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신청

[년 월 제 호]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
‘한정판’의 경제학 평창 롱패딩·스니커즈·카카오프렌즈 인형…좁은 땅에 모여 사는 한국시장서 유난히 돌풍
기사입력 2018.01.10 15:35:38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지난 12월 1일 오전 8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에 위치한 맥도날드 관훈점. 영하의 날씨에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사람들이 하나 둘씩 줄을 서기 시작했다. 같은 날 오후 3시, 맥도날드 서울시청점. 또 어디선가 사람들이 모여들어 길게 줄을 늘어섰다. 롱패딩을 입은 학생, 양복 차림의 직장인과 두꺼운 외투를 걸친 중년 여성까지 성별도 나이도 제각각이었다. 한참을 기다리던 이들은 양손에 작은 상자를 들고 뿌듯한 표정으로 흩어졌다. 이 상자에 담긴 것은 성인 손바닥 만한 봉제인형. 모바일메신저 카카오톡에서 맥도날드와 협업해 한정수량만 출시한 ‘카카오프렌즈 크리스마스 캐릭터 5종’이다. 이날 판매한 4만원짜리 세트에는 엘프로 변신한 프로도, 산타 차림의 라이언, 레인디어 무지 등 캐릭터 인형 5개와 빅맥 햄버거세트가 들어 있었다. 서울시청점에서는 50개 세트가 10분 만에 매진됐다. 전국 곳곳에서도 선착순 50명 안에 들지 못한 사람들이 아쉬움을 토해 냈다. SNS에서는 카카오프렌즈 ‘득템’ 인증샷이 속속 올라왔다.



▶가성비의 시대… 명품을 대체한 한정판

올겨울 대한민국은 ‘한정판’에 매혹됐다. 한정판은 원래 책이나 잡지 같은 출판물을 부르는 말이다. ‘출판부수를 한정하여 간행하는 책자’(두산백과)로, 주로 특정 구독자를 대상으로 발행한다. 말하자면 대중이 소비하기에는 인기가 없거나 수요층이 적어 소량만 제작하는 제품이었다. 국내에선 정반대다. ‘인기가 없어서’ 물량이 적은 게 아니라, 한정판은 ‘물량이 적어서’ 인기가 높다.

올겨울 한정판 구하기에 불을 댕긴 제품은 롯데백화점의 ‘평창 롱패딩’이다. 롯데백화점이 2월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념해 제작한 벤치파카 스타일의 롱패딩은 지난해 10월 26일 출시됐다. 출시 첫날 300여 벌이 팔렸고, 1주일 후에는 판매량이 매일 500벌로 늘었다. 그 다음 주부터는 ‘평창 패딩’과 ‘평창 롱패딩’, ‘평창 온라인스토어’가 인터넷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렸다. 백화점 내 올림픽 공식스토어에 가면 몇 벌씩 걸려 있던 옷이 동났다. 직장인은 점심시간에 밥을 먹는 대신 패딩을 입어 보기 위해 한 시간씩 줄을 섰다. 중고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지방에서 패딩을 사기 위해 상경했다.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웃돈을 줄 테니 되팔아라’는 글이 수백 건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롯데백화점은 출시 후 약 3주 만에 롱패딩 2만3000벌을 팔았다. ‘이제 곧 못 구하게 되는 패딩’을 사려는 사람들은 패딩이 입고되기 이틀 전부터 밤새 줄을 섰다. 사람들은 SNS에 대기순번표를 ‘훈장’처럼 찍어 올렸다. 롯데백화점 측은 “3만 벌을 제작했는데, 구매 대기자 등을 감안하면 실제 수요는 20만 벌 정도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평창 롱패딩은 14만9000원이었다. 거위털로 안을 채운 롱패딩 제품은 비슷한 사양이 30만~40만원을 호가한다. 롱패딩은 가성비(가격대비 성능)가 좋았다. 처음 산 사람들은 평창 패딩이 싸고 따뜻해서 샀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처음 산 사람들이 ‘기능’에 집중한 반면, 입소문을 듣고 뒤따라 사는 사람들은 ‘소유’에 더 의미를 뒀다. 패딩을 구매하는 사람들마저 “내년에는 못 입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이 패딩을 입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다.



