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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상속세율이 기업가 정신 죽인다…세금 부담 때문에 경영권 매각 ‘속출’ 특례 늘었지만 요건 까다로워 편법 조장
기사입력 2018.10.11 11: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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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들은 대개 자신이 일군 기업을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창업하고 기업도 꾸려간다. 65% 상속세율은 이런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는 수준이다.”(국내 대기업 A회장)

“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등 편법과 위법의 근본 원인은 너무나 높은 상속세다.”(국내 중견기업의 한 오너)

한국의 상속세 제도가 기업가정신을 훼손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실제로 한국의 상속세와 소득세 최고세율 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내에서 사실상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OECD 국가 중 상속·소득세 최고세율 합이 가장 높은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상속세율이 최고 55%, 소득세율은 최고 45%로 두 세율을 더하면 100이란 숫자가 나온다. 우리나라는 상속세와 소득세 최고세율이 각각 50%, 42%로 그 합은 92다. 일본에 이어 전 세계 2위다. 프랑스 영국 벨기에가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기업 승계 국면에서 한국의 세율은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이다. 대주주 경영권 승계에 대해 할증이 최고 30%까지 붙어 상속세율이 최고 65%로 뛰기 때문이다. 이 경우 두 세금의 최고세율 합은 107에 달해 일본을 넘어선다. 물론 소득세는 매달 혹은 매년 내는 세금이고 상속세는 일회적으로 낸다는 점에서 직접 비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두 세율이 모두 높은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상속세가 높으면 소득세가 낮든가 아니면 그 반대여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OECD 34개국 중 상속세 최고세율은 2위, 소득세 최고세율은 14위로 모두 높은 편”이라며 “국제화 시대에 높은 상속세율 때문에 기업들이 승계가 어려워 해외로 자산을 이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중과세 논란도 있다. 이미 한 번 과세 대상이 됐던 소득이 모여 또다시 상속세 과표가 된다는 점에서다. 실제 상속세는 회피나 누락에 따라 미처 걷지 못하는 소득세를 환수하는 성격도 띠고 있다.



▶우리나라 상속세율 높은 이유는

우리나라 상속세의 시초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4년 조선총독부가 조선상속세령을 도입했고, 이것이 상속세의 시작이다. 1950년 국회가 ‘상속세법’을 입법하면서 우리 실정에 맞는 상속세제가 처음 만들어졌다.

처음 만들어진 상속세 제도의 특징은 엄청난 세율이었다. 최저 20%에서 최고 90%에 이르는 누진제였고 누진 단계도 14개에 달했다. 이처럼 높은 세율을 매긴 것은 소득세 과세에 대한 현실적 어려움과 세수 확보 목적 때문이었다.

소득세에 대한 탈세가 심하고 이를 추적할 만한 능력이 없다 보니 세원이 노출되는 상속 시점에 한꺼번에 세금을 걷으려고 했던 것이다. 이후 상속세율은 몇 차례 높아지긴 했지만 꾸준히 인하하는 방향으로 세제개편이 이뤄졌다. 1952년 물가변동 등 경제 여건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세율은 10~75%로 낮아졌다. 1960년에는 5~30%로 극적 인하가 이뤄졌다. 1994년에는 최고세율이 40%까지 떨어졌다.

인하 추세에 있던 상속세율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1996년 상속·증여세법 전면 개정 때였다. 최고세율이 45%로 인상되면서 다시 높아졌다. 재벌에 대한 경제력 집중이 심해진다는 비판도 커지던 시기였다. 1999년 고액 자산가에 대한 세 부담 강화를 위해 최고세율이 또다시 인상되면서 현행 50%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최대주주 상속세율 할증 제도도 시행되고 있다. 최대주주 등이 보유하는 주식은 해당 기업의 자산·수익 가치 외에도 경영권 지배 프리미엄이 있는 것으로 보고 1993년부터 최고세율에 할증하고 있다. 최대주주 보유 지분율이 50% 이하면 20%(중소기업 10%), 50% 이상일 때는 30%(중소기업 15%)씩 최고세율이 할증된다. 보유 지분이 50% 이상인 최대주주의 최고 상속세율이 65%까지 뛰는 이유다.



▶“회사 경쟁력보다 경영권 방어에 관심”

임동원 부연구위원은 “다른 나라들 역시 초창기에는 상속세율이 매우 높았지만 이를 계속해서 인하해 왔고 소득세율을 높이는 추세였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높은 상속세율은 유지하면서 소득세율을 높이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임 부연구위원은 “이 때문에 대부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상속세 최고세율보다 소득세 최고세율이 높고 이는 상속세가 소득세의 보완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타당한 결과”라며 “하지만 우리나라는 상속세 최고세율이 소득세율보다 더 높은 몇 안 되는 나라”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OECD 국가 34개국 중 한국처럼 상속세 최고세율이 더 높은 국가는 미국·일본·스페인·덴마크·스위스까지 6개 나라뿐이다. 프랑스는 최고세율이 45%로 똑같다.

