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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영화 `강철비`
기사입력 2018.01.12 15: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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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생각한다. 북한에서는 왜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지?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이런 생각이 더 많을 것이다. 북한에서 쿠데타가 나면 좋지 않을까. 김 씨 세습 권력은 전체주의(全體主義)이고, 그건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니까. 아프리카 북부의 재스민 혁명이나 동구의 오렌지 혁명은 왜 북한에선 언감생심일까. 적어도 남한은 ‘촛불혁명’으로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이뤄내지 않았는가.

양우석 감독의 신작 <강철비>는 어쩌면 바로 그 같은 의문, 그 같은 설정으로 시작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은 어떻게든 변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이 영화는 시작부터 ‘진심으로’ 흥미가 진진하다. 북한에서 쿠데타가 난다. 그뿐이랴. ‘북한 1호’ 김정은이 총을 맞고 코마 상태에 빠진다. 자, 그러나 감상적인 통일론자들이여. 특히 북한의 내부가 변하고 남한이 그걸 잘 컨트롤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주도한다는 식의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여. 쿠데타는 항상 안 좋은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군부에 의해, 총칼을 앞세워 저질러지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칫 무지막지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철비>에서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군부는 김정은의 핵미사일 보유 국가 천명이 결단코 자신들을 위한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정은은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핵을 쓸 생각이 없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오로지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엉뚱하게도 자기들만 억울하게도 무수히, 그리고 무참히 숙청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이들을 사살할 때 고사포를 썼다는 말까지 있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영화 속에서) 결국 쿠데타를 일으킨다. 무엇보다 숙원의 적화통일(赤化統一)을 위하여. 대전을 타깃으로 핵미사일을 발사해 초토화시킨 다음 재래식으로 서울을 포위한 후 미국과 협상에 들어간다는 전술이다. 이런 정도면 난리도 이만저만한 난리가 아니다. 그러니 실제로는 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다.

어찌 됐든 영화는 쿠데타 과정에서 총을 맞은 김정은을 둘러업고(정확하게는 개성에 있던 인형 공장 용달차에 태우고) 남한으로 오게 된 과거 보위부 정찰총국의 정예 요원이던 엄철우(정우성)가 북한 특수부대 요원들에게 쫓기며 목숨의 위협을 받는다. 북한 쿠데타군 수뇌부는 북한 1호가 죽어야 ‘거사’가 성공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들은 죽기 살기로 파주의 한 병원에 누워 있는 김정은과 그를 데리고 내려온 엄철우를 죽이려 한다. 물론 엄철우 또한 죽기 살기로 살아남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남한에서 꽤나 똑똑한, 오히려 그 때문에 청와대 안보실장의 견제를 받는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와 조우한다. 영화는 이때부터 일종의 버디 무비의 흐름을 탄다. 둘은 너무도 생경한 성장 환경을 가졌지만 전쟁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일촉즉발의 위기, 그 공포에 마음을 합친다. 어쨌든 둘은 언어가 같다. 생긴 것도 같은 유형이다. 한 민족이니까. 그래서 둘은 싸우기보다 힘을 합친다. 그래도 결국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의 큰일을 위해서는 비극적 희생이 필요한 법이다. 하늘은 이 둘에게 형제애를 나눌 시간적 여유를 부여하지 않는다.

‘원래 하나였던 것은 다시 하나가 돼야 한다’는 식의 어법은 이 영화가 양괄식으로 보여주는 주제 의식이다. 곽철우는 이혼했다. 전처는 잘 나가는 의사다. 철우는 전처의 동의하에 가끔 아이들을 만나 패스트푸드를 사주는데 그때 아들이 묻는다. “아빠, 엄마하고 다시 살면 안 돼?” 영화 말미에 새로운 개혁 정권을 출범시키는 차기 대통령(이경영)이 서재에서 책을 읽는다. 그는 요즘, 아직 임기 만료 전인 전임 대통령(김의성)이 미국에게 부탁해 DMZ 북방한계선에 미사일 선제타격을 해야 한다고 열을 내고 있어 골치를 썩고 있는 판이다. 신임 대통령이 될 사람은 읽던 책을 덮는다. 통일 독일을 이끌었던 빌리 브란트의 말이 제목으로 실려 있다. ‘원래 하나였던 것은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영화의 맨 앞과 맨 뒤의 사이에서 엄철우와 곽철우는 고군분투한다. 둘은 한 몸처럼 호흡을 맞추려고 애쓴다. 통일은 사실 작은 일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거대 담론이 작은 이야기에서 달성되는 것처럼. 결국 세상(한반도)을 구하는 것은 두 사람의 의형제 같은 우정이다. 영화 <강철비>가 재미있고, 우회적이면서도 직접적이고, 무엇보다 눈물 나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두 철우(주인공 둘 이름을 같게 만든 것도 원래 이들, 그러니까 우리 민족이 하나였음을 은유하려는 감독의 ‘속셈’이겠다)가 헤어질 때 남북의 철우로 분한 곽도원과 정우성의 연기는 일품이다. 곽철우는 엄철우에게 어떤 일이 닥칠 것임을 안다. 그러나 이 길밖에는 없다. 분단 민족의 비극은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슬픔은 <강철비>에서 두 사람에게 닥치는 것처럼 불현듯 그리고 거침없이 찾아온다. 우리는 그 비극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먹고살기에 바빠서 종종 그 사실을 잊어 버리기는 하지만.