▶‘너도? 나도!’ 모바일메신저·SNS 덕에 한정판 불티

모든 의류 브랜드가 롱패딩을 팔았지만, 롯데백화점이 판매하는 평창 패딩은 올해만 구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가격이 저렴했다. <설득의 심리학> 저자인 로버트 치알디니 애리조나 주립대 심리학과 교수에 따르면 욕구를 충족시켜 줄 재화가 부족할 때 이 재화의 가치는 자연스럽게 상승한다.

카카오프렌즈의 크리스마스 한정판 캐릭터

‘남이 뭘 사는지’를 쉽게 알 수 있는 구조도 한정판 열풍에 한 몫을 더했다. 국내 대표적인 모바일메신저인 카카오톡은 지난해 처음으로 국내 월평균 사용자수가 4200만 명을 돌파했다.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는 45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의 대부분이 메신저를 쓴다. 카카오톡은 기존의 ‘문자’ 형태와 달리, 내용을 퍼나르기 쉬운 구조다. 단체카톡(단톡)방에 정보를 올리면 적게는 두세 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까지 순식간에 같은 내용을 공유할 수 있다. 특히 1020세대 젊은 층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일상을 ‘보여 주는’ 데 익숙해 나를 돋보이게 할 희소한 상품에 더 매혹되는 경향이 있다. 분명 과시적 소비지만, 접근 가능한 정도의 가격대여야 폭발력을 갖는다. 최근 인기를 끈 한정판 제품을 살펴보면, ‘가성비’가 한정판 제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맥도날드는 5종 모두를 살 수 있는 세트를 하루만 판매했다. 2일부터는 산타라이언과 스노우맨 튜브, 7일부터는 레인디어 무지와 크리스마스 어피치 등 캐릭터별 세트를 각각 판매했다. 각 인형은 1만1000원이고, 맥도날드 세트제품과 구매하면 인형을 6900원에 판매했다. 실제 사람들이 지출하는 금액은 1만~5만원 선이다.

롯데백화점이 평창 롱패딩 매진 이후 다시 기획해 출시한 평창 스니커즈도 이런 ‘가성비’ 원칙에 충실했다. 롯데백화점은 소가죽 스니커즈를 출시하면서 가격은 5만원으로 맞췄다. ‘평창 롱패딩’으로 폭발력을 경험한 소비자들은 아직 실물이 나오지도 않은 스니커즈를 스케치만 보고 사전 예약했다. 예약 시작 사흘 만에 1만2500켤레가 예약됐다. 닷새 동안 예약량은 3만 켤레였다. 돌풍은 그 다음부터였다. 롯데백화점이 스니커즈가 잘 팔렸다는 보도자료를 내고, 인터넷에 스니커즈 기사가 쏟아졌다. 반나절 만에 3만 켤레는 8만5000켤레가 됐고, 시간당 1만 켤레씩 주문이 폭주했다. 결국 원래 판매하려던 물량의 4배인 20만 켤레 주문이 접수됐다. 가격으로 관심을 끌고, ‘인기라면 나도 사야겠다’는 동조심리가 더해져 구매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은 좁은 땅에 밀집해 모여 살아 지리적·사회적 거리가 가깝고, 초고속 인터넷 발전으로 이 연결성이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여 교수는 “다른 사람들 동향에 관심이 높은 ‘사회적 비교지수’가 상대적으로 높은 문화에서 최근 이슈가 된 한정판 상품에 열광하는 분위기가 쉽게 달아올랐다”고 설명했다.

레고의 한정판 ‘스타워즈 팔콘’



▶매년 돌아와도 인기…

스타벅스 플래너 올해도 돌풍

한정판 제작이 가장 활발한 분야는 패션과 식품이다. 시즌별로 신상품이 나오는 주기가 짧고, 그만큼 유행이 금방 변해서다. 여러 신상품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다양한 콜라보레이션(협업) 제품이 나온다. 이 콜라보레이션 제품들은 대부분 한정판으로 제작된다.

유니클로는 지난해 9월 영국 디자이너 JW앤더슨과 협업한 ‘유니클로 and JW앤더슨 콜라보레이션’ 콜렉션을 출시해 화제를 모았다. 출시 당일 유니클로 명동중앙점에는 500여 명의 고객이 대기했고, 온라인 스토어에서는 일부 액세서리 상품과 패션 아이템이 당일 품절됐다.

