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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 특파원의 일본열도 통신] 간격 좁히는 中·日 vs 어색한 韓·日
기사입력 2018.10.11 15: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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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한·일·중 정상회의에 앞서 손을 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올 10월은 일본 외교에 있어 매우 중요한 달이다. 꼬여 있던 이웃국가들과 관계를 풀 수 있어서다.

김대중·오부치 선언 20주년, 중일 평화우호조약 40주년 등 한일, 중일 간 외교에서 기념할 만한 사건들이 올 10월 각각 20주년, 40주년을 맞이한다.

먼저 한국. 한국과는 10월 8일이 기념일이다. 1998년 당시 양국 정상이던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정상회담을 갖고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른바 DJ·오부치 선언이다. 이 선언에 주목하는 이유는 제목처럼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담은 내용 때문이다. 양국이 역사문제를 포함한 20세기의 문제는 20세기에 매듭을 짓기로 합의한 첫 선언이다. 과거 문제에 더 이상 발목을 잡히지 말고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만들어 내자는 합의였다.

다음은 중국. 10월 23일이 중일평화우호조약 발효 40주년이다. 일본이 중국과 국교를 맺은 것은 1972년. 통상 수교와 비슷한 시기에 평화우호조약이 체결되지만 두 나라 사이에선 6년이나 걸렸다. 기본적인 내용은 1972년의 중일공동성명을 그대로 원용한 내용임에도 6년이란 시간이 걸린 것은 양국 간 과거사 문제, 소련과의 국교정상화를 추진하던 일본 사정 등이 작용해서다. 6년 만에 합의가 이뤄지면서 그해 10월 22일 덩샤오핑 당시 중국 주석이 일본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또 중일평화우호조약 20년 뒤인 1998년엔 장쩌민 당시 중국주석이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중일 공동선언’을 내놨다. 이때 양국 사이에 ‘파트너십’이란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주변국과 관계 개선을 위한 기회를 앞둔 일본의 현실을 보자. 한국과 20주년, 중국과 40주년을 앞두고 있지만 일본의 관심은 온통 중국에 쏠려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주요 인사들의 중국 방문 소식들이 쏟아진다. 일본 재계에서는 지난 9월 9일부터 4박 5일 일정으로 240명의 대표 기업인들이 중국을 찾았다. 나카니시 히로아키 게이단렌 회장을 비롯해 미무라 아키오 일본상공회의소 회장 등이 참석했다. 지난 1975년 이후 이뤄진 중일경제협회의 2018년 행사다.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중일경제협회에서는 40주년이 되는 만큼 더 많은 인원을 꾸려 중국을 향했다. 이들에 앞서 정치인들의 중국 순례가 이어졌다. 일본과 중국 양국의 유화적인 분위기는 이미 올 초부터 무르익기 시작했다. 일본 측의 적극적인 유화 제스처에도 특별한 반응이 없던 중국이 올해 들어서면서 태도를 바꿨다.

연초부터 리커창 총리가 중국의 반대로 지지부진하던 한중일 정상회담을 언급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5월 9일 한중일 정상회담이 일본에서 열렸다. 3국 정상회담으로는 2년 반 만의 일이다. 현직 중국 총리가 일본을 방문한 것은 11년 만의 일이다. 리 총리는 한중일 정상회담에 이어 홋카이도에서 열린 중일 성장·지사포럼에도 참석했다. 아베 총리도 일정을 비우고 리 총리와 동행하는 등 극진히 대접했다.

이후 중일 간 ‘훈훈한’ 분위기는 전례 없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다. 아베 총리는 최근 일본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재임기간 업적 중 하나로 중일 관계 개선을 꼽고 있다.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중일 관계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 접어들었다”고 표현했다.

아베 총리는 중일평화우호조약 40주년에 맞춰 10월 중국에 직접 갈 계획이다. 이미 양국 실무진들이 정상회담에서 내놓을 선물 보따리를 조율 중이다. 중국의 일대일로에 일본기업들이 참여하는 것이 첫 성과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태국에서 건설 추진 중인 고속철 사업에 일본 기업들이 참여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일본에선 아베 총리 방중에 대한 답방 형태로 내년도 시진핑 주석의 일본 방문도 성사시킨다는 계획이다. 내년 6월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참석 차 방문하는 시 주석이 일본 국빈방문도 함께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중국과 일본이 가까워지는 사이에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여전히 미지근하다. 나빠진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외견상 드러나는 분위기는 좋다. NHK를 비롯한 주요 방송사에서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고 코리아타운이 형성된 도쿄 신오쿠보 등에선 한류시절을 넘어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람이 많아졌다. 여기에 K팝가수들의 공연은 매진이 이어지고 있으며 한국을 찾는 일본 관광객도 꾸준히 늘고 있다.

다만 이런 분위기가 양국 간 관계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 것이 현실이다. 정상 간 교류는 확실한 동력을 찾지 못한 상태다. 문재인 대통령도 5월 일본을 찾았지만 당일 귀국했다. 20주년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정상 간 회담 등에 대해서는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요미우리신문 등에서는 문 대통령이 일본을 찾을 것이라고 보도했지만 청와대에선 검토 중이란 입장만 내놨다. 남북정상회담, 유엔총회 등 외교 일정이 잡혀있는 상황에서 한일 정상회담의 우선순위는 뒤로 밀려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실무 간 협력이 잘 되는 분위기도 아니다. 우리 정부에선 ‘투트랙’이란 이름으로 역사와 협력을 분리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하고 있지만 서먹한 관계가 풀리지 않다 보니 일본과 정부 차원 협력은 매끄럽게 이뤄지질 않고 있다. 일본에선 투트랙이란 애매모호한 용어를 내세워 한국이 골대를 옮겼다는 반발이 적지 않다.

일본이 한국, 중국과 관계가 틀어진 것은 2012년께였다. 한일 간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천황발언 등이 갈등을 키웠다. 혐한시위가 공공연하게 이뤄질 정도였다. 중국과는 영토분쟁이 문제였다. 일본 기업들의 중국 탈출이 봇물을 이뤘다.

한일, 중일 모두 해결이 어려운 문제로 싸우다 보니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고 껄끄러운 관계가 유지됐다. 한일뿐 아니라 한중 역시 여전히 서먹한 분위기가 풀리지 않았다.

그러다 중일은 슬그머니 가까워지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서로가 필요해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압박 속에서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역할을 서로 해줄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서다. 분위기를 타고 일본 기업들의 중국 진출은 다시 늘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 간 갈등이 줄어들고 협력의 장이 마련된 것은 환영할 일이다.
다만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 속에서 점차 한국의 존재감이 옅어지고 있는 것은 염려스러운 대목이다. 2018년 10월이 중일 간만큼이나 한일 간에도 중요한 시기가 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그저 그런 한 달이 될 공산이 높아 보인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7호 (2018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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