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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한국사회 퇴직 이후 준비는 뒷걸음질 | 은퇴준비지수 54점 ‘주의’ 수준 돈보다 노후활동·건강 대비 더 부족
기사입력 2018.05.04 10: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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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견기업에 다니다 은퇴한 서 모(63) 씨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직장생활을 하며 알뜰하게 모아 놨던 돈으로 주식투자에 나섰다가 큰 낭패를 봤기 때문이다. 당장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지만 허황되게 대박을 꿈꾸다가 그보다 오래전부터 꿈꿔 왔던 여유로운 노후 생활이 현실적으로 어렵게 됐다.

# 대기업에 다니다 몇 년 전 은퇴한 김 모(67) 씨 상황은 이보단 낫다. 김 씨는 노후 대비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저축과 개인연금을 통해 준비해 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김 씨는 조카들에게 용돈도 넉넉히 주고 동년배들보다 경제적으로는 여유 있는 생활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런 김 씨에게도 고민이 있다. 뭘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막연히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은퇴 후 건강 문제나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는 몰랐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한국이 고령사회로 본격 진입한 가운데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노후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일찍부터 준비를 해 은퇴 뒤 만족스러운 생활을 향유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바쁜 일상과 업무에 치여 미처 준비를 하지 못한 사이 갑작스러운 은퇴 후 별다른 대책 없이 노후를 맞이하게 된 사람도 있다. 개인별로 다양한 상황에 직면하지만 한국인의 전반적인 은퇴준비 수준은 해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준비지수 갈수록 하락세

삼성생명 은퇴연구소는 우리나라 국민의 은퇴준비 현황과 의식수준을 조사한 ‘은퇴준비지수 2018’ 보고서를 지난달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은퇴준비지수는 54.5점으로 ‘주의’ 수준이었다. 이는 첫 조사였던 지난 2014년 57.2점을 기록한 이후, 2016년 55.2점에 이어 지속적으로 하락한 수치다. 고령사회 진입과 수명 증가로 인해 은퇴준비에 대한 자신감이 낮아지고,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은퇴준비지수는 ▲재무 ▲건강 ▲활동 ▲관계 영역에 대해 응답자의 실행점수를 먼저 구한 뒤, 은퇴준비에 대한 주관적 평가인 자기평가점수를 반영해 산출한다.

실행점수를 항목별로 보면 재무영역이 67.8점으로 네 가지 항목 중에서 가장 높게 나왔지만, 활동영역은 44.2점으로 가장 낮았다. ‘건강’과 ‘관계’ 영역에서 각각 59.1점과 59.8점을 기록해 중간에 위치했다. 결국 은퇴지수를 보면, 노후 자금은 상대적으로 어느 정도는 준비하고 있지만, 정작 은퇴 후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준비가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은퇴 후 여가를 함께 보낼 인적 네트워크 축소가 활동점수 하락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됐다.

‘건강’ 부문도 전반적으로 건강생활습관 실천 비율이 높아졌지만, 만성질환이나 중증질환 보유자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계’ 영역에선 노후의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 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부부관계는 점차 개선됐지만 자녀와의 유대는 약화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은퇴준비지수 어떻게 조사했나

은퇴준비지수는 삼성생명이 국민의 노후준비 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2014년부터 2년 주기로 조사하고 있다. 이번에는 수도권이나 광역시에 거주하는 25~74세, 비은퇴자 총 1953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은퇴준비지수는 크게 자기평가점수와 실행점수로 구성돼 있는데, 은퇴연구소는 개인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자신의 은퇴준비 수준과 객관적인 실행 수준을 점검했다. 실행점수는 노후생활의 기반이 되는 재무, 건강, 활동, 관계 영역으로 구성되며, 영역별 은퇴준비 실행 정도에 따라 응답자들이 지각하는 영역별 상대적 중요도를 반영해 산출했다. 자기평가점수와 실행점수는 50:50 비율로 반영됐다.

