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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각양각색 중국식 샤브샤브 ‘훠궈’
기사입력 2018.04.12 17: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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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샤브샤브인 훠궈(火鍋)는 빨간 육수 색깔만큼 매우면서 입안이 얼얼해지는 독특한 맛과 설렁탕처럼 뽀얗고 담백한 육수, 여기에 고기와 채소를 비롯한 갖가지 재료를 데쳐 먹는 요리법이 매력적이다. 우리나라에는 약 10여 년 전쯤에 처음 선보였는데 지금은 훠궈 전문점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띌 정도로 낯설지 않은 음식이 됐다.

훠궈는 중국에서도 널리 퍼진 시기가 그다지 오래 되지는 않는다. 물론 훠궈의 기원을 멀리는 5000년 전의 상나라, 주나라에서 찾기도 하고 한자인 ‘솥 정(鼎)’이 물을 끓여 고기를 익히거나 데쳐 먹는 그릇이었으니 훠궈의 역사가 그만큼 오래됐다는 주장도 있지만 억지로 끌어다 붙인 해석의 느낌이 강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훠궈, 즉 현재 중국에서 대중적으로 퍼져 있는 훠궈, 그중에서도 특히 홍탕과 백탕이 어우러진 원앙훠궈가 대중화된 역사는 길지 않다. 중국이 본격적으로 개혁개방을 추진하던 1990년대까지만 해도 몇몇 지역의 명물 음식에 지나지 않았던 훠궈는 중국 경제발전이 본궤도에 오른 2000년 들어서야 중국 전역으로 퍼져 인민의 사랑을 받는 음식으로 발전했다. 심지어 지금은 중국을 벗어나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과 동남아까지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도 인기를 끄는 요리가 됐다. 중국식 샤브샤브인 훠궈, 과연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렇게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는 것일까?



▶베이징과 충칭의 조합

음식 맛 자체야 사람 따라 입맛이 다르니 논외로 치더라도 훠궈라는 음식이 발달한 내력을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훠궈는 종류가 다양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많이 먹고 중국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훠궈는 전골냄비 가운데를 빨간 육수의 홍탕(紅湯)과 뽀얀 육수의 청탕(淸湯)으로 나누어 두 가지 맛을 동시에 맛보도록 만든 원앙훠궈다. 보통은 이런 훠궈를 충칭훠궈(重慶火鍋)라고 한다. 좀 더 정확하게는 빨간 육수의 홍탕만 충칭훠궈고, 뽀얀 육수의 청탕은 지역적으로 말하면 베이징훠궈다. 베이징식 청탕과 충칭식 홍탕의 조합은 맛을 떠나 훠궈의 매력이자 특징이며 장점이자 한계일 수 있는데, 청나라 역사와 음식 문화가 만들어 낸 극과 극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훠궈 중에서도 제일 독특하고 이색적이어서 인기가 높은 홍탕은 사실 최악의 조건에서 생겨난 음식이다. 홍탕인 충칭훠궈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19세기 후반인 청나라 말기 도광제 때 발달했다는 설도 있고 청나라 멸망 후인 중화민국 시절인 1920년대에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여러 설 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유래설은 양쯔강(長江)과 쟈링(嘉陵)강이 만나는 쓰촨성 충칭의 부둣가에서 일하던 노동자, 그중에서도 특히 배를 밧줄에 묶어 흐르는 양쯔강 물결을 거슬러서 소처럼 배를 끌고 올라가는 선부들이 먹었던 음식이 뿌리가 됐다는 것이다. 그러니 노동자 중에서도 가장 비참하고 가난했던 막일꾼들의 음식이었다.

하루 벌어서 먹고살기도 힘든 사람들이었으니 제대로 된 고기를 사 먹을 돈이 있을 턱이 없었다. 때문에 내다 버리다시피 하는 소 창자와 천엽, 그리고 오리 내장 등 부스러기 고기를 긁어 모아 잠시 잠깐 쉬는 틈에 펄펄 끓는 육수에 데쳐 먹고는 서둘러 배를 끌러 갔던 것이 충칭훠궈인 홍탕의 뿌리다. 지금도 충칭훠궈 재료로 소 천엽과 곱창이 인기가 높은 이유는 이런 전통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돼지고기를 많이 먹는 중국에서 충칭훠궈만큼은 소고기 위주로 먹는데, 이것도 역시 까닭이 있다. 충칭훠궈를 처음 만들어 먹었던 사람이 강물을 거슬러 몸으로 배를 끌고 가는 막일꾼들이었다면 이들에게 부스러기 고기를 판 사람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가난한 소수민족이었다. 쓰촨성과 이웃한 간쑤성에서 키우던 소를 몰고 온 이슬람 문화권의 회족(回族)들이 충칭에서 소를 도축해 팔고 난 후 버리기 직전의 마지막 남은 부위인 창자와 천엽까지 막일꾼들에게 팔아넘겼던 것인데, 충칭훠궈인 홍탕은 이렇게 밑바닥 막일꾼과 가난한 소수민족이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만들어 낸 음식이었다. 충칭훠궈의 육수가 새빨갛고 얼얼한 홍탕으로 발전한 것도 기원과 관련이 있다. 기본적인 이유는 충칭훠궈 역시 쓰촨 음식이기 때문에 매운 것이 특징이다. 쓰촨성은 끈적거리고 후텁지근한 날씨 탓에 땀이 뚝뚝 떨어질 만큼 매워야 오히려 시원하면서 더위를 이길 수 있어 “쓰촨 사람은 음식이 맵지 않을까 두려워 한다”는 말이 생겼을 만큼 매워졌다. 여기에 더해 강한 향신료를 쓰지 않으면 먹지 못할 정도로 음식 재료가 형편없었던 것도 충칭훠궈가 홍탕으로 발전한 배경이다.