아마도 이 영화 <강철비>로 감독 양우석은 전작 <변호인> 이후 가장 똑똑하고 이성적이며 말을 잘하는(시나리오를 잘 쓰는) 감독 중의 한 명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에 대한 백데이터를 엄청나게 준비했음이 느껴진다. 영화 한 편으로 한반도 전쟁 위기 전문가가 탄생한 느낌을 줄 정도다. 미국의 CIA, 중국과 일본의 비밀 기관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또 움직일 것인가가 영화를 보면 예측이 된다. 특히 지금의 틸러슨으로 보이는 미국 국무장관과의 화상 통화 내용들은 미국을 두고 ‘맹방!’을 외치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같이 흔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생각하게 해 준다. 모두들 자국의 이익이 최고다. 그런데 한반도는 자국의 이익이 지나치게 상충되는 지정학적 위치에 놓여 있다. 중국과는 아예 국경이 맞닿아 있다. 중국은 자기 코밑에서 친미적 국가가 완전체로 거듭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일본은 한반도가 동북아에서 자신들을 앞서 나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미국은 이 모든 것을 한 손에 쥐락펴락하고 싶어 한다. 영화 <강철비>는 그 모든 과정을 조목조목, 알기 쉽게, 그리고 동맥이 격렬하게 뛸 만큼 흥분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며 알려 주려 애쓴다. <강철비>는 최근 나온 한국 영화 가운데 가장 쓸 만한 국제정치학 교과서다. <강철비>는 논쟁거리를 던지기도 한다. 전술 핵 배치의 문제 같은 것이다. 영화는 평화주의자, 곧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신임 대통령의 메시지를 앞세우고는 있지만 강력한 군사 대응의 카드를 쓰려는 전임 대통령의 모습을 그렇게 악의적이거나 악랄하게까지는 그리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음을 충분히 배려한 설정이다. 하지만 마지막 협상 과정에서 북한에게 그들이 갖고 있는 핵의 절반을 요구하는 것은 감독이 다소 많이 나간 것으로 보인다. 양우석은 남한 내 핵 배치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이 영화의 결론을 보면서 기이하게도 하로카네 겐시의 일본 만화 <시마부장>이 떠올랐다면 그것도 과한 얘기라는 소리를 들을까. ‘시마’는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일본 자위대의 변화=일본의 재무장화’를 주장하는 쪽으로 기운다. 그런데 그 계기의 목소리는 처음엔 그리 커 보이지 않던 것이었다. 자신의 회사 영업을 위해 해외를 뛰어 다니다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어쨌든 그러다 시마는 점점 일본의 우익을 대변하는 인물이 된다. 양우석의 결론은 그런 면에서 ‘살짝’ 위험해 보인다. 남북이 동시에 동일한 규모와 양의 핵무기를 보유한다는 것이 합리적인 생각일까. 이것은 논쟁을 위한 논쟁인가, 아니면 감독의 확고한 이데올로기일까. 영화는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 영화 <강철비>가 흥미로운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영화는 예후(豫後·의사가 환자의 병의 상태를 미리 판단하는 것) 감각이 뛰어나다. 시대를 앞서 간다. 최소 2년에서 많게는 2~30년 후, 2~300년 후의 시대를 예감한다. 그래서 <강철비>를 보면 불안해지기도 한다. 북한이 정말 저 지경이 되면 어쩌나 싶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싶다. 그럴 때 모두를 잘 보호해 줄 지도자를 우리가 현재 지니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있다면, 그 지도자를 잘 지켜 줘야 한다는 생각도 갖게 된다. 제발 <강철비>의 예감이 틀리기를. 영화를 보면서 반대의 희망을 품게 되기도 참으로 오랜만의 일인 셈이다.

영화 <강철비>는 개봉 첫 주에 160만 명을 동원했다.
한반도 위기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보여 준다. 무릇 좋은 상업영화란 대중의 생각에 영합하지 않고 대중의 마음을 읽어 내는 작품들이다. <강철비>가 바로 그런 영화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8호 (2018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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