은퇴준비지수는 100점 만점으로 점수에 따라 위험, 주의, 양호 단계로 구분된다. 0~50점 미만은 ‘위험’ 수준으로 은퇴 후 기본적인 삶의 유지를 위한 준비가 매우 취약한 상황을 의미한다. 50~70점 미만은 ‘주의’ 단계로 은퇴 후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요하는 수준이다. 70점 이상은 ‘양호’로 은퇴 후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크게 무리가 없는 수준을 말한다.

영역별 은퇴준비 | 재무

이번 응답자의 재무실행점수는 67.8점으로 4개 영역 중 점수는 가장 높지만 여전히 관심이 좀 더 필요한 ‘주의’ 수준이었다. 다행인 것은 최근 3년간 상승폭이 다른 영역에 비해 가장 컸다. 점수가 높아진 건 응답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택의 자산가치 상승과, 그동안 쌓아온 자산을 은퇴생활에 활용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 노후 필요자금 조달률이 높아진 게 원인이었다. 다만 주택의 경우 부동산 경기에 따라 등락이 존재하기 때문에 현재 가치가 과거보다 높아졌다고 해서 본질적인 재무적 준비가 개선된 것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게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의 분석이다.

한편 20~30대 젊은 층의 재무실행점수 상승폭이 두드러졌다. 과거와 달리 은퇴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 젊은 세대들이 현재 갖고 있는 자산을 은퇴생활 자금으로 활용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노후대비 저축액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영역별 은퇴준비 | 건강

건강실행점수는 59.1점에 불과했다. 노후건강을 위한 준비에 꾸준한 노력과 관심이 필요한 ‘주의’ 단계다. 비은퇴자들이 가장 잘하고 있는 건 건강검진으로 10명 중 8명이 규칙적인 건강검진을 받고 있었다. 2016년과 비교해 금연자가 많아졌고 절주 습관도 개선됐다. 다만 규칙적으로 운동을 한다고 답한 비율은 38.7%로 가장 취약했다.

전반적으로 금연과 절주 등 건강생활습관을 실천하는 비율이 높아진 동시에, 만성질환 보유자도 증가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만성질환 보유율은 2016년 30.4%였으나 2018년 36.1%로 늘었고, 중증질환 보유율도 같은 기간 2.4%에서 5.5%로 크게 증가했다.

연령과 성별로 나눠봤을 때 결과는 극명히 갈렸다. 남성의 경우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20대 이후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건강준비도가 지속적으로 낮아져 40~50대에 가장 취약한 상태에 이르렀다가, 60대 이상부터 다시 개선되는 패턴이 나왔다. 반면 여성은 20~30대에 건강실행점수가 가장 낮고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여성은 40대에 접어들면서 건강한 노후준비에 대한 관심이 대폭 증가했다.

영역별 은퇴준비 | 활동

이 영역은 44.2점으로 4개 영역 중 유일하게 ‘위험’ 수준으로 대비가 절실한 상황이다. 활동실행점수는 조사가 이뤄진 3년 동안 꾸준히 하락하고 있는데, 이는 ▲여가에 할애하는 시간 감소 ▲은퇴 후 여가를 같이 보낼 인적 네트워크 축소 등이 주된 이유로 꼽혔다.

특히 여가에 할애하는 시간이 감소세다. 2018년 기준 일주일 중 여가로 보내는 시간은 5.5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이는 은퇴 후 외롭게 시간을 보내야 하며 사회적 관계로부터 얻는 즐거움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전업주부들의 활동실행점수는 평균보다 낮고 위험집단에 속하는 비중도 높은 편이었다. 전업주부는 활용 가능한 절대적인 시간 자체는 많을 수 있지만, 자녀를 키우거나 가사활동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여가를 즐기지 못하고 남편이 은퇴한 뒤 활동을 위한 준비도 부족했다.

영역별 은퇴준비 | 관계

비은퇴자의 부부관계는 최근으로 올수록 개선됐으나 자녀와의 유대는 악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먼저 부부관계를 보면 노후까지 조화로운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역할분담과 협력’, ‘갈등해결’ 수준은 높아지는 추세다. 부부끼리 노후를 보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가족관계 내에서 부부간 중심성이 강화됐다는 평가다. 반면 자녀와의 소통은 다소 약화됐다. ‘자녀와 허물 없이 이야기한다’는 답변은 점차 낮아졌다.

