피하려고 찐빵을 만들어 팔다 보니 돈도 벌고, 궁녀와 결혼도 하고, 마침내는 신이 됐다는 린쩡인의 스토리는 무척이나 상징적이다. 장애물에 걸려 주저앉으면 좌절이지만 시련을 이겨내면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찐빵이기 때문이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9호 (2018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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