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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경의 1막1장] 크리스마스에 보는 한 겨울밤의 꿈 `호두까기인형` 발레의 향연
기사입력 2018.12.04 15: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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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정월대보름 풍습대로 부럼을 깨려다 좀처럼 깨지지 않는 딱딱한 호두 껍질 때문에 난감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망치, 드라이버 등 연장도구를 사용해도 깨진 껍질조각이 어디로 튈지 몰라 호두를 까기 위해서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불포화 지방산이 풍부하여 두뇌건강에 좋은 영양식품인 호두는 예로부터 동서양의 공통된 선호식품이었다. 견과류를 싫어할 수 있는 아이들에게 친근한 인상을 주기 위해 18~19세기 유럽에서는 호두를 비롯한 각종 견과류껍질을 까주는 인형이 유행했다. 인형의 입에 견과류를 넣고 인형 뒤 태엽을 감으면 입이 닫히며 껍질을 깨는 방식이어서 호두까기인형은 귀여운 소녀인형보다는 늠름한 병정인형이 대부분이었다.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 호두까기병정인형들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로 흥미를 유발시켜 견과류를 섭취하게 했다. 이런 즐거운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던 독일의 낭만주의 대표작가 E.T.A 호프만(1776~1822)은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현실과 상상세계를 오가는 스토리인 ‘호두까기인형과 생쥐대왕’을 1819년 집필했다. 이후 1844년에는 프랑스의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1802~1870)가 호프만의 독일소설을 번역·윤색해 출판했다. 프랑스의 가장 대중적인 소설가 뒤마의 전성기에 집필된 <호두까기인형>은 비록 창작이야기는 아니지만 작가의 수려하고 뛰어난 필력을 고스란히 간직해서 동화임에도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발레로 꽃핀 호두까기인형

독일과 프랑스의 낭만주의 거장들이 소설 <호두까기인형>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우리는 <호두까기인형>을 소설이 아니라 발레로 기억한다.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가 각색한 대본과 차이콥스키(1840~1893)가 작곡한 <호두까기인형>은 소설을 바탕으로 1892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했다. 그러나 초연 직후 관객들은 매우 험할 정도로 흥분하여 프티파와 차이콥스키의 명성에 흠이 생길 지경이었다. 당시 작곡가 차이콥스키는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예술가로 그와 만나기 위해 각국의 정재계 거물들이 줄을 설 정도였으며 케임브리지 대학의 명예박사와 프랑스 과학한림원의 종신회원으로 선출될 정도로 국제적인 국민영웅이었다.

더구나 발레 <호두까기인형>의 초연 1년 전, 차이콥스키가 먼저 발표한 ‘호두까기인형 관현악모음곡’ 음악회의 청중반응은 호의적이었다. <호두까기인형>의 초연이 기대 이하였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대본작가이자 안무가였던 프티파와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원활치 못한 협업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이브 저녁파티, 아이들은 즐겁게 춤을 추고 주인공 소녀 마리는 호두까기인형을 선물 받는다. 파티가 끝나고 사람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자, 어두워진 거실에 다시 불이 켜지기 시작하는데 마리는 숨죽여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각 나라 인형들과 호두까기인형들도 그들만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여는 것이다. 파티도중 매서운 생쥐들의 습격을 받자, 인형들을 보호하기 위해 호두까기인형은 장난감병정들을 일사분란하게 지휘한다. 마리는 재빨리 기지를 발휘해 때마침 생쥐대왕에게 위협당하는 호두까기인형을 구한다. 인형들은 생쥐들을 물리치고 왕자로 변한 호두까기인형은 마리에게 청혼한다. 마치 ‘피터 팬의 네버랜드’ 같은 크리스마스랜드에서 이들은 큰 축복을 받으며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 크리스마스 아침 해가 밝아오고, 이 모든 것이 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마리는 호두까기인형을 품에 꼭 안는다.



▶동심의 세계를 그린 몇 안 되는 차이콥스키 작품

1890년 12월,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 전체가 축제분위기가 될 정도로 열화와 같은 사랑을 받는다. 마린스키 극장에서는 이 기세를 몰아 작곡료를 2배로 올려주며 차이콥스키에게 발레 <호두까기인형>과 단막 오페라를 의뢰한다. 관객들의 환호에 한층 고무된 차이콥스키는 순간적으로 두 작품이지만 흔쾌히 승낙했다. 하지만 원작 <호두까기인형>의 동화적 판타지 분위기는 본인의 작곡 스타일과 맞지 않아 개인적으로 그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또한 예술적 영감의 뮤즈이자 후원자였던 폰 메크 부인으로부터 후원금을 비롯하여 더 이상의 교류는 끊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연락을 받은지 겨우 두 달밖에 지나지 않아 최악의 침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비록 서신으로만 왕래한 사이지만 14년 동안 1204통의 편지가 오고가며 그녀는 차이콥스키가 오롯이 예술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 인생의 은인이기에 상실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설명한 경제적 파산과 손을 다쳐 편지를 쓸 수 없다는 이유도 그로써는 납득하기 힘들었다.

일단 <호두까기인형>의 작품의뢰만 받고 작업의 진척이 없는 상태에서 차이콥스키는 순회연주를 위해 미지의 땅 아메리카로 향한다. 미국에서 예상 못한 대대적인 환대를 받은 차이콥스키는 미국의 근대적 도시 분위기와 안락함으로 신세계를 맛본다. 그러나 분위기에 도취될 사이도 없이 여동생 알렉산드라의 사망소식으로 그는 들뜬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차이콥스키를 동성애자로 의심할 정도로 애착이 유난히 강했던 조카 다비도프의 어머니가 알렉산드라였기 때문이다. 붕 뜬 자신을 조카에 대한 애틋한 마음으로 진정시키고 작업에만 집중했다. 1891년 6월, 미국일정을 마치고 러시아로 돌아올 때, 그의 손에는 완성된 ‘호두까기 인형’ 관현악 8곡이 들려있었다. 차이콥스키는 맑고 청아한 음색을 가진 건반악기 첼레스타를 사용하여 순수한 동심의 신비로움을 표현했고 색다른 서정적 음색으로 낭만적인 선율과 풍성한 화음을 아름답게 선사했다.



▶차이콥스키의 마지막 발레음악

작곡가가 오페라를 가사의 운율에 맞게 작곡을 해야 하는 것처럼 발레곡은 무용수의 리듬에 맞게 작곡해야 한다.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1818~1910)는 두 거장이 성공리에 호흡을 맞추었던 전작 <잠자는 숲속의 미녀>보다 더 감동적인 작품을 원했고 이에 따른 작곡적인 요구가 훨씬 많아졌다. 마침 차이콥스키는 마지막 교향곡인 비창에 한창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에 프티파의 요구를 더 이상 받아주지 않았다. 두 창작자의 초연협업작업이 삐거덕거리자 작품의 기본적 골격마저 어그러졌고 초연실패는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초연 이후 1년도 안되어 차이콥스키가 사망하자, 차석안무가 이바노프가 원안은 그대로 두고, 완성도 있게 동선을 다듬어 관객들을 다시 만났다.
그제야 객석에서 환호성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발레 <호두까기인형>은 <백조의 호수(1877)>, <숲속의 잠자는 미녀(1890)>와 함께 작곡자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에 속하며 크리스마스 시즌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인기레퍼토리이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국립발레단)을 비롯한 전국의 많은 극장에서 약속이나 한 것처럼 크리스마스를 맞아 발레 <호두까기인형>으로 관객을 판타스틱한 동심의 세계로 인도한다.

[황승경 국제오페라단장 / 사진제공 국립발레단]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9호 (2018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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