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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휩쓴 팩터투자, 한국서도 빠르게 확산 중-펀드매니저 직관 대신 빅데이터 믿는다
기사입력 2018.10.11 11: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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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주식에는 다 이유가 있다. 어떤 주식은 실적이 좋아 오르고, 또 다른 주식은 대형주에 돈이 몰려서 오른다. 또 어떤 주식은 변동성 장세에 안정적이라서 오르고 지금은 싸 보이는 주식이 갑자기 보배가 되기도 한다. 아무튼 이유 없이 오르는 종목은 없다. 단지 우리가 모를 뿐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소위 오를 주식을 잘 고르는 펀드매니저들이 있었다. 주가가 오를 만한 소재를 남보다 먼저 귀띔받는 투자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세상이 달라졌다. 소위 미공개 정보를 미리 알아보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봉쇄됐을 뿐만 아니라 그랬다 해도 한두 종목으로는 승률을 높이기가 어렵다. 바야흐로 데이터가 지배하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파고든 게 바로 ‘팩터 투자(Factor investment)’다. 자율주행차가 데이터로 차를 운전한다면 팩터투자는 데이터로 주식시장의 승률을 높이는 투자법이다. 좀 더 쉽게 말해 수익률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요소(팩터)들 위주로 자산을 재분배하는 것이다.

가령 ‘밸류’ 팩터 투자는 부실기업이나 성장주를 쌀 때 사서 비싸게 파는 방식을 말한다. 반면 ‘모멘텀’ 팩터 투자는 지속적으로 성과가 좋은 자산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모멘텀 팩터 투자자들은 애플 주식이 지금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실적을 보고 과감히 투자한다. 요즘 주식시장에서 흔히 접하는 스마트 베타 ETF 상품도 팩터 투자기법을 이용한 것이다.



▶‘빅5’ 팩터투자가 대세

아닌 게 아니라 같은 고민을 한 이론가들은 일찌감치 있었다. 가령 1930년대 벤저민 그레이엄이 저평가된 주식을 싸게 사라는 가치투자 원칙을 만든 이후 이를 꾸준히 실천해 큰돈을 번 이가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이다.

하지만 누구나 버핏처럼 투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우선 저평가된 주식을 고르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고, 설령 어떻게 알맞은 종목을 찾았다 해도 그 주식을 얼마에 사야 과연 싼값에 사는 건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얼마큼 오를 때까지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 건지까지 들어가면 거의 전문가의 영역이다. 이럴 때 활용해볼 만한 게 ‘팩터투자’다.

투자에 성공할 수 있는 ‘요소(팩터)’들을 찾아내서 그에 맞는 주식을 고르고, 투자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팩터투자도 따지고 보면 수리적 투자 방식인 퀀트투자의 일종이다. 가령 펀드매니저나 투자자들은 자신의 주관이나 심리 상태에 따라 주식을 사고판다. 하지만 팩터투자는 팩터라는 원칙에 근거해 계량적으로 주식을 사고파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물론 세상에 ‘팩터’는 무궁무진하다. 이름 붙이기 나름이다. 가령, 어떤 투자자가 보기에 오너지분이 높은 회사의 주식이 많이 오르더라 하면 ‘오너 팩터’라고 이름 짓고 투자하면 된다. 하지만 이런 팩터는 전 세계 주식시장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기 힘들뿐더러 시점에 따라 실적이 들쭉날쭉할 수 있다.

그래서 수십 년간 재무학자들이 시장에서 널리 활용되는 팩터들을 찾아보니 ‘빅5 팩터’로 추려졌다. ▲밸류 ▲모멘텀 ▲퀄리티 ▲변동성 ▲사이즈가 그것인데, 그중 가장 오래되고 대중적인 방식이 ‘밸류’ 팩터다. 버핏이 애용하는 저평가된 주식을 싸게 사서 보유하는 기법이다. 가령 밸류 팩터를 이용한 스마트 ETF에 투자하면 빅데이터가 고른 저평가 주식을 상장지수펀드 형태로 보유하게 되는 셈이다. 개별 주식을 고를 때 투자자가 빠질 수 있는 심리적 위험, 즉 비싼 주식을 싸다고 착각하면서 매수하는 오류 등을 제거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ETF니까 저렴한 수수료는 덤이다.



▶팩터투자는 ‘시장 파괴자’

최근 글로벌 자산운용 업계가 빠른 속도로 팩터투자로 옮겨가고 있다. 블랙록, 뱅가드 등 글로벌 빅3 자산운용사들이 팩터투자 기법을 활용한 상품을 줄줄이 내놓고 있다.