OECD 국가를 봐도 상속세 최고세율 평균은 26.6%인 반면 소득세 최고세율 평균은 35.9%로 소득세율이 더 높다. 상속·소득세 최고세율의 합이 높은 나라 중에서도 프랑스, 영국, 벨기에, 독일, 아일랜드, 네덜란드, 칠레 등은 소득세율이 상속세율보다 더 높거나 같다. 재계 관계자는 “비록 일본이 우리보다 상속세 최고세율이 더 높지만 일본은 가업 승계에 많은 혜택을 주고 있어 현실적으로 가업 승계가 더 용이하다”며 “미국도 높은 상속세율을 낮추기 위한 논의를 하는 중이고 기업에 대한 규제가 우리만큼 강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상속세가 기업가정신에 미치는 악영향은 우리나라가 가장 큰 셈”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세제 근간에는 우리 사회에 재벌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상속세법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재벌 갑질과 각종 기업범죄가 무거운 세율을 인하하려는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로 인해 국내 강소기업들의 가업 승계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속받은 지분 가치의 반 이상을 세금으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역시 상속세 부담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난 4월 이우현 OCI 대표이사는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OCI 주식 26만 주를 매각해 400억원가량 자금을 확보했지만, 지분율은 6.12%에서 5.04%로 1.08%포인트 줄었다.

재계 관계자는 “상속세를 내기 위해 지분을 팔 수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적은 지분으로 회사를 지배한다는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승계 이슈가 있는 기업은 회사 경쟁력보다 경영권 방어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공익재단을 통해 지배권을 유지하는 발렌베리의 페테르 발렌베리 주니어 회장



▶해외 기업들은 가업 승계로 100년 기업 일궈

반면 해외 기업들은 원활한 가업 승계를 통해 100년이 넘는 장수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해외 대기업의 승계 사례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포드, 헨켈, 하이네켄 등 100년 이상 해외 장수 대기업은 몇 세대에 걸친 승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창업주 가족의 경영 지배력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미국 포드는 재단 설립과 차등의결권을 통해, 독일 헨켈은 1985년 가족지분풀링협약 체결 등을 통해 경영권을 지키고 있다.

네덜란드 하이네켄은 다층적 지주회사 구조를 통해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구축하고 원활한 승계를 이뤘다. 다층적 지주회사구조는 지주회사에 대한 지분관리회사를 설립하고 해당 지분관리회사의 지분을 관리하는 또 다른 지분관리회사를 설립해 가장 하위 단계에 있는 지분관리회사 지분을 상속자가 소유하는 방식이다.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 역시 공익재단을 통해 지배권을 유지하고 있다. 상속세가 없는 나라도 있지만 상속세가 있다 해도 원활한 승계가 가능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계속해서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상속세와 증여세가 우리나라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 수준이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상속세와 증여세를 합친 세수는 2013년 4조2898억원, 2014년 4조6252억원, 2015년 5조436억원, 2016년 5조3501억원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 연도에서 2.2%, 2.3%, 2.3%, 2.2%로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반면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가 넘는다. 상속에 따른 부담을 줄여줌으로써 투자를 더 원활하게 만드는 것이 국가 경쟁력이나 세수 측면에서 더 이득이 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 수준밖에 안 되는 상속·증여세 세율이 높게 유지되면서 우리 경제는 물론 기업들의 에너지 낭비가 커지고 있다”며 “경쟁력 있는 기업을 일궈도 자식에게 물려주는 길을 막아 버린다면 기업가정신을 자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상속세 없는 국가 OECD 내 3분의 1 넘어

이 같은 점 때문에 상속세를 폐지하는 국가들도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상속세 제도가 없는 나라는 3분의 1이 넘는 12개 국가에 달한다. 임 부연구위원은 “나라마다 폐지 이유는 조금씩 다르다”면서도 “기본적으로는 상속세 제도가 소비·저축·투자 등을 저해하고 폐지하는 것이 오히려 생산 증가·고용 확대·자본 축적 등을 통해 경제에 활력을 주고 장기적으로 세수 증가에도 기여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와 같은 주장에 따라 캐나다는 1971년, 호주는 1979년, 뉴질랜드는 1992년, 포르투갈 슬로바키아 등은 2004년, 스웨덴은 2005년, 노르웨이 체코 등은 2014년 상속세 제도를 폐지했다. OECD 국가 중 가장 먼저 상속·증여세를 폐지한 캐나다는 자본이득세 체제로 전환했다. 상속·증여세의 미미한 세수, 상속·증여세 유지에 대한 정치적 비용이 너무 컸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스웨덴의 상속·증여세 폐지는 조세회피 유인을 크게 감소시켜 국외로 유출되던 자본을 국내로 돌아오게 만들기 위한 조치였다. 상속세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도 감면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2010년 유산세(상속세)를 점진적으로 폐지하고 증여세만 잔존하는 입법 조치를 2001년에 취한 바 있다. 실제로 2010년 상속세는 폐지됐으나, 버락 오바마 정부는 1년 만인 2011년 부활시켰다. 미국은 세수를 통한 재정위기 타개를 위해 상속세 폐지를 번복했으나, 상대적으로 낮은 상속세율을 적용하고 면세액을 크게 늘려가며 세제 완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임 부연구위원은 “상속·증여세는 세수가 적어 부의 재분배 효과가 의문시된다”며 “높은 상속세율은 기업 경영에 장애 요인이 되는 만큼 장기적 관점에서 상속세는 국제적 추세에 부합하도록 완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국내 여론 등 여러 이유로 상속세율 인하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우선 중소기업에 대한 가업 승계라도 활성화하자고 주장한다.

전규안 숭실대 교수는 “국민 정서 때문에 상속세율을 낮추기 어렵다면 현재 시행 중인 가업 승계 제도라도 많은 중소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요건을 현실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며 “일례로 독일은 상속 시 임금총액을 유지하면 상속세를 감면해 주는데, 우리는 고용 인원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제도 혜택을 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우제윤 매일경제 산업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7호 (2018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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