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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 특파원의 일본열도 통신] 공유·빨리빨리·나홀로族 극단 소비자를 잡아라
기사입력 2018.06.05 16:23:12 | 최종수정 2018.06.05 16:2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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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 1: 건설회사에서 일하는 나가오 지로(40) 씨는 2년 전부터 옷을 거의 사지 않는다.

패션에 관심 없는 ‘꼰대 아저씨’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옷을 잘 입고 싶어서 택한 방식이다. 나가오 씨는 ‘패션 셰어(옷 공유)’ 서비스를 통해 옷을 구한다. 1만4904엔(약 15만원)을 내면 상하의 2벌씩이 배달되는 서비스다. 한 달 뒤엔 택배로 반납한다. 1년이면 180만원 가까운 돈이 들어가는 셈이다. 옷을 사 입는 것이 더 싸지 않을까 싶지만 나가오 씨는 “옷 고르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고 보관을 고민할 필요도 없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사례 2: 도쿄 미나토구 아자부주반에 위치한 피트니스센터인 ‘X바디랩 아자부주반’.

피트니스센터라면 떠오르는 러닝머신이나 바벨, 덤벨 등은 없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거울 앞에는 노트북컴퓨터 크기 정도의 화면과 요가 매트가 전부다. 평균 운동 시간은 20여 분이면 대부분의 사람이 2~3시간 정도 운동한 것처럼 가쁜 숨을 내쉬게 된다. 최대 24곳의 근육을 자극하는 EMS(전기근육자극요법) 전용 수트를 통해 운동효과를 극단적으로 높였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팔을 들거나 몸을 동그랗게 구부리는 등 간단한 포즈를 취하지만 종료 후엔 “상당한 운동이 된다”는 것이다.

# 사례 3: 도쿄 메구로역 근처의 입식 주점인 ‘호로요이토’.

입식 주점이란 고객이 몰리는 시간엔 말 그대로 서서 먹는 주점이다. 외견상 평범한 이 술집은 혼자 술을 마시는 이른바 ‘혼술족’을 주 대상으로 삼고 있다. 혼술족이라곤 하지만 고독을 즐기자는 것도 아니어서 주점 직원이나 옆자리 사람들과 편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이 가게를 운영하는 푸드커넥션의 후나기 준이치 사장은 2015년 말엔 아예 ‘혼술족 술집 협회’를 결성했다. 4월 말 기준으로 일본 전역에 협회 가맹점이 2900개에 달할 정도로 인기다.

사례 2(X BODY Lab)



조금은 과하다 싶은 사례들이지만 최근 일본 기업들이 새롭게 찾아낸 ‘극단 소비자’ 시장이다.

일반적인 시장에서는 경쟁이 과열되면서 더 이상 차별화가 쉽지 않다. 새로운 시장을 찾자며 지금까지 관심을 두지 못하던 소비자층을 타깃으로 한 틈새상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뭐든 분류하길 좋아하는 일본 사회에서는 극단 소비자도 공유족(sharer), 빨리빨리족 (rusher), 나홀로족(solist) 3개의 카테고리로 나눴다. 공유족은 사례 1에 등장하는 나가오 씨처럼 소유보다는 사용에 가치를 더 많이 부여하는 사람들이다. 빨리빨리족이란 사례 2처럼 시간을 효과적으로 쓰고 절약하려는 욕구가 높은 유형이다. 나홀로족이란 말 그래도 ‘홀로’를 중시하는 소비자층이다. 이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번거로움, 귀찮음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소비자가 과거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현실화시킬 기술이 없던 탓에 다들 참을 수밖에 없었으나 이젠 시대가 바뀌었다. 먼저 공유족. 나가오 씨가 이용하는 회사 외에도 현재 일본공유경제 협회에 등록된 옷을 공유하는 업태의 회사만 10곳에 달한다. 옷 외에도 월 7만4000원 정도에 명품백을 빌릴 수 있는 서비스를 비롯해 한국에서도 이용자가 늘고 있는 카셰어링 등도 대표적인 공유족 대상 사업이다. 일본의 카셰어링 이용자는 2017년 3월 기준으로 108만 명으로 3년 전에 비해 배 이상 늘었다.

우에다 미나미 아이쇼덴의 드라이브 스루 조문실

여기까지는 한국에도 있다. 일본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 애완동물 공유다. ‘독 하트 아쿠아 마린’이란 회사는 애완동물을 시간 단위로 빌릴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골든리트리버, 비글, 푸들을 시간당 3만8800원에 빌릴 수 있다. 집안일, 요리 등은 물론 그림퍼즐 맞추기, 프라모델 조립, 온라인 게임 아이템 획득도 공유 대상이다. 조립해 나가는 것이 재미인 프라모델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한다는 것이 말이 되나 싶지만 이미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야후옥션에 따르면 프라모델 조립의 경우 매달 거래 규모가 5억원에 달할 정도다.

빨리빨리족은 20분 전신운동을 찾는 사례 2와 같은 경우다. X바디랩은 일본 전역에 15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가장 변화에 더딜 수밖에 없는 관혼상제의 영역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나가노현 우에다현에 작년 12월 문을 연 장례식장 우에다 미나미 아이쇼덴엔 ‘첨단’ 시설이 등장했다. 자동차에 탑승한 상태로 조문을 마칠 수 있는 ‘드라이브 스루 조문실’이다. 패스트푸드점 드라이브 스루처럼 차에 탄 상태로 창구에 마련된 태블릿PC의 방명록에 서명하고 조의금을 내는 식이다. 식장을 지키고 있는 유가족과는 화면을 통해 인사하고 장례식장을 떠나면 된다. 2~3분이면 조문 절차가 끝난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너무 매정하지 않느냐’ ‘이런 서비스를 내놨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는 것 아니냐’ 등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5개월가량 운영한 지금까지는 예상 외로 호평을 받고 있다고 장례식장 측은 전했다.

사례 1(패션 셰어 서비스 업체인 ‘leeap’의 홈페이지 화면)

세상이 바빠지면서 토막 시간밖에 낼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상황을 반영해 길이를 축소하는 것도 빨리빨리족을 노린 서비스 패턴이다. 히나프로젝트란 회사에서는 1000자 내외의 짧은 소설만을 전문으로 게재하고 있다. 2004년부터 작가와 일반인 대상으로 1000자 소설 응모를 받아 현재 총 56만 편 정도를 갖췄다. 10분 정도면 충분히 한 편을 읽을 수 있다. 히나프로젝트 측은 “이용자가 빠르게 늘면서 3월의 경우 월간 조회수가 1억5000만 건에 달했다”고 소개했다. 마지막은 나홀로족. 사례 3처럼 편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조차 귀찮은 사람들만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혼자 살다 보니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서비스들이 주다. 예를 들어 퇴근 후 집 근처에서 풋살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을 모아서 함께 풋살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식이다. 1인 가구가 늘어가는 세태가 반영된 결과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3호 (2018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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