▶양고기를 뽀얀 육수에 데쳐 먹는 청탕

베이징을 중심으로 발달한 훠궈인 청탕은 홍탕과는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종잇장처럼 얇게 썬 양고기를 뽀얀 육수에 흔들어 데쳐 먹는 청탕은 청나라 궁중의 잔치요리에서 발달해 민가에 퍼졌다. 청탕의 기반이 되는 음식이 베이징의 전통 겨울음식인 솬양러우(涮羊肉)다. 씻을 쇄(涮) 자를 써서 양고기를 육수에 흔들어 씻듯이 데쳐 먹는다는 이름의 요리로 일설에 의하면 청나라 광서제(1874~1908) 연간에 베이징의 양고기 집 주인이 자금성의 환관을 매수해 궁중에 비법으로 내려오는 육수 배합 비율을 훔쳐 만들어 대중화시켰다고 한다.

솬양러우의 뿌리가 되는 양고기 훠궈 자체의 기원도 여러 설이 많지만 원 세조, 쿠빌라이 때 만들어졌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원의 대군이 장거리 이동으로 허기와 피로에 지쳤다. 휴식도 취할 겸해서 양을 잡아 요리를 하려는데 마침 적군이 기습했다. 그러자 다급하게 얇게 고기를 썰어 육수에 흔들어 익혀 먹고 나가 싸운 것이 양고기 전골, 솬양러우의 유래라고 한다. 물론 문헌적 근거는 전혀 없고 누군가 만들어 낸 이야기로 추정된다. 다만 중국 북방에서 발달한 양고기 훠궈라는 점에 비춰볼 때 몽골 음식과는 깊은 관련이 있기에 관련 유래설이 나왔을 것으로 본다.

솬양러우는 청나라 전성기를 이룩한 건륭황제가 경로우대 잔치, 이른바 세상에 만한전석으로 알려진 천수연(千叟宴 ) 잔치를 베풀 때 500개의 훠궈 상을 차려놓고 3000명의 참석자가 동시에 먹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양고기 훠궈인 솬양러우가 청나라 궁중 잔치요리였던 것인데 과연 누구를 위한 요리였을까?

청나라 황실은 만주족 출신이다. 만주족은 주로 돼지고기를 먹었지 양고기에는 익숙하지 않은 민족이다. <진서(晉書)> <동이전>을 비롯한 여러 역사서에도 관련 내용이 실려 있다.

“숙신(肅愼)은 일명 읍루라고 하는데 소와 양은 기르지 않고 돼지를 많이 키운다. 그 고기를 먹으며 그 가죽으로 옷을 입고 그 털로 옷감을 짠다.”

읍루와 숙신은 여진족과 그 후손인 만주족의 조상이다. 만주 숲속에 살았던 이들은 유목 민족과는 달리 소와 양을 키우지 않았다는 것인데 명나라 이전까지 주로 양고기를 먹던 중국에서 명·청시대에 돼지고기가 널리 퍼지게 된 배경과도 연결된다.

솬양러우가 청나라 황실이나 귀족의 요리가 아니었다면 누구를 위해 차렸을까? 청나라는 누루하치가 후금을 건국한 후 부근의 몽골족과 연맹을 맺고 혼인을 통해 동맹 관계를 다졌다. 홍타이지가 1635년 내몽골을 평정하면서 내몽골은 직속 관할로 조정에서 관리를 임명하며 직접 통치했지만 외몽골 여러 부족은 외번(外藩)으로 독립 부족이 됐다. 청나라는 몽골과 티베트 부족 우대 정책을 폈는데 특히 몽골 부족의 왕공귀족과는 혼인을 통해 인척 관계를 맺으며 형제의 관계를 유지했다. 중원의 한족을 통치할 때 만주족만으로는 역량이 부족했기에 몽골의 지원이 필요했다. 이렇듯 몽골과는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편으로는 몽골과 한족의 직접적인 통상과 교류를 금지해 두 민족을 분리하는 정책을 폈다. 이렇게 몽골을 우대하면서 해마다 정월 15일이면 황제가 자금성의 보화전(保和殿)에서 특별히 사돈관계인 몽골의 왕족과 귀족을 초대해 인사를 나누는 잔치인 몽골친번연(蒙古親藩宴)을 열었다.

솬양러우는 이때 사돈이자 동맹인 몽골 왕족을 대접하려고 차린 요리였다.
청나라 황실의 만주족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몽골 왕족을 위해 차린 배려의 음식이자 우정의 요리가 양고기 훠궈였다. 한족을 견제하기 위해 손잡은 만주족과 몽골족이 궁중에서 동맹을 다짐하며 먹었던 요리였던 셈이다. 원앙훠궈에 나눠진 홍탕과 청탕, 그 내력 속에서 뜻밖의 중국 역사를 만날 수 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1호 (2018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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