운용 자산 규모로 전 세계 1위인 블랙록은 글로벌 팩터투자 규모가 지난해 2조달러에 못 미쳤지만 2022년에는 3조5000억달러에 육박해 5년 만에 1.5배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에 따라 펀드 시장도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펀드 시장은 크게 펀드매니저에게 보수를 지급하고 돈을 맡기는 액티브펀드와 시장 평균대로 움직이는 저보수 패시브펀드(인덱스펀드)로 나뉘는데 가장 많이 거래되는 대표적인 패시브펀드가 상장지수펀드(ETF)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난 10여 년간 값싼 패시브펀드가 급성장하면서 수수료가 비싼 액티브펀드를 운용하는 뮤추얼펀드 회사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다. 그 덕분에 현재 상위 회사들은 대부분 ETF로 큰 패시브펀드 운용사다. 액티브 운용사들 중에 살아남은 곳은 거액 투자자들을 상대하는 헤지펀드사 정도였다. 수수료는 비싸지만 훨씬 더 높은 알파 수익률을 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액티브 헤지펀드사마저 위협하고 있는 게 ‘팩터투자’ 운용사다. 팩터투자로 유명한 미국 헤지펀드 회사 AQR은 운용 자산 규모가 2260억달러로 커지면서 월가의 유명 헤지펀드 매니저 레이 달리오의 브리지워터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AQR 같은 팩터투자 회사들을 ‘헤지펀드 킬러’라고 묘사할 정도다. 헤지펀드 회사는 통상 유명 펀드매니저들이 시장보다 초과 수익을 내고 값비싼 수수료를 가져가는 모델을 취했는데, 팩터투자라는 파괴적 혁신업자들이 나타나면서 기존의 헤지펀드사를 급속도로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투자자도 해보고 싶다면 이렇게

팩터투자는 실제 시장에서 크게 세 가지로 활용된다. 블랙록에 따르면 현재 팩터투자 시장은 1조9000억달러 규모인데 이 중 1조달러가 뮤추얼펀드에서 활용되고 있고, 2090억달러는 헤지펀드에서 운용된다. 그 나머지 7290억달러가 ETF 시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게 바로 국내에서도 개인투자자들이 살 수 있는 ‘스마트베타 ETF’다.

‘스마트베타 ETF’란 이름은 생소하지만 내용은 의외로 간단하다. 액티브펀드는 펀드매니저의 능력에 따라 시장 초과 수익률(알파)을 추구하고, 패시브펀드는 시장 전체의 변동성에 연동되는 수익률(베타)을 추구한다. 이 둘을 섞어놓은 게 스마트베타 ETF다. 팩터를 이용해 주식을 고르고, 시장 수익률보다 높은 수익률을 추구한다 해서 그냥 베타보다는 조금 똑똑한 ‘스마트베타’라 부르게 된 것이다.

국내에서도 개인투자자의 스마트베타 ETF 투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올해 들어 지난달 말까지 전체 ETF 시장의 5%를 넘어섰다. 기관투자가들도 최근 팩터투자 상품을 적극적으로 편입하고 있다.

기관들이 애용하는 상품으로는 최근에 3000억원 이상으로 시장 규모가 커진 EMP(ETF Managed Portfolio·상장지수펀드 자문 포트폴리오)펀드가 대표적이다. EMP펀드는 전 세계 5500여 개에 달하는 상품 중 팩터에 따라 몇 개 ETF에 분산 투자한 상품이다.

그렇다면 실제 팩터 투자 수익률이 좋았을까? 미국시장만 놓고 보면 팩터 투자 수익률이 월등히 높았다. 전 세계 주식시장을 모두 담은 MSCI월드지수의 지난해 수익률은 23.07%였지만 모멘텀 팩터 투자법을 이용한 MSCI월드모멘텀지수의 수익률은 32.59%에 달했다. 모멘텀 팩터에 투자했을경우 9%나 초과수익을 냈다는 의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팩터투자를 활용한 스마트 ETF나 EMP펀드 등이 아직까지 나온 지 얼마 안 돼 장기수익률을 추적하기 어렵다는 점은 한계다. 가령 국내 상장된 스마트베타 ETF들의 경우 5년 수익률을 가정해 보면 120% 수익률을 낼 것으로 추정되는 상품도 있지만 지난 1년 새에는 전반적으로 부진한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韓·美 팩터투자 강자들

글로벌 운용시장에서는 ETF시장의 선두주자이자 전 세계에서 운용자산 규모가 가장 큰 ‘블랙록’이 팩터투자에서도 앞장서고 있다. 통계학자로 시작해 팩터 투자만 연구해 오던 미국 컬럼비아대 비즈니스스쿨의 재무 담당 교수 앤드루 앙 박사를 4년 전 영입해 블랙록이 운용하는 자산 포트폴리오를 팩터 중심으로 재점검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과도 서서히 나오고 있다. 이미 캐나다연금, 싱가포르 국부펀드, 노르웨이 국부펀드 등 글로벌 초대형 기관투자가들이 팩터 투자를 받아들이면서 자산을 재편해 가고 있다. 기존에 지역이나 섹터에 기반해 자산을 잘 배분해 오던 기관들조차 시장 위험을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수익을 꾸준히 낼 수는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스마트베타 ETF를 가장 먼저 내놓은 삼성자산운용이 팩터투자에 가장 적극적이다. 올초에는 팩터투자를 기반으로 한 펀드 ‘삼성 코리아 팩터 인베스팅 펀드’를 내놓기도 했다.


이 펀드는 지난 2016년 출시한 삼성글로벌선진국 펀드의 팩터투자 전략을 국내주식에 동일하게 적용한 것인데, 글로벌 시장에서는 수익률이 설정 후 30%를 넘을 정도였다.

문경석 삼성자산운용 패시브운용본부장은 기존에 주식을 투자하고 있는 투자자라도 스마트베타 ETF를 통한 분산투자를 추천한다. 문 본부장은 “상황에 따라 특정 팩터의 비중을 조정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전문가들조차 그냥 N분의 1로 나누는 것보다 성과가 낫다는 걸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며 “팩터들 간에 상관관계가 낮거나 역의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에 고르게 비중을 나눠 투자하는 것이 효과를 가장 크게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예경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7호 (2018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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