연령대별로는 20대의 관계실행점수가 가장 높았다가 40대에서 저점을 찍고, 50대에 다시 조금 올랐다가 60대 이상에서는 다시 낮아졌다. 40대에서 점수가 낮게 나온 이유는 다른 연령층 대비 지인과의 비공식적인 교류가 적기 때문이다. 60대 이상에서는 가족과의 소통이 줄어들고, 인적 네트워크가 축소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1인 가구 은퇴준비 ‘비상등’

한편 우리나라 1인가구의 은퇴준비지수는 50.5점으로 다인가구(54.9점)는 물론 전체 평균(54.5점)보다 낮았다. 국내 1인가구는 통계청의 2016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전체 가구의 27.9%를 차지하고 있으며, 매년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1인가구의 재무 실행점수(55.1점)는 다인가구(69.3점)보다 현저하게 낮았다. 이는 1인가구의 노후대비 저축액과 자산규모가 적고 연금 가입률도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번 보고서를 작성한 윤성은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연금과 보장성 보험으로 노후의 불확실성을 줄여 갈 필요가 있다”며 “이와 같은 재무적인 준비뿐만 아니라 은퇴 후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누구와 시간을 보낼지’와 같은 비재무 영역에 대해서도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3층 연금 있으면 비재무적 준비도 잘돼

공적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같은 3층 연금이나 보장성 보험을 통해 노후 소득과 의료비를 준비하는 응답자의 경우, 재무 영역은 물론 그 밖의 건강·활동·관계 등 ‘비(非)재무 영역’에서도 실행점수가 높게 나타났다.

3층 연금을 모두 보유한 응답자(전체 응답자의 19.9%)는 그렇지 않은 경우(연금 미가입자 4.9%와 1~2개 가입자 75.2%)에 비해 재무를 포함한 전 영역의 실행점수가 높게 나타났다.

노후 의료비 등을 준비할 수 있는 보장성 보험도 연금과 마찬가지로 가입 건수가 많을수록 재무와 비재무 영역 모두 실행점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3층 연금과 보장성 보험 가입으로 노후의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제거되면, 건강·활동·관계 등 비재무 영역의 은퇴준비에도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생기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본 사람들도 은퇴 뒤 ‘불안’

우리와 비슷한 이웃 나라 일본의 상황은 어떨까. 일본 역시 여러 가지 이유로 정년퇴직 전후의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연구원이 일본 다이이치생명 경제연구소의 조사 결과를 정리해 지난 4월 공개한 ‘설문조사를 통한 일본의 은퇴 전후 생활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정년퇴직 전후 사람들 중 70%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이유로는 생활비 부족과 체력저하, 고용불안 등이 꼽혔다.

설문조사는 일본 전역의 55~6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들 중 미래에 대해 ‘불안하다’고 답변한 50대 후반의 남성은 72%에 달해 60대 남자의 65.6%보다 높았다. 여성의 경우 50대 후반은 74%가, 60대는 72% ‘불안하다’고 답했다.

불안한 이유로 가장 많이 지목된 것은 돈 문제였다. 성별과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생활비 부족’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이유로 지목했으며, 50대 후반 남성은 45%로 가장 많았다.

남성과 여성이 다른 반응을 보인 항목도 있었다. 남성의 경우 ‘생활의 리듬을 잡기 어렵다’는 답변과 ‘은퇴 후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답변이 상대적으로 많았던 반면, 여성은 ‘외로움을 느낀다’에 대해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남성의 경우 회사 중심으로 생활했기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 뒤 남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서툴렀고, 여성의 경우 결혼여부와 관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인들이 은퇴 이후 원하는 생활은 어떤 모습일까. 위 설문조사 결과 남성과 여성 모두 80% 이상이 “취미생활을 즐기고 싶다”고 답변했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고령화된 사회 모습을 대변하듯 남성과 여성 모두 절반 이상이 ‘부모의 간병을 하고 싶다’고 응답했고, ‘배우자 간병을 하고 싶다’는 응답도 30%대로 높게 나타났다.

[노승환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2호 (2018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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