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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속이고 ‘1타’ 벌면 기분 좋습니까
기사입력 2018.12.04 15:2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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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번홀. 이 홀에서 보기만 해도 꿈에 그리던 79타를 적어낼 수 있다. 그런데 아뿔싸. 너무 긴장을 한 나머지 하늘 높게 날아가던 볼이 왼쪽으로 휘어지며 OB지역으로 떨어졌다. 만약 이 홀에서 2타를 잃는다면 ‘70대 타수’의 꿈이 날아가게 된다. 불안한 마음으로 볼을 찾으러 가는데 동반자들은 각자 자신의 볼 위치에서 “볼 어때, 찾았어?”라며 묻는다. 그런데 참 애매하다. 볼은 찾았지만 OB말뚝의 연장선에서 숲으로 한 발짝 들어가 있다. 로컬룰을 적용하면 OB. 갈등이 시작됐다. 그리고 “괜찮아. 러프에 걸렸어”라는 말을 하고 페어웨이로 볼을 꺼낸 뒤 보기를 적어냈다.

꿈에 그리던 79타. 동반자들은 이제 ‘리얼 싱글’이라며 상패를 줬고 79타의 주인공은 저녁 식사까지 거하게 사며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찜찜하다. 사람들에게 “79타 쳤는데 아주 기분이 좋던데”라고 자랑은 하지만 내심 ‘그냥 OB 선언하고 80타를 치는 게 맞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자꾸 스쳤고 이후 한번도 70대 타수를 적어내지 못했다.

파5홀. 우드를 잡고 친 두 번째 샷이 너무 잘 맞았다. 그린을 맞더니 그린 뒤쪽에 화단으로 볼이 들어간 것.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캐디에게 “저 화단은 언제 만든 거야?”, “무벌 드롭 가능한 지역인가? 로컬룰이 어떻게 되지?”라며 질문을 쏟아냈다. 야속하게도 돌아온 대답은 “화단이긴 하지만 따로 무벌타 드롭 규정은 없어요. 상황 봐서 치거나 아니면 벌타를 받고 빼고 치면 됩니다”. 물론 동반자들은 각자 볼을 치느라 캐디의 대답을 듣지는 못했다. 그린 주변으로 웨지를 들고 간 뒤 “캐디분이 여기 무벌타 드롭이래”라며 캐디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낸다. 어프로치샷이 잘 붙었고 버디. 두둑한 내기 돈을 딴 뒤 캐디에게 슬쩍 1만원을 건네지만 이후 캐디와의 대화는 단절되고 말았다.

‘골프 타수의 유혹’은 주말 골퍼들이 가장 떨치기 어려운 것이다. 애매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볼을 한 뼘만 옮겨도 제대로 칠 수 있는 러프 상황이나 디봇 근처에 떨어진 볼 등 조금만 움직여도 한두 타는 덜 칠 수 있는 상황에서 갈등은 시작된다. ‘라이프 베스트 스코어’를 눈앞에 두고 있거나 큰돈이 걸린 내기에서 자신과의 싸움은 시작된다. 골프를 ‘스포츠’로 생각하고 즐기는 사람은 자신에게 엄격하면서 타인에게는 배려심이 깊다. 하지만 골프를 그저 ‘타수를 줄이는 게임’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타수를 줄이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저 적은 타수만 만들면 만족하기 때문이다.

골프는 기본적으로 스포츠다. 주말 골퍼들에게 ‘파’가 얼마나 큰 의미일까. ‘보기’를 범해도 세상이 무너지거나 나에게 나쁜 일이 생기지 않는다. 조금은 아쉽고 화가 날 수는 있지만 그때뿐이다. 골프는 18홀을 도는 스포츠이며 18홀 동안 매번 새로운 ‘첫 티샷’을 준비한다. 18번의 새로운 기회가 있으니 과거는 잊고 더 좋은 미래를 그리면 된다.