국내에서 인기를 끈 한정판은 매년 다시 돌아온다.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스타벅스코리아의 ‘플래너’가 꼽힌다. 스타벅스는 2004년부터 매년 10월 말 국내에서 ‘플래너’를 출시했다. 처음에는 스타벅스 이용 고객에 대한 사은 의미로 단골고객에게 증정하는 형태로 기획됐다. 스타벅스에서는 행사기간인 10월 말부터 12월 연말까지 음료 1잔당 1개씩 총 17개의 쿠폰을 모은 고객에게 플래너를 준다.

안현철 스타벅스코리아 과장은 “한 달에 8번 정도 방문하는 단골고객이 11~12월에 평소처럼 스타벅스를 이용하면 플래너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연중 고객 대상 설문을 받고, 고객 요청사항과 트렌드를 반영해 1월부터 다음해 플래너에 대한 기획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2018 스타벅스 플래너’는 세계적인 색채전문기업 팬톤과 협업해 5종의 색깔로 출시됐다. 스타벅스 측은 이번 2018 플래너 물량을 42%가량 더 늘려 제작했다고 밝혔다. 스타벅스는 플래너 전체를 구입하고 싶다는 고객 요청이 많아 올해부터는 전권을 구매할 수 있도록 판매 방침을 변경했다. 매년 진행되는 행사인데도 반응은 뜨겁다. 스타벅스에 따르면 플래너를 받아가는 고객의 70%가 여성이고, 특히 20~30대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정판에 열광하는 마니아층은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한다는 특징이 있다. 스타벅스에서는 3만5000원에 플래너를 판매하지만, 여전히 전체 플래너의 97%는 커피 음료 17잔을 마신 고객이 가져간다. 두 달 동안 매주 꾸준히 스타벅스에 들러 쿠폰을 모으고, 플래너를 받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 레고스토어를 오픈하면서 한정판으로 발매한 ‘스타워즈 팔콘’은 10월과 11월 각각 50개씩 총 100개 물량이 국내에 풀렸다. 10월 선착순 판매 당시에는 하루 전부터 100여 명이 백화점 앞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백화점 측은 11월 판매 시에는 당일 번호표를 배부하고 지정시간에 추첨해 판매했다. 개당 110만원이라는 초고가에도 불구하고 두터운 마니아층이 몰리면서 판매 시작 당일 모두 매진된 드문 사례다.

스타벅스의 한정판 다이어리, 모나미153 볼펜은 다른 브랜드와 협업으로 화제를 모았다.



▶분야 안 가리고 콜라보… ‘한정판’으로 다시 일어선 모나미153

한정판 제품의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브랜드 인지도다. 소비자가 익히 잘 아는 브랜드에서 새로운 한정판 제품을 발매했을 때 가장 파급력이 크다. 전통적인 브랜드가 전혀 다른 분야의 브랜드와 협업해 한정판을 낼 경우 두 기업에 모두 참신한 이미지가 더해진다. 1963년 출시돼 올해 54세의 중년인 ‘모나미153 볼펜’은 다양한 업체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한정판을 발매하고, 브랜드가 활력을 얻었다. 모나미는 아이스크림 나뚜루와 콜라보레이션해 아이스크림 콘에 다채로운 아이스크림이 얹혀진 모양의 볼펜을 한정판으로 내놨다. 화장품 브랜드 베네피트의 대표색인 핑크를 볼펜에 덧입힌 한정판 제품, 주방용품 업체인 락앤락과 콜라보레이션한 키친마커를 잇달아 내놨다.
특히 6월 현대자동차의 신차 ‘코나’의 컬러를 입힌 ‘코나 스페셜 에디션’은 크게 화제가 됐다.

이런 한정판은 기업 매출로 연결되기도 한다. 문구업계 불황이 이어지고 있지만, 다양한 한정판 제품으로 이미지를 개선한 모나미는 매출이 소폭 오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진 매일경제 유통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8호 (2018년 01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크루즈 타고 즐기는 알래스카 여행 “아, 이래서 크루즈, 크루즈 하는 구나”

신의 선물, 조지아를 아십니까

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영화 '강철비'

‘샤넬백 테크’보다 주목받는 럭셔리펀드

2018년은 액티브 펀드 부활의 해? 대장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주가 부진 땐 중소형주 펀드에 뭉칫돈 쏠..


경제용어사전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