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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th for CEO 걷기 프로젝트] 자연숲 살린 홍천 ‘개야리 녹색길’ 공기 좋은 동네, 한 바퀴 돌고나니 코가 뻥!
기사입력 2018.12.04 15:2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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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원, 아침부터 시작된 먼지타령이 저녁에도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중국발 스모그까지 몰고 가뿐히 서해바다 건너 한반도에 진출했다더니, 어느새 마스크가 필수인 세상이 됐다. 사실 이럴 땐 집 주변 산책도 버겁다. 걷다보면 코끝이나 입 안이 답답해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집 안에만 있자니 아쉽다.

초겨울 찬바람, 이제는 제 할 일을 마치고 바스락거리며 뒹구는 낙엽, 수량이 줄어 졸졸거리는 물소리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제철 풍경이다. 그래서 찾았다. 12월의 걷기 코스는 강원도 홍천의 작은 마을이다.



▶조용한 마을, 호젓한 산책길

강원도 홍천군 서면 끝자락에 살짝 걸쳐진 개야리(開野里)는 이름처럼 평지가 너른 마을이다. 이 마을을 보듬듯 휘돌아 나가는 홍천강이 더해져 말 그대로 산 좋고 물 좋고 땅 좋은 곳이다. 태어난 곳에 하나 둘씩 공간을 더하여 지금까지 살고 있는 최 할아버지에게 개야리는 가족의 양식과 자식의 미래를 가져다 준 소중한 보물이었다.

“응? 일 하러 가지 어딜 가. 밭에 일이 산더미 같은데 왜 쉬어?”

길 한가운데서 마주친 할아버지께 어디 가시느냐고 물으니 쉴 틈이 없다며 시작된 수다가 끝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신발 끈도 묶기 전에 할아버지의 인생사가 시작됐다.

“그러니까 저기 저 산 너머가 산수리고 이쪽 너머가 두미리인데, 예전엔 그쪽까지 가려면 산을 다 타고 넘었어야 했어. 지금은 산수리 너머에 터미널이 생겨서 서울까지 금방이지 뭐. … 여긴 참 조용한 곳이야. 원래도 조용한데 젊은이들까지 없으니 더 조용하네. 여름엔 강에서 놀고 그 앞 민박에서 자고 가는 서울사람들 때문에 시끄럽기도 했는데, 겨울엔 뭐 썰렁하지. 아, 그런데 참, 요즘 사람들 잘 살아. 놀러오는 사람들 보면 좋은 차에 좋은 옷에 못사는 사람이 없어. 뭣들하면서 그렇게 돈들을 많이 버는지. … 지금? 간혹 마을 한 바퀴 걷다 가려고 오는 사람들 말곤 노인들이 전부지. 외롭긴 뭐가.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뭘 더 바라누. … 이 마을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변했어. 깨끗하고 좋게 잘 변했지. … (앞산을 바라보며) 아이고 6·25 난리 통에는 생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었어. 그땐 다 흙집이었는데 포탄에다 총알이 얼마나 비처럼 내렸는지 집집마다 총알자국 없는 곳이 없었어. 저 앞산하고 저 옆 산은 지금도 땅 파면 유골이 나온다고. 언젠가 유골이 있었는데 그 담에 올라가 봤더니 국군이 가져갔는지 없어졌더라고. 중공군들하고 참 많이 싸웠지. 아주 피비린내가…. 아이고 이젠 가봐야지. 저어 길로 나가봐. 강이 나오는데 둑길 따라 걸으면 시원하고 좋아. 그렇게 저 뒷산까지 한 바퀴 돌면 한 두어 시간 넘게 걸릴 거야. 가봐.”



▶사방을 빙 두른 길, 그래서 에움

할아버지 말씀처럼 길은 고즈넉하다. 개 짖는 소리가 격해지면 할아버지 혹 할머니 한 분이 슬쩍 내다보는 게 전부다. 그래서 외롭지 않았냐고?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뭘 더 바라는 게 미안할 만큼 조용하고 때로 눈부시고 또 때로 아름다운 풍경이 시선을 끌었다.

길의 시작은 마을 중심에 자리한 여행자센터다. 원래는 모곡초등학교 강야 분교였는데, 아이들이 없어 폐교될 즈음 여행자센터로 임무를 변경했다. 한여름엔 숙박도 가능했다는데 지금은 개점휴업인지, 지키는 이 없이 문마저 잠겨 있었다.

이 산책길의 이름은 ‘개야리 에움녹색길’. ‘에움’은 사방을 빙 두르다는 의미의 순 우리말이다. 실제로 여행자센터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을 보면 마을 바깥쪽으로 홍천강이 돌아나가고 마을과 강 사이에 길이 조성됐다. 길은 구간마다 이름이 다르다. 미루나무길, 개나리꽃길, 유진리길, 종자산길, 숲속길, 갈대숲길, 강물소리길, 밤나무길, 지름길까지 이름만 들어도 어떤 길인지 알 수 있을 만큼 솔직한 이름이다.

특히 강을 끼고 도는 길은 늦가을 혹은 초겨울 경치에 한없이 서성이게 되는 묘한 기운을 지녔다. 수령이 50년 이상 된 밤나무, 미루나무, 은행나무 사이를 걷다 강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수북한 갈대밭이 하늘거리는데, 마치 근심 걱정은 이곳에 털어놓고 가라는 듯 편안한 풍경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그 길을 사이에 두고 한 무리의 펜션이 번듯한데, 홀로 나선 길에 1박 욕심이 간절할 만큼 고요한 풍경이 매력적이었다.



▶외롭지만 함께 사는 길

개나리꽃길 즈음에 밭을 일구며 사는 김 할아버지는 가을 무렵부터 답답한 마음에 새벽까지 뜬 눈으로 보내기 일쑤였다. 처음 보는 객을 붙잡고 쏟아낸 푸념이 한보따리였는데, 듣는 이의 마음도 답답했다.

“팔십 넘은 노인네가 소일거리 삼아 밭일 하는데, 그래도 저게 내 전부거든. 그런데 수확은커녕 손도 못 대고 있어. 여름에 해가 좋아서 열매가 많이 났는데, 괜히 욕심 부렸는지 혼자 힘들어서 딸 수가 있어야지. 혼자 못하니 누구 시켜서 해야 하는데, 품삯은 또 왜 그리…. 어쩌겠어. 당신처럼 걷는 사람들한테 그냥 따 가라고 했더니 처음엔 좋다구 따가다 지금은 거들떠 보지도 않아. 가져가라는데 무겁다고 싫대. 내 새끼처럼 키웠는데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아주 마음이 찢어져. 이젠 저렇게 썩어서 따가랄 수도 없고. 내년엔 좀 일찍 와서 따가. 무겁다고 도망가지 말구.”

[홍천 =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9호 (2018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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