‘레저 스포츠’로 즐기는 주말 골퍼들과는 달리 ‘개인 사업자’의 신분인 프로골퍼들은 더 큰 유혹을 받는다. 단 1타에 컷 통과의 운명이 걸려있거나 투어에서 밀려날 수도 있는 상황이 자주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이 있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상대방의 속임수를 본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절반이 넘는다. 그런데 ‘내가 속임수를 쓴 적이 있다’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최근 골프다이제스트는 다양한 속임수의 현황과 유형을 분석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수 많은 갤러리들이 따라다니고 TV 카메라가 있음에도 여전히 지능적인 속임수들은 존재했다. 대표적인 것이 퍼팅할 때 볼을 옮기는 것. 이미 렉시 톰프슨이 ANA인스퍼레이션에서 ‘볼 옮기기’로 무려 4벌타를 받아 유명해졌지만 많은 선수들이 1~2㎝는 가깝게 볼을 놓았고, 심한 경우 4~5㎝ 이상 옮기는 선수들도 있다. 필 미켈슨도 “볼을 설렁설렁 놓는 선수들이 있다”고 말하고, 골프다이제스트도 그린에서 공을 5~7㎝ 정도는 앞에 놓는 걸로 알려진 골퍼는 한 명 정도는 확실히 있다고 언급할 정도다. 목격자들이 전하는 그는 마크를 집어 올릴 때만큼은 누구보다 빠르다. 그는 손을 이용해서 볼 뒤의 거리가 눈에 띄지 않게 감추고 재빨리 티마크를 집어 든다.

골퍼들 사이에서는 이같이 볼 마크를 한 뒤에 실제 놓을 때는 그보다 앞에 놓아서 교묘하게 조금씩 홀에 가깝게 다가가는 골퍼를 ‘인치 웜(inch worm)’이라 부른다. 일 인치씩 다가가는 벌레에 비유한 표현이다. 사실 정정당당한 골퍼들은 그들을 ‘벌레(worm)’로 취급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물론 속임수에 ‘알까기’나 ‘톡톡이’도 빼놓을 수 없다. 프로골프 대회에서 해저드나 러프에 빠진 볼을 찾지 못하면 ‘로스트볼’, 즉 OB와 같은 적용을 받는다. 어떻게 해서든 볼을 찾아야 한다. 당연히 ‘알까기’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우드 커버 안에 넣어놓은 공을 슬그머니 떨어뜨린 프로골퍼가 적발돼 제명당한 적도 있고, 바지 주머니에 구멍을 뚫어 놓고 공을 몰래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다. 물론 어느 투어에나 ‘카더라 통신’에 따르면 ‘알까기 전문가’도 한두 명 꼭 빠지지 않고 있다. 선수들은 “저 선수는 볼을 찾는 기술이 기가 막히고 OB난 것 같은 볼도 기가 막힌 곳에 꼭 살아있다”며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국내 대회에서 한 선수의 볼이 러프로 들어갔다. 그러자 팬클럽 회원들이 나서 볼을 찾았다며 알려줬다. 그 홀에서 파를 잡아낸 해당 선수는 바로 볼을 들어 팬클럽 회원들에게 던져줬다. 이에 상대편 선수는 “다른 볼로 플레이를 한 뒤 증거를 없애기 위해 볼을 던졌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말대로 증거는 없었다. 최근 미국프로골프(LPGA)투어 퀄리파잉 시리즈에서는 속임수가 들통 나 실격을 당하기도 했다.

대만 출신의 도리스 전의 티샷이 OB 구역으로 날아가자 전의 어머니가 슬쩍 코스 쪽으로 볼을 옮겨 놨다. 의심의 눈초리에 전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지만 전의 캐디는 “공을 찾고 있는데 인근 거주자가 와서 ‘저 사람이 공을 움직였다’고 알려줬고 그는 바로 전의 어머니였다”며 “전에게 ‘경기 위원을 불러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전은 ‘그냥 지금 상황에서 경기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알고도 ‘2타’의 유혹에 양심을 저버린 것이다.

생존권이 달린 프로골퍼들에게 ‘속임수’는 피할 수 없는 큰 유혹이다. 하지만 주말골퍼라면 생각을 조금 다르게 하면 좋지 않을까. 디봇에 빠진 볼을 치기 힘들다. 그래도 수많은 레슨에서 알려주는 방법대로 몇 번 쳐 보면 요령을 알게 되고 디봇에서도 굿샷을 할 수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 이겨내는 창의적인 플레이나 연습했던 샷을 잘 쳤을 때의 짜릿함과 쾌감, 그것이 순간적인 ‘1타’보다 더 큰 기쁨 아닐까.

자신에게 정직하고 타인에게 관대한 골퍼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 그날 라운드를 마친 뒤 바로 다음 라운드 약속을 만드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도 골프 약속을 잡을 때 연락이 온다면 좋은 골퍼다. 하지만 속임수를 쓰는 골퍼라면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함께 골프를 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라운드 약속 연락이 없다면 아무리 실력이 좋고 타수가 낮더라도 고민을 한번쯤 해봐야 한다.

[조효성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9호 (2018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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